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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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19 건
29년 전, 경기도 가평에서 한가롭게 타작질 하던 노부부 위로 반짝 빛나는 흰 물체가 지나가는 것이 사진에 포착됐다. 우리나라에서 찍힌 UFO 사진 중 가장 선명하게 찍힌 편인 가평 UFO 출몰 사건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진짜 UFO냐, 아니냐로 떠들썩했고 당시 뉴스에 도배될 정도였다. ━가을 풍경 찾아 '동쪽' 향한 사진기자…인화한 순간━ 1995년 9월4일, 경기도 가평을 찾은 문화일보 김선규 사진기자는 가을날 정취를 담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때 이른 추석 스케치를 위해 무작정 회사를 나선 그는 취재 차량 운전 기사에게 '동쪽'을 외쳤다고 한다. 간밤 꿈에 조상님들이 나와서 '동쪽'으로 가라고 해서 무작정 동쪽을 찾다가 도달한 곳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였다. 오후 2시40분, 김 기자는 마침내 가을 사진의 주인공을 찾았다. 집 앞 마당에서 참깨를 타작하던 노부부를 마주한 것이다. 참깨를 타작하면서 부부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평화롭기 그지
2019년 9월 2일 오전 3시가 지났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스섬 인근에서 다이버용 보트 '컨셉션호'에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선체에는 탑승객 33명과 선원 6명 등 총 39명이 있었다. 이들은 이틀 전인 같은 해 8월 31일 산타바버라에서 출발해 산타크루스섬과 채널 아일랜드 일대를 스쿠버 다이빙으로 탐사하는 등 3일간 다이빙 여행을 즐길 참이었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인 2일 새벽 산타크루스섬 북쪽 해안 18㎞ 지점에서 정박 중이던 배의 갑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의자, 다이빙용품 등 각종 물건이 타면서 검은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탑승객은 나 몰라라…바다 뛰어든 선장━AP 통신에 따르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선장 제리 보일런(70)이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몇몇 선원들도 차례대로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한 승조원은 다리에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갑판에 남아있던 선원 1명을 제외하고 컨셉션호 직원 5명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8년 전인 2016년 9월 1일. 7세 딸을 상습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암매장한 친모 A씨(당시 42세)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이 인정돼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동거하면서 학대를 부추기고 직접 때리기도 한 집주인 B씨(당시 45세)는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피해 아동을 악마화하며 A씨에게 폭행을 지시했고, A씨는 B씨에게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어 이에 순응했다. 두 사람의 잔혹한 범행은 5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동거와 시작된 '비극'…"하나님이 시켰다" 폭행 지시━A씨는 남편 외도와 폭력으로 힘든 시기를 겪던 중 대학 동창으로부터 "기도만으로도 아픈 걸 낫게 하는 분"이라며 B씨를 소개받았다. 당시 B씨는 수시로 하나님 지시를 받은 것처럼 행동했고 A씨는 B씨에게 영적 능력이 있다고 믿어 그의 요구와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A씨는 B씨를 친언니처럼 여
영국의 국민 공주, 영국인 마음속에 영원한 왕세자비, 불멸의 패션 아이콘, 세기의 이혼녀……. 오늘날까지도 영국에서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다이애나비(다이애나 스펜서)가 27년 전 1997년 8월 31일 비운의 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에 쫓기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파파라치에 시달리며 번쩍이는 카메라 불빛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36년의 영화 같은 생을 마쳤다. ━마지막 순간까지 파파라치 공격…비운의 사고 그날━사고를 당한 1997년은 다이애나비가 세기의 결혼생활을 이혼으로 마무리한 이듬해였다. 곡절 많은 왕실 생활을 정리하고 나와 자유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내던 시기였다. 다이애나비는 자연인 다이애나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국민적인 사랑과 세계적인 관심은 여전히 그를 향했고 다이애나는 세계 각지를 돌며 대인지뢰 반대 운동, 에이즈 퇴치 등 활발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97년 8월 영국 최고급
1997년 8월30일. 영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귀가하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2학년 박초롱초롱빛나리(8)가 유괴당했다. 아이는 "재밌는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는 20대 여성의 말에 한 지하 창고로 함께 들어갔다가 결국 나오지 못했다. 범인은 부모에게 전화로 수천만원대의 돈을 요구했다. 14일 만에 검거된 범인은 20대 만삭의 임산부 전현주(당시 28세·현재 55세)로 밝혀졌다. 전씨는 생활고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유괴한 첫날 교살, 부모에겐 계속 전화해 몸값 요구…경찰 검문 피해 간 이유 '만삭'이라서━ 전씨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뉴코아백화점 근처를 서성이다가 귀가하던 피해 아동을 발견했다. 그는 남편이 극단 소품 제작실 겸 창고로 사용하던 사당동의 지하 창고로 아이를 데려갔다. 유괴 당일 전씨는 피해 아동 부모에게 공중전화로 총 3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었다. 전씨는 부모에게 2000만원의 몸값을 요구한 뒤 피해 아동에게 수면제를 사탕이라고 속여 먹이고 재웠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군(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의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공장 내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것. 이 회사는 사이비 종교에서 운영하던 회사로 사망자 대부분은 해당 종교 추종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왜 집단 자살을 선택했을까. ━성공한 여성 사업가 박순자의 실체━사건의 발단은 박순자(당시 48세)가 오대양이라는 사이비 종교와 기업을 만들며 시작됐다. 박순자는 과거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 다시 기독교복음침례회인 권신찬·유병언의 구원파에 출석했다. 이후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이탈, 1984년 5월 대전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 겸 회사 오대양을 직접 만들었다. 1984년 민속공예품 제조사 오대양을 만든 후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며 사업을 시작했다. 대통령상 수상, 88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 지정에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114년 전 1910년 8월29일. 우리나라가 국권을 일본에 완전히 빼앗겼다. 경술년에 벌어진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로 불린다. 이날은 경술국치일로 역사에 기록됐다. '한일합병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하면서 '한일합병'이라고도 불린다. '국권피탈'이라고도 한다. 이 조약으로 한국은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36년간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민족적 수난을 겪었다. ━미국·영국 등에 업은 일본, 야금야금 국권 빼앗아━한일합병조약을 맺기까지 일본은 야금야금 우리나라를 삼켜왔다. 일본은 1904년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하면서 일본 정부가 추천하는 고문을 재무, 외무에 두도록 했다. 이로써 재정권과 외교권을 빼앗았다. 이후 한국 침략을 두고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미국, 영국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다.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일본은 미국과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
"죽는 길만이 사는 길이다."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18초. 한 아파트 18층에서 30대 여성이 이 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의 말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욕설과 발음이 비슷한 날짜와 시간에 맞춰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른바 '단역배우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얌전했던 딸, 일하고 오면 "죽여야 해" 말 되풀이━사건은 2004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A(당시 30)씨는 방송국에서 백댄서로 활동하던 동생 B(당시 26)씨 소개로 단역배우(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A씨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단역배우 일을 이어갔다. 그런데 평소 차분하고 조용했던 그가 일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변해갔다. 일하고 돌아오면 이유 없이 벽을 때리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고 사람들 이름을 언급하며 "죽여야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A씨는 자신을 말리던 엄마와 동생에게 평소 입에 담지 않던 욕설을 하는가 하면 때리기까지 했다.
2002년 8월 27일. 전설적인 코미디언 이주일이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1980년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던 '코미디 황제' 이주일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건 자신의 외모를 소재로 한 짧은 유행어였다. 혜성처럼 등장해 스타가 됐지만 이주일은 데뷔 후 바로 스타가 된 건 아니었다. 이주일은 1960년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 격인 문선대를 통해 코미디를 시작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가수 하춘화와의 인연으로 여러 공연에서 보조 사회자로 활동했던 이주일은 1977년 하춘화와 공연을 하던 중 이리역 폭발 사고를 겪기도 했다. 당시 이주일은 후두부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고도 '내 머리를 밟고 내려오라'며 하춘화 구조를 도와 화제가 됐다. 하춘화의 공연 전담 사회자로 활동하던 이주일은 이후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김경태 PD에 발탁돼 1979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과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했다. ━생방송
1990년 8월26일. 서울종합운동장에서 관중 1500여명이 야구 경기장에 난입해 집단 패싸움을 벌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경기는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대결이었다. 원정 온 해태의 패색이 짙어지자 흥분한 해태 팬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했고 이에 맞서 LG 팬들까지 달려들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건으로 19명의 관중이 구속됐다. ━◇흥분한 해태 팬들, 무슨 일?━ 당시 해태는 47승 3무 41패로 4강권에 들어 있었다. 특히 해태는 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를 일궈낸바, 팬들의 기대가 컸다. 이날 경기는 해태와 LG가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이 걸린 정규리그 2위 확보를 위해 경쟁하는 날이었다. 경기장에는 3만100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53승 42패로 당시 선두였던 LG 측은 해태 마운드의 소모를 노리며 단타 위주로 진행, 3-0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해태 측은 5회와 6회 연속 3루타를 때렸으나 7회에서 도루 저지를 실패하면서 무너졌다. 한 회에서만 무려 7점을
2012년 8월25일(현지시간) 우주비행사 닐 올던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이 향년 82세 나이로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운명했다. 같은 달 초순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후 합병증으로 숨졌다. 함께 달로 향했던 아폴로 11호 3인방 중에 가장 먼저 영면에 들었다. 당시 사령선 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암스트롱은 최고였다.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콜린스는 암스트롱 사망 후 9년 뒤인 2021년 세상을 떠났다. 미국 최초로 지구궤도를 비행했던 우주비행사 존 글렌 전 상원의원은 암스트롱을 "달 착륙 이전이나 이후에도 내내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글렌 의원도 그로부터 4년 뒤 향년 95세 나이로 별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시 성명에서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성취의 순간을 전했다"며 "오늘날 그의 정신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그의 죽음을
1945년 8월24일, 강제 징용됐다 고향 땅으로 돌아오던 조선인 수천 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해 8월18일 패전한 일본은 전범 재판과 관련해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이에 일본 해군을 통해 조선인을 부산으로 송환하라는 명령을 예하 부대에 내렸다. 그렇게 8월22일 조선인 노동자들을 태운 '귀국 1호선' 일본 해군 군함 우키시마호가 일본 북동쪽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출항해 부산으로 향했다. 일본은 4740톤급 우키시마호에 조선인이 3700여명 승선했었다고 발표했지만 한국인 생존자와 유족에 따르면 7000명이 훌쩍 넘는 조선인이 당시에 배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인이 1만 명 이상 탑승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부산항으로 가야 할 우키시마호는 8월24일 오후 5시쯤 항해 중 돌연 뱃머리를 돌렸다. 배는 일본 중부 연안 마이즈루항에 기항을 시도하기 위해 마이즈루 앞바다에 들어왔다. 해안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 멈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