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총 996 건
2016년 1월 23일 자정께. 결혼 25년 차 남편 박씨(당시 49세)는 "드라이브나 가자"는 부인 강씨(당시 45세)의 권유에 따라 한밤중 도로를 달렸다. 인적이 드문 비포장도로 위에 멈춰 선 차량에서 아내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라"고 말했고 남편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난데없이 1톤 화물트럭이 달려들었다. 남편은 그대로 치어 숨졌고 차량은 달아났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보였지만 이는 뺑소니 사건으로 위장된 경기 시흥 남편 청부 살해 사건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수십미터 떨어진 상점 주인이 신고…정작 아내는 "못 들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 수십미터 거리에 위치한 상점 주인이 "늦은 밤 '꽝' 소리에 놀라서 나왔다. 뺑소니 교통사고 같다"라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 신고로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박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얼마 후 숨졌다. 그러나 상점 주인의 말과 달리 정작 사고 현장 3m 부근의 차 안에 있던 아내 강씨는
"야 그거 되지도 않는 얘기를 하냐. JP는 모르지만 YS나 DJ가 민정당에 들어오겠나?" -노태우 발언 회상(당시 대통령비서실 박철언 정책보좌관 증언) 노태우의 짐작은 반쯤 기우였다. 1990년 1월22일,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발표했다. 민주운동가였던 김영삼이 적과 손을 잡는 셈이었다. 그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노태우가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는 불참했다.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가 불편하다고 바꾸려 하면 안 된다. 당신도 불행해지고 나라도 불행해지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았다. '1노 3김'(노태우·김대중·김영삼·김종필) 4자 구도가 순식간에 '호남·비호남' 구도로 단순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1988년 13대 총선으로 탄생한 여소야대 정국은 이렇듯 3당 합당 선언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날이 일요일이거든. 일요일은 다 놀거든. 자본주의의 약점은 그거 하나예요. 그걸 김일성이 노린 거예요." -김신조씨 회상 1968년 1월21일 일요일 저녁 7시쯤, 코트 차림을 한 남성 31명이 서울 시내에 진입했다. 코트 안쪽에는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숨겼다. 목적지는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사살 지시를 받고 남파된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이었다. 그중 한명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으로도 불리는 1·21 사태는 중무장한 북한 특수부대 요원 31명이 당시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부근까지 진입한 사건이다. 시내에서 벌어진 총격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코트 차림 남성 31명…순찰 돌던 경찰서장에 발견━청와대로 향하던 이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서대문경찰서장 이각현 총경이었다. 이 총경은 밤 9시55분쯤 지프차를 타고 관내 순찰을 하고 있었다. 종로구 청운동 세검정고개에서 이동하는 남성 31명을 발견했다. 이 총경은 이들의 복장과 걸음걸이, 태도를 보고 '괴한'이라 직감했다.
"1차 교전 이후 해적은 석해균 선장에게 밥을 주지 않았습니다. 소말리아로 가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조리장 법정 증언 중 2011년 1월21일 4시58분(현지시간) '아덴만 여명 작전' 명을 받은 청해부대 소속 UDT 대원들이 다시금 고속정에 올랐다. 3일 전 벌어진 1차 교전에 이어 작전을 마무리 짓는 게 목표였다.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에 침투한 대원들은 4시간58분에 걸친 2차 교전 끝에 피랍선원 21명을 전원 구출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한국 해군이 해외에서 수행한 최초의 인질 구조작전으로 기록됐다. 해적 8명을 사살, 5명을 생포했다. 당시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부적절하게 대응해 질책받았던 군이 자신감을 되찾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외신도 이를 "한국 특수부대의 드라마틱한 구출 작전"으로 평가하며 "한국군의 사기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덴만 해역에서 만난 해적떼━2011년 1월15일 아라비아해 아덴만 해역에서 대한민국 화물선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1999년 1월19일 오후 4시10분. 강원도 삼척의 한 비포장길에서 느닷없는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신혼부부 김모(28)씨와 장모(27)씨가 탄 차량으로 정확히 날아가 꽂혔다. 부부는 총격 한 시간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과연 부부에게 이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총격전으로 번진 보복운전━ 사실혼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형편이 어려워 혼인을 미루다 7년 만인 그해 1월17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이틀 뒤인 19일 처가가 있는 강원도로 신혼 여행을 떠났고, 여행 기분을 내고 싶어 그랜저 차량까지 빌린 것으로 당시 언론 보도에는 나온다. 부부는 이날 오후 3시쯤 삼척 시내로 들어섰다. 외삼촌에게 전화해 "곧 찾아뵙겠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는 산길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몸엔 수십발의 총탄이 박혀 있었고,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범인은 부부의 차량을 앞질러 가던 액센트 탑승자 정형구(당시 36세)였다. 강도·강간 등 전과 6범인 정형
1999년 1월20일 새벽 3시쯤, 무기수 신창원이 탈옥했다. 신창원은 1989년 강도치사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교정 당국은 날이 밝아서야 신창원이 탈옥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침 점호에 신창원이 나오지 않아 감방을 살펴보니 천장의 통풍구가 뜯겨 있었다는 게 교도소 측의 설명이다. 통풍구는 가로세로 30㎝에 불과했다. ━쇠창살 탈옥 준비…석달간 체중 20㎏ 감량━ 신창원은 1967년 5월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부친한테 가정폭력을 당한 그는 가출과 비행을 반복했다. 만 15세였던 1982년부터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며 점점 악마로 변해갔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친구 3명과 모의해 서울 주택가에서 강도 짓을 벌였다. 공범 1명이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해 강도치사로 재판에 넘겨졌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신창원은 서울구치소를 거쳐 흉악범과 문제수 등을 수용하는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됐다. 5년간 수감 생활을 무난하게
2002년 1월 18일. 당시 톱스타 반열에 있던 가수 유승준이 돌연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입대가 석 달 남은 상황에서 그의 병역 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이중국적자임에도 병역 의무를 다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그였기에 대중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은 더욱 컸다. 병역기피 대명사 '스티브 유'의 시작이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그는 22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군 면제자였다 갑자기 병역의무자 된 유승준━ 유승준은 1990년대 말 혜성처럼 나타나 잇따라 히트곡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솔로 아이돌 가수로 자리 잡았다. 이때만 해도 그는 병역문제에서 자유로웠다. 당시 병역법 시행령 제134조 제8항 제2호엔 "1년 이상 국내에서 체재하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병역면제 처분을 취소하고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따라서 국내에서 1년 이상 머물지 않고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해 꾸준히
모두가 잠든 시각인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효고현 남부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효고현 남부 지진, 한신·아와지 대지진 또는 고베 대지진(이하 고베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 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6300여명이 사망하고 1400억달러(한화 약 186조원)의 피해를 냈다. ━유독 극심한 피해…이유는?━ 고베 대지진은 일본 지진 사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강력했던 규모 7.3, 진도 7의 대지진이었다. 대한민국에는 고베 대지진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에서는 오사카와 교토까지 영향을 미쳐서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베 대지진은 일본 내에서는 최초로 대도시 직하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에서 1949년 진도7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최대 진도7이 기록됐다. 지진의 진원은 롯코-아와지섬 단층대의 일부인 노지마 단층 인근 지역이며, 지진으로 단층이 큰 폭으로 융기해 지표까지 단층
21년 전인 2003년 1월 16일 오전 10시40분쯤(미국 동부 표준시 기준) 미국 플로리다주 메리트 섬에 위치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컬럼비아호가 이륙했다. 컬럼비아호 발사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앞서 27번이나 임무 수행 후 무사히 귀환했던 이 우주왕복선은 익숙한 듯 우주를 향해 나아갔다. 컬럼비아호는 약 8분30초 만에 계획된 궤도에 도달했고, 7명의 승무원은 곧바로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우주비행사들과 지구의 NASA 관계자 모두, 베테랑 우주왕복선인 컬럼비아호가 폭발할 것이란 걸 알지 못했다. 컬럼비아호는 우주에서 미세중력 연구에 돌입했다. 보름 동안 여러 실험을 마친 컬럼비아호 승무원들은 가족이 있는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했다. 2003년 2월 1일 오전 8시20분쯤 승무원 7명은 우주복을 다시 입고 귀환 임무에 나섰다. 인도양 상공에서 2분38초 동안 엔진을 점화한 컬럼비아호는 지구에 착륙하고자 대기권에 진입했다. 이후 컬럼비아호는
2009년 1월 15일. 고요하던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승객 150명, 승무원 5명을 태운 비행기가 불시착했다. 엔진이 모두 멈춘 상태였기에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모두 무사했다. '허드슨강의 기적'이었다. 구름이 거의 없는 날씨였던 이날 오후 3시25분쯤, US 에어웨이 1549 편은 미국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을 출발해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더글러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문제는 이륙 2분 만에 발생했다. 859m 상공을 날던 비행기가 갑자기 날아든 거위 떼에 부딪쳤고, 이 충돌로 비행기 엔진 2개는 동시에 멈춰버렸다.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엔진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연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엔진이 모두 멈춰 동력을 잃은 비행기는 천천히 추락하고 있었다. 이 비행기 기장은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체슬리 설렌버거(당시 57세)로, 총 비행 시간만 1만9663시간에 달하는 베테랑이었다. 기체에 문제가 생기자 설렌버거 기장은 이륙했던 라구아디아 공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 당시 부장판사에게 이른바 '석궁 테러'를 가했다. 당시 박 부장판사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아파트 경비원과 박 부장판사의 운전기사가 달려와서 김 전 교수를 제압했다. 박 부장판사는 옷을 갈아입은 후 119 구조대의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러나 김 전 교수는 충분한 증거들로 유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음에도 "개판 같은 재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문제 오류 지적했다가 재임용 거부당해"━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를 거쳐 미시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전 교수는 1991년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1993년 수학과 조교수로 재임용됐으나, 1995년 10월 부교수 승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김 전 교수는 자신이 1995년 1월 본고사에 출제된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
"남영동에서 시나이(사나이)가 깨졌습니다." "보따리(조작 사건) 하나 터진 것 개지고 소란 떨 것 있네" - 영화 1987 中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1964~1987)이 숨졌다. 그는 전날 밤 경찰에 불법 연행돼 폭행과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학내 서클 '대학문화연구회'에서 알게 된 선배 박종운(사회학과 81학번)과 친하게 지냈다는 것. 박종운은 당시 1984년 결성된 '민주화추진위원회'에 가담한 혐의로 수배돼 은거 중이었다. 경찰은 박종철을 고문해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박종철은 박종운의 소재와 행방을 끝까지 함구했다. 경찰은 박종철을 물이 가득 찬 욕조에 처박았다. 10시간 동안 물고문과 전기 고문을 반복했다. 박종철이 갑자기 숨을 안 쉬자 중앙대학교병원 내과 전문의 오연상을 불러 심폐소생술을 시켰지만, 박종철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경찰은 박종철의 죽음을 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