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금융·기업법 전문가인 김화진 교수가 국내외 경제, 금융, 기업, 사회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전달하는 코너 입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금융·기업법 전문가인 김화진 교수가 국내외 경제, 금융, 기업, 사회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전달하는 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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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가장 존경받는 의사상은 슈바이처 박사일 것이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험지에 갔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평생 희생하고 헌신했다. 우리는 모든 의사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던 슈바이처 같기를 바란다. 문제는 슈바이처의 실력이다. 죄송한 말씀이다. 의사가 갖춰야 할 덕목 1위는 환자를 치료하는 실력이다. 처음 가봉에 도착한 슈바이처가 급성 뇌졸중 환자를 치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뇌경색 응급환자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없고 시설과 장비, 지원인력이 없으면 어떤 의사도 속수무책이다. ‘돈만 아는’ 대도시 대형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된 지방 공공의대 플랜은 지방에서 슈바이처들이 의술을 펼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공익 마인드로 무장한 청년들을 국가 부담으로 의사로 양성해 의료사각지대도 없애고 비인기 분야 의료인도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훌륭한 취지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첫째, 돈이 많이 든다. 지방 곳곳에 의대와 병원을 만들고 플러스 거의
1960~70년대 개발 시대에는 많은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거나 협력을 통해 성장했다. 그런데 아산 정주영이 창업한 현대도 일본 기업들을 열심히 공부는 했겠지만 특이하게도 일본과 이렇다 할 협력이 없었고 오히려 긴장관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아산은 19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시작했다. 고생 끝에 자리가 잡혀 꽤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일제가 기업정리령을 공포해 아도서비스는 1943년 초 일본인 소유 공장에 강제로 합병됐다. 그후 아산은 동생들의 징용을 막기 위해 황해도의 군수용 광산에서 광석 운송사업을 했다. 그러다 일인들의 횡포를 참지 못하고 1945년 5월에 광산을 떠났다. 천우신조였다. 일본 패망 후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현대중공업은 1972년 영국과의 협력으로 출범했는데 아산은 그 훨씬 전인 1966년 당시 세계 1위 조선국 일본의 조선소들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산업 연관
미국 볼티모어에 위치한 존스홉킨스대와 존스홉킨스대 병원은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1795~1873)의 유언에 따라 설립되었다. 홉킨스는 철도와 금융을 포함한 여러 사업에 성공해서 거부가 되었던 사람이다. 1996년까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자였던 100인 중 69위에 꼽혔다. 52세에 은퇴해 자선과 사회사업에 주력하면서 78세까지 살았다. 홉킨스는 독신이어서 자녀가 없었고 따라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유산 중 700만달러(현재가치 약 1억5000만달러)를 대학과 병원 설립에 반반씩 쓰게 했고 1876년, 1889년에 대학과 병원이 각각 출범했다. 이 기부금 액수는 당시까지 미국 최대였다. 홉킨스는 타계하기 9개월 전에 병원의 비전과 이사회를 자신이 직접 작성하고 구성했다. 홉킨스는 설립될 병원이 “최선의 환자치료, 의료진 훈련, 의학의 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의 추구”에 매진하기를 희망했는데 이를 실현할 이사회를 볼티모어 지역의 지식인들로 구성했고 이들이
기업의 성공에는 사회적 안정이 긴요한데 이는 정치의 역할이다. 사회적 안정이 가져오는 자본유치와 생산력 증가는 경제지표와 세수로 이어진다. 2019년 64대 그룹 전체 매출액은 1617조원으로 우리나라 명목 GDP(국내총생산) 1919조원의 84.3%였다. 2018년의 경우 10대 그룹 상장사가 법인세로 39조원을 냈다. 19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는 기업과 정권이 일종의 파트너 관계였다. 갑과 을은 분명했지만 갑도 을에 의존했다. 198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권이 일방적으로 완력을 행사하는 순수한 갑이었다. 1990년대에 민주화가 이루어질 당시 대기업의 소유구조에서 오너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대로 낮아졌고 노동조합의 파워가 커졌다. 노조는 정치와 기업을 잇는 연결고리지만 고용안정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회사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같은 문제에는 소극적이었고 그 빈자리를 시민단체들이 메꿨다. 그러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는다. 정치-관료-은행-기업-노조가
미국의 한 대학에서 머물 때 세계적으로 명망 있다는 시민운동가의 강연이 있었다. 중동지역에서 난민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과 소속단체가 하는 일의 대의와 성과를 소개하고 지지와 지원을 요청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난민 구호활동의 세세한 기술적 문제를 이야기했다. 중동지역에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NGO(비정부단체)들이 활동하며 그들 사이의 영역 다툼, 기부금 유치 경쟁, 성과 홍보 같은 것들이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주객이 전도될 정도였는데 강연자는 NGO들이 그런 문제를 겪는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랐다. 그 사람은 영국인이고 관광지로 유명한 배스 출신이었다. NGO 일은 상시 있는 일이 아니어서 고향과 현지를 불규칙적으로 왕래하면서 일했고 그 때문에 가정이 붕괴됐다고 했다. 배스에 돌아오면 이렇다 할 직장이 없어서 현지 복귀만 고대하면서 보낸다고도 했다.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던 저명한 난민구호 봉
2015년은 국제스포츠의 역사에 길이 남을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사상 최대의 부패사건으로 얼룩지고 다수의 FIFA 임원이 사법처리되었다. 2018, 2022 월드컵 개최지가 재검토될 수 있다고 해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그 여파로 FIFA의 지배구조도 요동쳤다. 제프 블라터 회장이 선출된 지 며칠 만에 사퇴했다. 한국의 정몽준 FIFA 전 부회장(이하 '정 부회장')이 회장에 출마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견제로 부당하게 자격정지를 당해 중도 하차했다. 2015년 FIFA에서 일어났던 일은 국제스포츠계뿐 아니라 사회적 파장도 작지 않아서 벤 애플렉이 그 해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워너브러더스와 영화제작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FIFA가 4년마다 개최하는 월드컵은 올림픽만큼 큰 세계의 축제다. 정치적, 경제적 파급효과가 그 어떤 행사보다 크다. 따라서 각국이 앞다투어 대회를 유치하려고 애쓴다. 개최지 선정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FIFA가 일정한 규
올해 주주총회 시즌엔 코로나19 사태로 여러 가지 진행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현장 주총의 위험성 때문에 위임장 투표와 전자투표도 예년보다 더 많이 활용됐다. 주주가 많은 상장회사는 넓은 장소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고 방역과 참석자 발열체크는 기본이었다. 주총 시간은 평소보다 단축했다. 주총 시즌이 4월인 미국에선 온라인 주총이 활용된다. 현장과 온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주총은 그간 많이 활용됐지만 현장 주총 없이 온라인으로만 주총을 할 수 있게 한 주는 아직 많지 않다. 뉴욕주도 마찬가지다. 3월13일 연방증권관리위원회(SEC)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지침에 따른 온라인 주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3월20일 뉴욕주 회사들이 4월19일까지 온라인으로만 주총을 열 수 있게 하는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현재 대학에선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고 정부, 기업, 단체의 각종 회의에 화상회의 프로그램이 널리 활용된다. 집중력 저하 등 단점이 있지만 현재로선 대안이
현대백화점이 유통기업답게 상생과 동반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어려운 요즘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정지선 회장이 매출급감에도 중소기업 매장 매니저 3000명에게 100만원씩 총 30억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중소 협력사들에는 5개월간 납품대금을 앞당겨 지급했고 협력사들의 경영안정을 위해 상생협력기금 500억원을 조성해 무이자로 지원하기로 했다. 2019년 기준 재계 순위 21위인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백화점, 한섬, 현대그린푸드, 현대리바트, 현대홈쇼핑 등 계열사로 구성됐다. 롯데, 신세계와 함께 국내 3대 백화점인 현대백화점의 모태는 1971년 설립된 금강개발산업이다.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에 식자재 납품 등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를 30년 넘게 운영했다.금강개발산업은 1971년 오늘날의 강릉 씨마크호텔인 동해관광호텔, 1977년 현대쇼핑센터를 오픈했다. 현대백화점그룹으로 독립한 것은 1999년 4월이다. 현대백화점이라는 상호는 2000년
2019년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를 펼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이 주식을 처분하고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어디로 갔나 살펴보니 지난주 금요일(2월28일) 트위터 공격을 개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0억달러를 투자했다. 트위터는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 3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엘리엇은 후보를 4인이나 제시하면서 장기전을 예고했다. 목표는 공동창업자이자 CEO(최고경영자)인 잭 도시 축출이다. 엘리엇은 최근까지 트위터 이사회에 도시의 교체를 요구해왔다고 한다. 도시는 ‘파트타임 CEO’로 불린다. 지난해 11월에는 2020년에는 아프리카에서 3~6개월을 지내겠다고 공표했다. 도시는 명상에 심취하고 아침마다 5마일(약 8㎞)을 걸어서 출근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주주들은 화가 났다. 엘리엇도 풀타임 CEO 영입을 요구했다. 트위터의 시가총액은 약 260억달러다. 회사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과 명성에 비해 주가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회사다. 지난해
매년 초 열리는 미식축구 최대 경기 슈퍼볼은 평균 시청자 수가 1억명이 넘기 때문에 치열한 광고전이 벌어진다. 광고비가 1초에 2억원 정도다. 지난 2월2일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가든스에서 열린 슈퍼볼에선 제목이 ‘넥스트 어웨이츠’(Next Awaits)라는 현대차의 색다른 광고가 선보였다. 약 2분 길이인 이 브랜드 광고는 뒤로 가기 기법을 사용해 현대차와 현대,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광고는 마지막에 채석장에서 돌을 지고 나르는 한 청년의 얼굴을 비추면서 모든 것이 그 ‘한 사람(One Man)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정’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 한 사람은 바로 현대의 창업자 고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광고에는 대형 채석장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아산이 돌을 나르는 막노동을 한 곳은 지금의 고려대학교인 보성전문학교 교사 신축공사장이었다. 기록으로만 내려온 아산의 당시 모습을 영상화했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미국 영화감독 단테 아리올라가 제작한 이 광고는 호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오는 7월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에 현저한 공로가 있는 인사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다. 포드, 슬론, 다임러, 페라리도 올랐다. 이 소식은 현대차의 지난해 매출이 100조원,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를 합해 전체 매출 200조원 시대가 열렸다는 소식과 거의 동시에 나왔다. 고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창업한 현대차는 1967년 탄생했다. 약 10년간 고전하다 1976년 고유모델 ‘포니’가 나왔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황기사(유해진 분)를 포함한 광주 택시기사들이 몬 차다. 포니는 ‘쏘나타’ 다음으로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큰 존재감을 가진다. 1985년에는 ‘엑셀’이 출현해서 처음으로 자동차의 ‘신의 영역’인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년 후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지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거의 국민차였던 ‘쏘나타’가 탄생했다. 1996년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를 맡는다. 1998년 기아차를 인수했
우리 현대사에서 박정희 대통령만큼 논란의 대상이고 업적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 없을 것이다. 흔히 박 대통령의 정치는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그가 한국 경제 성장의 기틀을 닦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물론 진보진영에선 그에도 인색하다. 그런데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의 ‘현대사 이야기’ 제8권을 읽으면서 흥미 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서 교수는 민중사관 쪽 민족주의 성향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권위 있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은 경제성장을 박 대통령의 공로로 보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라고 해설하며 오히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아산)이 경제성장에 결정적 공로를 세웠다고 본다. 단순히 박 대통령을 부정평가하는 맥락이 아니다. 이 책은 오일쇼크 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 한국 경제는 오히려 부를 축적한 중동에 진출해 큰 전기를 마련했고 그 대목에서 아산과 현대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그후 이어진 중화학공업 투자도 중동에서 축적한 자본과 역량이 기초가 됐다고 본다.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