유통기한 지난 세제
정책은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현실이 빠르게 변하는 동안 정책과 제도는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시에는 합리적이었던 정책이 어떻게 현실과 괴리됐는지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정책은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현실이 빠르게 변하는 동안 정책과 제도는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시에는 합리적이었던 정책이 어떻게 현실과 괴리됐는지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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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국민소득 1만달러 시절에 만들어진 과표를 4만달러를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유지하는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도를 방치하는 것. 세금은 걷는 측에선 합리성이, 내는 입장에선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머니투데이 the300(더300)과 만나 상속세와 증여세 등 세법 전반의 과세표준(과표)·공제 제도가 지닌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짚었다. 최근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국세청과 세제 전반의 실태를 검토한 이 위원장은 낡은 조세 체계의 개편을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현행 세제의 구조적 모순을 30년 전 'YS(김영삼) 정부' 시절과 비교해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30년 전 그때 국민소득 1만달러쯤 될 때"라며 "지금 4만달러 시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인데, 그때와 동일한 과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세금을 물린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 세법은 경제성장의 흐름을 제때 반영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세기준 현실화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건 그만큼 유통기한이 지난 세제가 많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각종 공제와 과세표준 탓에 납세자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상속세가 대표적이다. 상속세의 대표적인 공제인 기초공제(2억원), 일괄공제(5억원), 배우자공제(5억~30억원)는 1997년 이후 변하지 않았다. 공제는 과세의 문턱 역할을 한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상속 자산의 가치가 큰 폭으로 올랐는데도 문턱은 그대로다. 부자들의 세금이었던 상속세가 점차 중산층까지 부담하는 세금으로 변한 이유다. 근로소득세 과세표준도 유통기한이 지났다. 직장인들은 매달 소득세 등을 원천징수한 뒤 월급을 받는다. 이때 과세표준에 따른 세율이 적용된다. 과세표준이 높아질수록 세율도 높아지는 구조다. 임금이 오르는데 과세표준이 그대로라면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직장인이 늘어난다. 근로소득세 과세표준은 2008년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5년 이상 개정되지 않고 고정된 세법상 공제와 비과세가 총 38개다.
물가가 오르고 자산 가치도 뛰었지만, 일부 세금의 문턱은 최대 수십 년 동안 제자리다. 정부가 제도를 도입할 당시의 기준을 지키지 않은 사례도 있다. 여당 주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 차원에서 과세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결의안까지 나왔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른 과세기준 및 벌금형·행정질서벌 등 제재기준의 현실화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결의안은 장기간 동결된 과세 기준을 현실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도소득세 기본공제(30년 동결), 상속세 기초·일괄·배우자공제(29년 동결), 근로자 보장성 보험료 세액공제(24년 동결), 직계존비속 증여재산 공제(10년 동결) 등이 대상이다. 아울러 1년 주기의 점검 체계를 구축하고, 과세 기준의 물가연동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내용도 결의안에 들어갔다. 결의안 공동발의자로는 민주당 소속인 한병도 원내대표, 조승래 재정경제기획위원장, 오기형 재경위 간사, 정태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등 관련 입법 과정의 핵심적인 인물들이 포함됐다.
상속세 체계가 30년 가까이 유지되면서 과세 대상이 중산층까지 확대됐다.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소수의 부유층을 겨냥했던 상속세가 점차 본래의 도입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도 과도한 상속세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율과 공제액을 현실화하는 한편, 상속받은 재산을 처분해 실제 차익이 발생했을 때 그 이익에 과세하는 '자본이득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으로 자산 가치가 대폭 올랐음에도 상속세 과세표준 등은 그대로"라며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자산 가치 상승률에 맞춰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배우자는 같은 세대인 만큼 공제에 한도를 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인데 이를 25% 정도로 낮춰야 한다"며 "그럼 부자들이 자산을 해외로 돌리지 않아 국부 유출이 줄어 오히려 장기적으로 세수가 극대화된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집 주인이 사망하고 가족이 남았는데, 집이 10억원이 넘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며 "돈이 없으면 집을 팔고 떠나야 하는데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29년째 그대로인 상속세 공제한도 상향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실제 '부자 세금'으로만 여겨졌던 상속세는 '중산층 세금'으로 빠르게 전락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집값이 급등하면서 웬만한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0억원을 훌쩍 넘은 탓이다. 반면 상속세 공제액은 29년째 요지부동인 까닭에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 고령층의 가족들은 상속세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서울 평균 강북아파트 한채 물려줄 때 자녀들 내야할 상속세 '2. 7억'━20일 머니투데이가 우병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에게 의뢰해 최근 16억원에 실거래된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한 아파트 사례를 시뮬레이션(다른 금융재산 및 부채는 없다고 가정)한 결과 피상속인(사망자)의 배우자가 없을 경우 자녀들이 내야 할 상속세는 2억6772만원이다.
'1%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으로 바뀌고 있다. 상속세 과세 체계가 29년째 제자리걸음 하는 사이 물가와 자산가치가 크게 오르면서다. 상속세와 함께 대표적인 '부자세'로 꼽히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보다 과세자 비율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국세청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36만3389명(잠정) 중 상속세 과세 대상은 2만2524명으로 집계됐다. 연간 사망자의 6. 2%가 상속세 과세 대상이란 의미다. 해당 기준에 따른 과세 비율은 2010년까지만 해도 1%대에 그쳤지만, 2020년대 들어 △2020년 3. 34% △2021년 4. 01% △2022년 4. 23% △2023년 5. 66% △2024년 5. 91% 등으로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반면 2024년 기준 주택분 종부세 과세 비율은 2. 24%로 상속세(5. 91%)보다 크게 낮았다. 종부세 부과 기준이 되는 주택분 재산세 과세 대상(2033만2628건) 중 종부세 과세 인원(45만5331명)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물가와 임금이 오르는 동안 소득세 과세표준이 장기간 제자리에 머물면서 근로소득자의 세 부담이 사실상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표구간과 각종 공제액을 물가에 연동하거나 주기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명목소득과 실질소득의 괴리다. 물가 상승에 따라 월급이 올라도 구매력이 그대로라면 실질소득은 늘지 않는다. 그러나 과표가 고정돼 있으면 더 높은 세율 구간에 진입해 세 부담은 커질 수 있다. 현행 소득세는 과표에 따라 6~45%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하위 과표구간은 2023년 한 차례 조정됐지만 35% 세율이 시작되는 8800만원 기준은 2008년 이후 18년째 그대로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에 따른 명목소득 증가가 소득 대비 세 부담 확대로 이어지면 실질 구매력이 줄어들 수 있다"며 "과표 구간과 소득공제액에 물가 변동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양가족공제 등 정액 공제도 오랫동안 조정되지 않아 가계 부담을 덜어주는 기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2월 페이스북에 '월급쟁이는 봉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월급쟁이가 낸 세금이 60조원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인용했다. 월급쟁이 세금은 근로소득세를 지칭한다. 이 대통령은 당시 "물가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난다"며 "초부자들은 감세해 주면서 월급쟁이는 사실상 증세해 온 건데, 이거 고칠 문제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68조4216억원이었던 근로소득세 수입은 올해 73조2482억원, 내년 102조4446억원으로 증가한다. 근로소득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직장인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걷었다는 의미다. 월급과 성과급이 많이 올라서 세금을 많이 냈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비정상적으로 세금을 많이 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근로소득세가 그렇다. 이 대통령의 인식처럼 '사실상 증세' 혹은 '조용한 증세'가 이뤄지고 있다. ━'월급쟁이 세금', 근로소득세가 뭐길래?━근로소득세를 좌우하는 건 과세표준과 세율이다.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근로소득세 수입도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월급 생활자들의 세 부담이 커지는 이른바 '조용한 증세'가 현실화하고 있다. 13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내년도 근로소득세 수입 전망치는 102조4446억원이다. 이는 내년도 국세수입 예산안에 반영된 수치로, 올해 전망치(73조2482억원)보다 39. 9% 늘어난 규모다. 근로소득세 수입이 100조원을 넘어서는 건 처음이다. 내년 근로소득세 수입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건 대기업들의 성과상여금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전 국민의 소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소득세 과세체계의 영향 역시 적지 않다는 평가다. 2024년 기준 총급여 1억원을 초과한 사람은 154만5725명이다. 10년 전인 2014년(52만6406명)과 비교하면 2. 94배 늘었다. 2009년(19만6539명) 대비로는 7. 86배 증가했다. 2009년 1. 4%에 불과했던 억대 연봉자 비율은 2024년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