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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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학대한 건 맞지만 죽이진 않았습니다" 3개월 된 유아를 고의로 떨어뜨려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모가 지난 2016년 5월16일 오전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해 살해 혐의를 부인했다. 상습 아동학대는 인정하면서도 아이를 죽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건은 약 2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3월9일 오전 5시50분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한 가정집. 태어난 지 3개월 된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 아버지 A씨(23)는 안방 아기 침대에서 딸을 꺼낸 뒤 고의로 1m 바닥에 떨어뜨렸다. 입에서 피를 흘린 딸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데려가 비슷한 높이에서 한 번 더 추락시켰다. 생활고로 인해 아이가 짐으로 느껴졌고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아 자식이 미웠다고 했다. 이후 A씨는 딸의 배를 깨무는 등 폭행하고 젖병을 입에 억지로 물려놓은 상태에서 얼굴 주변을 담요로 감싸 잠을 재웠다. 그리고선 오전 10시30분쯤 잠에서 깨고 나서야 아이가 숨졌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아
2007년 5월15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근해에서 한국인 4명 등 선원 24명이 승선한 마부노 1,2호가 해적에 납치됐다. 탄자니아 선적인 마부노 1, 2호는 새우잡이 원양어선으로 5일 전 케냐 몸바사항을 떠나 예멘으로 가던 길이었다. 마부노 1, 2호가 풀려나는 데까지는 174일이 걸렸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인질로 잡힌 사건 사상 최장기간으로 기록됐다. ━해적에 납치된 마부노호…24명 타 있었다━ 마부노호는 15일 낮 12시40분(한국시간 오후 6시40분) 소말리아 해안에서 210마일 떨어진 해역에서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 배에는 한석호 선장(이하 당시 나이 40)과 조문갑 기관장(54), 양칠태(55), 이상렬(47) 등 한국인 4명을 포함해 중국인 10명, 베트남인 3명, 인도네시아인 4명, 인도인 3명이 타 있었다. 쾌속정을 탄 해적 10여명은 순식간에 마부노호를 포위했다. 총기로 배를 위협, 탈취하고 자신들의 근거지인 하라데레로 끌고 갔다. 하라데레는 소말리아 해적의
"무릎 상태가 다음 시즌을 버티기에 안 좋았다. 팀에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 은퇴를 발표한다." 14년간 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하며, 11년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헌신한 박지성(43)이 밝힌 은퇴 이유다. 박지성은 10년 전인 2014년 5월 14일 오전 경기 수원시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박지성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래전부터 은퇴를 생각해왔다"며 "무릎 상태 때문에 지속해서 축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특별히 후회되는 것은 없고, 단지 (무릎)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하는 생각은 있다"고 했다. 박지성은 "은퇴한다고 섭섭하거나 눈물이 나진 않는다"며 "축구선수 생활에서, 원하는 경력과 성과를 얻었기에 후회와 미련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축구선수 박지성의 인생은 끝이 나겠지만, 많은 분께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릴지 고민해 보답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2000년 일본 J리그의 교토 퍼플
2015년 5월13일 오전 10시46분. 서울 서초과학화예비군훈련장에서는 9발의 총성과 비명이 울렸다. 예비군 최모씨가 총기를 난사해 5명의 사상자를 냈다. 참극은 불과 10여초 만에 이뤄졌다. 현장에 있던 간부와 현역병들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채 "피하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이날 왜 동료 예비군을 향해 총구를 겨눴을까. 최씨는 이날 왜 동료 예비군을 향해 총구를 겨눴을까. ━전역한 관심병사, 악마가 됐다━ 총기난사범 최씨는 육군 5사단에서 복무하고 2013년 10월 전역한 B급 관심병사였다. 중점관리대상인 B급은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가혹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부류에 해당한다. 최씨는 과거 GOP(최전방 일반 전초)에 투입됐지만, 중간에 제외되기도 했다. 또 여러 차례 소속 부대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전역한 최씨는 그해 초부터 용접기사 자격시험을 봤지만 불합격해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사회 적응에도 실패한 그는 결국 예
'사망 8만7227명, 실종 1만7923명, 부상 37만4653명.' 지난 2008년 5월12일 오후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약 3달 앞둔 중국은 공포에 휩싸였다. 원인은 '쓰촨성 대지진'이었다. 사망자와 부상자뿐만 아니라 4천600여만명의 이재민이 생겼고 경제적 손실은 약 8451억위안(한화 약 166조원)에 달했다. 지난 1976년 24만명 넘는 사망자를 낸 허난성 대지진(규모 7.8) 이후 가장 참혹했던 것으로 기록됐다.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에서 일어난 지진 중에선 4번째로 강력한 규모였다. 과학학술지 '저널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의 2009년 보고서에서는 쓰촨성 대지진이 400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지질학적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쓰촨성 일대는 최근까지도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 지난 2017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쓰촨성에서는 100년간 규모 5 이상 지진이 163회 발생했다. 그 이유는 단층 활동이 활발한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에 있는 쓰촨성의 위치 때문. 지질학
1886년 5월8일. '코카콜라' 음료 판매가 처음 개시됐다.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에서는 프렌치 와인에 코카잎을 담가 만든 '뱅 마리아니' 라는 음료가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해당 음료에는 1액량 온스(1 fl oz) 당 6mg의 코카인이 함유돼 있었다. 당시에는 향정신성 약품에 대한 의학 지식이 부족해 시중에서 유행했다. 이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약을 만들어 팔던 약사 존 스티스 펨버턴이 1879년 뱅 마리아니의 주성분에 콜라 열매 추출물을 첨가한 '프렌치 와인 코카'를 만들어냈다. 금주법이 도입돼 술을 판매하지 못하게 되자 펨버턴은 와인을 제거하고 설탕과 탄산수를 넣어 1886년 '코카콜라'를 만들었다. ━실제 코카인 성분 함유…1903년 이후 완전히 제거━ 1886년 판매 당시에는 첨가물 없이 순수 코카잎 추출 성분과 콜라나무 껍질 원액, 탄산수로 구성됐다. 이후 점차 첨가물을 더 넣으면서 오늘날 '콜라'가 됐다. 펨버턴은 코카콜라 시럽을 만든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
2년 전인 2022년 5월 7일 오후 국내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강수연(1966~2022)이 하늘의 별이 됐다.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쓰러진 뒤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던 고인은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강수연은 1987년 영화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동아시아 배우 중 최초 수상으로, 강수연이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최초의 월드 스타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후에도 강수연은 제26·27·28회 대종상영화제, 제16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제13회 청룡영화상 등에서 주요 상을 품에 안으며 '여우주연상 10관왕 배우'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강수연은 만 3세 시절인 1969년 동양방송(TBC) 전속 아역 배우로 연기의 길에 들어섰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 내공을 쌓은 강수연은 17세 때 출연한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통해 전 국민이 얼굴을 아는 스타 배우로 도약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강수연은 1985년 영화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우승한 최경주, 그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22년 전인 2002년 5월6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매체 CNN 앵커는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탱크' 최경주의 PGA 투어 뉴올리언스 컴팩 클래식 우승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시 최경주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잉글리시 턴 골프장에서 열린 PGA 투어 컴팩 클래식에서 4라운드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최경주는 마지막 퍼팅을 성공 후 아내에게 다가가 뜨거운 포옹을 해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최경주는 대한민국 국적 선수로는 최초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PGA 투어에서 우승하는 대업을 이뤄냈다. 동양인으로서는 아오키 이사오(1983년 하와이 오픈), 마루야마 시게키(2001년 밀워키 오픈)에 이어 세 번째 PGA 투어 정복이다. 최경주는 우승 직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미국 무대에서 우승하게 돼 말할 수
12년 전인 2012년 5월 5일. 부산 대표 번화가 서면에 있는 대형 노래방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당시 노래방은 주말과 어린이날 휴일을 맞아 찾아온 손님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화재는 예고된 '인재'였다. 노래방에는 창문도,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비상구 3개 중 2개는 불법 개조로 막혀있었다. 직원들의 부실한 대응과 복잡한 내부 구조도 대피에 걸림돌이 됐다. 노래방에서 탈출하지 못한 손님 9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영업 방해' 이유로 화재경보기 막았다…9명 질식사━토요일이었던 그날,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서면)의 6층짜리 건물 3층 노래방에는 50명 넘는 손님들이 방마다 가득했다. 약 560㎡(169평) 크기의 노래방은 방 24개가 중앙에 있고, 통로가 'ㅁ'자 형태로 방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오후 8시50분쯤.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24번 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천장 쪽 전선이 손상된 게 원인이었다. 24번 방에는 손님이 없어 사람들이 화재
2007년 5월 5일, 폭우가 내리는 카메룬의 두알라 국제공항. 케냐항공 507편 조종석에서는 기장 프란시스 음바티아와 부기장 앤드류 키우루가 폭풍우가 잦아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폭우와 뇌우로 인해 한시간 동안 이륙이 지연된 상황이었다. 얼마 후, 날씨가 충분히 잦아들었다고 판단한 이들은 출발을 결정했다. 현지시간으로 5일 오전 12시6분 나이로비를 향해 이륙한 항공기는 단 1분30초 만에 인근 맹그로브숲으로 추락했다. 항공기에는 21개국 출신의 승객 108명과 케나 출신의 승무원 6명 등 114명이 타고 있었으며 한국인 승객도 1명 있었다. 그러나 이 중 단 한명도 생존하지 못했다. 그날 항공기에서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이륙 허가 없이 출발…"비극의 시작"━507편은 케냐항공에서도 가장 수익성이 좋은 노선인 아비장-두알라-나이로비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기였다. 아비장에서 이륙한 항공기는 전날인 5월 4일 오후 10시 두알라에 착륙했다. 당시 두알라 공항에는 천둥과 번개를
2020년 5월3일 오전 7시41분.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 안의 북측에서 우리측 GP(비무장지대 최전방 감시 초소) 외벽으로 고사총 4발이 날아들었다. 우리 군은 이에 대응해 30발을 사격했다. 국방부는 북측에 항의했으나 북측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총성 들리자 반격…우리 군, 총 고장 상태로 대응 늦어져━ 오전 7시41분쯤 북한은 우리측 GP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당시 근무자는 우리 군 GP 건물 외벽이 피탄되는 것을 감지하고 비상벨을 눌러 피탄 사실을 GP 전 장병에게 알렸다. 7시45분 장병의 전원 현장 투입이 완료됐다. 이후 해당 GP 소초장은 GP 외벽에서 탄흔 3개를 확인하고 7시56분 대대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이에 대대장이 8시 K-6 중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지시했다. 8시1분 K-6로 첫 대응 사격에 나섰으나 발사에 실패해 성공하지 못했다. 해당 K-6는 이후 조사에서 기능 고장이 뒤늦게 확인됐다. 결국 지휘통제실에 있던 연대장이 8시3분 K-3 기관총으로
정확히 2년 전 이날,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에스파(aespa)'가 남자 고등학교에서 대낮에 성추행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에스파가 당한 봉변은 현장에서 남학생들의 무분별한 1차 가해(신체 접촉)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학생들로 인해 2차 가해(온라인 성희롱)까지 이어지면서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연예인의 인권 문제, 온라인상에서 걸그룹 성적 대상화 문제, 청소년들의 성 인지 감수성 문제였다. 그 후 2년, 상황은 달라졌을까. ━무분별한 스킨십에 이어 온라인 성희롱까지... 1, 2차 가해 당한 에스파━ 2022년 5월 2일, 경복고등학교의 개교 101주년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 소속 걸그룹 에스파(aespa)가 참여했다. 당시 에스엠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였던 이수만 씨가 경복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에서 찬조 공연에 나선 것이었다. 에스파는 경복고 본관 강당에서 총 3곡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