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각 분야 전문가들이 AI, K뷰티, 개인정보보호, 경영전략 등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여 독자에게 균형 잡힌 시각과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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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벌써 지났다. 가슴 설레게 하는 봄꽃은 매화가 봉오리를 터트리며 그 시작을 알리고 산수유, 벚꽃, 복사꽃, 진달래 순으로 봄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오늘은 흔히 볼 수 있는 봄꽃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피는 '동강할미꽃'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동강할미꽃은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만 강원 정선의 석회암 절벽(뼝때·강원도 사투리)에 핀다. 보통 할미꽃은 고개를 숙이고 땅에서 피지만 동강할미꽃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정선 귤암리 강변마을 절벽바위 틈에서 피어난다. 강원도 동강 유역의 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생육환경은 석회질이 많은 바위틈에서 자라며 키는 약 15㎝며 7~8장의 작은 잎으로 돼 있고 잎 윗면은 광채가 있고 아랫면은 진한 녹색이다. 꽃은 연분홍, 붉은자주, 청보라색이고 처음에는 위를 향해 피었다가 꽃자루가 길어지면서 옆을 향한다. 동강할미꽃을 보고 있으면 갓 태어난 보라색 새끼 새가 어미에게
사연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연 없는 법 또한 없다. 그런데 법 제정 시의 사연은 잊히고 현재의 잣대로 보면 말도 안 된다고 비난받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스레 사문화하기도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단통법'이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통신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로 식료품비만큼이나 가계 소비지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세계적 경기침체와 더불어 가계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통신비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적 의지는 강할 수밖에 없고 그 이행수단의 하나로 '단통법 폐지'라는 슬로건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정책실현 과정에서 법이 지닌 사연이 현재에도 유효한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절적이고 급진적인 법 폐지만이 정답인지는 의문이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약칭인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기에 앞서 먼저 단통법의 사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통법은 소위 '스팟'이라는 단말기 유통방식으로 유리한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멍하니 TV 수상기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던 것 같다. TV 브라운관이든 영화관의 스크린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화면을 같이 '들여다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뭘 저렇게 보고 있나 싶지만 가만히 보면 화면은 멈춰 있지 않다. 고유한 시간을 가진 세계가 있고 그 속에서 이야기가 흐른다. 사진과 영화는 카메라라는 기기가 중심이기 때문에 비슷한 것 같지만 가장 다른 점이 거기 있다. 영화엔 두 종류의 프레임이 공존한다. 카메라가 고정한 프레임에 스스로 흘러가는 연속된 프레임이 담겨 있다. 그 흐름에 눈길을 빼앗기면 프레임 밖의 현실에선 아무것도 안 하고 볼거리에만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 상자(TV)를 바보 만드는 상자라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안의 흐름을 콕 찍어 비판한 사람도 있다. 영화는 계속 흘러가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스스로 멈춰 사색에 빠질 수 없다고. 보기와 흘러가기 둘 다 생각하는 능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 곧 설이다. 요즘은 누구나 '설날' 하면 음력 정월 초하루를 생각하지만 이날이 '설날'이란 이름을 독차지하기까지는 10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양력, 즉 그레고리우스력을 처음 사용한 것은 1896년 1월1일부터다. 고종은 개국 504년 11월17일을 505년 1월1일로 삼는다는 조령을 내렸다. 그러나 수백 년간 사용한 역법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었다. 민간은 물론 정부조차 '음력'(陰曆) 또는 '구력'(舊曆)이라 부르며 옛 달력을 함께 사용했다. 혼란의 시작이었다.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당시까지 음력날짜로 실시한 국가예식은 모두 중지되고 조선총독부는 양력만 사용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대부분 조상의 제사와 가족의 생일을 음력으로 헤아렸으나 이는 가가호호(家家戶戶)의 일이었기에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해의 시작인 설은 달랐다. 농어촌이야 평일이나 휴일의 구분이 무의미했기에 문제는 도시였다. 평일이었음에도 다들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관공
일본 도쿄의 오다이바에는 '일본과학미래관'이라는 과학관이 있다. 이 과학관은 첨단기술을 체험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게 목표다. 그곳 5층에선 '100억인의 서바이벌'이라는 전시가 열린다. 이는 인류가 직면하는 재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관한 전시다. 이 전시는 5단계로 돼 있다. 1단계는 잠재위험의 감지, 2단계는 그 위험의 정체 밝혀내기, 3단계는 위험에 관한 데이터 수집·분석으로 피해 줄이기, 4단계는 공유와 논의, 5단계는 경험을 살려 대책 세우기다. 여기서 제1의 재해는 지진이나 화산 분화다. 이곳에는 그동안 일본에서 발생한 모든 지진의 발생지역과 빈도, 규모가 화면에 표시되는데 일본은 지진에서 자유로운 곳이 없다. 일본은 환(環)태평양 지진대, 일명 '불의 고리'에 속한다. 일본의 대규모 지진은 동부해안에서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2024년 1월1일 지진은 일본 서부지역인 노토반도에서 생겼다. 규모 7.6의 강진이었다. 이시카와현에서만 건물 3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는 말은 '자신을 너무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肝)은 몸통 어느 쪽, 어디에 붙었고(몸통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 눈알은 얼마나 크며(지름 2.4㎝에 7g임) 핏줄을 다 이으면 얼마나 길고(약 13만㎞임) 대소변은 왜 누르스름한가(죽은 적혈구에서 생긴 빌리루빈 색소 때문임) 따위에 대한 궁금증(호기심)도 모두가 자신을 알아보는 길일 터다.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 덩치에 따라 다르지만 60조~100조개쯤의 세포가 모여 정밀한 인체(몸)가 형성된다. 그런데 왜 똥오줌의 색은 누렇고 또 황달에 걸리면 얼굴이나 눈자위가 노르스름할까. 사실 혈액 한 방울에 적혈구(붉은 피톨)가 약 3억개가 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작은 세포인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적혈구는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도넛 모양을 해 산소와 잘 결합하게끔 표면적을 넓힌다. 또 적혈구는 우리 몸속의 큰 뼈다귀인 두개골, 척추, 골반, 늑골,
최근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화장품분야 선두주자로 알려진 로레알그룹 CEO 니콜라 이에로니무스가 기조연설을 해 화제가 됐다. 이 기조연설은 다양한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며 창의적 혁신이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가 됐다. 이는 기존 업종간 경계가 더이상 제한적이지 않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IT업계에 종사하다 화장품분야로 이직한 이력이 있는지라 남다른 소회를 느낄 수 있었다. IT업계에 종사할 때 CES가 의미하는 바는 매년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IT 비즈니스만의 상징적인 행사였다. 전략마케팅실에서는 CES에서의 전시회와 각종 미팅을 준비하면서 이 행사를 시작으로 당해연도를 준비하고는 했다. 한편 기술 중심의 IT회사에서도 마케팅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화장품회사 출신의 마케팅 임원들을 스카우트했고 실제로 통합적 관점으로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삼성전자 최초 여성 사장으로 유명한
모든 것은 변한다.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며 세상도 변한다. 지구도 변하고 태양도 변하며 은하도 변한다. 우주는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고 관측 가능한 우주에만 수조 개의 은하가 있고 그 은하들은 각각 수천억에서 수조 개의 태양을 품고 있다. 이 터무니없이 넓은 우주에서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류는 이 모든 변화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 애써왔다. 초월적인 존재인 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 변화 속에서 법칙과 질서를 찾아왔다. 물리학자들은 우주 어디서든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물리법칙을 연구하고 돈의 흐름을 예측하는 경제학, 심리의 변화를 연구하는 심리학 등 학문이라는 것은 대부분 변화에 대한 고민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법칙이다'라는 말이 있듯 변화는 필연이다. 이런 변화의 고통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극락과 천국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면 그곳에 가겠노라며 기도한다. 하지만 선불교에서는 극락정토라는 곳은 바로 그대
죽은 배우는 작품 속에서 영원히 산다. 사람들은 이선균을 '박동훈'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래야만 현실에서 그의 부재를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애도의 방식으로 인해 그는 영영 '나의 아저씨'에 갇혀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배우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실존은 잊히는 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아프다. 그를 박동훈에 영원히 가두기 전 우리는 이선균이라는 개인의 괴로움을 헤아렸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이선균은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말라고,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져"라고 말한 박동훈처럼 견디지 못했다. "모른 척해줄게. 너에 대해서 무슨 얘길 들어도 모른 척해줄게.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주라. 모른 척해주겠다고"라던 동훈의 당부가 고인의 간절한 진심이었을 것 같아 서글프다. 드라마에서 동훈의 아내 윤희는 외도를 했고 동훈 형제들은 그 사실을 알고 심각해진다. 막내 기훈이 형수를 죽여버리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의 기준이 가벼워지고 있다. 여행의 질적인 부분보다 인생샷, 예쁜 카페에만 초점을 맞춘 가벼운 여행을 선호한다. 인생샷은 어느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됐고 여행일정에 카페는 꼭 필수로 챙긴다. 이는 여행이 변화한 것일까. 여행이 가벼워진 것의 시작을 따지자면 아무래도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가 아닐까 한다. '모래시계'의 방영으로 드라마에 나온 아름다운 바닷가 정동진이 최고의 인기 여행지로 우뚝 솟았다. 드라마 방영 후 많은 여행객이 찾았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새해 해돋이를 보러 찾는다. 그리고 동해안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정동진이라고 아는 것도 아주 놀라운 일이다. 이후 정동진의 상권변화에도 주목해봤다. 정동진이 유명해지고 여행객이 끊임없이 찾아주자 주변에 숙박시설과 기념품숍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카페'가 아주 많이 들어섰다. 어쩌면 식당보다 카페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비슷한 상권을 가진 곳을 떠올려보면 제주도의 월정
딥페이크(deepfake)의 시대가 다가왔다. 딥페이크란 인공지능 기술인 '딥러닝'과 가짜를 의미하는 '페이크'의 합성어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악의적이거나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데 사용되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도록 얼굴이나 신체를 디지털 방식으로 변조한 인물의 영상'이다. 핵심은 인공지능을 포함한 디지털기술을 활용한다는 점과 누군가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를 변조한 이미지나 동영상이라는 점이다. 딥페이크는 특수효과가 필요한 영화나 방송산업처럼 특히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에서의 활용이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과거 인물을 딥페이크를 이용해 영화 속에 실존인물처럼 구현하거나 출연배우의 과거 모습을 구현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이러한 긍정적 활용과는 반대로 사람의 영상을 변조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가짜뉴스를 제작하거나 범죄에 오남용되기도 한다. 유명인의 신체를 무단 도용해서 만든 딥페이크 포르노나 SNS에 올려진 자녀의 사
다양한 언어를 가지는 것은 사회의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건강한 사회는 소통을 통해 지식을 키워가는데 언어는 소통 불가능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사유를 확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의사소통을 위해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생각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고정관념만 강화한다. 새로운 지식은 도약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다양한 언어란 외국어, 지역어, 특정 세대의 언어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예술의 언어를 포함한다. 특히 예술은 생활언어의 가장 안쪽에서 작동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외부를 끌어안는 힘이 있다. 평범한 일상 안으로 낯선 세계를 끌어들이고 우리 내면의 감성을 확장함으로써 그 어떤 말보다 참신한 사유를 열어준다. 우리가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몸짓은 소통의 목적에서는 하나의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몸짓은 화자(話者)가 몸짓을 필요로 한다는 것, 즉 그들의 부족한 말을 의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