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트럼프식 '거래적 외교' 대응…"동맹 역할 재조정"
아덴만 청해부대 역할 변경 통한 파병 해법 제안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에 대해 전직 외교 수장들이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래적 외교'에 맞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국익을 확보하지 않고선 파병이 우리의 안보 역량을 위협하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9일 서울국제법연구원·은성국제연구재단 공동 주최로 서울 중구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변화' 관련 세미나에서 "미국의 요구에 부응할 때 어떤 약속을 해 줄 수 있는지 패키지로 요구하는 접근 방식이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2003년 이라크 파병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극심한 찬반 논란 속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조율한 장본인이다. 그는 "미국은 우리에게 요구할 때 경제와 안보를 모두 묶어서 패키지로 압박해온다"며 "한국도 그에 상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파병하는 경우 우리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위험)와 파병하지 않을 경우에 감당해야 하는 위험을 비교했을 것"이라며 "후자가 더 크다는 판단때문에 파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국제 사회와의 연대를 언급하며 '비전투' 파병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호르무즈 항행 자유를 국제적인 '공공재' 차원에서 접근해 영국, 프랑스 등과 연대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며 "'우리는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에도 분명히 알리고 파병 기간도 6개월 혹은 1년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아덴만 일대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역할 변경으로 파병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청해부대의 기능을 확대하고, 임무를 재정의하는 쪽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으면 될 것"이라며 "국제적 수로의 통항의 안전이라는 큰 명분을 세우고 미국에 부수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는 데 국론을 모으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 윤영관·송민순 전 장관, 이명박 정부의 유명환 전 장관, 박근혜 정부 윤병세 전 장관, 윤석열 정부 박진 전 장관이 패널과 좌장 등으로 참석했다. 이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둘러싼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의견을 공유했다. 반기문 전 장관은 영상 축사로 함께 했다.
박 전 장관은 한반도 방위에 대한 주도적 역할과 재래식 억제를 한국에 맡기려는 미국의 전략을 언급하며 "이는 단순히 방위비 분담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 내 책임과 역할의 구조적인 재조정"이라면서 "한국은 독자적 방위 역량을 강화하고,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PICK!
유 전 장관은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사례를 들어 "한미 군사동맹과 같은 관계가 우크라이나와 미국 간에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미 군사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미국은 거래적 동맹 외교를 하는 상황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요한 나라이니 꼭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중요한 외교 도전"이라고 꼽기도 했다.
한편 이날 프레스센터 건너편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는 '한반도 평화전략 자문단 5차 회의'가 개최됐다.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이혜정 중앙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부가 파병 등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도 원하던 성과를 얻기 힘든 게 아니냐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파병한들 미국의 쿠팡 관련 압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압박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식으로, 하나를 주면 두 개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미투자·북미회담 성사가 파병과 등가가 될 수 없다"며 "독자 파병 시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주체 최선의 자격 요건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