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한 대학에서 머물 때 세계적으로 명망 있다는 시민운동가의 강연이 있었다. 중동지역에서 난민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과 소속단체가 하는 일의 대의와 성과를 소개하고 지지와 지원을 요청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난민 구호활동의 세세한 기술적 문제를 이야기했다.
중동지역에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NGO(비정부단체)들이 활동하며 그들 사이의 영역 다툼, 기부금 유치 경쟁, 성과 홍보 같은 것들이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주객이 전도될 정도였는데 강연자는 NGO들이 그런 문제를 겪는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랐다.
그 사람은 영국인이고 관광지로 유명한 배스 출신이었다. NGO 일은 상시 있는 일이 아니어서 고향과 현지를 불규칙적으로 왕래하면서 일했고 그 때문에 가정이 붕괴됐다고 했다. 배스에 돌아오면 이렇다 할 직장이 없어서 현지 복귀만 고대하면서 보낸다고도 했다.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던 저명한 난민구호 봉사자도 평범한 사람이고 생활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많은 시민운동가가 사회의 지배적인 직업관에 맞지 않거나 기능이 없거나 아니면 사회적 어젠다에 경도돼서 운동에 참여한다. 빌 게이츠가 사회사업하는 것과 다르다.
처음에는 없는 사비를 털어 운동에 매진하기도 하지만 단체가 되고 정부와 사회의 지원을 받으면 생계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 단체가 되면 보수가 지불되기 때문이다. ‘생계형’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계형 아닌 일이 세상에 있는가.
단체가 커지고 돈이 많아지고 활동의 성과로 사회적 비중이 생기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사람과 돈을 관리하는 일이 늘어난다.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고스란히 발생한다. 남의 돈을 쓸 뿐이다. 그런데 NGO의 속성상 기업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익숙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소홀히 하기도 쉽다. 물론 “어느 NGO가 회계를 투명하게 하는가”라는 말은 잘못이다.
여기서 함정은 사람이 변한다는 점이다. 빈손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와 쓸 돈이 충분하고 국고 지원까지 받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긴 때의 유명인이 처음과 같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환경이 규정한다. 사회에서 칭송받고 형편도 넉넉해지면 오랜 세월 대의를 위해 같이 고생한 동지들과 자기 자신, 심지어 가족에게 후한 보상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정의기억연대에 관한 최근 논란에서는 단체의 활동목적과 돈 문제가 섞여서 본질이 흐려졌다. 그냥 국고와 기부금이 어떻게, 누구와 함께 사용됐는지만 소명되면 된다. 여기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 프리미엄은 없다. 모든 공무원과 종교인도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지만 횡령과 배임은 범죄다. 한국은 대통령도 예외가 안되는 선진국이다. 회계오류, 부실회계라는 용어의 사용도 적절치 않다. 마치 고도로 전문적인 분야에서 기술적인 실수가 생긴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남의 돈 쉽게 알면 안 된다. 흔히 공적 혜택을 받으면 “제도가 잘 돼 있네” 한마디로 끝난다. 고마움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낸 돈으로 운용되는 제도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노동, 절약, 고민, 희생, 절제가 스민 것이 남의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