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각 분야 전문가들이 AI, K뷰티, 개인정보보호, 경영전략 등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여 독자에게 균형 잡힌 시각과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AI, K뷰티, 개인정보보호, 경영전략 등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여 독자에게 균형 잡힌 시각과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총 464 건
최근 태국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매번 출장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K컬처(Culture)'의 성장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출장은 화장품 원료 전시회가 있어서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공항에서부터 낯익은 한국인을 모델로 하는 광고가 즐비하고 편의점에서는 다양한 한국 제품이 주요 매대를 채우고 있었다. 전시회장에서도 확실한 'K뷰티'의 차별성이 주목을 받고 있었다. 최근 K뷰티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한국의 화장품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류열풍의 일환으로 K뷰티 제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이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국경을 넘어 글로벌 소비자층을 확대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추긴다. 이는 단순히 화장품에 대한 수요증가뿐만 아니라 주변 인더스트리 전반에 걸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화장품산업을 둘러싼 제조업체, 원자재 공급업체, 용기업체, 물류기업, 마케팅과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혜를 누리고 있으며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한 노스님이 동자승에게 마당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라고 해서 동자승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자 노스님은 동자에게 너는 동그라미 안에 있어도 안 되고 동그라미 밖에 있어도 안 된다. 어떻게 할 테냐. 하니 한동안 고민하던 동자승은 자신이 그린 동그라미를 발로 쓱쓱 문질러 지웠다. 이 일화는 선불교에서는 유명한 화두다. 이 일화가 말하는 것은 관념이 가진 함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함정에 스스로 들어가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좋은 것, 싫은 것, 선과 악, 더럽고 깨끗함, 빈부귀천 등 이런 수많은 분별에 갇혀 그 속에서 환희하고 좌절한다. 세상에서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여기지만 수행자들은 내 마음으로부터 자유를 꿈꾼다. 그들은 대체로 통장에 찍힌 잔고의 액수로 마음에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순간 전 재산이 사라지더라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추구한다. 대단한 권력자 앞에서 자신의 이익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들도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남현희와 전청조의 결혼발표로 시작된 희대의 스캔들은 전청조에게 사기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잇따르며 점점 뜨거워지더니 마침내 그가 여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산처럼 터졌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다채로운 사기수법이 이목을 끌고 'I am 신뢰에요'라는 '전청조체'가 유행하고 성전환과 임신 등 은밀한 개인적 영역에 대한 가십까지 더해져 대중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사기 피해자인 남현희가 공범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스캔들은 극점을 향해 치닫는다. 알렉상드르 코제브는 포스트모던 시대 인류의 존재양식이 동물화와 스노비즘으로 나뉠 것이라고 예견했다. 타인을 질투하고 또 질투를 받고 싶은 욕망이 인간의 조건인데 반대로 동물은 '욕구'만 갖는다. 식욕과 번식욕 같은 단순한 동물적 욕구는 인간의 '욕망'처럼 타자의 인정이나 질투, 사회적 관계를 바라지 않는다. 반면 스노비즘은 타인의 관심과 질투가 중요하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주체성 없이 스스로를 맞추는 속물근성이기 때문이다. 전청조에게 받
얼마 전 일본의 규슈올레길을 걸으러 갔다. 규슈올레길은 제주올레길을 일본에 수출한 길이다. 그 길은 제주올레길처럼 전체 둘레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규슈의 유명한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 즉 작은 마을의 길을 이어 트레킹 코스를 만든 것이다. 지금 규슈에는 올레길이 총 18개가 있는데 이 중 우리는 아마쿠사란 곳을 걸었다. 아마쿠사는 작은 섬마을로 그 마을의 소로길과 숲길을 지나 바닷가로 다시 나오는 길이다. 바닷가를 걷기 시작하는데 제주올레 일본지사장이 갑자기 바닷물에 쓸려내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일행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 지사장은 "우리 눈에 보이는 큰 플라스틱 쓰레기만 줍는 게 어때요"라고 제의했다. 내가 모시고 간 트레커들이 좋다고 했지만 그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우리나라 쓰레기도 아니고 왜 우리가 일본의 쓰레기를 줍는다는 말인가. 특히 오염수 때문에 민감한 시기에 그것도 일본의 쓰레기를 내가 모시고 간 트레커
디지털 심화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산업계와 정부는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모바일 등 핵심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클라우드가 4차 산업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 지능정보사회를 선도하기 위한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이나 '국가 AI(인공지능) 전략'의 핵심 기반으로 중요성을 가진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개인부터 대형 사업자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처리, 보관, 유통 모든 단계에서 클라우드의 유용성을 실감한다. 디지털 심화가 진전됨에 따라 클라우드의 발전과 확장은 불가피한 흐름인 만큼 클라우드의 활용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자체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이런 고민은 정부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본계획'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 동안 클라우드 발전을 위한 노력은 민간분야에서의 자발적인 노력, 민간의 클라우드 진흥을 위한 정부의 지원, 정부 및 공공부문에서 클라우드 도입 및 활용확대의 3가지 방향으
웰빙(well-being)의 시대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현명한 인간, 정치적 인간, 언어적 인간, 도구적 인간, 유희적 인간 등 다양한 학명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을 그려보고 그냥 존재가 아니라 실제 존재, 즉 실존을 고민하기도 한다. 인간적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는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그저 먹이활동만 하며 숨만 쉬면 이어지는 자연생명과는 거리를 둔다. 이렇게 동물 같은 삶, 벌거벗은 삶, '단순한 삶'(Nuda Vita)을 반대편에 두는, 인간적인 삶은 먹고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뭔가 덧붙여진 삶이었다. 이 부수적인 가치들이 인간 본연의 존재를 증명하고 문명이라는 성과를 내왔다. 그 반대의 길도 가능할까.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십자군전쟁을 겪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가난을 덕으로 칭송하는 청빈을 모토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창설했다. 스스로 자발적 가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 2층에는 '지질, 보석 및 광물전시관'(Hall of Geology, Gems, and Minerals)이 있다. 2층에서는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크다. 여기서는 정말 다양한 크기와 모양, 색상의 보석과 광물표본들을 즐길 수 있다. 전시실은 호프다이아몬드갤러리, 보석갤러리, 광물갤러리, 암석갤러리, 지질학갤러리 등이 있다. 이 중 최고 인기는 '호프다이아몬드'다. 매년 600만명에서 800만명이 보러 온다. 이것은 45.2캐럿짜리 블루다이아몬드다. 세계 다이아몬드 보석상 중 브랜드파워 1위를 자랑하는 해리 윈스턴이 1958년 스미스소니언에 기증한 것이다. '호프다이아몬드'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발견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1668년 프랑스 보석상 장 바티스트 타베르니에가 112₃/16캐럿의 푸른 다이아몬드를 인도에서 가져왔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그걸 샀다. 루이 14세는 1673년 그 보석을 하트 모양으로 깎았다. 크기는 67⅛캐럿으로 줄었지만
토욕혼(吐谷渾)은 4세기부터 7세기 초반까지 오늘날 중국 칭하이성 일대에 있던 유목국가다. 선비족의 지파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토착나라를 세웠다. 토욕혼을 반석에 올린 군주로 모용아시(慕容阿豺)가 있다. 모용아시에게는 20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죽기 전 아들을 모두 불러모은 뒤 말했다. "내 화살 하나씩 줄 테니 다들 부러뜨려 보거라." 그러자 누구 하나 빠짐없이 화살을 부러뜨렸다. 그러자 한 아들을 불러 말했다. "그럼 너는 19개 화살을 부러뜨려 보아라." 그는 온 힘을 다했으나 끝내 부러뜨릴 수 없었다. 모용아시가 아들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알겠느냐? 하나를 부러뜨리기는 쉬워도 여러 개를 한 번에 꺾기는 어렵다. 너희가 전력을 다해 마음을 모으면 사직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용아시는 이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유목 또는 수렵민족 사이에서 화살은 하나의 편제나 집단 또는 일족을 뜻하기도 했으니 모용아시의 유언은 꽤나 상징적 의미가 내포됐다고 하겠다. 일본 센
세상은 바른손(오른손)잡이 차지라 한다. 그러나 왼손을 쓰는 사람이 약 10%에 이르고 이상하게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으며 일반인들에 비해 일란성쌍둥이가 76%로 더 흔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핵산(DNA)의 이중나선구조(二重螺旋構造)도 97%가 오른돌이며 연체동물의 복족류(腹足類)인 달팽이나 고둥무리 껍데기(貝殼)도 거의 오른돌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답할 자 없다. 생물체가 다 좌우대칭이지만 한쪽이 우세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연계나 사람살이를 잘 들여다보면 좌와 우가 부딪치는 좌충우돌인 갈등(葛藤·conflict)이 있으니 남남갈등, 남북갈등, 남녀갈등, 노소 갈등, 고부갈등, 모녀갈등들이다. 그런데 갈등이 뭔가. '칡(갈·葛)덩굴과 등(藤)나무 덩굴이 서로 반대로 얽히고설키는 것과 같이 견해, 주장, 이해관계 따위가 서로 달라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라고 사전에 적혀 있다. 그렇다면 칡과 등나무가 어떻게 서로 척지고 다툰단 말인가. 두 식물이 어떻게 얽힘을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자신의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은 오랜 역사 속에서 관찰된다. 아름다움과 건강은 젊음과 결부되어서 어려 보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아름다움과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수 천년 동안 노화를 막거나 조절하기 위한 다양한 소재와 방법의 연구가 발전하게 되었으며 아직까지 완벽하게 정복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어려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은 심리적 요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적 가치와 자아 이미지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이 증가할 수 있으며, 이러한 요인은 어려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더욱 강화시킨다. 특히 요즘, 사회적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은 더 이상 나이에 따라 정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더 어려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이며, 이러한 욕망은 새로운 연구 방향과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광고에서 보여진 것처럼, 다양한 비즈니스
해외여행을 수백 차례 다녀온 지인이 해준 말이 있다. "어딜 가나 다 사람 사는 곳이더라"는 말이다.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어느 곳인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있겠나. 사람이 있으니 전쟁도 일어난다. 문제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담긴 내용이다. 누군가는 이념을 떠올리고 다른 누군가는 종교를 말한다. 혹은 영토, 자원, 민족문제 등 그럴듯한 명분으로 해석하거나 포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무엇인가. 층간소음을 일으키던 윗집 아이도, 주차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던 이웃집 아저씨도, 퉁명스러운 편의점 직원도, 흠모하던 사무실의 옆자리 동료도, 부모형제 구분 없이 포탄과 총알이 날아온다. 물론 나 자신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는 죽었다가 부활하지만 나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부활하지 못한다. 무엇이 전쟁인가. 전쟁은 참혹한 죽음이다. 종교를 핑계 대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늘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서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짧게 잡아도 5000년의 역사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40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끔찍한 분쟁은 약 4000년 전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와 후처 하갈의 집안 갈등에서 시작됐는데 적자 이삭은 유대교, 기독교의 시조가 되고 서자 이스마엘은 이슬람교의 시조가 된다. 성전(聖戰)이라는 미명하에 무수한 목숨이 스러졌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21세기 세계질서는 종교대립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기독교와 이슬람을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교회에 갔다. 좋아하던 이성친구가 교회에 다녔기 때문이다. 사춘기 풋사랑에서 시작된 종교활동은 점점 그럴듯한 신앙의 모습을 갖춰 20대 시절 제법 큰 장로교회에서 성가대와 주일학교 교사, 청년부 회장으로 신을 섬겼다. 하지만 나는 교회를 떠났다. 교회 안의 엘리트주의, 왜곡된 정상성 개념, 물신주의가 가난한 문학청년의 가치관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교회뿐인가. 다른 종교단체들도 자본화한 세속적 욕망과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