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희의 뉴욕리포트
뉴요커를 꿈꾸며 미국에 왔지만 삶의 터전은 뉴저지의 조용하고 작은 마을입니다. 글의 소재도 금융 중심의 뉴욕 소식보다 토종 한국 아줌마의 미국 생활 체험기가 주가 될 듯합니다. 미국에서 느끼는 문화 충격을 힘 빼고 진솔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뉴요커를 꿈꾸며 미국에 왔지만 삶의 터전은 뉴저지의 조용하고 작은 마을입니다. 글의 소재도 금융 중심의 뉴욕 소식보다 토종 한국 아줌마의 미국 생활 체험기가 주가 될 듯합니다. 미국에서 느끼는 문화 충격을 힘 빼고 진솔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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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성인영화로 알려진 '감각의 제국'을 본 것은 29살 때였다. 30살이 임박한 12월의 어느 날, 연말을 홀로 보내는 쓸쓸함 속에 후배가 가지고 있던 무삭제 비디오를 빌려 봤다. 유명세처럼 매우 격하고 적나라한 섹스와 집착에 빠진 여자가 남자를 목 졸라 죽이고 남근을 잘라버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가득한 영화였지만 두고두고 가슴을 울리는 깊은 여운이 있었다. 전날 술을 심하게 마셔 머리가 흐리멍덩하고 속이 아프고 만사가 귀찮아질 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 홀로 떨어져 나와 '루저(실패자)'가 된 느낌이 들 때, 언제나 '감각의 제국'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방에 갇혀 섹스만 하던 남자 주인공이 어느 대낮에 햇볕을 보지 못해 핼쑥해진 얼굴로 밖에 나와 낮은 벽을 따라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는 일본 군대가 총을 어깨에 메고 발걸음을 딱딱 맞춰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며 다가온다. 거대한 물결과도 같은 일본 군인들의 행진을 역방향으로 거슬러 휩쓸려 갈 듯 위태롭게 걷던
한국에서 살 땐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영어로 기사나 책을 읽는데 큰 불편이 없었고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영어학원에서 회화도 꽤 오랫동안 배웠다. 하지만 '나 영어 못하지 않아'란 자만은 미국에 오자마자 깨졌다. 미국에 와서 한 번은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란 말을 하고 싶어 "영광(Honor)"이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이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뒤에야 상대방이 내 발음을 "주인(Owner)"이라고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인 아줌마가 만나자 마자 "만났으니 내 주인입니다"라고 말하니 상대방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이 얘기를 한 재미교포에게 했더니 "여기서는 오븐(oven)도 '오븐'이라고 하면 못 알아들어요. '아븐'이라고 해야지"라고 했다. 아이가 동네에서 풋볼을 하는데 운동장 옆에 붙어 있는 매장에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봉사를 해야 했다. 두 미국인 엄마가 주문을 받으면 나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의 엄마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이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세미나를 다녀왔다. 3박4일간 경제 및 주식시장 전망, 리더십 전략,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 회계학 기초, 기업 실적 분석 등에 대해 와튼스쿨 교수들의 강의를 직접 듣고 여러 기자들과 토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올해는 총 48명의 기자들이 참여했는데 면면들이 그야말로 '글로벌'했다. 물론 미국 기자들이 가장 많긴 했지만 캐나다, 브라질, 칠레,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바레인, 나이지리아 등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5개 대륙 곳곳의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글로벌'하게 보이는 이면에는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48명의 기자들 가운데 중국과 인도 기자가 4명씩 8명을 차지했다. 브라질 기자 3명과 러시아 기자 1명을 합하면 총 25%가 브릭스 출신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나이지리아에서만 2명이 참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와튼스쿨 교수들이 경제 전망과 글로벌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뉴요커로 살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뉴욕 특파원이 됐어도 뉴요커는 될 수 없었다. 뉴욕의 임대료가 비싸서만은 아니었다. 뉴욕도 맨해튼만 임대료가 비싸지 뉴욕의 퀸스나 브롱스, 브룩클린에서는 지금 살고 있는 뉴저지주 작은 동네보다 더 싸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뉴요커가 되기를 포기한 이유는 아이 때문이었다. 미국으로 오기 전, 퀸스에서 살까 고민 중이라고 하자 미국에서 살아봤던 모든 사람들이 뜯어 말렸다. 학군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미국 공립학교는 지방 재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의 학교 수준이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뉴욕에 살려면 비싼 돈을 주고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야 할 거라는 주위 조언에 학군이 좋다고 소문나 한국인들이 많이 몰리는 뉴저지주의 지금 사는 동네를 선택했다. 그러다 우연히 뉴욕 퀸스에 사는 재미교포 부부를 만나게 됐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뉴욕에서 살고 싶었는데 애 교육 때문에 뉴저지주로 왔다고 했더니 그
여름방학 때 아이를 통학형 캠프에 보냈다. 캠프 첫날 집에 돌아온 아이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았더니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설명한 캠프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캠프장에 도착하면 오전 9시까지 잔디와 운동장, 놀이시설이 갖춰진 야외에서 자유롭게 놀다가 9시부터 수영장에서 자유롭게 물놀이한다. 오전 10시30분부터 자신이 원하는 활동, 예를 들어 야구나 농구, 요가,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식물 기르기 등의 활동을 선택해서 한다.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점심을 먹고 자유롭게 논다. 오후 1시30분부터 3시까지 수영을 배운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자유놀이를 한 뒤 뒷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생활을 캠프 신청기간에 따라 최소 4주일부터 8주일까지 내내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한국에선 초등 4학년 때 평생 성적이 결정된다는 책도 유행하는데 5학년인데 너무 노는게 아닌가 싶었다. 영어라도 배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수
올해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인 오바마케어의 위헌 여부가 오는 28일 결정된다. 오바마케어는 2010년 공화당의 지지 없이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건강보험 개혁법으로 오는 2014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오바마케어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은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보험회사들은 기존의 건강상태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의 건강보험 가입도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26개 주가 위헌 소송을 제기하면서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 3월말 오바마케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리를 진행했고 이번주 위헌 여부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오바마케어의 위헌 여부와 관련해 핵심 쟁점은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가입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오바마케
키웨스트는 미국 최남단의 작은 섬이다. 이곳에는 유명인이 살았던 저택 2채가 남아 있다. 하나는 미국이 자랑하는 문호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이 휴가지로 애용했던 '작은 백악관'이다. 트루먼은 8여년의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키웨스트의 이 '작은 백악관'에 총 175일간 머물렀다. 트루먼은 감기로 고생하다 따뜻한 곳에 가 쉬라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 해군 장교들의 거주지로 쓰이던 이곳을 찾았다 반해 휴가 때마다 방문했다고 한다. 백악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하얀 색으로 칠해진 이곳은 트루먼이 사용하던 그 시절 그대로 보존돼 있고 한쪽 일부만 트루먼 대통령의 업적을 소개하는 기념관으로 개조돼 이용되고 있다. 이 기념관 한 쪽 벽에는 미국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 10명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트루먼은 에이브러햄 링컨,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루스벨트,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에 이어 7위로 소개돼 있
아이가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의 이메일을 받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3차례나 수업이 끝난 뒤 남아 있는 벌을 받았다며 한 번 더 문제를 일으키면 점심시간 후에 놀지 못하도록 교실에 붙잡고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라 아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업이 모두 끝난 뒤 15분 정도 학교에 남아 있었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 번은 숙제한 공책을 안 가져와서, 한 번은 발표 순서를 정한다고 다른 아이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하다가, 또 한 번은 옆자리 아이가 테이프를 잘라 장난을 치길래 따라 하다 학교에 남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함께 떠들거나 장난 친 아이들도 물론 수업 후에 함께 남았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 학교에선 별 문제도 아닌데다 수업 후에 15분 정도 남아 있는 것이 무슨 큰 벌이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 역시 한국 학교에서도 떠들다 야단맞은 적이 여러 차례인데다 수업 후에 남아 있는 것이
"다른 데 쓸 돈 안 쓰고 아이들에게 밥은 공짜로 먹일 수 있잖아요?" "능력이 되는 사람은 자기 아이 밥값 정도는 내야 하는 거 아닌가?"란 나의 말에 한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이 한창 논란이 됐던 지난해 중반의 일이다. "부모가 돈이 있든, 없든 학교 다니는 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밥을 먹는 문제"라고 후배는 말했지만 학교 급식은 어느새 아이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는 문제를 넘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이념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나는 한국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학교 급식의 세계와 만났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뒤 들른 학교 사무실에서 "급식을 아직 신청하지 않았으니 며칠은 도시락을 싸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도시락이라니? 급식값은 나중에 내더라도 학교에 오면 아이에게 점심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황당해하는 나에게 사무실 직원은 용지 2장을 줬다. 하나는 인터넷을 통해 급식을 신청하는 방법이 적힌 설명서였고 하나는 금요일 점심 때 피자를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