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는 왜 청나라 사신을 만나지 않았을까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 제공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급히 카드를 교체했지만 나도 모른 채 내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다. 신속한 대책마련이 절실한데 정치권은 답답한 모습이다.
민주당은 26일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벌어졌다며 국회 특위 구성과 국정조사 실시를 제안했다. 새누리당은 같은 날 "소리만 요란할 뿐 내실을 기하기 어렵다"며 이를 일축했다. 공방은 27일에도 이어졌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국가재난수준의 사태를 적당히 넘기려 한다"(김한길 대표)고 비난했다. 새누리당은 "책임추궁보다는 사태 수습이다. 정치공세 기회로 삼지 말라"(최경환 원내대표)고 되받았다.
여당은 정무위원회가 논의하도록 하자는 쪽이다. 법을 개정하자면 어차피 관련 상임위를 열어야 하는데 특위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야당 주장도 일리 있다. 개인정보 유출은 재발하거나 더 나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단 점에서 특위나 국정조사 등 특단의 대책을 요구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특위냐 아니냐 주도권 다툼보단 어느 쪽이든 결단을 내리고 진짜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에 머리를 맞대는 일이다. 말싸움 끝에 대책 마련을 흐지부지해선 안 된다.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이 터졌다. '지는 해' 명을 무조건 따르고 '뜨는 해' 청을 오랑캐라며 무시한 대가였다. 집권세력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호란 이후에도 국력을 정비하기보다는 정권의 정통성 세우기에 급급했다. 청이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사신을 보냈지만 인조는 청 사신을 만나지 않고 도리어 전국 8도에 결전을 독려하는 글을 보냈다. 그땐 명분에 부합했는지 몰라도 지금 봐선 브레이크 고장난 역주행이었다.
결국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정묘호란보다 피해가 훨씬 컸다.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던 인조정권은 왕이 청 태종 앞에 3회 절하고 9회 머리를 땅에 대는 '삼배구고두'의 굴욕을 당했다. 조선은 청의 형제국에서 신하국으로 떨어졌다.
새해 개인정보 유출사태를 400여년 전 국가의 근본이 흔들린 전쟁에 견주기엔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을 제때 하지 못해 더 큰 화를 불러들인 사실은 분명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조선이 정묘호란 후 국제정세에 눈을 떴다면 어땠을까.
2014년 1월이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다툼만 벌인 때'로 역사에 남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