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총 1,207 건
6년 전 오늘, 2019년 5월26일(한국시간). 봉준호 감독이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새로 썼다. '선을 넘은'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면서다.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후 기생충은 개봉 2주 만에 '천만 영화'로 우뚝 섰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써내려갔다. 기생충은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 9명의 만장일치로 최고상에 뽑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은 특별했고 다른 영화와 분명히 달랐다"고 평가했다. 시상식에 앞서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됐을 땐 8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외신의 호평이 쏟아졌다. 칸영화제는 베니스·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위상이 독보적이다. 이에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최고 중의 최고상으로 통한다. 그해 한국 영화는 100주년을 맞
5년 전인 2020년 5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이 한 흑인 남성을 바닥에 쓰러뜨려 제압, 그의 목을 무릎으로 강하게 눌렀다. 백인 경찰에게 강압적으로 체포된 흑인 남성의 이름은 조지 플로이드. 그는 키 193㎝에 체중 100㎏ 이상의 거구였으나 양손이 수갑에 묶인 탓에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계속해서 강하게 눌렀고, 플로이드는 간절한 목소리로 "I can't breathe"(숨이 안 쉬어진다)라고 반복해 외쳤다. 잠시 후 플로이드 코에서 갑자기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곧 그의 몸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렇게 현장에서 사망한 플로이드의 나이는 불과 46세에 불과했다. 경찰이 플로이드를 과잉 진압하는 모습, 플로이드가 숨을 쉬게 해 달라며 절규하는 모습, 플로이드가 숨지는 모습 등은 주변 시민의 핸드폰 카메라에 동영상으로 담겨 SNS(소셜미디어) 등에 퍼졌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 미
20년 전 오늘인 2005년 5월24일, 외국에 일시 체류하면서 아이를 낳아 외국 시민권을 얻은 자라도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버릴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새 국적법이 시행됐다. 이 법 제정 배경을 살펴본다. 2002년 1월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공언했던 유승준(본명 스티브 승준 유)이 돌연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병역 면제를 받았다. 한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언론에서 '유승준 쇼크'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 충격은 국민적 분노로 확산한다. 법무부는 같은 해 2월 유승준을 입국 금지 조처했고, 유승준은 23년째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선 해외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한 원정출산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출산하면 곧바로 시민권을 얻어 해당 국가의 교육과 세제, 의료 혜택 등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원정출산에 나섰다. 특히 남자아이는 병역 면제도 받을 수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 30분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향년 63세로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뒤산에서 등산을 하다가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사저 뒤 부엉이바위에서 투신━이날 오전 5시 21분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에서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했다. 이후 5시 47분쯤 경호원 이모씨를 불러 산책을 나서기 위해 사저를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은 6시10분 부엉이바위에 도착했고 6시 14분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 법사(선재규 원장)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지시한다. 이씨는 정토원에 갔다가 6시17분에 돌아왔는데 노 전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경호동에 있던 경호관 신모씨에게 연락해 수색에 나섰고 6시45분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두부 손상과 늑골과 골반 등 전신에 다발성 골절을 입어 부산양산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9시30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2022년 5월 22일. 새벽 5시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서면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30세 남성 이현우가 일면식도 없었던 26세 여성의 후두부를 향해 돌려차기를 했다. 이른바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이다. 피해자 김진주(필명)씨가 건물 벽면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자 이현우는 김씨의 머리를 추가 폭행했다. 김씨는 기절해 쓰러졌고 오피스텔 입주민에게 발견돼 응급실로 이송됐다. ━ ◇엘레베이터 버튼 누르고…눈 뜨니 전치 16주 '상처투성이'━김씨는 지인과 약속을 갔다가 귀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공동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었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해리성 기억상실로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2~3일간 기억이 사라졌다. CC(폐쇄회로)TV 속 자신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본 후에야 벌어진 일을 알게 됐지만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김씨와 일면식도 없었던 이현우는 범죄를 저지른 이후 정신을 잃은 김씨를 둘러
2004년 5월 21일. 종교적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처음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법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었다. 당시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병역 소집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오모씨(당시 22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정모씨(당시 23세)와 예비군 소집 훈련을 거부한 황모씨(당시 32세)에 대해서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심의 자유는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 사항에 관한
26년 전 오늘, 1999년 5월20일 오전 대구 한 골목길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신원미상의 범인이 5세에 불과한 김태완군에게 갑작스럽게 '황산 테러'를 가하면서다. 최악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은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다. 태완군은 얼굴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도 잃었다. 49일간 작은 얼굴과 몸을 하얀 붕대로 칭칭 감고 힘겹게 병원 생활을 견뎌냈지만 입 속에 황산이 들어간 탓에 패혈증으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태완군은 병상에서 범인을 묻는 말에 '○○(치킨집) 아저씨'라고 여러 차례, 분명히 답했으나 수사기관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사건을 영구미제로 남겼다. 이 사건으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논의가 불붙어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5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로써 살인죄 공소시효는 폐지됐으나 정작 태완군 사건은 이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태완군은 사건 당일 평범한 아침을 맞
한국전쟁 이후 민족 최대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 지 올해로 45주년을 맞았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민중항쟁은 '폭동'과 '사태'로 불리던 왜곡의 시기를 지나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5·18 민주화 운동은 이후 전개된 시민항쟁의 밑거름이 됐을 뿐 아니라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민주화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비상계엄 확대→계엄군 광주로…최초 희생자 이세종 열사━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직후 내려진 비상계엄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1980년 5월18일 새벽 0시 전국으로 확대됐다. 신군부는 즉시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투입하고 국회·교도소·언론사 등 109곳엔 계엄군과 전차 4대, 장갑차 60대를 배치했다. 또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임시국회를 막기 위해 경장갑차 8대, 전차 4대를 앞세워 국회 정문을 봉쇄했다. 동시에 '계엄포고령 제10호'도 발령했다. 모든 정치활동
"이미 전세는 넘어갔다." 1961년 5월 16일 자정 무렵. 육군방첩대와 헌병 병력을 이끌고 서울 영등포 제6군관구사령부를 포위한 이광선 헌병차감에게 김재춘 대령이 건넨 한 마디다. 군인들의 쿠데타(군사정변)는 사실상 이 순간에 성공을 확정지었다. 헌병대가 물러서자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육군 소장이 이 곳에 도착했다. 6관구 사령부는 서울과 수도권 일부의 군수·병력을 담당하는 지휘부였다. 불과 몇 시간 뒤 육군 본부는 혁명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쿠데타군의 병력은 고작 3600명. 전체 국군(약 60만명)의 1%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그러나 치밀한 준비와 일부 군 간부들의 외면으로 서울 주요 기관은 순식간에 장악됐다.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그대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쿠데타군의 행동을 저지할 병력은 출동하지 못했다. 장면 총리는 자취를 감췄고, 국방부는 혼란에 빠졌다. 이날 새벽 2시쯤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은 국무총리 장면에게 전화를 건다. 장면은 반도호텔 809호실에
2007년 5월 15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서 한국인 4명이 타고 있는 새우잡이 어선 마부노 1·2호가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마부노호는 케냐 몸바사에서 출항해 예멘의 아덴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자원해양경찰대'를 자처하는 해적단체가 이들을 습격했다. 마부노 1·2호엔 총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한석호 선장(이하 당시 나이 40세)을 비롯해 이송렬 총기관감독(47), 조문갑 기관장(54), 양칠태 기관장(55)까지 한국인은 4명이었다. 이밖에 중국인 10명, 베트남인 3명, 인도네시아인 4명, 인도인 3명이 마부노호에 타 있었다. 해적단체는 불법 어로에 대한 '벌금' 명목으로 선원들에 대한 몸값을 요구했다. 정부는 '정부 차원의 직접 몸값 지불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선원들의 석방을 위해 정부가 석방금을 지원한다면 해외에 있는 국민들이 납치범들의 잠재적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러자 선주 안현수씨가 직접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개인사업자였던
2007년 5월14일. 경기도 수원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10대 소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옷차림은 허름했고, 운동화도 너덜너덜했다. 경찰은 신원확인을 위해 수사력을 모았지만, 결국 성과를 얻진 못했다. 소녀 시신이 생뚱맞은 남학교에서 발견됐을뿐더러, 미성년자라 지문을 채취해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소녀를 노숙인으로 의심한 경찰은 수원역 등을 탐문한 끝에 29살 정씨와 강씨가 소녀를 폭행한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진술 내용은 이랬다. "살해당한 소녀는 노숙자 대장의 돈을 훔치다가 발각됐고, 이 대장이 부하를 시켜 소녀를 구타하다가 소녀가 사망하자 시체를 고등학교 건물에 내다 버렸다." 경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던 정씨와 강씨 등 2명을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했다. 정씨와 강씨도 범행을 인정했다. 둘은 경찰 조사에서 소녀가 돈 2만원을 훔쳤다고 착각해 40분 동안 때렸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2007년 8월
2006년 5월13일. 경남 양산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이은영(당시 14세), 박동은(당시 12세) 등 여학생 두명이 실종됐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둘은 평소 친자매처럼 절친한 사이였는데, 휴대전화와 지갑 등 모든 소지품을 집에 둔 채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전방위로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어디에서도 이들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진 두 학생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집에 있겠다"던 학생들, 어디로 사라졌나━경찰에 따르면 두 학생은 실종 전까지 함께 있었다. 은영양이 이른 아침 동은양의 집에 놀러왔고, 동은양 모친은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다. 모친은 외출 전 "밖에 나가서 놀 거냐"고 물었는데, 은영양과 동은양 모두 "집에서만 놀겠다"고 했다고 한다. 집엔 동은양의 언니도 있었지만, 오전 11시쯤 집을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은영양과 동은양의 행적은 낮 2시쯤 끊겼다. 오후 1시20분쯤 집에서 나온 이들은 2시 20분쯤 아파트 단지 내 슈퍼마켓에서 포착됐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