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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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산에서 잠든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은 19년 전 오늘 2005년 5월1일 세계 신기록을 썼다. 1%의 가능성을 믿고 오른 북극점에서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마지막 종착지까지 정복…세계 유일무이 기록 ━ 박 대장은 2005년 5월1일 새벽 4시45분(한국시간) 북극점 도달에 성공했다. 이로써 세계 최고봉과 극점을 모두 정복한 사나이가 됐다. '탐험가 그랜드 슬램'은 세계 7대륙 최고봉과 에베레스트 정상, 남극점, 북극점 등 3극점을 모두 등정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여기에 히말라야 8000m 14좌까지 등정하면 '산악 그랜드 슬램'이 된다. 박 대장은 마지막 종착지였던 북극점에 도달함으로써 탐험가 그랜드 슬램은 물론,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인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현재까지도 산악 그랜드 슬램은 박 대장이 유일하다. ━극한 추위도, 사람 날릴 듯한 강풍도 말리지
'탕' 1945년 4월 30일, 독일 베를린 도심의 지하 벙커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간 서재에는 총상을 입은 남자와 청산가리를 마신 여자가 나란히 숨져있었다. 6000만명을 죽음으로 내몬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아내 에바 브라운이었다. 이는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지 40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 화가 꿈꾸던 공무원 아들, 독일 총통 자리에 오르다 ━1889년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에서 말단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히틀러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1919년 나치의 전신인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하며 정치계에 입문했다. 히틀러는 1921년 압도적 지지로 나치당수에 선출됐고 12년 후인 1933년 독일 수상에 올랐다. 이듬해인 1934년에는 총통에 올라 군 통수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를 내세운 히틀러를 향한 대중의 지지는 뜨거웠다. 열광적인
1992년 4월29일, 미국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던 흑인들이 백인 대신 평소 불만을 품었던 한인들에게 쳐들어와 한인 사회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 한인 사회에는 지금까지도 그날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다.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따고, 국회의원도 배출하는 등 주류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이 끊이지 않는다. ━"저건 너무해!" 경찰의 과잉진압· 백인 편파적인 재판…흑인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왔다━32년 전인 1992년 4월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복판이 불바다로 변했다.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이 무죄 평결을 받자 인종차별이라고 판단해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폭력과 방화, 약탈, 살인을 자행한 것이다. 이 폭동으로 55명이 사망했고 2300여명이 다쳤다. 피해액은 총 7억2000만달러(한화 9100억원)에 달했다. 발단은 음주운전을 했던 로드니 킹 사건이었다. 로드니 킹
2001년 4월 28일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인 우주여행이 이뤄졌다. 수백억 자비를 투입해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한 억만장자 '데니스 티토' 이야기다. 민간인 우주여행은 괴짜 억만장자의 객기에서 시작됐지만, 결과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그의 우주비행 성공으로 민간인 우주 관광 상품 아이디어가 현실화했다. 우주 탐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23년 전 오늘, 괴짜 억만장자 우주로 향하다━23년 전 오늘, 처음으로 우주인이 아닌 민간인이 우주선을 탔다. 우주여행의 꿈을 이루겠다며 자비 2000만달러(한화 275억여원)를 들여 최초의 '우주 관광객' 타이틀을 단 데니스 티토가 주인공이다. 그는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까지 갔다가 지구로 되돌아오는 왕복 우주여행을 했다. 2001년 4월 28일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TM-32) 우주선을 타고 출발해 ISS를 방문하고, 지구를 128회 공회전한 뒤 2001년 5월 6일에 귀환하는 일정이었다. 데니스 티토가 우
1986년 4월26일 오전1시26분. 옛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키예프(현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 프리퍄티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엄청난 규모 폭발음이 들렸다. 주민들이 접한 정보라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정도였다. 당시 원자력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단순한 폭발 사고인 줄 알았지만 사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400배 이상 방사능을 내뿜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재앙이 시작된 뒤였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 그 모든 것의 시작━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예견된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 중 '무리한 원전 건설 일정' 때문이라는 근거가 제일 설득력 있다. 실제로 사고가 난 원전 4호기는 1983년 12월에 완공됐다. 옆에 있는 1호기는 1977년 12월 △2호기는 1978년 12월 △3
42년 전 오늘, 한밤중 평화롭던 시골 마을에 때아닌 총성이 여러 발 울려 퍼졌다. 동트기 전까지 발생한 사상자 숫자는 총 90여명, 사망한 주민도 56명에 달해 '광기의 살인'이었다. 일명 '우순경 사건'이라 불리는 경남 의령군 궁류면 총기 난사 사건이다. 이 사건은 공권력의 상징이자, 주민 안전에 최우선 책임이 있는 경찰이 살해범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겼다.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사이 56명이 살해돼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총기가 허용돼있는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범인인 우범곤 순경이 청와대에서 좌천된 인사였다는 점에서 서슬 퍼런 정권 아래 은폐됐다. 2022년에야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경남 의령군은 42년이 지난 올해에서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릴 수 있게 됐다. ━경남 의령군 집마다 제삿날이 4월 26일인 이유... 잔인했던 그날의 기억━ 정확히 42년
2005년 4월25일 아침. 일본 효고현에서는 곡선 구간을 달리던 열차가 탈선해 5m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돌진한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는 과속으로 원심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선로를 이탈했다. 전철 앞쪽 1호차와 2호차가 처참하게 찌그러지면서 107명의 사망자를 냈다. 부상자도 562명에 달했다. 일본 철도 3대 참사로 불리는 '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다. ━시작은 오버런…실수 덮으려다 '쾅'━ 사고의 발단은 이랬다.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 A씨는 경력 11개월에 불과한 초보였다. A씨는 이날 과속과 급제동을 반복하다 승강장을 지나치는 '오버런'으로 후진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 실수로 도착 시간이 1분 20초쯤 지연됐고, 상부로부터 질책받을 것을 우려한 A씨는 가속 페달을 더 밟았다. A씨는 제한 속도 시속 70㎞인 곡선 구간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곡선 구간에 진입할 당시 차장에게 무선으로 "오버런을 눈감아달라"고 부탁하느라 브레이크도 제때 밟지 못했다
2014년 4월 25일. 경찰은 한 60대 여성과 그의 20대 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모녀가 받은 혐의는 강도살인과 사체은닉 등이다. 여성은 자신과 내연 관계였던 70대 재력가 재산을 노리고 딸과 함께 심부름업체 직원들을 고용, 범행을 지시했다. 이들은 남성 시신을 자신들 명의 오피스텔 내에 시멘트를 발라 숨겼지만 꼬리가 밟히며 모두 발각됐다. ━갑자기 사라진 70대 재력가…귀중품은 그대로━2014년 4월 11일 수십억대 재력가로 알려진 성모(당시 72)씨가 연락 두절됐다. 갑자기 연락이 끊기자 가족은 실종 며칠 후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경기 파주에 있는 성씨 자택을 수색했다. 귀중품 등은 모두 그대로 있었지만 딱 한 가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바로 집 전체에 설치돼 있던 CC(폐쇄회로)TV였다. 기기가 통째 사라진 것이다. 범행을 감지한 경찰은 성씨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파주 한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모든 아파트 CCTV를 살펴봤지만 성
1952년 4월24일 오후 8시40분쯤. 전남 순천시의 한 음식점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독립운동가 출신 서민호 무소속 의원이 서창선 대위와 말다툼을 하다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서창선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서민호는 다음 날인 25일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서민호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민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암살에 반격한 서민호…정당방위였나━ 정황과 증언에 따르면 서민호의 총격은 정당방위였다. 당시 국회 내무위원장이던 서민호는 지방 선거를 앞두고 호남 지방을 시찰하고 있었고, 분과위원 등과 저녁 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서창선은 서민호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방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러다 서민호의 경호원에 발각되자 서창선은 약 5m 거리에서 권총을 뽑아 서민호를 향해 쐈다. 서창선의 저격은 경호원의 제지로 무위에 그쳤다. 서창선은 빠르게 도주했지만, 서민호는 자신이 지닌 호신용 권총으로 서창선을 사살했다. 흉부와 복부
8년 전 오늘인 2016년 4월 22일, 53세 남성 오모씨가 가족과 외식 후 돌아와 잠들었다가 그대로 깨어나지 못했다. 생전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그의 사인은 '니코틴 중독'. 그의 몸에서 검출된 니코틴은 평생 줄담배를 피운 사람에게도 나오지 않을 정도 양이었다. 이른바 '남양주 니코틴 남편 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생한 니코틴을 이용한 살인사건이었다.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기며 모방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담배 한 대도 안 피웠는데 "치사량 수준 니코틴 검출"━오씨는 당시 22세였던 의붓딸 등과 외식하고 돌아온 후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방에 들어가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씨 아내 송모(당시 48세)씨가 귀가하고 3시간 30분 뒤였다. 송씨는 "남편이 안약을 넣을 시간이 됐는데 안 일어나길래 방문을 열고 들어가 흔들어보니 숨을 쉬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사인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송씨는 오씨의 부검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 때문
25년 전인 1999년 4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마을 컬럼바인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해당 고등학교에 다니던 17세 소년 에릭 해리스(Eric Harris)와 딜런 클레볼드(Dylan Klebold)였다.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숨졌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과 가해자 모두 미성년자였다. 총기 규제와 학교 안전 강화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학생들 가장 많은 시간 골랐다…원래 목적은 '폭탄 테러'━사건 당일 오전 11시19분쯤. 에릭과 딜런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실탄 900여발을 들고 와 잔디밭에서부터 총을 쏘기 시작했다. 총소리에 놀란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두 범인은 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에릭과 딜런은 입고 있던 코트까지 벗어 던진 채 본격적으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들은 도서관으로 도망치는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총기를 난사했다. 주변에서 "제발 쏘지 말아줘!"라고 애원하는 소
1978년 4월20일.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출발해 김포국제공항으로 도착 예정이던 대한항공 902편이 이날 오후 9시40분쯤 격추됐다. 미사일을 쏘아올린 나라는 소련. 직항이 있는 현재와 달리 당시 소련의 영공은 함부로 거쳐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객기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이날은 평소와 달리 항공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소련의 격추로 902편의 왼쪽 날개는 떨어져 나갔고 파편이 튀기며 동체에 구멍이 생겼다. 한국인 승객은 머리에 파편을 맞고 즉시 사망했으며 일본인 승객 또한 어깨와 오른팔에 중상을 입고 버티다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 그 외에도 탑승자 13명이 부상을 당했다. 기체의 급격한 감압으로 비상경보가 뜨자 대한항공 902편을 운항하던 김창규 기장은 약 3분 만에 급하강했다. 기장의 눈앞에는 코르피야르비 호수가 보였고 꽝꽝 언 물가 위로 항공기는 안전히 착륙했다.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