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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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전인 1960년 4월 19일 학생들 주도하에 이승만 대통령(1875~1965)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민주주의 운동이 전국에서 벌어졌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부정 선거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자신들의 장기 집권을 위해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제5대 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조작했다. 이에 이날 3·15 의거가 일어났고, 이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자유당 독재를 규탄하고자 시위에 나섰다. 이승만 정부는 정치 깡패를 동원해 거리로 나온 학생들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이 같은 소식은 다음 날 조간신문을 통해 알려졌고, 분노한 국민은 전국적으로 민주주의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4월 19일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제주 등 전국에서 독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의 경찰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시민에게 발포하기도 했다. 하루 동안의 시위에서만 100여명이 넘는
"파도보다 더 거친 게 몰아치는 듯 했어요." "소리만 들었을 때 거대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았죠." 118년 전 오늘, 1906년 4월18일. 이날은 미국에서 20세기 최악의 자연재해가 일어난 날로 역사에 기록됐다. 최초의 진동이 감지된지 2분 만에 샌프란시스코 도심은 삽시간에 뒤흔들렸다. '샌프란시스코 지진'은 이날 오전 5시12분 샌안드레아스 단층에서 진동이 감지된 데서 시작됐다. 태평양 판과 북아메리카 판 사이 지체의 경계를 형성한 변환단층이다. 판 경계 단층이어서 지진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단층의 일부가 어긋나면서 시작된 지진은 단 2분 만에 샌프란시스코를 무너트렸다. 거리마다 건물이 무너져내렸고 길은 푹 꺼졌다. 지진은 대규모 화재로 이어져 도시를 삽시간에 파괴시켰다. ━주민 반 이상 집 잃고 나앉았다…최대 2만명 사망━ 지진의 여파는 상당했다. 우선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사망자를 567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본다
"인간의 기술로 삶을 늘리는 건 천박한 짓인 것 같소. 내 사명은 이제 끝냈으니 우아하게 가겠소" 1955년 4월18일.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향년 76세. 아인슈타인은 사후 화장하길 바랐지만, 그의 뇌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검을 맡았던 토마스 스톨츠 하비 프린스턴 병원의 병리학자가 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뇌를 꺼내 240조각으로 잘라 보관해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인슈타인을 이렇게 똑똑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토마스 스톨츠는 대중들에게 비난받았다. 어떻게 학자의 양심을 저버리고 동의 없이 아인슈타인의 뇌를 잘라 보관했느냐고. 하지만 당대 최고 천재의 뇌를 그대로 화장한다면 큰 손실이라고 판단했던 걸까. 역설적으로 그의 일탈(?) 덕분에 후세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뇌를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독일 출신 천재, 10대에 미적분 독학 터득━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14일 독일 울름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105년 전인 1919년 4월 15일, 일제는 3·1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경기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민간인 20여명을 학살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화성 지역 주민들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송산면, 장안면, 우정면 등에서 만세 시위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 만세 행군에는 1000명이 넘는 시민이 함께했다. 시위대는 일제 무단 통치의 상징이었던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항쟁을 벌였다. 지역에서 유례없는 항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보복에 나섰다. 시위대가 모임을 해산한 뒤 일상으로 돌아간 틈을 노렸다. 일본군은 향남면 제암리 교회에 민간인 20여명을 가둔 뒤 학살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팔탄면 고주리로 이동해 일가족 6명을 만세 시위의 주동자로 몰아 사살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사료에는 학살 사건 당시 일제가 제암리 교회에 가둔 인물들이 기독교, 천도교 신자였다고 적혔다. 일제는 교회에서 이들을 총칼로 잔인하게 살해했고,
지난 2010년 4월14일 오전 7시49분. 중국 칭하이성에서 규모 7.1 강진이 발생했다. '수정 메르칼리 진도 등급(MMI)'에 따르면 진도 7 이상 지진은 일반 건물에도 피해를 주며 부실한 건물의 경우 붕괴하는 등 현상이 나타난다. 칭하이성에서 가장 지진 피해가 컸던 곳은 인구 8만명이 거주하고 있던 위수 티베트 자치주였다. 티베트족이 주로 모여 사는 이곳은 대부분 건물이 벽돌, 나무로 지어져 피해가 더 심각했다. 시민들은 집 안에서 중요 물품을 갖고 나올 틈도 없이 겨우 몸만 피했으며 그마저도 못한 이들은 주택 등 붕괴된 건물 잔해에 깔려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구조물의 약 85%가 전파 혹은 반파됐다. 신화통신 등 당시 중국 언론에 따르면 학생들이 수업받고 있던 도중 학교가 무너지는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또 위수 내 호텔에서 머물고 있던 관광객 100명 중 30명은 구조되지 못했다. 복구 작업도 여의찮았다. 산사태 등으로 도로가 끊겨 있어 구조·복구 작업 등이 지연됐
2005년 4월 13일. 강원도 속초에서 어부 황모(당시 57)씨가 술에 취한 채 배를 몰고 나가 그대로 월북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부는 조사 결과 만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벌인 일로 판단된다고 밝혔고 북한에서도 그를 5일 만에 돌려보냈다. 한 어부의 월북 사건은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단순 촌극으로 마무리됐지만, 소형어선의 월북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은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우발적 '월북'━황씨는 월북 당일 오전 11시쯤 정비차 속초시 동명항에 정박했다. 이후 다른 배 선장과 1.8ℓ 소주 1병을 나눠 마셨다. 만취 상태였던 그는 오후 1시쯤 출항 신고를 하지 않고 '황만호'를 타고 나갔다. 이후 그가 발견된 것은 약 3시간 뒤인 오후 3시 55분쯤이다.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있었고 우리 해군은 경고사격을 했다. 하지만 황만호는 멈추지 않았고 같은 날 오후 4시 4분쯤 군사분계선(MDL)의 연장선을 통과해 월북했다. 합동참모본부와 국정원, 해경 등
"전국 노래자랑~!" 무려 34년간 전 국민을 웃고 울게 만든 '전국노래자랑' MC 故 송해. 그는 2년 전인 2022년 4월 12일 '최고령 TV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당시 95세였던 송해는 이미 대한민국 최고령 방송인이었다. 송해는 같은 해 5월 말 기네스 인증서를 받게 됐다. 한 달 전에 이름을 올렸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기네스 협회 측 업무가 지연되면서 대외적인 발표가 늦어졌다. 이날 송해는 "긴 세월 전국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대한민국 시청자들 덕분"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밝고 경쾌한 모습 뒤 굴곡진 인생사━송해는 해방 전이었던 1927년 4월 27일 황해남도 재령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송복희. 어릴 적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던 그는 1949년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행복했던 날도 잠시, 6·25 전쟁을 겪으며 송해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됐다. 이후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온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정식적인 데뷔는 1955
2007년 4월12일.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사형이 확정됐다. 정남규는 힘없는 아이, 힘이 약한 여성과 중년 남성 등 총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흉기 또는 방화로 중상을 입쳤다. 정남규는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한 취재진의 말에 마스크를 내리고 미소를 보였다.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 정남규는 독방 수감 후 살인을 저지르지 못해 괴로워했다. 그는 2009년 11월21일 독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인에 미쳐 결국 자기 자신까지 죽여버렸다. ━◇정남규의 범행, 약자 위주로 대상 정해━ 1969년생 정남규는 1989년 특수강도 혐의, 1996년 강도 및 강간미수 혐의 등으로 수감 생활하는 등 범죄자가 됐다. 이후에도 1999년 절도 및 강간, 2002년 자동차 절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그가 살인자가 된 건 2004년부터다. 그는 그해 1월14일 저녁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의 한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13세 A군과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역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92년 4월11일, MBC '특종 TV연예'가 방송된 날 한국 K팝 역사에 굵디굵은 한 획이 그어졌다. K팝의 전설,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 시작이다. 1990년대, 트로트 느낌의 가요나 발라드로 점철돼 있던 대한민국 가요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당시 어두웠던 정치 지형과 맞물려 억눌려있던 10~20세대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일종의 해방구가 됐다. 보수적이었던 한국 대중문화에 컬러를 입히고 저항정신, 시대정신을 도입한 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앨범마다 다른 스타일의 음악과 패션, 컨셉을 선보이고, 앨범 사이 '휴식기'를 가진 것, 사회 문제를 가사로 녹여낸 것, 무엇보다 랩으로 대변되는 힙합 문화를 한국에 들여온 것이 이들이다. 현재 범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은 K팝, 그 시작에 자리한 아티스트가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데는 누구
1970년 4월11일. 13시13분(이하 미국 중부 표준시). 아폴로 13호가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아폴로 13호는 3명의 우주비행사를 싣고 아폴로 11호, 아폴로 12호에 이어 세 번째 달 착륙을 위한 우주선으로, 달 표면 '프라 마우 고원' 분지 지질학 실험 임무를 안고 우주로 떠났다. ━아폴로 13호, 발사 전부터 우주비행사 '건강 문제'로 삐그덕━ 아폴로 13호는 우주로 떠나기 전부터 탑승할 우주비행사에 관한 문제로 삐그덕댔다. 원래 아폴로 13호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한 우주비행사의 건강 문제로 다음 미션인 아폴로 14호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팀이 아폴로 13호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발사 7일 전, 또 다시 우주비행사의 건강 문제가 불거졌다. 아폴로 13호의 백업팀 중 한 명이 홍역에 옮은 것이 문제가 됐다. 아폴로13호에 오를 예정이었던 사령선 조종사 토마스 매팅리가 홍역에 옮았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홍역을 앓은 적이 없었던 매팅리는 결국
"PAUL IS QUITTING THE BEATLES"(폴 매카트니가 비틀스를 그만둔다) 54년 전인 1970년 4월 10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 미러'(Daily Mirror) 신문 1면에 전설적 밴드 '비틀스'의 해체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잉글랜드 리버풀에서 결성돼 1962년 10월 데뷔 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로 거듭난 비틀스의 와해가 공식화된 순간이었다. 비틀스는 약 8년간 활동하면서 △Let It Be △Yesterday △Hey Jude △All You Need Is Love 등 수많은 유명 곡을 남겼다. 비틀스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구성된 4인조 밴드였다. 데뷔 직후부터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비틀스는 1964년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미국 진출 후 비틀스는 앨범 'Meet the Beatles!'(1964)부터 'Let It Be'(1970)까지 약 6년간 무려 14개 앨범
2011년 4월10일.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축령마을의 한 마늘밭에서 5만원짜리 현금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굴착기로 파헤쳐 나온 금액은 총 110억원가량이었다. 이 돈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던 충남 이모씨 형제가 벌어들인 '검은돈' 150억원의 일부였다. 이들의 매형 이모(당시 52세)씨 부부가 처남들의 돈을 받아 마늘밭에 숨겼다. 이 사건은 굴착기 기사 안씨(64)의 신고로 알려졌다. 애초 땅 주인의 부탁으로 마늘밭에서 소나무·매화나무 등을 옮기던 안씨는 이씨로부터 도둑으로 몰리자 "누명을 벗겠다"며 신고에 나섰다. 이씨는 처남 몰래 쓴 2억4000만원을 굴착기 기사에게 뒤집어씌우려다 경찰에 발각됐다. ━◇땅속에 묻혀 있던 어마어마한 돈, 출처는?━ 경찰의 추적 결과 돈뭉치의 정체는 땅 주인의 두 처남과 일당이 2008년 1월부터 09년 11월까지 불법 도박 사이트(스포츠토토)를 통해 벌어들인 범죄 수익이었다. 매형 이씨는 2009년 6월 처남의 부탁을 받은 이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