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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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산업은 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다. 항공기가 현재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기까지 숱한 항공사고와 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1985년 8월2일에도 137명의 희생이 있었다. 미국 3대 항공사 중 하나인 델타항공의 191편 추락 사고다. 이 사고를 계기로 항공업계는 그동안 간과했던 난기류의 위험성을 깨닫고 대비하게 됐다. 난기류 감지장치는 물론, 관제탑에도 저층 난기류 경보 시스템이 설치됐다. ━베테랑 조종사·새 비행기…순조로운 비행을 꿈꿨지만━39년전 이날인 1985년 8월2일, 델타항공 191편(이하 DL 191편)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른채 순조로운 비행을 준비 중이었다. 비행기는 승무원 11명과 승객 152명 등 총 163명을 태우고 오후 3시10분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할리우드 국제공항에서 이륙할 예정이었다. 조종실에 탑승했던 이들은 모두 베테랑이었고, 특히 기장 에드워드 마이클(당시 57세)는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던 베테랑이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1998년 7월 31일 여름휴가를 떠난 많은 사람이 지리산으로 몰렸다. 대원사 계곡에만 무려 1400명이 모여들었다. 물놀이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들 무렵,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잠을 자던 야영객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휩쓸려 내려갔다. 이날 지리산에서만 10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수색 작업을 하던 소방관들도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피서 온 야영객, 마을 주민 등 103명 사망 ━7월 31일 밤과 8월 1일 새벽 전남 구례, 경남 산청, 함양군, 하동군 일대 지리산권에는 최대 시간당 145㎜에 달하는 집중 호우가 내렸다. 계곡 등지에서 잠을 자던 야영객들과 계곡 인근 마을 주민 등 100여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급격히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숨지거나 실종됐다. 여름휴가 시즌인 7월 말과 8월 초에 국내 대표 피서지로 유명한 지리산 일대에서 발생한 사고였기에 피해가 컸다. 사망자 대부분은 계곡에 피서를
2005년 7월 30일 토요일 오후 MBC 음악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모두 경악했다. 당시 생중계되던 방송에서 인디 밴드 멤버 2명이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하는 초유의 방송사고를 일으켜서다. 이들 기행은 국민적 충격뿐 아니라 인디밴드 전체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줬고 대중음악 후퇴라는 결과를 낳았다. ━7초간 전국 생중계…성기 노출하고 '폴짝폴짝'━당시 MBC는 음악 프로그램 '음악캠프'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무대에는 인디 밴드 럭스가 서 있었다. 럭스는 자신들만 있으면 허전해 보일 것을 우려해 다른 인디밴드 동료들을 불러 무대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공연 중 광대 분장을 한 다른 밴드 멤버 2명이 갑자기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한 채 무대 위를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돌발행동은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나갔다. 카메라는 빠르게 관객석을 비췄지만 망측한 장면이 약 7초가량 전국적으로 전파를 탄 뒤였다. 방청석 분위기는
1965년 7월29일.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졌다. 경찰 복장을 한 채 라이플 소총을 들고 인질극을 벌인 범인은 당시 18세 소년 카타기리 미사오였다. 총을 든 소년범을 잡기 위해 현장에는 580명의 방탄복을 입은 경찰관이 동원됐다. ━경찰 살해 후 총 빼앗은 범인, 차량 넉 대 갈아타고 시부야 총포상으로…━ 카타기리는 이날 "한 소년이 산에서 공기총을 쏴대고 있다. 빨리 출동해달라"며 경찰에 허위 신고했다. 현장에 경찰관이 나타나자 그는 공기총으로 경찰관을 쏴 쓰러트린 뒤 개머리판으로 여러 차례 내려쳐 살해했다. 경찰관의 제복을 빼앗아 입고 권총(리볼버)을 강탈한 카타기리는 현장으로 추가 출동한 경찰관 두 명을 마주치자 한 명에게 관통상을 입히고 도주했다. 총을 맞은 경찰관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그는 경찰을 사칭해 지나가던 차에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운전자가 자신을 파출소 근처에 내려주려 하자 권총을 들고 위협하며 잠시 대치했다. 그러다 지나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79년 전, 1945년 7월 28일 토요일 아침 9시 49분, 뉴욕을 뒤흔드는 굉음이 일었다.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102층)으로 꼽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일본의 공격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잠시, 원인은 미 육군 항공대 폭격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폭격기는 이 빌딩의 79층을 들이받았다. ━ 자신만만했던 공군 조종사, 방향 감각을 잃다━미 육군 항공대의 B-25 미첼 쌍발 폭격기는 매사추세츠주 베드퍼드 공군기지를 이륙해 뉴저지주 뉴어크 공항을 향하던 길이었다. 짙은 안개에 따른 시계 불량으로 라과디아 공항 착륙을 권유받았으나 조종사는 당초 비행 계획대로 맨해튼을 가로질렀다. 조종사였던 27세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중령은 2차대전 전투비행 시간만 1000시간을 넘기며 공군 십자장 등 다수의 훈장을 탄 파일럿이었다. 1938년 7월에 사관학교에 입교한 그는 승진이 빠른 편이었고 그만큼 탁월한 조종사였다. 특히 사
110년 전 오늘 세기의 전쟁이 터졌다. 이전까지와 다른 차원, 다른 규모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세계 대전'이라는 말이 붙었다. 여러 국가가 참전하며 삽시간에 세계 전쟁으로 번진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며 시작됐다. 수천만 명이 동원된 이 전쟁에서 1000만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결국 독일의 항복으로 약 4년 만에 끝이 났는데 상흔은 깊었다. ━황태자 암살이 세계전쟁으로━제1차 세계대전 발칸반도에서 터졌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점이어서 오래전부터 분쟁이 끊이지 않고 시끄러운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1300년대 오스만제국이 지배했는데 세력이 약해지자 1878년 세르비아가 독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가 주변 지역과 함께 국가를 세우려던 차, 오스트리아가 1908년 주변 지역이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차지했다.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 수도
1976년 7월 28일 새벽 3시 42분. 규모 7.8의 지진이 중국 허베이성(河北) 탕산(唐山)시를 강타했다. 23초 만에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400개와 맞먹는 폭발력의 지진으로 24만2000여 명이 사망했고, 16만4000여 명이 다쳤다. 중국 역사상 기록될만한 대참사였다. 인구 70만여 명의 허베이성 중심 도시였던 탕산은 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 당시만 해도 개혁개방이 되지 않았던 중국이었기에 피해 규모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지표면 내려앉는 직하형 지진…탕산 중심 '피해 막심' ━큰 피해를 입은 탕산과 달리 이곳에서 150㎞ 거리의 중국 수도 베이징과 100㎞ 떨어진 대도시 톈진의 지진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탕산이 유난히 지진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던 건 거대한 단층 바로 위에 놓인 도시였기 때문이다. 지표면이 내려앉는 형태의 직하형 지진이 발생하면서 탕산은 한순간에 땅으로 꺼져버린 충격을 받았다. 지진의 지속 시간은 23초로 그리
2019년 7월 새벽 광주광역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복층 구조물이 붕괴해 2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총 34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건은 예방 가능했던, 철저한 인재 사고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동시에, 나이트클럽에 있던 대부분 사람이 자리를 뜨지 않고 깔린 사람들을 구조해내 시민의식이 빛난 사건이었다. ━춤추는데 복층이 '쿵'…부실했던 구조물 무너지면서 34명 사상자 발생━5년 전 오늘인 2019년 7월27일 새벽 2시반쯤,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지구에 위치한 나이트클럽 '코요테 어글리'에서 복층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마침 해당 나이트클럽은 주말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다 갑자기 '쿵' 소리가 나면서 복층 구조물이 무너졌다. 이 복층 구조물은 2.5m 높이에 26㎡(7~8평) 규모로, 하부 기둥 없이 오롯이 상판을 천장에만 부착해 지나치게 얇고 엉성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다수의 고객이 몰리면서 결국 구조물이 내려앉았
"안 보입니다. 위험합니다." "좀 더 내려가 보자. 그래도 안 보이면 돌아가자." 1989년 7월 27일. 김포국제공항을 떠나 리비아 트리폴리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항공 803편은 김포국제공항에서 태국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리비아 트리폴리로 향했다. 803편은 이날 오전 7시쯤 리비아 트리폴리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공항에 접근할 무렵 활주로에는 짙은 안개가 잔뜩 낀 상태였다. 비행기는 악천후 속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지상 장애물에 충돌해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착륙 직전 추락, 주택 덮친 비행기 산산조각…79명 숨졌다━ 활주로에서 동남쪽 5㎞ 벗어난 농장 지면에 충돌한 비행기는 10여 차례 튕겨 나가다가 인근 주택 4채와 차량 여러 대를 덮친 뒤에야 멈춰섰다. 승객 181명, 승무원 18명이 타고 있었던
2016년 7월 26일.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相模原) 시의 한 장애인 시설에 침입한 2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중증장애인 19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범인은 이날 새벽 오전 1시 43분쯤 장애인 시설 '쓰구이야마유리엔'(津久井やまゆり園)에 침입했다. 출입문이 잠겨 있었지만 범인은 망치로 창문을 깬 뒤 건물로 들어섰다. 야근 중이던 경비원과 시설 직원 등 총 9명을 밴드로 결박한 뒤 열쇠를 탈취한 범인은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2개 건물을 휘젓고 다니며 자고 있던 장애인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오전 2시 30분쯤 "칼을 든 남자가 침입해 날뛰고 있다"는 직원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긴급 출동했지만 이미 중증 장애인 수십 명이 흉기에 찔려 숨지거나 다친 상태였다. 한 마을 주민은 "새벽부터 구급차 경적소리가 요란해 잠에서 깬 뒤 밖을 보니 피범벅이 된 사람들이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19명이 목숨을 잃고, 27명이 부상을 입은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93년 7월 26일, 강한 비가 쏟아지던 목포 공항. 오후 3시 15분 도착 예정이었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는 끝내 목포 공항에 착륙하지 못했다. 여객기에 타고 있던 탑승객 116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48명,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목포 공항에서 이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 번의 착륙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이 났다━ 이날 오후 2시 20분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의 OZ733편 B737-5L9 여객기는 예정대로라면 55분 후인 오후 3시 15분 전남 영암군 삼호읍 목포 공항에 도착했어야 했다. 당시 목포 공항에는 강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객기는 도착 예정 시간이 9분가량 지난 오후 3시 24분 첫 번째 착륙 시도에 실패한다. 이어 4분 후인 3시 28분 2번째 착륙 시도를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10분 후인 3시 39분, 3번째 착륙을 시도하기 위해 접근하던 여객기는 3분 후인 3시 41분 광주공항의 관제 레이
1998년 7월 25일 일본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의 한 여름 축제 현장. 사람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시간도 잠시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누군가 만든 '카레'를 먹은 지역 주민들이 하나둘씩 구토 증상을 보인 데 이어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져서다. 단순 식중독 증상인 줄 알았으나 카레에서 독극물이 나오며 축제는 살인 사건 현장이 됐다. ━축제서 67명 독극물 중독…4명 사망━문제의 카레에서는 독극물 성분인 '비소'가 검출됐다. 비소는 산화하거나 황산 등과 만나게 되면 인체에 치명적인 독으로 변하는데, 이런 성질 때문에 방부제·살충제·쥐약 등에 사용되기도 한다. 비소에 급성 중독되면 구토와 설사가 일어나고 심하면 사망에도 이른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이 사고로 67명이 중독 증세를 보였고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을 포함한 총 4명이 숨졌다. 25년이 지났지만,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 부모 중 한 명인 스기야 야스(76)는 지난해 요미우리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