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11)여러가지 개혁과제

계파정치 즉 패거리 정치는 우리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폐다. 패거리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사안마다 모이지 못하고 보스를 중심으로 명령과 복종의 추종 관계로 모인다. 그리고 복종의 대가로 공천과 자리가 주어진다. 유권자인 국민의 의사보다는 패거리의 의사가 우선한다.
패거리 정치에서는 탈법과 비리도 정당화된다. 패거리 정치는 정당이라는 공동체의 단합을 해치고 국민으로부터 정치를 이간시키고 있다. 패거리 정치는 과거 사색당쟁의 유습이다. 자기들의 논리만으로 생존전략을 세우는 사색당쟁은 화합과 발전의 최대 장애물이었다.
공자는 ‘군자 군이부당(君子 群而不黨)’이라고 했다. 나라를 위한 일에는 힘을 모으지만 사익을 위해 파당을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군이부당(群而不黨)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했다. 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노력은 거대한 물결 속에서 너무 미약해 보였다. 계파에 속하지 않고 계파 논리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은 현실 정치와 혼란과 갈등을 일으켰다.
패거리 정치는 정책적 선택을 할 때조차 제약과 굴레로 다가왔다.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짐이었고 많은 오해와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탈박(탈 박근혜)', '복박(돌아온 박근혜)’이란 말도 근원적으로 패거리 정치에서 오가는 신조어일 뿐이다.
싸우지 않는 정치는 국민이 바라는 소망이다. 패거리 정치는 싸우는 정치다. 노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정치, ‘부쟁의 정치’를 강조했다. 나는 정치에서 싸움을 항상 피해왔다. 그러다 보니 ‘전투력이 없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계파 정치를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정치발전의 시급한 과제다.
다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는 우리 모두의 꿈이다. 경제민주화를 포함해 불평등 구조의 해소야말로 시급한 과제가 됐다. 불평등 구조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이 공평하게 배분되지 못한 탓에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상대적인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불평등의 책임을 산업화 단계에서 빚어지는 불가피한 결과로 돌리고 더 큰 발전과 성장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성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또 다시 뒤로 미루는 것이다. 문제 해결에 대한 외면이거나 ‘불편한 유예’일 수 있다. 비록 그 근원이 지난날에 빚어진 일일지라도 현재 드리워진 그늘만은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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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복지는 현실적인 과제다. “성장 없는 복지 없다”는 주장은 복지를 유예시키자는 성장론자의 논리로 들린다. 과거와는 달리 앞으로는 성장이 일자리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제는 “복지 없는 성장 없다”고 말해야 한다. 효율이 높은 복지사회를 이룩해야만 사회적 비용도 적게 들게 할 수 있고 건실한 경제 발전도 이룩할 수 있다.
국민들은 국회를 시급한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위한 제도 개혁도 필요하지만 ‘특권 의식 내려놓기’는 더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세계의회연맹(IPU) 집행위원으로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총회에 참석할 때마다 올리버 캐나다 상원 부의장과 업무를 상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만찬을 했다. 올리버 부의장은 만찬 장소에 항상 택시를 타고 왔다. 캐나다 대사관에서는 교통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사관으로부터 그 정도 편의는 당연히 제공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의외의 일이었다.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할 특권의식이라는 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가 예산 심의권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정부 세출을 꼼꼼히 살피고 부적합과 비효율을 제거해야 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 예산을 살펴보고 세출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요즘 보궐선거 때 등장하는 인기 메뉴는 ‘예산폭탄’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는 보궐 선거 당선자가 예산폭탄을 제조하는 곳이 아니다. 예산폭탄 제조자가 어떻게 정부 예산을 감독할 수 있겠는가? 정부 예산의 비효율성은 상당 부분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
상임위원회의 역할이나 의원 개개인의 창의력은 힘을 못 쓰고 있다. 국회법 제114조의2(자유투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해 의원의 자유로운 투표권을 보장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규정이지만 국회법조차도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회의 모든 의사결정권은 원내교섭단체 대표가 독점하고 있다. 대표들이 합의해야만 본회의와 상임위가 열린다. 지도부의 합의로 본회의와 상임위의 중요사항이 결정된다. 당파적 싸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싸움 잘하는 사람이 주목받고 칭찬받는 곳이 이 세상에서 또 어디에 있겠는가? 지도부가 임명하는 각종 특별위원회는 상임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예산을 이중으로 낭비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의회지만 민주주의와는 너무나 먼 구시대 정치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국민을 위한 국회로 새롭게 변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