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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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18 건
3년 전인 2021년 7월 18일 오후 3시,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 집에 혼자 있던 15세 중학생 A군은 2층 창문으로 침입한 40대 남성 2명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뒤 목이 졸려 숨졌다. A군을 살해한 이들은 당시 48세였던 백광석과 그보다 두 살 어린 지인 김시남이었다. 백광석은 A군 모친의 전 남자친구였다. 백광석은 2018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A군과 그의 어머니, 자신의 친아들과 함께 살면서 사실상의 가족관계를 꾸리기도 했다. 범행 당일, 백광석은 오전 9시부터 A군이 있는 집 주변에서 대기했다. 백광석은 전 연인이 아침에 출근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 A군이 집에 혼자 있다는 걸 파악하고 6시간을 더 기다렸다. 오후 3시쯤 A군이 혼자 있는 집의 2층 다락방 창문이 열린 것을 본 백광석은 지인 김시남과 함께 창문을 통해 집 내부로 들어갔다. A군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일을 마치고 귀가한 A군의 어머니였다. 그는 밤 10시50분쯤 집에 돌아와 주검이 된 아들
2014년 7월17일 오전 10시54분께.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 수색 지원을 마친 소방헬기가 시속 400㎞의 속도로 광주 도심에 추락했다. 헬기에 타고 있던 소방관 5명은 모두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사고 현장은 광주시 광산구 장덕동 수완지구로, 헬기는 학교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도로로 떨어졌다. 사고 근처 버스정류장에 있던 여고생 한 명이 헬기 파편에 맞아 인근 병원에서 치료받긴 했으나 비교적 경상이었다. 그 외에 다른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자칫 대참사가 될 뻔했던 헬기 사고에 대해 입을 모아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륙 4분 만에 갑작스러운 추락, 왜?…대참사로 번질뻔했던 순간━ 사고 헬기에는 기장 정성철 소방경, 부기장 박인돈 소방위, 정비사 안병국 소방장, 구조대원 신영룡 소방교와 이은교 소방사가 타고 있었다. 사고 헬기는 추락 때까지 13년간 2644시간을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 소방방재청은 기체 결함 가능성을 대비해 유사 기종
1999년 7월 16일 오후 5시 20분쯤 전남 순천시 조례동 한 아파트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됐다. 파란만장했던 도주극이 2년 6개월(907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희대의 탈옥수로 불리는 신창원은 도주 중에도 숱한 화제를 뿌렸고 그의 검거는 세기말 분위기가 겹치며 '신창원 신드롬'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통풍구 통과를 위해 석 달 간 체중 20㎏ 감량━1997년 1월 20일 새벽 3시쯤 무기수 신창원이 탈옥했다. 교정 당국은 날이 밝아서야 신창원이 탈옥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침 점호에 신창원이 나오지 않아 감방을 살펴보니 천장의 통풍구가 뜯겨 있었다는 게 교도소 측 설명이다. 통풍구는 가로세로 30㎝에 불과했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친구 3명과 모의해 서울 주택가에서 강도 짓을 벌였다가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서울구치소를 거쳐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됐다가 5년 뒤인 1994년 11월 16일 부산교도소로 이
2023년 7월15일 오전 8시35분쯤. 강수로 불어난 미호강물이 임시제방을 넘어 충북 청주시의 궁평2지하차도로 들이닥쳤다. 지하차도는 물 6만톤이 순식간에 쏟아져 3분 만에 침수됐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지하차도는 흙탕물로 뒤덮였고, 뒤늦게 찾아온 피해자 가족들은 주저앉아 오열했다. 일부는 전화기를 붙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소방이 급하게 분당 4만5000톤 물을 퍼내는 양수기를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천의 물과 계속해서 내리는 빗물이 지하차도로 유입됐다. 흙탕물이어서 잠수부도 투입하지 못했다. 범람한 물살은 당시 지하차도를 건너려던 차량과 시내버스 등 17대를 덮쳤다. 이 사고로 11명이 다쳤고, 빠져나오지 못한 시민 14명은 숨졌다. 이날은 오송 참사가 발생한 날이었다. ━오송 참사는 인재…되짚어본 사고 전조 현상 3가지━ 오송 참사는 피해를 예상할 수 있는 전조 현상이 3개나 있었다. 우선 폭우로 인한 하천 범람 가능성이다. 지난해 초부터 엘니뇨(해수 온난
2013년 7월15일. 9살 여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소송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판사 박평균)는 "국가는 정씨에게 26억3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는 평온한 일상을 살다 4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를 당하고 가족마저 그릇된 낙인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을 겪게 된 정 씨의 손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고문·가혹행위한 뒤…경찰 "범행 자백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이 사건은 5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10월 강원도 시골에서 만홧가게를 운영하던 그는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 A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A양은 그해 9월27일 오후 7시쯤 춘천시 우두동의 한 논둑길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에는 성폭행을 당하
12년 전인 2012년 7월 14일 오전 10시30분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서 곰 농장을 운영하던 A씨는 사육장에서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관련 당국에 상황 전파 후 엽사들과 함께 탈출한 곰 2마리를 찾고자 수색에 나섰다. A씨 농장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2마리는 모두 6년생 암컷으로, 몸무게가 성인 남성과 비슷한 70㎏에 달했다. 곰 2마리 중 1마리의 동선은 빠르게 파악됐다. 이날 오전 11시쯤 농장 인근 야산 정상에서 한 주민이 돌아다니는 곰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곰은 사람을 보자 사육장 방향으로 도망갔다. 만약 곰이 주민을 공격했다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을 수도 있었다. 주민 제보를 받은 경찰은 20명의 엽사와 함께 야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사냥개도 10마리나 동원됐다. 이들은 2시간 넘게 수색을 벌였고, 결국 이날 오후 2시쯤 사육장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곰 1마리를 사살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20년 전인 2004년 7월 12일 오전 10시40분쯤 대전 유성구에 있는 대전교도소 17동 거실에서 40대 남성 수형자 김모씨가 교도관 A씨(7급 교위)를 쇠파이프로 마구 구타했다. 피해자 A씨는 뒷머리와 목 부분에 심한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뇌사 상태에 빠졌던 A씨는 결국 3일 뒤 병상에서 숨졌다. 가해자 김씨는 운동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A씨와 만나 면담을 진행하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1997년 9월 상해치사 등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아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그는 복역 중 다른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징역 2년이 추가됐다. 김씨는 평소에도 다른 재소자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교도관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둔기 폭행을 저지른 김씨는 대전교도소의 사건 조사에서 묵비권 행사로 일관했다. 현장 CCTV를 확인한 교도소 측은 "면담부를 정리하던 고인을 (뒤에서) 김씨가 갑자기 쇠파이프
스토킹은 위험한 범죄다. 지금에서야 당연한 명제가 됐지만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스토킹 범죄는 일부 짝사랑 남의 집착 쯤으로 여겨져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경범죄 취급을 했다. 그러나 한 남성이 직장 동료를 수년간 스토킹하다 계획적으로 살해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은 180도 달라졌다. 사법부도 악랄했던 스토킹 범죄자에게 처음으로 법정 최고형 수준인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사회에 중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동료 스토킹하다 처벌 받을 위기에 '앙심'…2년 전 신당역 살인사건 발생━1년 전 이날인 2023년 7월11일, 서울고법 형사12-2부는 신당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을 무기징역형에 처했다. 이전까지 스토킹 범죄는 가벼운 집행유예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졌었다. 이 묵직한 선고는 스토킹 범죄를 가볍게 인식하던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기 충분했다. 신당역 살인사건은 전주환이 2022년 9월14일 오후9시경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A씨를
2018년 7월 10일 부산 강서구 김해공항 2층 국제선 청사 진입로에서 항공사 직원 A씨가 몰던 BMW가 택시에서 짐을 내리던 택시기사 B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B씨는 머리를 크게 다치고 하반신이 골절됐다. 의식불명에 빠지기도 했으나 다행히 보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A씨에게 금고 1년을 선고했다. A씨가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등 사태를 수습할 노력을 보인 점을 고려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B씨가 사고 후 8개월이 흘렀을 시점까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누리꾼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분노했다. ━40㎞/h 도로서 131㎞/h '질주'…가해자는 항공사 직원━ A씨는 2018년 7월 10일 오후 12시 50분쯤 지인들과 함께 BMW를 탄 채 국제선 청사 진입로를 달리다 B씨를 들이받았다. 김해국제공항 국제천 청사 2층 입구 앞 진입도로는 이용 승객이 많고 택시나 승용차들이 상시 정차해 있어 주행속도가 40㎞/h로 제한
2008년 7월 8일 오후 2시 20분 무렵. 한 70대 노부부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 2차선 도로 옆 갈대숲에서 살구나무를 발견한다. 살구를 따려고 허리춤이 넘도록 자란 갈대를 헤치며 나가던 노부부는 악취가 나는 한 물체를 발견했다. 무언지 살피던 이들은 이내 크게 놀라고 말았다. 물체의 정체는 사람 다리였다. 이른바 '흥해 토막살인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다. ━흥해 갈대숲 곳곳에서 발견된 토막 시체━경찰은 약 200여명을 동원해 다리가 발견된 곳을 중심으로 수색에 들어갔고 약 2시간 만에 시신 오른팔을 찾아냈다. 당일 오후 6시쯤에는 왼팔과 왼쪽 다리를 찾아냈다. 발견된 사체 상태는 참혹했다. 부패가 상당히 진행됐고 들쥐와 같은 야생동물에 의해 훼손된 흔적이 있었다. 게다가 오른손 손가락 끝은 모두 예리한 물체로 잘린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샅샅이 수색해도 머리와 몸은 발견되지 않았고 얼굴 없는 사체에 포항 일대가 크게 술렁였다. 머리와 몸통이 발견된 것은 첫 신고
1989년 7월 7일, 경기도 화성에 살던 당시 8세 김현정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갑작스레 사라진 현정양은 30년이 지난 뒤에서야 실종이 아닌 사망으로 밝혀졌다.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현정양 실종 사건은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발생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뒤늦은 자백으로 진실이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현정양 시체를 발견하고도 이 사실을 숨겼다. 심지어 살인 사건을 실종 사건으로 바꾸기 위해 보고서와 진술서까지 조작했고,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은 유가족 몰래 버린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수사 요청에도 단순 실종사건 종결━현정양은 1989년 7월 7일 오후 12시 30분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부모는 2번이나 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가출로 봤다. 하지만 현정양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가족은 현정양이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30년 동안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았으나
2018년 7월 6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대규모 지하철 화학 테러 사건을 일으켜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쓰모토 지즈오)에 대한 교수형이 진행됐다. 약 1만명의 신도를 모았던 그는 자신의 유해를 넷째 딸에게 넘겨달라는 말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신도들 홀린 아사하라 쇼코의 '공중부양'━ 아사하라 쇼코는 1955년 태어났다.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지만 전맹은 아니었다. 1977년부터 요가와 침술에 흥미를 느낀 그는 수련을 시작했고, 침술원을 개원했으나 금방 그만뒀다. 아사하라 쇼코가 1만명에 달하는 옴진리교 신도들을 홀릴 수 있던 이유는 그가 '공중 부양'에 성공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사실 그가 공중에 뜬 것은 근력과 유연성 때문이었으나, 그의 공중 부양 성공 사진은 많은 이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는 자신이 시바신의 환영을 보았다고도 주장하며 스스로를 메시아적 존재라고 확신하고 1987년 사이비 종교 단체인 옴진리교를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