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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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파면됐다. 이 결정으로 2013년 취임한 박 전 대통령은 임기 5년을 못 채우고 국가 최고 통수권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임기 2년 차 터진 비선실세 논란…"우리나라 권력 1위 최순실"━박 전 대통령 권력 균열은 임기 2년 차였던 2014년 4월 16일에 터진 세월호 침몰에서 시작됐다. 당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하며 탑승객 476명 중 304명 사망했다. 국가 대응력은 엉망이었다. 지적이 이어졌고 사고 당시 7시간 행적이 묘연했던 박 전 대통령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은 숱한 의혹을 낳으며 박 전 대통령을 따라다녔다. 그런 가운데 같은 해 11월 이른바 '정윤회 인사 개입설'까지 터졌다. 박 전 대통령과 오랜 친분이 있던 정윤회씨가 인
1년 전인 2023년 3월 9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1년도 안 돼 경질된 클린스만 감독의 임기가 시작된 날이다. '재택근무' '미소천사' '해줘축구' 등 논란의 중심에 섰다가 끝내 불명예 경질된 클린스만 감독도 임기 첫날에는 한국 대표팀을 맡게 된 것에 대한 기대와 감사를 표했다. 누구도 3년 5개월의 동행을 의심하지 않았다. ━취임 기자회견 "아시안컵 우승이 목표" 자신했지만━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취임 기자회견은 이날 오후 경기도 파주 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렸다. 그는 "공격수 출신이라 공격 축구를 좋아한다. 1-0으로 승리하는 것보다 4-3으로 이기는 것을 선호한다"며 '공격 축구'를 향한 강한 소신을 밝혔다. 이어 "(감독직은) 배움의 자리기도 하다. 카타르 아시안컵까지 10달 정도 남았는데 빨리 배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0개월 단기 목표로 아시안컵 우승을 이루겠다. 중장기적 목표로는 월드컵 4강을 삼겠다. 높지만
28년 전인 1996년 3월 8일. 충남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자리에 참석한 신입생 A군은 술을 마신 뒤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사망했다. 구토하다 기도가 막혀 질식한 것이다. ━신입생 환영회 공포의 '사발주'…선배가 먼저 시범━당시 환영회가 시작되자 학과 학생회장이던 3학년 B씨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신입생들에게 술을 마시라고 강요했다. 고학년 선배들은 "큰 술잔이 필요하다"며 식당에 냉면 그릇까지 요구했다. 이들은 냉면 그릇에 소주를 가득 부어 이른바 '사발주'를 만들었다. 선배 C씨는 직접 시범을 보인다며 사발주를 한 번에 마시고 비워냈다. 신입생들은 선배가 먼저 사발주를 마신 데다, 학과 전통이라고 하니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군도 강제로 냉면 그릇에 담긴 술을 마셔야 했다. 그는 간신히 술을 마신 뒤 그릇을 비워냈다. 대학에 갓 입학해 음주 경험이 적은 신입생들에게 사발주는 버거웠다. 잠시 뒤 A군은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구토하기 시작하더니
2014년 3월 8일. 말레이시아 항공 MH370(B-777) 여객기가 쿠알라룸푸르에서 중국 베이징을 향해 이륙했다. 승객 227명과 승무원 12명을 태운 이 항공기는 오전 1시19분 조종사의 "굿나잇 말레이시아 370"이라는 교신을 끝으로 인도양으로 항로를 변경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MH370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경계를 지날 때 레이더상에서 사라졌다. 당국은 연료 고갈로 호주 서쪽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며 중국 및 호주와 공조해 3년에 걸친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거대한 기체와 탑승객 수백명 전원이 송두리째 사라진 사상 최악의 미스터리한 항공기 실종 사건이다. ━◇1800억 자금 들였지만…추락 장소·시간 모두 밝혀낸 바 없어━ 당초 MH370에는 약 7시간 반 정도를 비행할 수 있는 연료가 탑재됐다. 이에 지상 착륙이 아닌 바다 추락을 추측했다. 남부 태평양에서부터 광활한 인도양 해저를 샅샅이 뒤졌으나 동체도 찾지 못했다. 수색에는 미국
35년 전 오늘, 일본에서 4살짜리 남자아이가 단 20초 만에 실종됐다. 이름은 마츠오카 신야. 실종된 곳은 집에서 6~7시간 떨어진 친척집 근처다. 외가 친척들과 함께 아침 산책을 하다 아빠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감쪽같이 사라진 아이. 범인도, 목격자도 찾지 못한 이 사건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3대 미해결 어린이 실종사건으로 남아있다. ━"산책 더 하고 싶다"더니 20초 만에 사라져 ━사건의 시작은 신야 외할머니의 장례식이다. 실종되기 하루 전인 1989년 3월 6일 이바라키현에 살고 있던 마츠오카 신야의 가족은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도쿠시마현 코마츠시마시로 향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신야네 가족은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외가 친척집에서 그날 1박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신야가 실종되던 날 해가 밝았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 신야의 아빠는 자신의 아이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집 근처를 10여분 정도 산책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신야가 "조금
2006년 3월 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의 한 놀이기구에서 탑승객이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탑승객은 롯데월드 안전팀에서 근무하던 성모씨(20대·남)로 쉬는 날이었던 이날 휴식을 위해 놀이공원을 찾았다 변을 당했다. 놀이기구에 타기 전 성씨는 직장 동료와 함께 술을 마셨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첫 줄에 탑승했던 성씨는 놀이기구가 급하게 회전하는 구간에서 튕겨져 아래로 떨어졌다. 추락한 이후엔 석촌호수로 빠졌고 구조대가 25분 뒤 도착해 성씨를 건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지난 2003년 10월26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 롤러코스터는 제작하는데 총 330억여원이 들었으며 총 8명이 탑승할 수 있다. 최고 시속 72㎞·최고 높이 22m로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16~17m에서 급하강을 반복한다. ━한 명이라도 안전장치를 더 들여봤다면…원인은 '허술한 안전관리'━ 사고 직후 성씨가 탔던 놀이기구를 점검한 결과 롯데월드 측의 안전관리가 허술했던 것이 드러났다. 우
11년 전인 2013년 3월 5일. 복권을 위조해 당첨금을 수령한 혐의로 98세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런데 경찰은 100세 가까운 노인이 저지른 범행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위조된 복권이 정교하다는 점에 의심하기 시작했다. 또 남성은 노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계단을 빠르게 오르는 등 나이에 비해서는 꽤 건강한 모습이었다. 과거 유사 사건을 검색한 경찰은 남성이 신분을 속여 살아온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안모씨로 드러난 남성의 나이는 60세였다. 그는 어떻게 38세 더 많은 노인으로 신분을 세탁해 살 수 있었을까. ━노인 외모에 목사도, 법원도 깜빡 속았다…노령연금 등 2200만원 수령━안씨의 사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대였던 1970년대부터 복권 위조 범행으로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유사한 범행을 반복해 저지른 탓에 매번 경찰 수사선상에 올라 빠른 시간 내에 체포됐다. 안씨는 유가증권위조죄로 복역하다 2004년 출소했다. 그는 노숙 생활을 하며 주변
9년 전인 2015년 3월 5일 오전,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국대사가 괴한에게 흉기 습격을 당하는 초유의 테러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조찬 행사에 참석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 리퍼트 대사는 강연에 나설 예정이었다. 사건은 오전 7시50분쯤 발생했다. 반미 성향 활동가 김모씨가 테이블에 앉아 강연 준비 중이던 리퍼트 대사에게 다가가 흉기를 휘둘렀다. 김씨가 사용한 흉기는 전체 길이 25㎝ 과도였고, 이 피습으로 인해 리퍼트 대사는 오른쪽 뺨과 왼쪽 손목에 자상을 입었다. 김씨는 현장 관계자들에게 제압돼 종로경찰서로 압송됐다. 리퍼트 대사는 손수건으로 얼굴 부분을 지혈하며, 경찰 도움을 받아 순찰차를 타고 강북삼성병원으로 이동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인 주한미국대사가 우방인 한국에서 흉기 피습됐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안겼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리퍼트 대사에게 연락
1997년 3월3일 늦은 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의 다세대 주택 2층에서는 이날도 어김없이 강모씨 부부가 다투는 소리가 났다. 평소 아내 A씨와 자주 다투던 강씨(43)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A씨와 아들 B군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소리를 질렀다. 신문 판매사원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강씨가 어려웠던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고 그 분노를 자신의 가족에게 풀었던 것. 참다못한 A씨는 현관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고 강씨는 현관 옆에 있던 LPG(액화석유가스) 통을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아들 B군이 A씨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가면서 목격한 강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3월4일 새벽 1시 강씨는 20kg LPG 가스통에 연결된 호스를 펜치로 끊고 집 안에 분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강씨가 켠 라이터와 가스가 만나 큰 폭발음과 함께 3층짜리 다세대 주택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강씨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를 낼 뻔했다. 당시 MBC 보도에 따르면 이웃 주민은 강씨가 직전 해
2022년 3월 4일 오전 11시17분쯤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한 야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소방 당국에 접수됐다. 산불은 빠른 속도로 확산했고, 소방 당국은 약 30분 후인 오전 11시52분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한 뒤 북면 4개 마을 주민 등 3900여명을 대피시켰다. 화마는 소방·산림 당국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오후를 기점으로 산림청은 '산불 3단계'와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을 발령했다. 소방청도 전국 소방 동원령 2호를 발령해 대한민국의 소방력을 울진 산불에 집중했다. 역부족이었다. 산불은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가 강원 삼척시로 번졌다. 삼척 LNG 생산기지 인근까지 침범했고, 정부는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울진·삼척 산불은 약 열흘 동안 무자비하게 산림을 소실시켰다. 불길은 발생 10일 차인 3월 13일 돼서야 진압됐다. 이 산불은 무려 213시간 43분 동안 이어졌고, 이는 국내 산불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오래 지속
2014년 3월3일 새벽 3시. 서울 내발산동의 한 건물에서 중년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숨진 남성은 이 건물의 주인으로, 강서구 일대에 빌딩과 20여층짜리 호텔, 4층짜리 웨딩홀, 다세대 주택 등을 가진 재력가였다. 시체에서는 둔기에 맞은 듯한 외상이 발견됐다. 경찰은 원한 관계에 따른 범죄로 추정했지만, 용의자를 추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피해자가 생전 여러 송사에 휘말리는 등 원한 관계가 많았던 탓이다. 일각에서는 수사가 장기화될 전망도 나왔다. ━보름만에 특정한 용의자, 中으로 사라졌다━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하고 수사에 나선 것은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서였다. 그만큼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이었다. 범인은 현장에 지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다만 주변 가게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가 미제로 남을 뻔한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줬다. CCTV에는 복면을 쓰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30~40대 남성이 사건 전 범행 현장을 기웃대는 모습,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도주한 모습이 담겼다
일본제국주의는 1906년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조선통감부를 세웠다. 1910년 8월 주권의 상실과 함께, 조선총독부가 설치될 때까지 4년 6개월 동안 사실상 한국의 국정 전반을 장악했던 식민 통치 준비기구였다. 초대 통감은 추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로 최후를 맞이한 이토 히로부미. 일본에서 내각총리대신(현대의 총리격)을 역임한 이토는 1906년 3월 2일 조선을 지배하는 총독격인 초대 '조선통감'으로 부임한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누구?━ 이토는 야마구치현 쿠마게군 출생으로 일본 메이지유신을 이끈 인물 중 한명이다. 대일본제국 헌법 초안 작성, 현 일본 내각제 시행, 양원제를 포함한 의회제도 확립, 일본 민법 제정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일본제국의 제 1·5 ·7·10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총리로서는 도합 7년 6개월을 지냈다. 1885년 만 44세 2개월의 역대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고 마지막 총리를 지낸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