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의원사용설명서 2.0]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새누리당이 김도읍 의원(재선·부산북강서을)의 원내수석부대표 선임을 발표하자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조용히 전화기를 들었다. 같은 당 김관영 원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김도읍을 절대 쉽게 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내공이 깊은 박 원내대표다. 19대서 법사위 활동을 함께하며 "조용히 강한 남자"라는 평가를 내린 터였다.
김 원내수석은 재선으로 원내수석에 임명되며 중앙정계에 이름을 알렸다. 16년만의 여소야대 상황, 첫 원구성 협상에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다수인 야당의 강공에 밀리지 않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지켰다. 운영위원회와 정무위원회 등 핵심 상임위를 사수했다. 야당의 다수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20대 국회는 야당 마음대로가 아니라 세 발로 굴러가라는 것이 민심"이라며 능란하게 밀고당겼다.
협상 도중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단독으로 국회의장 선거를 하겠다며 협상 테이블을 걷어찼다. 김 원내수석은 "야당 일방독주로는 민생국회를 만들 수 없다"며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야당 원내수석들을 설득했다. 결국 박완주 원내수석이 사과하며 협상이 재개됐다. 20대 전반기 원구성 협상의 최대 승부처였다.
김 원내수석 선임 당시 기자들은 때아닌 취재경쟁을 벌였다. 재선의 김도읍은 사실 널리 알려진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 당직자들 중에는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많았다. 19대에서 당내 가장 많은 특위활동으로 쌓은 실력이 이미 정평나 있었다. 19대 4년간 원내대표 4명 중 3명이 김도읍을 부대표로 영입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김 원내수석을 부대표로 점찍고 삼고초려해 영입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문성근 꺾고 19대 초선.."읍아 어데고"=20대 총선 결과 18개 부산지역구 중 5석이 야당에 넘어갔다. 특히 이른바 '낙동강벨트'는 새누리당 후보들의 무덤이 됐다. 김 원내수석의 북강서을에 인접한 경남 김해갑을, 양산을, 부산 사하갑, 사상, 북강서갑 등 낙동강 유역 전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패했다. 더민주에서 당적을 바꾼 조경태 의원(사하을)을 제외하면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된 것은 김도읍 뿐이었다.
부산지역 민심의 동요가 컸지만 북강서을은 여론조사에서 단 한차례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19대를 거치며 다진 지역기반이 견고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구로 유명한 북강서을은 지난 40여년간 지역 출신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했다. 각종 현안이 많아 민원은 쌓여갔지만 지역구 의원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원성만 높아졌다.
이 와중에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이 상향식 공천제도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고향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종종 막걸리잔을 기울이던 '동네출신 김도읍'이 지역 주민들의 눈에 들었다. 김 원내수석은 "한 아재가 "출마하지 않을거면 고향에 오지도 말라"고 하시더라"며 "사실 공천을 받은게 천운"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의 PICK
지금 1,951명 읽는 중
첫 선거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야당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지역구 당선'을 기치로 문성근 전 대표가 출마했다. 김 원내수석은 "전국적 인지도를 지닌 후보와 경쟁을 하려니 그 자체가 난관이었다"며 "문 후보가 지역을 다녀가시면 바로 입소문이 나는데, 나는 오늘 다녀왔는데도 "도읍이는 안오고 뭐하노"라는 얘기가 나오더라"고 회고했다.
게다가 문재인 후보는 바로 옆동네인 사상구에 출마했다. '낙동강벨트' 전선이 형성되며 부산이 단숨에 19대 최대 승부지역이 됐다. 승산이 없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개표 결과 53%를 득표해 문성근 후보(45%)를 눌렀다. 김 원내수석은 "그때의 마음을 생각하면 19대 국회 기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지역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마운 만큼 지역구에 매달렸다. 아무리 작은 민원도 귀담아 듣는 그를 주민들은 "북강서 김반장"이라고 불렀다. 지역구에서 오는 전화는 "읍아(도읍아) 어데고"로 시작한다. 들어서 이해가 안 되는 민원이 있으면 여의도에 있다가도 곧바로 지역구로 갔다. 보좌진이 환산한 19대 4년 간 이동거리만 53만km. 지구둘레를 열세바퀴 돈 거리다.
◇농부의 아들, 법조인으로=김 원내수석의 부친은 고향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김 수석은 "어린시절 학교에 갔다 오면 논으로 나가서 일을 돕는게 일과였다"고 했다.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열심히 땀 흘린 만큼 정직하게 돌아온다는 것을 보고 자랐다. 김 의원의 인생 철학인 "땀은 배반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부산 동아대를 나와 사시35회에 붙어 부산지검에서 외사부 부장검사까지 지냈다. '금괴수사의 대가'라는 타이틀로 유명하다. 2008년 금융조세조사부 수석검사 시절 금괴를 이용한 2조원 규모 부가세 포탈을 일망타진했다. 한 부산 아재는 "사건 무마를 대가로 거액의 검은 돈 제의를 수시로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김도읍은 거들떠도 안 봤을 거라고들 했다"고 말했다.
김 원내수석은 "좋은 농작물은 성실한 농부의 손끝에서 나오지 않느냐"며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도 얼마나 성실하게 뛰어다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대 예결위 당시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직접 찾아 만나고, 기재부 과장을 만나기 위해 예결위 회의장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도 여러차례였다. 밤새 예결산 심사를 하는 기재부 공무원들에게 어묵을 사다 나눠준 일화도 유명하다. 그 뒤로 김 원내수석은 기재부에서 '부산오뎅'으로 불린다.

◇내사랑 새누리, 민생국회로 보답=김 원내수석은 대표적인 '선당후사'형 의원이다. 19대 국회 막판 공공의 적이 됐던 보훈처장을 감쌌던 것도 그다. 3월 3일 새벽 본회의에서 무쟁점 법안 80건을 처리하면서 보훈처 소관법안 11건이 빠진 것을 놓고 공방이 일었다. 김기식 의원은 "보훈처장이 저녁밥을 먹다가 지각해 여야 합의된 국가유공자 법안 처리가 물건너갔다"며 문책을 요구했다.
김 원내수석은 당시 "보훈처장이 외빈 만찬으로 늦겠다고 이미 통보했고, 2~3분 도착이 늦었지만 법사위원장이 상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회의가 산회됐다"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보훈처장에 대한 정치공세를 사전에 차단한 거다.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정국인 만큼 비난여론이 일 수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인의 정치 키워드로도 주저 없이 '선당후사'를 꼽는다. 그는 늘 "내가 가진게 뭐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정치인맥도, 자산도 없는 내게 3선의 허태열 의원을 대신해 기회를 준게 새누리당"이라고 말했다. 본회의에서 쟁점이 생길때마다 당 원내행정국에서 가장 먼저 찾는 의원도 김도읍이다. 원내행정국 담당자는 "본회의 기습상정 등 현안이 생기면 제일 먼저 SOS를 치는게 김 원내수석인데, 단 한 번도 도움을 주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대 의정활동의 또 다른 키워드는 민생국회다. 그는 "지역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형님, 누님, 동생, 친구 모두 힘들다는 소리 뿐"이라며 "삶이 갈수록 고단해지는데 싸우는 것 말고 일하는 민생국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회의나 상임위 활동도 열심이다. 회의가 있을때면 보좌진과 국회 후생관에서 라면으로 식사를 때우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권위보다는 효율을 앞세우는 업무 스타일을 보여준다.
◇영남권 신공항 어디로=김해공항 근처에 살던 꼬마 김도읍은 아침저녁으로 비행기 소음에 시달렸다. 또 수시로 옥상에 올라가야 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때마다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가 돌아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는 "만화영화 한 편을 보려면 옥상에 대여섯번을 올라가야 했다"고 말했다. 공항은 주거지역이 아닌 바다(가덕도)에 만들어져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고해졌다.
김 원내수석은 최근 사석에서 "부산시민들은 사실 신공항 입지에 별 관심이 없다더라"는 말이 나오자 화를 벌컥 내며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 당장 데려오라. 바다에 던져버리게"라고 말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평소 온화하고 말을 조심하는 그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신공항의 부산(가덕도)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의미다.
이달 말 발표될 신공항 후보지인 가덕도는 김 원내수석의 지역구다. 그가 구상하는 서부산 발전사업의 핵심이다. 김해공항이 포화상태로 내몰린 상황에서 기존 공항의 확장으로는 더 이상 증가하는 공항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김 원내수석은 "신공항은 이기주의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수요공급에 따른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주의=두루 평이 좋은 김 원내수석이지만 정치의 세계는 원만함으로만은 극복하기 어렵다. 대학시절까지 고향인 부산을 떠나지 않은 그다. 법조계에서도 주류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다소 유약한 이미지가 있다는 평가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여소야대 20대 국회에서 원내수석의 중책을 맡으며 이미지 쇄신의 기회를 잡았다. 원구성 협상에서 강단을 보여야 한다.
김 원내수석은 법조계 출신으로 종종 비교됐던 부산의 박민식 전 의원이 낙선하며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속설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다만 기대감이 큰 만큼 낙후된 지역구에 가시적 개선이 없을 경우 상대적으로 실망감이 더 클 수 있다. 영남권 신공항의 가덕도 유치 여부가 그의 향후 정치인생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 한장의 사진=김 원내수석은 지역구에서 첫 모내기를 하거나 첫 벼베기를 하면 직접 농기계를 몰고 몇시간이고 농사일을 돕는다. 법조인 시절에는 휴일마다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곤 했다. 김 원내수석은 "강서구 황금들판을 볼 때마다 국회의원의 초심을 되새기고,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철칙도 마음에 새긴다"고 말했다.
[프로필]
△64년 부산 출생 △부산동고, 동아대 법학과 졸업 △사법고시(35회) △제주지검 △창원지검 △서울중앙지검 △부산지검 공판부장검사 △부산지검 외사부장검사 △변호사 개업 △부산 북구 다문화지원센터 자문변호사 △19대 국회의원(북강서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20대 국회의원(북강서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