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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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이 실력인 줄 압니다. 운좋게 시황이 좋아 이익이 늘었는데 미래 투자 재원은 외면한 채 골고루 나눠먹자는 성과급 제도는 개선이 시급합니다. " 한 글로벌 증권사 리서치 헤드가 지적한 삼성전자의 현재 최대 문제다. "우리 실력으로 번 것이 아니라 시황이 좋아서 이익이 많이 난 것이니 자만하지 말자"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의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신임 임원에게 전하는 메시지 속에 담긴 함의이기도 하다. 시황은 실력이 아니며, 기술 선도력 없는 '천수답식' 경영으로는 영속할 수 없다는 경고다. 인공지능(AI)발 슈퍼사이클로 반도체 업계가 사상 최대 실적을 바라보면서 늘어난 파이에 대한 '분배정의(正義)' 논쟁이 뜨겁다. 성과를 낸 기업이 주주와 임직원에게 높은 배당과 성과급으로 충분히 보상하는 데 이견은 없다. 문제는 그 보상이 매년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이 투자되는 반도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몫에 맞는 '분배 정의'를 구현하느냐는 데 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30년 넘게 지켜봤다. 돌이켜보면 삼성전자 주총은 늘 조용한 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의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한때 삼성전자 주총장은 시민단체와 경영진 간의 전쟁터에 가까웠다. 대표적인 장면은 1998년 3월 주주총회다. 참여연대 소액주주 운동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은 날이다. 1997년 제일은행을 상대로 한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시민단체가 삼성과 SK 주총에 의결권 위임을 받아 본격적으로 참여한 게 이 즈음이다. 장하성 당시 고려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참여연대 측이 삼성자동차 문제를 집요하게 몰아붙이며 주총은 무려 13시간 30분이라는 기록적인 시간이 걸렸다. 경영진과 시민단체가 정면으로 충돌했고 설전과 고성이 오가며 한국 주총 역사상 가장 길었던 회의로 기록될 정도였다. 그 뒤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9년 주총에서도 집중투표제 도입과 경영 투명성을 둘러싸고 8시간의 장시간 공방이 이어졌고, 2004년에는 윤종용 의장의 '당신 몇 주 갖고 있냐'는 발언 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코스피가 단숨에 지수 6000선을 넘어 6300까지 치달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실적 호조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인공지능(AI)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에 휴머노이드 로봇 등의 미래 기대가 맞물린 덕분이다. 증시에선 환호와 함께 공포지수도 꿈틀거린다. 급등 뒤에는 늘 조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을 보좌하던 삼성 최고위 임원에게 '이 회장이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이 회장은 어떻게 미래를 예측했는가"라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질경영·디자인경영·천재론을 설파했던 이 회장조차도 "미래 참 모르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1996년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을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하고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올림픽을 열자고 제안했던 이 회장이 현재 AI 열기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당시 늘 다가올 미래를 고민했던 그가 꺼낸 해답은 '미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였다.
인화(人和)를 자랑으로 삼아왔던 LG 그룹 내 가족간 송사가 2023년 2월 소송제기 후 약 3년만에 일단락났다. 세간에는 이번 민사소송 1심 판결로 원고(고 구본무 선대 회장의 부인과 딸들)와 피고(아들 구광모 LG 회장)간 '승패'로 이야기하지만 LG 그룹 입장에서는 모두가 패자인 지리한 싸움이었다. 화합의 상징이었던 LG 그룹의 이미지는 창업자 집안 내에서의 상속 재산 다툼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재판부의 조정 권고와 재판부 변경 등으로 재판이 길어지면서 원고와 피고를 대리하는 율사들은 시간을 벌었지만 구광모 LG 회장이나 모친인 김영식 여사는 그 시간에 비례해 상처는 더 깊어졌다. 법의 심판대에서의 결과는 원고인 김 여사와 두딸(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구연수씨)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70년을 이어온 LG 그룹의 역사를 거슬러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부까지로 이어지는 과정을 짚어보면 모두에게 아픈 상처가 됐다.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세상에 오랜 전통과 가풍을 이야기하면 구식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앞으로 2년 정도는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사태가 이어질 것이다. 인공지능(AI) 수요는 늘지만 반도체 업체의 공급 증가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 홍콩 소재 외국계 증권사의 아시아책임자 말이다. 수십년 반도체를 분석한 그의 분석은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상승의 이유를 잘 보여준다. '코스피 지수 5000(오천피)' 시대를 바라보는 한국 증시의 엔진은 단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쌍두마차다. 코스피 시가총액(1월 19일 종가기준, 약 4085조원)의 약 38%(약 1542조원, 우선주 포함)를 이 두 회사가 차지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냉정히 현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세상 만물에는 작용과 반작용(뉴턴 제3법칙)이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다. 일례로 국내 조선업계는 2008년 8월 신조선가지수가 191. 5로 최고점을 찍고 수년치 수주잔량을 자랑하며 장미빛 전망을 내놨었다. 상위 10개 조선업체 중 6개가 한국 기업었지만 그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주 절벽과 실적 악화가 시작됐고 이후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까지 겹치며 장기 침체에 빠졌다.
대한민국이 수출 6000억달러를 달성한 지 7년 만에 7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전 세계에서 미국·독일·중국·일본·네덜란드에 이어 여섯 번째 국가가 됐다. 1945년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뤄낸 기념비적인 성과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수출을 무기로 1964년 수출 1억달러에서 13년 만인 1977년 첫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초기에는 가발과 섬유, 해산물 수출로 성장하던 우리나라가 반도체와 자동차·석유제품·조선·철강·무선통신·디스플레이·2차전지·바이오 등으로 경쟁력 있는 수출 품목을 넓혀왔다. 그 결과 100억달러 돌파 18년 만인 1995년에 수출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다시 9년 만인 2004년에는 수출 2000억달러의 고지에 올랐다. 이후 대한민국의 급성장 시기에는 2~3년마다 1000억달러씩 수출을 늘리며 단숨에 수출 5000억달러 국가에 일곱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 여정에서 반도체와 자동차·석유제품·조선·무선통신기기가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보안의식 결여문제가 아니다. 책임 회피가 일상화된 기업 문화 그리고 그 무책임을 방치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허점 탓이다. 쿠팡은 즉각적인 사과와 투명한 책임 규명 대신 '유출'을 '노출'로 축소하고 갖은 핑계로 책임회피에 골몰했다. 실질적 최고 책임자인 대주주(김범석 쿠팡Inc 의장)는 미국의 이름 뒤에 숨었다. 이민을 통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직전인 2020년말 국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 한국과의 법적 연결 고리를 끊었다. 한국에서 사업은 하지만 한국법이 자신에게 닿지 않도록 했다. 물류센터 화재 대응이나 플랫폼의 갑질 논란 등에서 보여준 모습은 '한국에서 수익은 극대화하되 법적·사회적 책임은 최소화'하는 회피의 전형이다. 한국에서 지난해 기준 연간 41조 원의 매출과 6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둔 회사의 태도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국민을 대신해 이런 행태를 따질 국회의 부름은 해외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무시했다.
1987년 무렵의 일이다.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한 아들의 스승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학교에 의사를 전한 모양이다. 당시 동양사학과 A 교수는 학과의 가장 어른인 민두기 교수(2000년 작고)에게 "이재용 학생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식사를 한번 모시고 싶다고 합니다"라고 알렸다. 민 교수는 A 교수에게 "그동안 다른 학생 부모들의 식사 초대에도 응했나요?"라고 되물었다. "아닙니다"라는 A 교수의 답변에 민 교수는 "그런데 왜 이재용 학생 부모의 식사 초대를 나한테 전하는 거죠? 똑같은 제자들인데. "라고 말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공부시키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민 교수를 비롯한 동양사학과 교수들 덕에 이재용 학생은 어떤 특혜도 없이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자식을 학교에 맡긴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그 학생을 바르고 공정하게 가르치겠다는 스승의 마음으로 되돌려준 사례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얘기다. 그 후 이건희 회장은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든 때에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아들의 87학번 동기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올 연말 삼성 사장단 인사는 어떻게 됩니까?" "앞에 있는 인사팀장에게 물어보세요." 약 1주일 전 저녁, 서울의 한 상가(喪家)에서 만난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과 기자의 대화 중 일부다. 정 부회장은 상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주창훈 부사장(사업지원TF 인사팀장)에게 바통을 넘겼고, 주 부사장은 "잘 모릅니다"라며 함구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삼성의 '넘버2' 자리가 8년 만에 바뀌었다. 정 부회장이 용퇴를 결정했다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정 부회장은 다가올 자신의 인사 변화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의 자리는 박학규 삼성전자 사업지원실장(사장)이 넘겨받았다. 기업에서 2인자란 왕조의 재상처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다.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 시절엔 비서실장이, 2대 회장인 이건희 회장 때는 비서실장·구조조정본부장·전략기획실장·미래전략실장이 이름을 달리하며 그 역할을 맡았다.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는 사업지원TF장
천년 고도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이 28일 개막했고, 이어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리는 이번 APEC은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다. APEC 2025는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퀀텀 점프'의 장이자,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진입할 역사적 대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경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 미·중 양국 정상이 한국 땅에서 마주 앉는 이번 APEC 무대는 그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은 단순히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아니라 갈등을 조율하고 협력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적 허브가 될 수 있다. '중재자'가 아닌 새 질서의 설계자로 자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APEC은 1989년 출범 이래 자유무역 확대와 포용 성장을 통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해왔다. 21개 회원국은 전 세계 인구의
그 일로부터 벌써 5년이다. 5년 전 오늘은 삼성을 글로벌 톱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향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한 날이다. 기자는 생전 이건희 회장을 취재 현장에서 수십 번 만나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졌다. 천천히 한마디씩 내뱉는 그의 말 속에는 늘 장고(長考)를 거듭한 선승(禪僧)의 화두가 담겨 있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던 이 회장이 '신들린 듯' 수백 시간을 이야기했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의 유창함은 없었지만, "항상 멀리, 깊게 보라"는 그의 말에는 집무실에서 몇날 며칠 밤을 새우며 미래를 고민했던 흔적이 배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늘 걱정하던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사장(현 회장)의 말도 떠오른다. 기자가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를 묻자 그는 "회장님(이 회장이 아버지를 부를 때의 호칭)께서는 '늘 건강을 챙기라'는 의사들의 말을 잘 안 듣는다"며 "기자님이 좀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른 이별의 아쉬움
지난 8월 7일(미국 현지시간) '대한민국 국가대표 캡틴' 손흥민 선수가 영국 토트넘 홋스퍼에서 미국 LAFC(로스앤젤레스 풋볼 클럽)로 이적을 공식 발표한 직후 그는 곧바로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하루 전 LAFC 홈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불과 입단 사흘만인 10일에 취업비자가 발급되자마자 시카고 원정경기에 출전해 맹활약을 펼쳤다. 세계적인 스타 선수에게 주어지는 프로선수용 취업비자(P-1A)의 신속성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지난 4일 미국 정부가 조지아주 서배너에 있는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30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불법 체류 혐의로 긴급 체포하는 과정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미국의 법과 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을 체포하는 과정은 물론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을 묶은 채 끌고 가는 굴욕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과유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