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권역별 비례대표제, 이래서 반대한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간 인구 편차가 심하다며 ‘현재 선거구를 적정한 인구수에 맞게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각계에서 “이 기회에 선거제도의 틀을 바꾸자”고 나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도는 정당득표로 배분의석 수를 결정하기 때문에 순수비례대표제에 준한다. 외형상으로는 국민의 의사가 그대로 정당별 의석수에 반영된다. 일각에서는 ‘지역주의 완화’와 ‘여러 정당의 국회 입성’을 장점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 때문에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이 제도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
첫째, 국회의원 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수의 대폭 축소(총 300명 유지 시)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비례대표 54석으로는 제도의 의미를 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선관위도 지역구를 46개나 줄일 것을 제안했다) 국회의원 증원 문제는 위헌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대다수 국민의 반대가 확고(여론조사 결과 86%가 반대)하다는 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지역구 수의 축소도 다수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할 방향이다. 여러 지역구를 마치 블록처럼 여기저기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할 지역갈등은 소모성 사회비용만 촉발시킬 것이다.
둘째, 300석을 유지해도 위헌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구조상 ‘초과의석’이란 것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데, 경우에 따라 의석수가 ‘300석+알파’가 된다. 우리 헌법 제41조제2항은 국회의원을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헌법학자들은 “300인을 넘지 않도록 하는 함의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설사 위헌이 아니라 해도 증원을 반대하는 국민을 제도로 속이는 결과와 다름 아니다.
셋째, 정치가 더욱 불안정해진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득표 = 의석’이기 때문에 국회에 여러 정당이 입성해 여소야대가 일반화될 것이다. 교섭단체가 3∼4개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도 ‘식물’ 평가를 받고 있는 국회는 국정을 위한 발걸음을 한 발짝도 못 내딛을 것이다. ‘여당이 여소야대로 인한 국정마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질적인 세력과의 협력을 선택’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의정활동과정에서의 이합집산, 그로인한 정치퇴행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다수 정치학자들은 대통령제에서는 양당제가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하나같이 의원내각제이다. 이 제도는 개헌 이후에나 생각해 볼 문제다.
넷째, 제헌 67주년을 맞이한 중견국으로서 생소한 정치제도의 실험적 도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피땀 흘려 반석에 올린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제도가, 독일 등지에서 잔뼈가 굵은 제도와 잘 융합하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자칫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한다면 과도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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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방식은 현행대로 하고, 비례대표만 권역별로 뽑는 방식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 하다고 본다. 농촌지역 배려효과도 있을 것으로 본다. 마침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회의도 최근 그런 방식의 제도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정치가 국민께 많은 실망을 안겨드렸다. 의원 숫자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운영상의 문제였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국회의원의 독립성, 책임성이다. 국회의원이 당 대표나 특정 계파가 아닌, 국민을 두려워하며 국민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