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안철수 대표'의 4개월…공천잡음이 결정타

굴곡진 '안철수 대표'의 4개월…공천잡음이 결정타

이현수 기자
2014.07.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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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합당으로 단숨에 제1야당 대표…재보선 대패로 정치생명 위기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31일 오전 비공개 최고위 회의를 마친 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나서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31일 오전 비공개 최고위 회의를 마친 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나서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는 선거 참패로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새정치'를 내걸고 일약 제1야당의 대표로 올라섰던 안 대표를 두고선 '정치생명 최대의 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는 3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졌다. 모든 책임을 안고 공동대표 직에서 물러난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안 대표는 "대표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출발부터 '삐끗'…"기계적 합당" 비판

안 대표는 지난 2월 26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을 통합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을 선언하면서 130석 거대 야당의 지도부로 부상했다. 그는 창당 선언문에서 "낡은 이념과 지역갈등 구도에 갇힌 정치를 타파하겠다"며 지역과 세대, 계층과 이념의 갈등을 뛰어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행보는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통합 선언이 김-안 대표 간 극비 협상 직후 이뤄지면서 민주당 내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핵심 인사였던 김성식 전 의원, 윤여준 공동위원장은 등을 돌렸다.

3월엔 통합신당 정강·정책을 놓고서도 잡음이 나왔다. 안 대표 측이 정강정책 초안에서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표적 성과인 6·15선언과 10·4선언을 삭제하자고 제안해 동교동과 친노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삭제 논란까지 불거지자 안 대표는 "최종적으로 마무리될 정강정책의 내용을 지켜봐달라"며 물러섰다.

이때부터 당 안팎에선 "기계적 합당"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합당 이후 당내 세력 간 유기적 결합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조직이 흔들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천잡음' 예고된 패배

7·30 재보선 참패는 일찌감치 예고된 일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짐은 6.4 지방선거에서 나타났다.

안 대표는 5월 초 측근인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을 광주에 전략공천해 지역 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선거 유세과정에서 광주 5·18민주화 묘지를 찾은 김-안 공동대표는 지역 시민들에게 욕설을 듣는 등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전략공천에 반발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강운태 당시 광주시장이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자 다급해진 당 지도부는 광주 유세에 전력을 쏟았다. 윤 전 위원장은 당선됐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였던 인천과 경기도를 새누리당에 내줬다.

안 대표는 7·30 재보선을 앞두고선 권은희 전 수원경찰서 수사과장을 전략공천했으나 '보은공천' 논란이 불거졌고, 이는 선거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새정치'를 주창해온 안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당명을 계속 유지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민주당은 2000년대 들어 당명 변경을 거듭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으나 2003년 친노 인사들이 빠져나가면서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새천년민주당은 2005년 민주당, 2007년 중도통합민주당, 2008년 통합민주당, 같은해 7월 다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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