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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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2007년 12월 6일. 강화도에서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해병대 대원 2명이 차량과 흉기로 공격 당한 뒤 총기를 탈취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황산도 초소에서는 전역을 2개월 앞둔 이 모 병장과 입대 7개월 차였던 박 모 일병이 경계 근무 후 부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제방 도로를 걷고 있던 이 병장과 박 일병을 향해 한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한 대가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차량 앞면에는 충돌시 더 큰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캥거루 범퍼'라는 구조물이 달려있었다. 차량에 치인 박 일병은 도로 옆 갯벌로 곤두박질 쳤고, 이 병장은 도로에 쓰러졌다. 이 차량은 두 사람을 친 뒤 충격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다시 돌아왔다. 범인은 조영국 씨(당시 35세, 현 51세)였다. 조씨는 차를 세운 뒤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도로에 쓰러진 이 병장에게 접근해 "미안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단순 교통사고"라며 안심시
2014년 12월 4일 오후 1시,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을 등산하던 40대 남성이 등산 도중 검은색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봉지 안에는 심각하게 훼손된 토막 시신이 있었다. 발견된 시신은 처참했다. 몸통만 있었으며, 대부분 장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팔달산은 번화가인 수원역에서 고작 2㎞가량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주택가 인근 산이었기에 많은 이에게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불과 2년 전 1.4㎞ 떨어진 곳에서 인육 논란이 불거졌던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 발생했기에 일각에서는 장기매매설, 인신매매설 등도 확산했다. 시민 제보로 검거한 범인은 50대 조선족 박춘풍이었다. 피해자 역시 중국 국적의 조선적으로 밝혀졌고, 이에 사회 전반적으로 제노포비아(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현상)가 기승을 부렸다. ━피해자는 박춘풍 동거녀…"말다툼하다 밀었다"━ 경찰은 12월 11일 토막 살인 피해자의 시신 살점 및 장기를 수원천 매세교와 세천교 사이에서
"자수를 한다면 지은 죄는 밉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아주 최대한도의 관용을 베풀어 줄 테니 꼭 자수하도록."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약속했음에도 1987년 12월 3일 납치된 원혜준양(사망 당시 6세)은 사건 발생 43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 함효식은 범행 후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떠났을 뿐만 아니라, 검거 후에도 거짓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안겼다. ━"母 친구집에 있으니 나랑 가자" 유인 후 납치━ 함효식은 1987년 11월, 운전사로 일하던 중 전신주를 들이받아 100만원을 변제할 처지에 몰리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12월 3일, 그는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가던 혜준양에게 "너희 엄마가 친구 집에 있으니 나랑 같이 가자"고 유인한 뒤 승용차에 태워 유괴했다. 함효식은 범행 다음 날 혜준양을 목 졸라 살해했고, 혜준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유괴 사실을 알린 뒤 몸값 500만원을 요구했다
1975년 12월3일. 발아하던 우리 대중음악에 찬물을 끼얹은 일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노래 '그건 너'로 한창 주가를 끌어올린 이장희를 비롯해 가수 윤형주와 이종용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습관성의약품관리법)로 느닷없이 구속되면서 가요계에 찬 바람이 불어 닥쳤다. 경찰의 단속은 살벌했다. 이튿날 저녁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신중현과 가수 김추자가 구속됐으며, 가수 이수미, 김세환 등 굵직한 가수 대부분 하루가 멀다고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지금이야 대마초가 마약으로 분류되지만, 당시에는 '해피스모우크'로 불리며 유행으로 번진 히피 문화의 하나였다. 단속이 이뤄진 적도 없었다. 밴드 '더 맨'의 보컬 고(故) 박광수씨는 대마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길거리에 앉아서도 피웠다. 한번도 단속당한 적이 없다. 그게 망국적 연기일지 누가 알았겠나. '소주 한잔 하자'와 비슷하게 여겼다.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신중현도 "한창 사이키델릭 음
"나는 협상하기 위해서 왔다." 26년 전인 1997년 12월3일 오전 7시쯤, 한국에 도착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일성이었다. 약 12시간 뒤 'IMF 구제금융 정책 의향서'에는 세 사람의 사인이 적혔다. 캉드쉬 총재, 임창열 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IMF 체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한국 언론은 이날을 '경제 국치의 날'로 기록했다. ━40억달러 있는데 1500억달러 당장 갚아야…"IMF 체제 시작"━1997년 1월23일 한보철강 부도가 국가 부도 위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한보그룹은 당시 정치권 로비를 통해 무리하게 대출받으며 재계 순위 14위까지 올랐다. 14위 대기업이 갑자기 5조원 규모 빚을 지고 부도나자 은행권 자금 순환에도 문제가 생겼다.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부도가 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재계 순위 30대 그룹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1개에 불과하다. 외국 금융사들은 급히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채무 상환 기간을 연장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한국 선원 네 사람의 가족들 2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랍된 지 500여일간 지켜온 침묵을 깨는 행보였다. 해적과 정부 사이에 협상이 혹여 불발될까 숨죽였던 가족들은 그해 7월 피랍된 가족에게 오던 연락마저 끊기자 참았던 말을 꺼냈다. 가족들은 "피랍된 선원들의 생존이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없어 절박하다. 협상이 해결될 여지가 없어 막막하다"며 "언론보도가 매우 조심스럽지만 생사 절벽에 서 있는 가족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국민과 국가에 도움을 호소하게 됐다"고 눈물 흘렸다. '제미니호 피랍 사건'을 언론이 다룬 지 100일째 되던 2012년 12월1일, 장기 피랍된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의 한국인 선원 네 사람이 1년7개월 만에 전원 석방됐다. 582일에 이르는 이 사건 피랍 기간은 현재까지도 국내 해적 피랍 사건 중 최장 기록으로 남아있다. ━21명 선원 석방했다…한국인 4명만 빼고━2011년 4월30일 MT 제미니호는 아프리카 케냐 몸바사항으로
1982년 11월 30일. 고(故)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전설적인 앨범 '스릴러'(Thriller)가 발매됐다. '스릴러'는 마이클 잭슨이 성인이 된 후 발매한 첫 음반 '오프 더 월'(Off the Wall)으로 성공한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인 앨범이다. 그의 정규 6집 앨범이기도 하다. 마이클 잭슨은 디스코 장르의 흑인 음악으로 첫 앨범의 성공을 거둔 후였지만 흑인 음악만을 고수하지 않고 트렌드에 맞는 음악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수많은 명곡이 담긴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앨범 '스릴러'는 1982년 4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 간 작업한 끝에 완성됐다. 녹음 예산으로는 당시 75만 달러(현재 기준 한화 약 9억6000만원)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대형 프로젝트였다. 발매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녹음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웨스트레이크 스튜디오에서 단 5일간 진행됐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프로듀서 퀸시 존스까지 완벽주의자였던 만큼 녹음 과정에서
교신이 멈췄다.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대한항공 KAL 858기는 UAE(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공항을 거쳐 서울로 와야 했다. 도착 전 마지막 중간 기착지였던 태국 방콕 돈므앙 공항으로 가던 비행기는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끊긴 뒤 돌아오지 않았다. 36년 전 오늘, 115명을 태운 비행기가 하늘에서 실종됐다. ━끊긴 교신…하늘에서 사라진 비행기━ 1987년 11월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대한항공 KAL 858기는 UAE 아부다비 공항을 거쳐 서울(김포공항)로 오기 전이었다. 마지막 중간 기착지였던 태국 방콕 돈므앙 공항으로 가던 비행기는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된 뒤 실종됐다. 당시 858기 기장은 "현재 벵골만 '어디스'(인도와 미얀마 사이의 바다) 상공에 와있으며 45분 뒤 방콕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교신을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당시 해당 비행기에는 승무원 20명, 승객 95명 총 115명이 타고 있었다. 전날(28일) 밤부터 김포
2017년 11월 26일 새벽 1시쯤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한 곰탕집에서 두 일행 간 다툼이 벌어졌다. 다툼은 한쪽 일행이었던 여성이 다른 일행 남성을 성추행범으로 몰아세우면서 시작됐다. 남성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여성은 완고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고 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남성의 유죄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성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기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논란은 남녀 갈등으로 이어지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실수로 스친 거 같다" vs "엉덩이 움켜쥐었다"━피해 여성 A씨와 가해자 최모(당시 38)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로 한 곰탕집에서 각자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잠시 스친 건 먼저 가는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최씨가 식당 현관 근처에 왔다 자리로 돌아갈 때였다. A씨도 마침 화장실을 갔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A씨는 이 짧은 순간 최씨가 자신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고 주장했다. 경찰
2018년 11월 24일. 당시 빅뱅 멤버였던 승리가 운영한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손님으로 있던 미술감독 김상교가 집단 폭행을 당했다. 김씨는 클럽 측으로부터 폭행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체포됐다. 이후 김씨는 "경찰관들이 버닝썬에서 뇌물을 받는지 조사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상교 폭행 사건은 이후 마약·성범죄·조세 회피·불법 촬영물 공유 혐의 등을 아우르는 대형 범죄 사건이 된 일명 '버닝썬 게이트'의 촉발점이 됐다. ━◇클럽 내부에서 시작된 폭행, 폭행 가해자 어떻게 됐나━ 김씨는 폭행 사건의 시발점으로 직원에게 끌려 나가는 한 여성을 보호하려다 최모씨와 시비가 붙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당초 버닝썬과 관계없는 일반 손님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이문호 버닝썬 대표와 함께 카페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이 대표 외에도 승리·정준영 카톡방 멤버 중 한 명인 버닝썬 MD 김모씨를 비롯한 다른 버닝썬 직원들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2021년 11월 23일 '전(前) 대통령' 전두환이 끝내 5·18 유족들에 대한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정국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전씨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5·18 당시 시민들에게 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80년대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을 이뤄내 '경제 대통령'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으나, 전씨의 빈소는 쓸쓸했다. 한 달 먼저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당시 여야 대선 주자와 당 대표 모두 전씨를 조문하지 않았다. ━"법 존중한다"면서도 사과는 없었다━ 1979년, 전씨를 주축으로 한 하나회는 10·26 사건으로 시국이 혼란해지자 수습을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전국 확대했다. 이때 학생 및 정치인, 재야인사 등 총 2699명이 구금됐고,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정신을 내세우며 화려하게 취임했다. 정식 선거로서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자, 최초의 20세기 출생 대통령 등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그는 화려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취임 2년 10개월 만인 1963년 11월 22일에 갑작스럽게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암살자도, 그 배후나 목적에도 불분명한 점이 많았기에 존 F. 케네디 암살은 수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의 죽음은 음모론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진영을 초월한 인기 대통령 JFK━ "세상을 알기에 충분히 원숙하면서도, 무엇이든 해내기에 충분히 젊은 사람"(존 F. 케네디 대선 광고 슬로건) 생전 존 F. 케네디는 진영을 초월한 인기를 누렸다. 그는 거물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