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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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1951년 1월4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텅 비었다. 옹기종기 모여살던 가족들은 황급하게 서울을 빠져나오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하루아침에 생이별하면서 찾지 못한 '금순이' 생각에 눈물로 살아간 이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다. 6·25전쟁(한국전쟁)이 한창이던 73년 전 오늘, '1·4후퇴'를 피하지 못하면서다. 한국군과 유엔군이 중국공산군의 개입으로 서울에서 퇴각한 사건을 가리킨다. 정부가 장악된 서울을 떠나 저멀리 부산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수많은 난민과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1·4후퇴 전후 뺏고 뺏긴 수도…결국 유일한 분단국가로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됐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순식간에 남하했다. 이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앞세운 유엔군이 반격에 나섰다. 낙동강에 방어선을 치고 남진을 막은 데 이어 그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
지구본을 보면 러시아 동쪽 끝은 미국령 알래스카와 지척이다. 지구 전체를 군사 작전 지역으로 간주하는 미국 입장에서 러시아를 직접 견제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동으로는 미국, 서로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둔 러시아로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구도다. 1867년 오늘,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단돈 720만달러(약 93억원)에 팔았다. 1헥타르(㏊)당 불과 5센트로 환산한 금액이다. 단순히 지도만 놓고 보면 러시아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땐 사정이 달랐다. 러시아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의 세 대륙에 광활한 영토를 소유했지만, 북아메리카의 알래스카까지 통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로 옆에 적대국인 영국령 캐나다가, 남쪽에는 멕시코 땅 절반을 빼앗은 미국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는 크림전쟁(1854~56)에서 졌다. 아사 위기에 빠진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계륵에 불과했던 얼음 땅 알래스카를 경쟁입찰 매물로
1996년 1월1일, 가요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미성에 앳된 얼굴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가수 서지원이 하늘의 별이 되면서다. 늘 밝은 모습이었던 그가 19세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유명을 달리면서 충격은 더욱 컸다. 생전 1집 앨범만 발매했을 뿐인데도 대중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데뷔하자마자 뜬 10대 가수, 예능까지 섭렵━ 서지원은 어린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 KBS 어린이합창단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이주 후에도 앤젤스합창단 활동을 하며 노래를 계속 해왔다. 미국에서는 갭, 리바이스 등 의류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199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국 음반사 주최 공개 오디션에서 1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된 서지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수 데뷔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지원은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았다. 당시로써는 10대 가수가 드물었는데 앳돼보이는 꽃미남 외모와 맑은 목소리로 또래 팬
2000년 12월 31일 아침.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의 한 주택에서 미야자와 미키오(당시 44)와 그의 부인 야스코(41), 8살 딸 니이나와 6살 아들 레이가 모두 처참한 시체로 발견됐다. 범인은 잔혹한 범행 후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고 화장실에서 대변을 본 뒤 물도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 집에서 잠을 자고 인터넷까지 사용했지만 23년이 지난 현재까지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다. 현지에서는 범인이 한국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처참했던 사건 현장…칼 무뎌지자 주방에서 새 칼 찾아와 또 범행━ 세타가야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은 잔혹한 범행 현장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가장 미키오는 머리부터 다리까지 칼로 무참하게 난도질당했다. 부인 야스코와 딸은 얼굴과 목 등 상반신을 중심으로 수십 번이나 칼에 찔렸다. 특히 부인은 골절상을 비롯해 얼굴 부근을 칼로 파낸 듯한 깊은 상처가 나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층 침실에서 발견된 아들은 목을 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
1997년 12월 30일. 법무부는 사형을 확정받은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집행된 세 번째이자 우리나라의 마지막 사형집행이었다. 이날을 끝으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2007년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제도만 있을 뿐 10년 이상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다. 현재 남아있는 사형수 59명은 여전히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사형 집행 흉악범 23명, 형장의 이슬로━26년 전 전국 여러 교도소에서 교수형으로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들은 모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범들이다. 도박 빚을 이유로 아버지와 동생을 비롯해 5명을 독살한 김선자, 150여차례 강도질을 벌이고 2명을 살해한 태규식, 9살 여아를 강간하고 살해한 임풍식 등이다. 또 1991년 10월 대구 나이트클럽에 불을 질러 16명을 숨지게 한 김정수, 시각장애를 가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여의도광장을 차로 질
2003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여동에 거주 중인 한 남성이 아내가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자 아파트 복도 작은 창 사이로 아내의 핸드백을 꺼내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처참한 광경을 맞이했다. 아내는 목을 맨 뒤 쓰러져있었고 3살 아들과 10개월 딸은 얼굴에 무언가 씌워진 채 숨져 있었다. 밀실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이었다. ━◇아내와 어린 자녀들 모두 살해당해, 밀실에서 벌어진 사건 범인은?━남편은 아내 A씨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자 평소 아내와 친하게 지내던 동창생 B씨에게 연락했다. B씨는 남편과 대화 중 복도 쪽 작은 방의 창문이 잠기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A씨의 핸드백을 꺼내 열쇠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A씨는 얼굴에 치마를 덮어쓰고 목에 올가미가 조여진 채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3살 아들은 보자기가 목에 둘러싸인 채, 10개월 된 딸은 얼굴에 비닐봉지가 씌워진 채 숨져 있었다. A씨의 유
경찰: 긴급 신고 112입니다. 피해자: 괴한이 와서 협박하길래 제가 (괴한을) 밀쳤는데 총 같은 것을 쏴 가지고... 경찰: 총이요? 어떤 총이요? 피해자: 권총 같은 거였는데... 저 근데... 빨리 병원에 가야 할 것 같거든요. 2015년 크리스마스 날 밤 11시 34분.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노상에서 차를 대 놓고 차 안에서 여자친구와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마스크를 쓴 범인 차량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와 피해자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범인은 금품을 내놓으라거나 어디로 향하라는 요구사항 없이 "이건 진짜 권총"이라는 말로 피해자를 계속 위협했다. 피해자는 범인이 알 수 없는 말로 협박을 계속하자 범인이 가진 총이 모형총이라고 생각, 범인을 밀쳤다. 몸싸움이 이어지던 중 범인은 피해자를 향해 총을 쐈고 피해자는 그렇게 오른쪽 팔에 상처를 입게 됐다. 총을 쏜 범인은 그대로 차에서 내려 도망갔다. 범인이 달아나는 걸 본
1988년 12월24일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제12회 대학가요제는 단 한 팀의 무대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당시 사회자를 맡은 이택림은 "본선 경연에서 마지막 한 팀. 참가번호 16번 서울 대표 그룹사운드 '무한궤도'"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무대에 오른 '무한궤도'의 리더는 스무살을 갓 넘긴 서강대 철학과 2학년생 신해철이었다. 흰 남방 위 아이보리색 니트 조끼를 청바지에 잘 넣어 입은 말쑥한 모습이었다. 차림새와 달리 강렬한 전주가 시작되자 관객의 함성이 쏟아졌다. '마왕' 신해철의 화려한 데뷔였다. ━전주 흘러나오자…"16번, 대상감이다"━본선 경연 무대를 앞두고 대학가요제 참가자 인터뷰를 맡은 김은주 전 MBC 아나운서는 신해철에게 "이번 참가 팀 중 가장 뒤에 하는데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물었다. 그러자 신해철은 "다른 생각 특별히 한 건 없고요. 빨리 집에 가서 엄마 얼굴 보고 싶다는 생각했다"며 여유로운 농담을 건넸다. "다들 미남인데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에도 "절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불을 돌파했습니다." 1977년 12월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떨리는 목소리가 생중계됐다. 나라가 들썩였다.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한 1962년 수출액 5000만달러에서 시작해 2년만인 1964년 1억달러를 달성하고 또 6년 뒤인 1970년 10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로부터 7년, 경제개발계획 초기 기준 15년만에 1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 숫자로 나타나자 온 나라는 흥분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말했다. "이 기쁨과 보람은 결코 기적이 아니요, 국민 여러분의 고귀한 땀과 불굴의 집념이 낳은 값진 소산이며, 일하고 또 일하면서 살아 온 우리 세대의 땀에 젖은 발자취로 빛날 것입니다." 국가적 경사인 동시에 인간 박정희 개인에게도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이라는 정부 구호가 공수표가 아닌 게 돼서다. 수출과 1인당 소
6년 전인 2017년 12월 22일.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고등학생 A양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김도룡(현재 46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사건 발생 16년 만으로, 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A양 시신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가 검출됐지만, 경찰은 끝내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장기 미제로 남을 뻔했던 이 사건은 2012년 DNA와 일치하는 김도룡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는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집에서 16k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사건은 '미궁'━사건은 2001년 2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에 살던 A양(당시 18세)은 개학을 하루 앞둔 당일 새벽 외출했다고 한다. 그는 14시간 뒤 전남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 유역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A양은 발가벗겨진 채로 강에 빠져 숨져 있었다. 목 졸린 흔적은 있었지만, 사망원인은 익사였다. 시신에서는 성폭행 흔적과 범인을 특정할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옵옵옵옵 오빤 강남스타일-" 독특한 '말춤'과 유쾌한 가사, '내적 댄스'를 갈망하게 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가수 싸이의 댄스곡 '강남스타일'이 발매 직후 차트 순위 고공행진 중이던 2012년, 그 해 12월21일(미국 시간)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끝내 '10억뷰'를 넘어섰다. 2005년 유튜브 창사 이래 단일 영상의 10억뷰 돌파는 처음이었다. 강남스타일은 그 해 9월 초 한국어곡 최초로 빌보드 'HOT(핫) 100' 64위를 차지한 뒤, 같은 달 27일 2위에 오르며 '7주 연속 2위'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강남스타일, 유튜브 최초 '10억뷰'…7주 연속 빌보드 2위━2012년 7월15일 발매된 강남스타일은 입에 달라붙는 가사와 흥겹고 반복적인 리듬이 특징인 대중적인 곡이다. 특히 후렴구에 나오는 '말춤'은 2012년 하반기 최고의 밈(Meme·온라인 유행물)으로 자리 잡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뮤직비디오에는 유재석, 현아, 노홍철, '리
1974년 12월 20일.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재일교포 청년 문세광(당시 23세)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사건은 사형 집행일 127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세광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주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어내려가던 중 연단을 향해 달려가며 총을 쐈다. 문세광이 쏜 총탄은 박 대통령이 아닌 귀빈석에 앉은 육영수 여사를 향했다. 육 여사는 머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으나 사망했다. 당시 상황은 라디오와 TV로 생중계 됐다. 박 대통령과 육 여사를 노린 23세 청년은 객석에 있던 공무원의 발에 걸려 넘어져 현장에서 체포됐다. 범인은 일본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문세광이었다. 그는 미제 38구경 권총에 실탄 5발을 장전한 채 식장에 들어왔고, 일본어를 구사하며 VIP로 위장해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197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