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대신 빛…'광(光)컴퓨팅'에 주목하는 이유[투데이 窓/김형준]

전자 대신 빛…'광(光)컴퓨팅'에 주목하는 이유[투데이 窓/김형준]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2026.08.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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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소장/사진=KIST
김형준 소장/사진=KIST

글로벌 AI(인공지능) 공급망에서 한국 반도체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주요국 대부분이 국가 차원에서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며, 전 세계 HBM 공급을 좌우하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세계 증시 흐름까지 주도하는 거물로 급부상한 것이다.

반도체는 높은 기술 장벽과 막대한 투자 비용 때문에 후발주자의 진입이 어려운 승자독식 시장이다. 특히 AI 시대 경제와 산업은 물론 군사·외교까지 국제질서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불러올 전략자산으로 그 가치가 더 격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국가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기술 확보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 반도체 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이 대표적이다. 뉴로모픽, 양자, 광컴퓨팅 등 다양한 차세대 반도체 후보군의 공통점은 바로'저전력·저발열'이다. 이는 AI 데이터센터 같은 초고밀도 연산 환경의 막대한 전력 부담과 냉각·환경 문제를 해결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을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끌 핵심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AI는 연산과 저장이 분리돼 있다. 연산 자체보다 메모리 접근과 데이터 이동 과정에 더 큰 에너지가 소비되는 구조이다. 스탠퍼드 AI 인덱스에 따르면 전세계 AI 데이터센터가 끌어다 쓰는 전력 규모는 이미 29.6GW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역대 최대 전력수요(약 97GW)의 30%에 이르는 수준이다. 나아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일본 전체 소비량과 맞먹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냉각에 쓰이는 물의 양도 막대하다. 오픈AI의GPT-4o 한 모델을 운영하는 데만 연간 수백만 명의 식수에 맞먹는 물이 소비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사로 기대를 모으는 차세대 반도체는 전 세계적으로 연구개발이 초기 단계이다. 어느 분야가 먼저 두각을 나타낼지 아직 알 수 없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공평한 출발선에 서 있는 지금, 특정 기술 위주가 아닌 여러 바구니에 달걀을 나눠 담는 분산투자 전략으로 고르게 기술 발전을 유도하는 전략이 현명하다.

인간의 뇌를 모사하는 뉴로모픽, 양자역학을 이용하는 양자컴퓨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광(光)컴퓨팅' 연구개발도 마찬가지이다. 광컴퓨팅은 전자 대신 빛으로 계산하는 차세대 컴퓨팅 기술이다. 전류와 달리 빛은 저항으로 인한 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 서로 겹치고 간섭하는 성질로 AI 연산의 핵심인 행렬 곱셈을 기존 전자회로보다 훨씬 적은 전력으로 수십~수백 배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

현재 광컴퓨팅 분야의 발전은 한국이 주요국들에 비해 다소 뒤처진 상태이다. 미국은 대학의 원천기술로 창업한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 유치와 시제품 개발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도 반도체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집중 투자가 이뤄지며 특정 생성 작업에서 엔비디아 GPU보다 100배 빠른 광자 칩을 시연했다. EU(유럽연합) 역시 광기반 AI 코프로세서를 슈퍼컴퓨터에 도입해 세계 최초의 실제 운용 사례를 선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서는 광컴퓨팅 기반 AI 시장이 내년부터 본격 개화해 2034년경 약30억 달러(약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광컴퓨팅에는 여러 방식과 고유의 장단점이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연구되는 광컴퓨팅 방식은 행렬 크기가 커질수록 제어할 소자와 보정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다른 방식은 연산마다 가중치를 실어 나르는 과정의 전력 소모가 걸림돌이다. 이는 결국 단일소자의 성능 향상만으로는 상용화에 이를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광소자·전자회로·메모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전체 효율을 높이는 것이 주도권 경쟁의 최종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컴퓨팅은 비단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에만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다. 빛으로 데이터를 계산하는 광컴퓨팅은 최근AI 반도체 기술에서 발열·전력·전송 거리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구리 배선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실리콘 포토닉스 그리고 빛과 전자를 한 패키지에 결합하는 CPO(Co-Packaged Optics) 기술과도 여러 기반 기술들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실리콘 포토닉스, CPO 기술과의 융합 연구개발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향상과 국내 광컴퓨팅 기술 수준의 동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향후 한국형 광컴퓨팅 반도체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일소자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빛으로 계산하는 광소자, 이들을 연결하는 전자회로, 빛으로 만든 연산기가 AI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알고리즘까지 전주기적 연구개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발전할 때 비로소 실용적인 광컴퓨팅 시스템이 구현될 수 있으며, 이는 곧 AI 시대에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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