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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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12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이 이끌던 대한민국 육군 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이자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를 강제 연행했다. 최 대통령의 거절에도 이들은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체포해 정승화 연행 재가를 설득했고, 결국 최 대통령은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했다. 12·12 군사반란을 기점으로 전두환은 정부를 장악했고, 10·26 사건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민주화 운동, 이른바 '서울의 봄'은 무력 진압되면서 무참히 짓밟혔다. ━전두환 vs 정승화…생일잔치 빙자한 반란의 시작━ 전두환이 득세하기 시작한 건 1979년 10월26일, 10·26 사건 직후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행동반경을 비정상적으로 넓혔다.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에 위협이 될 정도였다. 둘은 사건 수사와
2008년 12월11일. 조두순(당시 56세)이 8살 여자아이를 교회 화장실로 납치해 성폭행했다. 그는 아이를 기절시키고 성폭행을 저지른 뒤 홀로 빠져나왔다. 피해 아동은 몸과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지만 조두순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하며 고작 징역 12년을 살고 나왔다. ━전과 17범 "술 취해서 심신미약" 징역 12년━ 조두순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등굣길에 오른 아이를 납치해 범행을 저질렀다. 해가 뜬 오전 8시30분이었다. 9시께 조두순은 자리를 떠났고,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은 시민이 피해 아동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미 조두순은 성폭행과 상해치사 등 중범죄 전력이 있는 전과 17범이었다. 같은 달 13일 증거 확보로 체포된 조두순에게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징역 12년에 전자발찌 부착 7년, 신상정보 열람 5년을 선고했다. 주취감경이었다. 조두순은 형이 무겁다며 상고했다. 대법원은 2009년 9월24일, 조두순의 상고를 기각하고
10년 전인 2014년 12월 10일 스무 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교도관 도움으로 성인물 등을 구치소 안에 몰래 반입해 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연쇄살인 범죄를 저지른 유영철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사회와 격리됐다. 유영철은 수감 생활 중 성인물 등 반입 금지 물품을 구치소 안으로 들여오기 위해 교도관 A씨를 포섭했다. 유영철은 재소자들의 물품 구매를 대행하는 업체에 편지를 보내 성인용 화보와 소설, 일본 만화 등을 주문했다. 그는 이 물품들을 자신이 포섭한 교도관 A씨 앞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교도관 이름이 수령인으로 적힌 물품들은 방해 없이 구치소 안에 들어왔고, 교도관 A씨는 이들 물품을 몰래 유영철에게 전달했다. 구치소 수감자 가운데 유영철만 유일하게 규정에서 벗어나 절대 받아볼 수 없는 물건들을 건네받는 특혜를 누린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법무부 조사를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13년 전인 2011년 12월 9일 0시30분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인천국제공항철도에서 인천 방향으로 달리던 열차가 철로 보수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업 현장에는 모두 8명의 노동자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6명이 열차와 직접 충돌했다. 나머지 2명은 사고 지점 뒤쪽에 떨어져서 작업 중이었기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사고는 계양역으로부터 검암역 방향으로 약 1.3㎞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했다. 화를 당한 노동자들은 선로 위에서 동결 방지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6명 중 5명이 사고 현장에서 숨졌다. 나머지 1명은 다리를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노동자들은 공항철도 협력업체 코레일테크 소속 직원들이었다. 검암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사고 열차는 현장 수습 문제로 운행이 약 15분간 지연됐다. 코레일은 현장 수습 후 열차를 정상 운행하는 한편, 경찰과 사고 원인 분석에 나섰다. ━제대로 작동 못한 안전관리 시스템, 참사 불렀다━ 노동
2018년 12월 8일, 일본 아이돌 그룹 NGT48의 멤버 야마구치 마호가 스케줄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시에 있는 집 앞에서 남성 2명에게 습격당했다. 경찰에 붙잡힌 이 남성들은 "야마구치 마호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진술했고, 불기소 처분받고 석방됐다. 스토킹범의 소행으로 여겨졌던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 달 후, 가해자 남성들이 야마구치 마호와 같은 그룹에 속한 멤버들의 사주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소속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야마구치 마호에게 사과하도록 조처했고,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는 명분으로 개최한 기자회견 역시 거짓말로 일관해 충격을 더했다. ━같은 그룹 멤버 집에서 튀어나온 괴한…소속사는 '침묵'━ 회사가 제공한 맨션 구조의 숙소에서 지내던 야마구치 마호는 스케줄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현관에서 남성 두 명에게 습격당했다. 이 남성들은 모두 20대로, 한 명은 직업이 없었고 한
2003년 12월 7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대화에서 대한민국과 중국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는 한국 축구 역사상 전례 없던 장면이 나왔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을용이 중국 선수 뒤통수를 손으로 가격한 것. 이른바 '을용타'의 탄생이다. ━중국 '소림축구'에 손으로 응수한 이을용━당시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전반 종료 직전 코너킥 기회를 얻었고 이때 이을용이 올린 크로스를 유상철이 헤딩으로 선제골을 만들었다. 이어진 후반에서 한국은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 공을 돌리는 소극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한국 전략에 거칠게 경기를 하던 중국은 '공한증'(축구에서 중국이 한국을 이기지 못하는 현상)을 깨기 위해 백태클까지 불사하는 등 소림축구로 우리 선수를 강하게 압박했다. 중국의 거친 플레이는 후반 14분쯤 사달을 불러왔다. 이을용이 동료 패스를 받은 후 공을 돌린 상황에서 중국 선수 리이가 달려와 그의 오른쪽 발목을 걷어찬 것이다. 분노한 이을용은 곧바로 리
지금으로부터 약 16년 전인 2008년 12월 5일,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수배 130여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10월 말까지 서울 조계사에 피신해있었다가 빠져나와 행방을 감춘 지 한달여 만이다. 이 위원장은 같은 해 7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이랜드 노조와 금속노조 파업을 지시한 혐의로 수배됐던 상태였다. 이 위원장이 잡힌 장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던 한 아파트였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조합원이었던 초등학교 교사 이 모 씨의 집에 숨어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민주노총 조합원 성폭행 사건'의 시작이었다. ━'대책 회의'하자며 불러내 허위 진술 강요━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자기 집을 이 위원장의 은신처로 제공한 전교조 조합원 초등 교사 이 모 씨(당시 27세)다. 이 씨는 수개월 전 한 학교에서 근무했던 교사 손 모 씨(당시 34세) 등의 부탁으로 자기 집에 이 위원장을 숨겨줬다. 당시 이씨
약 60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희대의 살인마 '조디악 킬러'. 그는 37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연쇄살인범이자 현재까지도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미궁 속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특이한 방식으로 경찰과 언론에 알렸다. 범행 증거인 피비린내 나는 옷가지, 편지 그리고 암호문을 보냈다. 지난 2020년 12월 5일(현지시간) 조디악의 암호문 4개 중 하나가 해독됐다. 미국·벨기에·호주 출신의 아마추어 탐정들이 51년 만에 비밀을 밝힌 셈이다. 암호를 풀었다는 기쁨도 잠시, 반세기 만에 드러난 진실은 조디악 킬러의 정체를 밝히는 데 도움을 주긴커녕 허무맹랑했다. ━"사람 죽이는 게 좋다"…'인면수심' 살인마, 조디악━ 조디악은 1969년 8월1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지역신문사 세 곳에 편지 한 통씩을 보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자신이 1968년 12월 발생한 허먼 로드 호수 살인 사건과 한 달 전 일어난 블루락 골프장 총격 살
목숨을 걸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비밀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갔던 66명이 죽거나 허탈하게 돌아왔다. 공작은 미수에 그쳤고 약속했던 보상도 없었다. 1959년 12월4일 대한민국 정부가 파견한 공작원 66명이 일본 니가타현에서 테러를 기도한 사건, 니카타 일본 적십자 센터 폭파 미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재일교포 북송저지 공작 사건'으로도 불린다. ━남북한 냉전 시대,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치열한 눈치 싸움━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장기간 식민 지배에서 해방이 된 한반도에는 각기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 남쪽에 들어선 대한민국 정부(남한)와 북쪽을 차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이 양립했다. 북한은 통일을 명분으로 남침을 강행했다. 6.25 한국 전쟁이다. 한국 전쟁 휴전 회담이 개시된 후인 1952년 1월,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평화선'을 설정, 대한민국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을 공표했다. 독도와 동해 바다 등에 들어온 일본 선박과 선원들도 억류했다. 19
2012년 12월3일, 네살 배기 친아들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를 받던 최모씨가 현장검증을 위해 한 공원에 나타났다. 그는 담담히 범행 과정을 재연하는듯 했다가 돌연 눈물을 터트리며 "정말 죄송해요"라고 사과했다. 뒤늦게 친아들을 비정하게 살해한 것을 후회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날의 현장검증은 모두 거짓이었다. ━주남저수지 바닥에 까만 가방…안에는 사망한 어린 남자아이와 돌덩이 2개━ 현장검증 엿새 전인 2012년 11월27일. 경남 창원시 주남저수지에서 가방 하나가 발견됐다. 가방에는 어린 남자아이 시신이 들어 있었다. 가방을 발견한 건 평소 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기던 김 모 씨였다. A씨는 물속에서 무언가를 발견, 가방인 것을 확인하고 낚싯대로 낚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무거웠던 검은색 스포츠 가방은 낚싯대를 부러뜨리고 도로 가라앉았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 가방을 끌어 얕은 곳으로 옮긴 후
3년 전인 2021년 12월 2일. 이삿짐을 가지러 온 의붓딸을 흉기로 살해한 남성 A씨(당시 58세)가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건강 문제와 궁핍한 경제적 상황을 비관하던 중 의붓딸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격분해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평소 의붓딸이 날 무시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삿짐 찾으러 온 의붓딸과 말다툼…"나 무시해?" 흉기 살해━사건은 약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씨는 아내와 2019년부터 별거하다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토요일이었던 2021년 8월 7일 오전, 아내와 의붓딸 B씨(당시 33세)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A씨 집에 찾아왔다. 이혼하면서 미처 가져오지 못한 물건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A씨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잘라야 하는 상황에 이혼까지 겹치면서 삶을 비관하던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와 공동으로 소유하던 주택이 경매로
10년 전인 2014년 12월 1일, 사조산업 명태잡이 어선 '501오룡호'가 러시아 인근 베링해에서 침몰했다. 같은 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배에 타고 있던 60명 중 52명은 침몰 즉시 실종됐다. 이 중 26명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종된 상태다. 구조된 8명 중에서도 1명은 사망해 총 53명이 가족들 곁을 떠났다. ━높은 파도에 배수구까지 막혀…"구명뗏목 탄 8명만 구조"━ 배에는 한국인 선원 11명을 포함해 60명이 타고 있었다. 이중 침몰 직후 외국인 선원 7명과 한국인 선원 1명이 구조됐으나 한국 선원은 구조 직후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나머지 한국인 선원 10명을 포함해 총 52명이 실종됐다. 오룡호에 이상이 생긴 건 한국시간으로 낮 12시 반 무렵이었다. 잡은 명태를 넣는 작업을 하던 중 기상악화로 파도가 높아지며 한꺼번에 많은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배수구가 막히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한 것. 선원들 노력으로 기울었던 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