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사견)]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30년 넘게 지켜봤다. 돌이켜보면 삼성전자 주총은 늘 조용한 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의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한때 삼성전자 주총장은 시민단체와 경영진 간의 전쟁터에 가까웠다.
대표적인 장면은 1998년 3월 주주총회다. 참여연대 소액주주 운동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은 날이다. 1997년 제일은행을 상대로 한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시민단체가 삼성과 SK 주총에 의결권 위임을 받아 본격적으로 참여한 게 이 즈음이다.
장하성 당시 고려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참여연대 측이 삼성자동차 문제를 집요하게 몰아붙이며 주총은 무려 13시간 30분이라는 기록적인 시간이 걸렸다. 경영진과 시민단체가 정면으로 충돌했고 설전과 고성이 오가며 한국 주총 역사상 가장 길었던 회의로 기록될 정도였다.
그 뒤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9년 주총에서도 집중투표제 도입과 경영 투명성을 둘러싸고 8시간의 장시간 공방이 이어졌고, 2004년에는 윤종용 의장의 '당신 몇 주 갖고 있냐'는 발언 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윤 부회장의 뒤를 이어 이윤우 부회장, 최지성 부회장, 권오현 부회장, 김기남 부회장 등 각 시대 삼성전자(208,500원 ▲14,600 +7.53%)를 대표하던 인물들이 주총 의사봉을 들었다. 특히 2년 전 주총장에서 환하게 웃던 고(故) 한종희 부회장의 이름도 이날 주총장에서 언급됐다.
이사보수한도의 건을 논의하던 중 한 주주가 "왜 한도가 높아졌느냐"는 질문에 의장을 맡고 있던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 한종희 부회장의 장기성과급이 포함돼 있어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주총장은 늘 긴장감이 감돌던 자리였지만 이번 주총 만큼은 비교적 밝은 분위기였다. 사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주총 분위기는 무거웠다. 반도체 업황이 꺾이며 실적은 주춤했고 주가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삼성전자 위기론'이 시장을 맴돌던 시기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1년 만에 달라졌다.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삼성전자의 실적 기대치는 다시 높아졌다. 지난해 매출 333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올해 주가 상승으로 시총 1000조 기업의 위업을 달성해 주주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올해 영업이익 200조원에 대한 희망도 들린다.
오랜만에 경영진도 주주도 모두 여유가 느껴졌다. 질문은 칭찬일색이었고, 예전처럼 전투적이지도 않았다. 30년 동안 삼성전자의 수많은 주총을 지켜본 것 중 가장 여유로운 날로 보였다. 1998년 당시보다 주가(3만원대-현 기준으로 600원)도 330배 가량 올랐다. 주총의 분위기는 결국 회사의 실적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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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회장이 향후 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위험이 상존한다며 조심스러운 언급을 했지만 지금의 삼성전자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있다. 지난 몇년간의 어려움을 최근에 잘 극복한 덕분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사장급 인사에게 "왜 지난 몇년은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방향이 잘못됐었고, 이제는 바로잡았다"고 했다.
엔비디아나 AMD 등 AI 선두 주자들과의 연이은 협력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이 삼성전자의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이 피듯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인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더 높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있었다.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변수와 전쟁 이슈만 없다면 삼성전자의 진짜 화양연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늘 같은 주총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