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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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7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14년 10월 7일, 서울 대표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단지에 근무하는 50대 경비원 이 모 씨(당시 53세)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한 달 후 결국 사망했다. 이 씨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입주민 차 안에서 몸에 시너 뿌린 뒤 불붙여━ 이 씨는 이날 오전 9시30분께 강남구 압구정동 S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세워진 그랜저 차 안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입주민들이 자신에게 맡긴 차량 열쇠 중 하나를 골라 그랜저 차량에 탑승, 자기 몸에 시너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분신 직후 한 입주민이 차량에 불이 난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고, 동시에 다른 경비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와 이 씨 몸에 붙은 불을 껐다. 이 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씨는 사건
"원 모어 씽(One more thing)" 13년 전인 2011년 10월 5일(현지 시각) 애플 신제품 발표 행사에서 모두를 환호케 했던 이 한마디의 시작이었던 애플 창업자이자 '아이폰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Steven Jobs)가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원 모어 씽'은 '하나만 더'를 의미한다. 1999년 잡스가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애플의 상징과도 같은 문구다. 생전 잡스는 제품 발표 행사 말미에 마무리 발언 후 행사가 끝난 것처럼 행동하다 돌아서며 늘 이 말을 외치곤 했다. 이런 그가 병마와 다투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으면서다. 조기 진단받았지만 잡스는 대체의학으로 9개월이나 수술을 거부했다. 그러다 건강이 악화하자 2004년에서야 종양 제거 수술을 했다. 하지만 암이 재발한 데 이어 간까지 전이됐고 간이식 수술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잡스는 2011년 8월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결정을 내렸고 그로부터 3개월도
2007년 10월 4일 북한 평양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커다란 테이블에 서로 마주 앉았다. 서명을 마친 두 사람은 웃으며 악수했고 맞잡은 두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상호존중과 신뢰' '평화' '협력'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위 세 단어가 담긴 '10.4 남북공동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했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로 약 7년이 흐른 뒤다. ━"금단의 선 넘는다"…돌아보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이산가족 상봉 △장관급 회담 △경제협력 등으로 발전해나가는 듯했으나 크고 작은 시련을 겪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고 200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또다시 탈퇴했다. 2006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정치적 긴장 상태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된
1988년 9월 29일.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1988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이날 경기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당시 세계 최강을 꼽히던 소련(소비에트연방)을 21-19로 꺾으며 짜릿한 재역전승을 거뒀다. ━여자 핸드볼, 올림픽 첫 출전에 은메달…우승 위해 500일 스파르타 훈련━비인기 종목이었던 한국 여자 핸드볼이 무관심의 설움과 역경을 딛고 이뤄낸 결과였다.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것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였다. 그러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당시 미국, 일본 등과 함께 한국 역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기로 방침을 정했고, 이에 한국 여자 핸드볼팀의 올림픽 첫 출전도 좌절됐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이후 4년간 갈고 닦은 실력으로 1984년 마침내 출전한 로스앤젤레스(L
'소록도 천사', '작은 할매'로 불리는 마가렛 피사렉 수녀가 영면에 든 지 1년이 지났다. 그는 지난해 9월29일 선종했다. 아무 연고가 없는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40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폴란드 태생, 오스트리아 국적의 인물이다. 마가렛은 떠났지만 한센인들을 사랑으로 돌본 고귀한 섬김의 흔적은 소록도 곳곳에 남았다. 한센인들은 지금도 그를 '할매 천사'로 부르며 그리워한다. ━40년간 한센인 곁에 '작은 할매'로━ 마가렛은 1935년 폴란트에서 태어났다. 1955년 오스트리아에서 국립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이에 앞선 1954년 천주교 그리스도왕 시녀회 소속으로 종신서원을 했다.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한국을 찾은 건 마가렛이 스물네살이던 1959년이다. 간호사 신분으로 1966년부터 구호단체 다미안재단을 통해 소록도에 파견됐다. 공식 근무 기간은 5년이었지만 그는 이후에도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소록도에 남았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한센인들의 곁에 있었다. 소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석방을 이틀 남기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가 사망했다. 사인은 심한 구타와 영양실조 등으로 인한 '갑상선 기능저하증'으로 추정된다.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자신들의 만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일제는 유관순의 시신 인도를 거부하며 버텼다. 하지만 이화학당의 교장 월터가 '일제의 만행을 세계 신문에 알리겠다'라고 항의하자 꼬리를 내렸다. 일제는 자국에 대한 국제 여론 악화를 경계했다. 1919년 4월 15일에 자행한 '제암리 학살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져 곤욕을 겪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해외 언론에 알리지 않을 것 △조용히 장례를 치를 것 등 조건으로 시신을 인도했다. 1920년 10월 12일. 유관순의 시신이 모교 이화학당으로 돌아오자 학교는 통곡 소리로 가득했다. ━3남 2녀 중 막내…선교사 추천으로 명문 이화학당 입학 ━ 유관순은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3남 2녀 중 막내딸로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만끽하러 산을 찾기 좋은 가을날이다. 10년 전 9월27일, 일본에서도 많은 행락객이 일본의 '지붕'으로 불리는 명산, '온타케(御嶽山) 산'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7년 간 잠잠했던 온타케산이 갑자기 분화하면서 대규모 사상자를 낸 '2014년 온타케산 분화 사건'이다. ━일본의 '알프스', '지붕'으로 불리는 명산…7년만에 '펑'━ 2014년 그날 아침 11시52분, 일본의 '지붕'으로 불리던 명산, 온타케산이 갑자기 굉음과 함께 분화하기 시작했다. 활화산이지만 1979년부터 1980년 초까지는 소규모 분화하는 데 그쳤다. 이후에도 조금씩 수증기 분화가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때의 분화는 2007년 3월 소규모 분화 이후 7년 만이었다. 모두가 방심했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 명산을 찾았던 이들은 고스란히 봉변을 당했다. 이 산은 초보자도 등반하기 좋은 일본 명산으로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2년 9월 26일, 대구 와룡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갔던 한 남성이 사람 유골을 발견했다. 발견된 유골은 11년 6개월 전 실종된 5명의 아이, 이른바 '개구리 소년'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 아이들은 '도롱뇽알을 찾으러 간다'는 말을 남긴 채 와룡산에서 사라졌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었지만 아이들의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영구 미제사건으로 기록됐던 시점이었다. 유골이 발견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거의 사라졌던 '개구리 소년' 사건의 전말이 하나둘씩 밝혀졌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경찰의 주장이 있었으나 부검 결과, 타살이라는 추정이 내려졌으며 범행도구는 용접 망치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도룡뇽 알 찾으러 간다" 아이들의 마지막 말━ 사건이 발생한 날은 1991년 3월 26일로 지방선거일이어서 임시공휴일이었다. 아침 8시께 성서국민학교(현 대구성서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우철원(6학년), 조호연(5학년), 김영규(4학년), 박찬인(3학년)
2017년 9월 25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3년 전 필리핀에서 현지인들에게 돈을 주고 60대 부동산 임대·투자업자 허모씨를 살해하도록 청부한 혐의(살인 교사)로 한국인 신모씨(구속 당시 43세)를 구속했다. 해외에서 킬러를 고용해 한국인을 피살한 교사범이 구속된 첫 사건이었다. 신씨는 2014년 2월 18일 오후 7시40분쯤 발생한 살인 사건을 교사한 혐의를 받았다. 사망한 허씨는 필리핀 팜팡가주 앙헬레스시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쏜 45구경 총알 6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허씨는 일행 3명과 함께 호텔 인근 식당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당시 상황은 주변 CC(폐쇄회로)TV에 고스란히 담겼고,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빌린 5억원 도박으로 탕진…돈 못 갚게 되자 살인 청부━허씨는 2012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신씨의 제안으로 5박 6일 필리핀 관광을 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날 호텔 인근 식당으로 허씨를 불러낸 것도 신씨
2015년 9월 24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이슬람 최대 연중행사이자 성지순례인 '하지(Hajj)' 도중 사람들이 한 장소에 과도하게 밀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사우디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 사고로 769명이 사망했고 934명이 다쳤다. 그러나 AP 통신 등 일각에서는 사망자가 정부 발표보다 약 3배 더 많은 2000명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해당 집계만 놓고 보면 1990년 메카 터널 압사사고(사망자 1426명) 이래 발생한 최악의 사고다. ━"넘어지고 깔리고 반복"…메카의 '참상'━하지는 이슬람력 12월 7~12일에 진행되는데 우리 시간으로는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는 닷새간이다. 무슬림 5대 의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전 세계 신도들은 일생의 한 번쯤 성지순례를 위해 해당 기간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방문한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까지 사우디에는 총 240만명 이상의 순례객이 방문해왔다.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만큼 역사적
판다하면 '푸공주(푸바오+공주)'만 기억하는가. 사실 푸바오 이전에 한국에 리리와 밍밍이 있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번식에 성공, 사랑을 듬뿍 받은 푸바오 전에 한국을 가장 먼저 찾은 판다는 리리와 밍밍이다. 이들 덕분에 푸바오가 준비된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를 만날 수 있었고 국내에서 크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리리와 밍밍은 1994년 대한민국에 온 최초의 자이언트 판다다. 4년간 한국에서 사육되다가 1996년 2월 중국으로 돌아간 부부(?) 판다다. ━ 1994년 9월, 국빈 대우 받으면서 한국에 발 내디딘 '리리'와 '밍밍' ━자이언트 판다인 리리와 밍밍은 1994년 9월23일, 중국 판다 외교의 일환으로 한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희귀종인 판다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공항은 북새통을 이뤘다. 판다 한 쌍은 '한중 수교 대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국빈급 대우를 받으면서 입국했다. 판다를 마중 나온 환영인파가 태극기를 흔들었고, 판다 전용 차량이 마중 나왔다. 용인 자연농원(현재 에
1983년 9월22일 오후 9시33분쯤 대구 중구 삼덕동 미국 문화원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미국 문화원 건물이 파손된 것은 물론이고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도 있었다.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0)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2)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방 제보자의 안타까운 죽음…"용의자는 경북대 학생들?"━ 사건 당일 오후 9시쯤 영남고등학교 1학년 허병철군은 방과 후 미국문화원 인근을 지나다 문화원 정문 앞에 놓인 가방 2개를 봤다. 이를 수상히 여긴 허군은 상대적으로 작은 가방을 들고 가까운 거리에 있던 경찰서로 향했다. 김철호 순경을 만난 허군은 미국문화원 앞에 다른 가방이 또 있음을 알렸고 두 사람은 문화원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9시33분 허군은 김순경에게 "바로 이 가방이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펑'하는 강력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허병철군은 현장에서 즉사, 김철호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