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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 전문가들이 AI, K뷰티, 개인정보보호, 경영전략 등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여 독자에게 균형 잡힌 시각과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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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또 하나 씁쓸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부모님을 서로 모시지 못하겠다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전화하는 내용을 들은 81세와 80세의 노부부가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 연세에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컸으면 내외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 그지없다. 서울 인근에 수천평의 땅을 가진 70대 할머니가 계셨다. 땅은 당장 현금화할 수 없고, 다른 재산은 아무 것도 없어 용돈을 자식들에게 타서 쓰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식들은 내심 어머니가 적당한 시기에 돌아가셨으면 하는 뉘앙스로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즉 부동산의 형태로 자산을 갖고 있으면 자식들의 마음 속에는 어쩔 수 없이 좋지 않은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2세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들만 셋이라서 며느리도 셋인데 아직은 건강하다는 이유로 혼자 생활을 하신다. 그런데 이 집안은 주말만 되면 시아버지댁을 방문한 며느리와 손주, 손녀들로 시끌벅적하다. 주위에서는 집안 분위기
반로환동(返老還童). 늙은 모습에서 아이의 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으로, 나이가 든 사람이 아이들처럼 건강하고 젊을 때 쓰는 말이다. 한의사이자 도교의 이론가였던 동진의 갈홍(葛洪)이 지은 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한고조 유방의 손자인 유안(劉安, BC179∼BC122)은 회남왕(淮南王)이 되어 선학도(仙學道)를 즐겨하며 장생불로(長生不老)의 술법을 얻으려고 힘썼다. 어느 날 여덟명의 노인들이 찾아와서 늙는 것을 물리치는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하자, 왕은 노인들도 늙은 몸인데 어떻게 '각로지술(却老之術)'을 가졌는지 알 수 없어 자신을 속이려고 수단을 부리는 것으로 여겨 믿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들은 "우리들의 늙은 모습을 보고 왕께서 싫어하시는 듯 한데 아직은 젊습니다"라고 말한 뒤 모두 어린아이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반로환동을 위해 손쉬운 방법은 명약을 먹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구기자(枸杞子)가 있다. 별명이 각로(却老)이니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는 전형적인 행동파였다. 사냥과 권투를 좋아하는 그는 공화당원이었다. 하지만 당내에 혁신파를 조직해 정풍운동을 주도했다. 미국과 스페인 간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직접 의용군을 조직해 참전했다. 그 결과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전후에는 주지사에 당선된 후 부통령으로 발탁됐다. 그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매킨리가 암살되는 바람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의 나이 42세. 미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었다. 뭐든 몸으로 부딪쳐 가며 직접 해야 했던 그가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백악관 생활에 대해 얼마나 갑갑해 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그가 대통령직이나 백악관 생활에 대해 만든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강자의 연단’(bully pulpit)이다. 그 말은 지금도 어떤 현안이나 의제(agenda)에 대해 대중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고위 공직자나 권한을 뜻한다. 이 표현이 담고 있는 뉘앙스는 두가지다. 우선 대통령직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에서 가장 빠른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직선코스를 선택해서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과연 우리는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행복한가? 더 멀리 줄달음쳐 와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는가? 더 높이 올라와서 성공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잇따른 연예인들의 허망한 자살 소식, 대기업 임원 자살, 공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청춘을 죽음으로 마감하는 안타까운 10대, 이 모두가 성공에 대한 압박과 목표달성에 대한 조급증이 낳은 병폐이자 역기능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 그리고 인생의 매 순간을 즐기는 미덕보다 어떤 성취를 만들었는지 만을 평가하는 외형적 가치기준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삶 전반에 걸쳐서 곡선이 사라지고 있다. 자연의 곡선은 직선으로 바뀌고, 삶의 여유로운 곡선은
투자수익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 수익의 기대가 클수록 위험이 커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스트레스, 즉 심적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격적인 투자는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혹시 앞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마음이 다소 불편해도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현 단계의 부동산시장 환경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수익은커녕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금은 부동산가격이 무차별적으로 상승하는 국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에서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부동산 대세 상승기란 상승기간이 길고 상승률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가격이 많이 오른다는 것이다. 대세 상승기에는 설사 잘못 투자를 하더라도 손실을 볼 가능성이 낮다. 수익률이 좀 낮을 뿐이다. 하지만 침체기에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뿐 만 아니라 가격 하락에 대한 리스크가 커진다. 잘못 투자하면 장기간
‘신화(myth)는 삶의 경험담이다.’ 저명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1904~1987)이 한 말이다. 신화가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러나 믿음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부동산 역시 신화의 일부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부동산 투자 성공 경험이 널리 알려지면서 부동산을 궁극의 투자 대상으로 여기는 믿음이 널리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동산 신화다. 부동산 신화의 붕괴 역시 일반적으로 신화가 퇴색해가는 과정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점차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외환위기 직후만 하더라도 부동산 신화가 본격적으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1년이 채 안 돼 떨어진 부동산 가격 대부분이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고공행진이 이어졌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부동산 신화가 본격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1년간 가격 하락폭은 외환위기 직후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 후 가격이 더 떨어지고 거래는 실종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흥미
부동산 사무실에 다니는 이소영씨의 남편은 이사도우미를 하고 있었다. 작년 말에 이삿짐을 나르던 중 다리가 골절돼 지금까지 일을 못하고 있다. 자신도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다니던 사무실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 다행히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3학년인 자녀 둘 다 학원 한 번 안가고도 성적이 학년에서 상위권이다. 이 씨는 "자녀들 대학 입학금이라도 마련해야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라도 대학을 졸업시키고 직장도 다니게 할 수 있을텐데" 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재무상담을 통해 이 씨의 자녀 교육비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녀의 금융상품을 따져 보다가 악소리가 날만한 지출이 있었다. 부부가 정상적으로 일할 때 월수입이 250만원인데 보장성 보험료로 매월 52만원이나 지불했던 것이다. 보험료를 왜 이렇게 많이 내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하는 일이 위험해서 불안한 마음에 가입하다 보니 어느새 월 52만원이나 내게 됐다고 했다. 반면 보험료를 불입하는 것 말고는 단 돈 10만원도 저축을
본질적으로 경제학은 논쟁적이다. 경제학은 파이(pie)의 분배 문제가 얽혀있는데다 일종의 관점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다루는 또 다른 학문인 경영학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한국에서 경제학자의 시각으로 부동산을 접근하면 양 극단의 이데올로기로 변한다. 같은 현상도 보는 시각에 따라 천양지차다. 적어도 부동산 문제에 관해서는 경제학자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다. 대립각을 세우고 얼굴을 붉히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그들 일부에게 서울 강남 아파트는 단순히 부동산 문제라기보다는 계급적인 문제가 된다. 강남 부동산에 시장 논리나 경제적 논리를 갖다 대면 투기 동조 세력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어찌 보면 강남 은마 아파트는 부동산계급 갈등이 빚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다. 강남 아파트는 어떻게 얘기하든 나를 공격하는 적이 생긴다. 비싼 강남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은 언제 거품이 터질 지도 모르는 위험 자산을 구매한 비합리적인 인간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고가의 강남 아파트를 산 사람은 세상
“또 중국이야? 아니 지난주까지 얘네 괜찮다며? 앞으로 끝없는 상승이라며?” 지난 6월29일 국내 주식시장이 중국의 경제 성장률 둔화 우려로 크게 흔들리자 이런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여기에 ‘중국’이란 단어 대신 그리스, 스페인, 남유럽, 미국, 일본 등 단어만 수시로 바뀌면서 아침 출근길의 뉴스란을 장식하는 것이 요즘의 투자시장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평범하게 직장 다니는 사람이 한달에 몇십만원 중국이나 유럽, 선진국펀드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본인이 가입한 펀드상품이 투자하는 구체적인 지역과 종목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또 그 나라의 시장 분위기나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있을까? 제대로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MBA를 취득하고 오랜 기간 주식시장에서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 일하는 사람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돌발변수’, '예기치 않은 악재’일
우리나라보다 신조어에 민감한 곳은 없다. 그것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용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마치 유행처럼 누구나 그 말을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그 말은 원래의 뜻을 잃고 왜곡되고 진부화된다. ‘재테크’나 ‘도덕적 해이’, ‘블루오션’ 등이 그런 용어들이다. 누구나 다 사용하지만 누구나 다 같은 의미로 쓰지는 않는다. 요즘 금융계에서 한창 각광받고 있는 ‘뉴노멀’(new normal)이란 말도 비슷한 운명이 될 것 같다. 원래 이 말은 2005년 세계적 투자 전문가인 로저 맥나미가 처음 사용했다. 2008년에는 세계 최대의 채권 투자기관인 핌코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부회장이 이 용어를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의 세계 금융시장에 적용시켰다. 자신의 저서 (When market collides)에서였다.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 이 용어를 주제로 한 세션이 별도로 열리면서 이 말은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다. 금융과 경제 환경의 새로운 기준이나 표준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전기설비업체에서 설비기사로 일하고 있는 35세의 김병철 씨. 모아 놓은 재산이 많지 않아 조그마한 전세아파트에서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아이와 살고 있다. 첫아이를 낳고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림만 하고 있는 그의 아내는 이런 남편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직업상 출장이 잦은 남편이 혹시라도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혼자서 어린 두아이를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편이 매달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월급만으로도 항상 빠듯한데 남편의 수입이 갑자기 끊기기라도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걱정 때문에 남편에게 제발 보험에 가입하라고 몇번 성화를 부렸지만 남편이 그때마다 '보험에 가입하면 재수가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더 우기면 남편이 죽어서 나오는 보험금을 바라는 못된 아내로 비춰질까봐 이제는 남편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다. 재무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보험 가입이 포화 상태라고 하지만 정작 보험
세상의 모든 시장이 그렇듯 부동산시장도 복잡다단하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이 얽히고 설켜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여러 변수들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부동산시장의 작동 원리는 단순한 1차 방정식이 아니라 고차원 방정식이다. 그래서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전망하기란 녹록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부동산시장의 균형적인 변수 읽기의 미덕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분석(analysis)과 주장(opinion)은 엄연히 다르다. 아침 신문을 받아보면 사설(주장)과 일반 기사(분석)는 구분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석 행위는 객관적인 표현이고, 주장은 주관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주장과 분석을 구분하지 않고 쓰는 글들이 너무 많다. 나의 주관적인 주장을 객관적인 분석으로 포장한 글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경향은 일종의 ‘확인 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비롯된다. 주어진 정보를 자신이 이미 결정한 의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