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총 2,214 건
새해 들어서면서부터 정치권은 갑자기 복지확대 논쟁에 휩싸여 시끄럽다. 곧 있을 4·27 재보선, 그리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선거 전초전'이 시작됐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민주당이 이번에는 보편적 복지를 내세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그리고 대학생 반값등록금의 이른바 '3+1'의 무상시리즈 복지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맞서 그동안 분배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느라 복지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나라당도 서민복지를 내세워 고소득층을 제외한 70%의 서민을 위한 무상복지대책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그러나 쌍방 모두 복지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책 실행을 위해 마련한 재정계획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봐도 선거용으로 급조됐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는다. 복지확대는 우리 국민 입장에서 분명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필경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가져올 것이
단어 선택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전세시장이 위기를 넘어 버블로 치닫고 있다. 외환위기나 부동산 버블에 사용된 '위기'나 '버블'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비춰보면 그리 과격한 선택도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의 변동폭이 기존 통상적 범위에서 벗어나면 '위기'라고 정의한다. 버블은 이러한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하고 또 실제로 그대로 실현되는 상황을 말한다. 국민은행이 집계하는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 1월에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이 2년 전 대비 16.4% 상승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에 전세가격이 급등한 2003년 이래 처음 나타난 높은 상승률이다. 그래서 전세위기가 된다. 서민들의 일상이 온통 전세가격 상승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전세버블이 되는 것이다. 더욱 가공스러운 것은 이러한 수치조차 탁상공론이라는 점이다. 1억원이었던 아파트 전셋값이 20% 상승하는 것과 2억원으로 올라간 아파트 전셋값이 20% 상승하는 것은 매우 다른 삶을 요구한다. 더욱이 지난
북아프리카 회교권 국가들이 오랜 독재통치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튀니지에선 젊은 청년 행상의 분신자살로 촉발된 대정부 항의가 전국민적인 반정부·반독재 시위로 확산되면서 23년간 통치해온 벤알리정부를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이집트에서도 30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이 수백만 국민의 연일 계속되는 하야 요구에 결국 정권을 내놨다. 알제리도 최근 설탕과 식용유 등 주요 생필품 가격이 30% 이상 폭등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수도인 알제시내에서 지난 1월 초 촉발돼 3∼4일간 경찰과 대치하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야당은 이를 계기로 정부의 독재와 부패, 무능, 반민주적 정치행태에 대한 책임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알제리의 시위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벌어진 장기독재 정권을 전복하려는 민주투쟁과 달리 현재의 민생고에 대한 항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튀니지, 이집트 및 알제리의 최근 반정부 시위의 선봉에
주식투자에 있어서는 주가를 형성하는 실체와 허상을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당장의 상황에 매몰되면 큰 실책을 범할 수 있다. 사실 특정상황에 몰입하면, 더구나 주변에서도 특정상황에 몰입하면 전문가가 아닌 개개인은 덩달아 불안하거나 흥분하기 마련이어서 상황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상승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기복이 있었다. 옵션만기에 발생한 외국계 증권사의 대량매도, 중국의 긴축 여부, 이집트의 정치적 혼란 등이 발생할 때마다 주가는 큰폭으로 하락했고, 이때마다 주식시장은 불안했다. 특히 그 이전에 주가상승폭이 컸던 데 따라 반사적으로도 이제는 주가상승이 마무리될 것이란 우려가 거론됐다. 이 때문에 이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이탈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추세 측면에서 안정을 유지했다. 물론 사안에 따라 다소 시간이 소요된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주가는 안정을 되찾았다. 이 같은 점에서 보면 그간 수
몇 주째 계속 맹위를 떨치는 혹한과 폭설, 구제역의 창궐, 솟구치는 물가가 음력 세밑의 우리 국민들, 특히 서민들을 우울하게 한다. 정성껏 키우던 소 돼지를 두껍게 얼어붙은 땅에 묻어야만 하는 축산 농민들의 심정은 말해 무엇하랴. 전반적인 물가 오름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공급에 애로를 겪는 돼지고기·쇠고기값은 한달 전과 비교할 때 무려 70% 치솟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겹살은 품귀현상까지 보이고 천정부지의 백화점 정육선물세트도 여전히 인기 속에 팔린다고 한다. 정부 발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것일까. 구제역은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고 정부가 아무리 얘기해도 축산물 수요가 급감하던 예전과 다소 달라진 양상을 오히려 불행 중 다행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설 대목을 겨냥한 상인들의 출하시기 조절, 나아가 매점매석은 없었으면 한다. 문득 연암 박지원이 쓴 '허생전'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허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바로 안성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헤어지기 마련이다. 떠나야 할 대상이 현재의 삶이든 헌신해온 조직이든 우리는 언젠가 떠나게 되어 있다. 거의 아무런 흔적이 없이 사라져갈 사람이든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든 떠나는 자신을 위해서든 남아 있을 대상을 위해서든 의미있게 떠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 하더라도 남아 있는 세상이나 조직은 계속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새해의 소망이나 덕담은 못할 망정 뜬금없이 잘 떠나기를 거론하는 것은 최근 한국 사회가 겪는 어지러움 때문이다. 최근 아니 어쩌면 반복적으로 우리를 실망시키는 고위 공직 후보자의 낙마 소식, 유력 정치지도자들의 기지개와 함께 온 나라를 들쑤시는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그리 오래지 않았던 시절에 열심히 들리던 생산적 복지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의 논쟁, 신년 교례회에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 TV드라마까지 새로운
경기변동은 인간의 심리적 변화에 의해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인스(Keynes)는 바로 그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1936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 '고용과 이자, 그리고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기업가나 가계의 심리가 투자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서 이를 동물적 본능(animal spirits)이라고 불렀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비이성적인 본능에 따른 행동이 경기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력한 기업의 CEO가 부부싸움을 한 뒤 출근을 하면, 세상을 비관적으로 판단하여 대규모 투자계획을 기각시키게 되고, 이런 비관적 의사결정이 시장에 파급되면서 경제 전체가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 이후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심리가 안정적이라고 보았다. 비이성적인 본능에 따라 행동할 여지가 많지 않다고 본 것이다. 설령 인간의 심리가 다소 불안정하더라도 이것이 경기변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최근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강조한 이후에도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는 오히려 더 심화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실제로 8·15 이후 감사를 교체한 23개 공기업 가운데 60% 넘는 14곳을 대선캠프, 청와대 그리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서 경력을 쌓아온 정치권 인사들이 차지했다. 공정한 사회를 표방하기로 한 다음 이렇게 많은 정치권 인사를 공기업 감사로 임명한 것은 아무리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 생각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번 낙하산 인사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및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로 국민들의 관심이 잠시 공기업에서 멀어진 10월 이후 더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국민들의 눈을 피해가면서까지 낙하산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정부도 이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정부가 겉으로는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끊임없이 낙하산 잔치를 벌이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공기업 개혁을 약속한 현 정
최근 경제상황은 불확실성이 짙게 드리웠던 올해 초에 비춰보면 고마울 따름이다. 한국은 세계경기나 세계여론 그리고 주력산업 등 많은 면에서 세계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다. G20, 스마트폰, 태블릿PC…. 늘 반면교사였던 일본조차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모두 올해 생겨난 변화들이다. 조금 길게 보아 10년 전의 상황에 비춰봐도 그 변화가 작지 않음을 실감한다. 외환위기의 그늘이 크게 드리워졌던 당시 우리는 세계경기에 근근이 의존했고 채권국의 여론재판에 휘둘렸으며, 주력산업들에는 부실이라는 오명이 씌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됐건만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유일한 경제성장의 성공사례에서 아시아적 특수성이 담긴 버려야 할 발전모형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자신감과 정체성을 상실한 채 길고 긴 방황과 불신의 10년을 보냈다. 한국의 제도적 전통은 폐기돼야 할 것으로 치부됐고, 한때는 미국식 모형 또 한때는 유럽식 모형이 절대적 선인 양 우리의 여론을 지배했다. 우리 산업이나
일반적으로 주식투자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판단보다 이웃의 투자행태를 참조하거나 당시 사회분위기에 따라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일반인이 일상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산운용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러나 30년째 증권업계에 종사하는 필자의 생각은 개인투자자도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한 전제 사안은 있다. 전제란 국제적 관점에서 원론적 경제사안을 중시하는 것이다. 또 몇몇 핵심 경제요인 중심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몇 중요 경제요인만을 중시하라는 것은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변수를 동일 비중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즉 각 요인을 경제요인과 비경제요인으로 구분하고, 경제요인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해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북한의 도발과 같은 비경제 요인은 경과성 사안이기에 주식시장에서는 중요 요인
1951년 6월 유엔군 측은 '개성사건'이라는 결정적 실수를 범한다. 당시 개성 일부를 유엔군 기계화부대가 점령하고 있었는데 휴전회담이 열리는 개성을 중립지역으로 하자는 공산군 측 제안을 유엔군 측이 성급하게 수용, 그 부대를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유엔군이 물러나자마자 그 지역은 공산군에게 기습 점령당한다. 유엔군 측이 거듭 항의했지만 북한은 이러한 기망(欺罔)적 점령을 마치 군사적 탈환으로 선전하며 그 반환을 거부했다. 몇달의 승강이 끝에 결국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기게 된다. 이러한 역사의 과오를 통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을 바라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채택한 10·4공동선언은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공동어로수역 설정과 향후 회담을 통해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전환한다는 것, 서해북방한계선(NLL)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해주직항로, 한강하구 공동이용 추진 등에 합의했다. 요컨대 NLL을 무효화하려는
#장면. 초·중등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에 관한 우울한 소식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어느 유치원 교사의 한탄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더 쓰라리게 만들었다. 그 교사는 유치원에서 한 아이에 대한 집단 괴롭힘을 주도한 아이의 부모와 상담을 했는데 자신의 아이의 잘못에 대한 부모의 반응이 기절할 정도로 놀라웠다는 것. 그 부모가 자기 아이의 기를 꺾지 말라면서 내세운 이유는 첫째, 특정 아이를 괴롭힌 것은 유치원 내 아이들 사이에 나름대로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리더로서 능력을 발휘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야단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동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친구를 자신들과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하도록 권유하다가 안돼서 어쩔 수 없이 반성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따돌림을 한 것을 바로 리더로서 자질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더십이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군림하는 것으로, 그리고 경쟁은 남을 짓밟으며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