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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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1일. 종교적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처음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법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었다. 당시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병역 소집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오모씨(당시 22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정모씨(당시 23세)와 예비군 소집 훈련을 거부한 황모씨(당시 32세)에 대해서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심의 자유는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 사항에 관한
26년 전 오늘, 1999년 5월20일 오전 대구 한 골목길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신원미상의 범인이 5세에 불과한 김태완군에게 갑작스럽게 '황산 테러'를 가하면서다. 최악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은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다. 태완군은 얼굴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도 잃었다. 49일간 작은 얼굴과 몸을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힘겹게 병원 생활을 견뎌냈지만 입 속에 황산이 들어간 탓에 패혈증으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태완군은 병상에서 범인을 묻는 말에 '○○(치킨집) 아저씨'라고 여러 차례, 분명히 답했으나 수사기관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사건을 영구미제로 남겼다. 이 사건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논의가 불붙어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5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로써 살인죄 공소시효는 폐지됐으나 정작 태완군 사건은 이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태완군은 사건 당일 평범한 아침을 맞
한국전쟁 이후 민족 최대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 지 올해로 45주년을 맞았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민중항쟁은 '폭동'과 '사태'로 불리던 왜곡의 시기를 지나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5·18 민주화 운동은 이후 전개된 시민항쟁의 밑거름이 됐을 뿐 아니라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민주화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비상계엄 확대→계엄군 광주로…최초 희생자 이세종 열사━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직후 내려진 비상계엄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1980년 5월18일 새벽 0시 전국으로 확대됐다. 신군부는 즉시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투입하고 국회·교도소·언론사 등 109곳엔 계엄군과 전차 4대, 장갑차 60대를 배치했다. 또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임시국회를 막기 위해 경장갑차 8대, 전차 4대를 앞세워 국회 정문을 봉쇄했다. 동시에 '계엄포고령 제10호'도 발령했다. 모든 정치활동
"이미 전세는 넘어갔다." 1961년 5월 16일 자정 무렵. 육군방첩대와 헌병 병력을 이끌고 서울 영등포 제6군관구사령부를 포위한 이광선 헌병차감에게 김재춘 대령이 건넨 한 마디다. 군인들의 쿠데타(군사정변)는 사실상 이 순간에 성공을 확정지었다. 헌병대가 물러서자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육군 소장이 이 곳에 도착했다. 6관구 사령부는 서울과 수도권 일부의 군수·병력을 담당하는 지휘부였다. 불과 몇 시간 뒤 육군 본부는 혁명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쿠데타군의 병력은 고작 3600명. 전체 국군(약 60만명)의 1%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그러나 치밀한 준비와 일부 군 간부들의 외면으로 서울 주요 기관은 순식간에 장악됐다.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그대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쿠데타군의 행동을 저지할 병력은 출동하지 못했다. 장면 총리는 자취를 감췄고, 국방부는 혼란에 빠졌다. 이날 새벽 2시쯤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은 국무총리 장면에게 전화를 건다. 장면은 반도호텔 809호실에
2007년 5월 15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서 한국인 4명이 타고 있는 새우잡이 어선 마부노 1·2호가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마부노호는 케냐 몸바사에서 출항해 예멘의 아덴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자원해양경찰대'를 자처하는 해적단체가 이들을 습격했다. 마부노 1·2호엔 총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한석호 선장(이하 당시 나이 40세)을 비롯해 이송렬 총기관감독(47), 조문갑 기관장(54), 양칠태 기관장(55)까지 한국인은 4명이었다. 이밖에 중국인 10명, 베트남인 3명, 인도네시아인 4명, 인도인 3명이 마부노호에 타 있었다. 해적단체는 불법 어로에 대한 '벌금' 명목으로 선원들에 대한 몸값을 요구했다. 정부는 '정부 차원의 직접 몸값 지불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선원들의 석방을 위해 정부가 석방금을 지원한다면 해외에 있는 국민들이 납치범들의 잠재적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러자 선주 안현수씨가 직접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개인사업자였던
2007년 5월14일. 경기도 수원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10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옷차림은 허름했고, 운동화도 너덜너덜했다. 경찰은 신원확인을 위해 수사력을 모았지만, 결국 성과를 얻진 못했다. 소녀 시신이 생뚱맞은 남학교에서 발견됐을뿐더러, 미성년자라 지문을 채취해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소녀를 노숙인으로 의심한 경찰은 수원역 등을 탐문한 끝에 29살 정씨와 강씨가 소녀를 폭행한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진술 내용은 이랬다. "살해당한 소녀는 노숙자 대장의 돈을 훔치다가 발각됐고, 이 대장이 부하를 시켜 소녀를 구타하다가 소녀가 사망하자 시체를 고등학교 건물에 내다 버렸다." 경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던 정씨와 강씨 등 2명을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했다. 정씨와 강씨도 범행을 인정했다. 둘은 경찰 조사에서 소녀가 돈 2만원을 훔쳤다고 착각해 40분 동안 때렸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2007년 8월
2006년 5월13일. 경남 양산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이은영(당시 14세), 박동은(당시 12세) 등 여학생 두명이 실종됐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둘은 평소 친자매처럼 절친한 사이였는데, 휴대전화와 지갑 등 모든 소지품을 집에 둔 채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전방위로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어디에서도 이들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진 두 학생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집에 있겠다"던 학생들, 어디로 사라졌나━경찰에 따르면 두 학생은 실종 전까지 함께 있었다. 은영양이 이른 아침 동은양의 집에 놀러왔고, 동은양 모친은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다. 모친은 외출 전 "밖에 나가서 놀 거냐"고 물었는데, 은영양과 동은양 모두 "집에서만 놀겠다"고 했다고 한다. 집엔 동은양의 언니도 있었지만, 오전 11시쯤 집을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은영양과 동은양의 행적은 낮 2시쯤 끊겼다. 오후 1시20분쯤 집에서 나온 이들은 2시 20분쯤 아파트 단지 내 슈퍼마켓에서 포착됐으며
2021년 5월12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야산에서 훼손된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부패한 데다 지문이 남아있지 않아 신원확인이 어려웠다. 경찰은 실종자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벌인 끝에 시신이 한달 전쯤 실종된 A씨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A씨의 마지막 행적이 유흥주점에서 끊긴 것을 확인하고 유흥주점 사장 허민우(36)를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했다. ━술값 10만원이 부른 참극━사건은 그해 4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이날 새벽 2시쯤 허민우가 운영하는 인천 중구 신포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만취 상태로 자고 있었다. 허민우는 A씨를 깨워 "추가 요금 10만원을 내라"고 요구했지만, A씨는 이를 거부하며 휴대전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유흥주점 영업시간은 코로나19로 인해 오후 10시까지였는데, 새벽까지 영업한 것을 문제삼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A씨는 이를 빌미로 허민우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격분한 허민우는 반격에 나섰다. A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를 수차례
1999년 5월11일 밤. 한국 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 사이비로 규정한 만민중앙교회 신도 약 200명이 여의도에 있던 문화방송(MBC)의 본사 사옥 내부를 급습해 방송 송출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방송(MBC)이 당회장 이재록 교주의 성추문과 교회의 비리 등을 파헤친 방송을 예고하자 벌어진 일이었다. 큰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고가의 방송국 장비가 다수 훼손됐다. 이후 MBC 측은 손해배상 소송서 일부 승소하면서 신도들로부터 6억9000여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누구?━1982년 만민중앙교회를 개척한 이재록은 자신이 신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권능을 가진 존재라며 목발을 짚고 나온 신자가 기도 후 목발 없이 걷는 모습, 휠체어를 탔던 환자가 일어나 걷는 모습 등의 간증 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병을 고치기 위한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모여들었고 만민중앙교회는 신도 수 수만명을 거느린 대형 교회가 됐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
31년 전 오늘인 1994년 5월10일, 넬슨 만델라가 흑인 최초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17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흑인 원주민들을 탄압하면서 관행이 돼 오랫동안 이어진 인종 분리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만델라 취임으로 막을 내렸다. 만델라는 취임 연설에서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고 밝혔다. ━비폭력 저항운동→무장투쟁…내란 혐의로 종신형 선고━만델라는 1918년 7월18일 남아공 동남부 한 시골 마을에서 추장 가문 후손으로 태어났다. 엘리트 교육을 받고 대학 생활을 하던 그는 1940년 학생회 활동을 하다 학교와 마찰을 빚고 정학 처분을 당했다. 마을로 돌아간 만델라는 정략결혼 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해 무작정 요하네스버그로 상경했다. 법률가를 꿈꿨던 만델라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남아공대학(UNISA) 학사 과정을 이수했다. 흑인 지식층과 교류하면서 백인 정권의 흑인 차별 정책
2016년 5월 9일. 70대 여성이 광주 북구의 한 지구대를 찾았다. 남자친구인 문모씨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문씨는 거주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무통 안에 있는 시체 위로는 이불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목과 팔에는 흉기가 꽂혀 있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치아도 대부분 뽑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단서는 CCTV 안에 있었다. 살인 사건으로 본 경찰이 즉시 CCTV를 확인해 본 결과 수상한 남녀 모습이 포착됐다. 어버이날이었던 5월 8일 새벽 2시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남녀가 계단으로 올라갔고, 7시간 후인 아침 9시쯤 동일한 남녀가 옷을 갈아입은 채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경찰은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문씨 시신이 발견된 지 하루 만인 5월10일 CCTV에 등장한 남성과 여성을 여성의 오피스텔에서 검거했다. 놀랍게도 이들의 정체는 문씨의 자녀들이었다
2018년 5월 8일. 경북 구미시 한 원룸에서 20대 아빠와 돌도 지나지 않은 남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아빠는 주민등록이 말소됐고, 아이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사실혼 관계였던 아내와 헤어진 뒤 혼자 아들을 키우던 아빠가 먼저 숨지면서 비극이 발생했다고 봤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 "이상한 냄새" 신고…숨진 채 발견된 父子━두 달째 밀린 월세를 받기 위해 서모씨(당시 28세)를 찾아간 원룸 관리인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출입문이 잠겨있던 탓에 경찰은 창문을 통해 원룸으로 들어갔다. 7평 남짓한 원룸에서 서씨와 생후 9개월 된 아들은 나란히 누워 숨져 있었다. 사망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발견 당시 시신은 매우 야윈 상태였다.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음식을 조리한 흔적이 없었으며 냉장고도 텅 비어 있었다. 이에 경찰은 서씨가 병으로 사망한 뒤 아들이 음식 섭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