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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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7 건
2년 전 2022년 6월 28일 전남 완도 바닷속에서 차 한 대가 발견됐다. 2018년식 7세대 후기형 아우디. 해당 차 안에서는 시신 3구가 확인됐다. 시신은 당시 실종신고가 접수됐던 초등학교 5학년 조유나 양과 그의 부모였다. 약 한 달 전 학교에 '제주도 한 달 살기' 체험학습을 신청한 조 양은 왜 완도 바닷속에서 발견됐을까. ━제주도 대신 완도 해수욕장으로 향한 조 양 가족━ 사건의 시작은 차량이 발견된지 약 한달 하고도 열흘 전인 5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광역시 남구에 거주하던 조 양과 부모는 조 양이 다니던 학교에 5월 20일부터 6월 15일까지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떠난다며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 가족이 간 곳은 제주도가 아닌 완도 명사십리해수욕장이었다. 이들은 해수욕장 인근 풀빌라에서 5월 24일부터 30일까지 투숙했다. 숙박업소 측은 이들 가족이 다른 투숙객들과는 달리 온수를 사용하지 않은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조 양 부모가 가끔 외출했을 뿐
지난 2022년 6월27일, 김가을씨(당시 24세)가 실종됐다. 이날 오후 11시쯤 서울 강서구 가양역 인근에서 가양대교 남단 방면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김씨는 사라졌다. 가족이 만든 전단지에 따르면 김씨는 키 163㎝에 마른 편으로, 당시 짧은 숏컷 머리에 베이지색 상의, 검은색 바지 그리고 레인부츠를 착용한 상태였다. 왼쪽 팔엔 타투가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김씨의 행방은 알 수 없다. 드론까지 투입되는 등 수색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당시 서울 지역에 집중 호우가 내리면서 수색 작업이 난항을 겪기도 했다. ━퇴근길 사라진 동생…"언니 쓰러질 것" 신고자는 누구?━ 김가을씨는 퇴근길에 사라졌다. 친언니 증언에 따르면 실종 당일 미용실을 다녀온 김씨는 머리 인증 사진을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파마하자마자 비바람 맞고 13만원 증발. 역시 강남은 눈 뜨고 코 베이는 동네"라는 문구를 남겼다고 한다. 이후 오후 9시30분부터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로 수도 워싱턴과 36개 주에서만 허용됐던 동성 결혼이 미국 전역에서 허용되게 됐다. 세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소수자들 "사랑이 승리"…백악관엔 무지개색 조명━동성혼 합법화를 끌어낸 재판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메릴랜드주에서 결혼한 제임스 오버거펠과 존 아서 부부가 합법화되지 않은 오하이오주로 이주한 뒤 혼인 관계를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이들 부부는 다른 주에서 동성결혼을 한 사람에 대해 미국 모든 주가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치병에 걸렸던 아서는 소송을 낸 그해 사망했지만 오버거펠은 아서의 사망 증명서에 자신을 배우자로 기명하기 위해 법정 투쟁을 이어갔다. 그 결과 2015년 6월 동성 결혼 합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진보 4인 대 보수 4인으로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결정권을 쥔 앤서니 케네디
"사형을 선고한다" 2010년 6월25일 부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피고인은 김길태(33),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교도소를 드나든 범죄자였다. 그는 같은 해 2월 24일 부산 사상구 덕포동 여학생 이모양(13)의 집에서 이양을 납치·성폭행하고 다음 날 새벽 살해해 시신을 인근 주택 물탱크에 넣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어린 생명을 무참히 유린한 점은 엄벌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재범의 우려가 매우 높은 피고인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고 막바지에 이르자 김씨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듯 잠시 '비틀'거렸고 교도관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유족은 사형 선고에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양 아버지는 "처형돼야 한다. 그렇더라도 한 번 피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진 딸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지 않냐.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1심 소식을 듣고 울먹거렸다고. 과연 2월24일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것일
"30분 전에 재은이만 먼저 보내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1990년 6월25일 오후 12시쯤.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에서 돌아와야 할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엄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은 엄마는 주저앉고 말았다. 곽재은(당시 6세) 양은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전화에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누군가 재은이의 반과 이름을 대며 엄마 행세를 했고, 선생님은 별 의심 없이 재은이를 하원 시켰다. 재은이 부모는 혹시나 한 마음에 재은이를 데려갔을 수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수소문했지만 아이를 데려간 이는 없었다. ━허위 전화에 사라진 6살 딸…실종 29시간 만에 '몸값 요구'━결국 재은이 부모는 실종 5시간이 지난 오후 5시가 돼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받은 경찰은 유치원 관계자와 재은이 엄마 주변인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유괴 사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재은이 집 전화에 녹음 장치를 설치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6월 26일 오후 5시. 재은이 실
2009년 6월23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환자 가족들의 소송에 대법원이 판결을 한 지 33일 만에 대한민국에서 첫 존엄사가 시행됐다.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는 이날 오전 10시22분경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자발호흡으로 연명했다. 그는 201일만인 2010년 1월10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첫 존엄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보호"━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논쟁을 처음 촉발한 건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당시 뇌 수술을 받고 자가 호흡을 못 하게 된 환자를 배우자의 요구에 따라 병원이 퇴원시켰고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떼자마자 곧바로 사망했다. 이후 담당 의사들이 살인죄로 기소됐다. 이들은 2004년 5월 살인죄가 아닌 살인방조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대법원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살인 행위를 도운 점은 인정된다고 보면서도 "퇴원을 허용한 것은 환자의 생사를 가족의 보
"이운재 주춤주춤… 막았습니다! 이운재가 막았습니다!" 2002년 6월 22일,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국·일본 월드컵 대한민국과 스페인의 8강전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을 무너뜨리고 4강에 진출했다. 당시 스페인은 카를레스 푸욜, 호아킨 산체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이케르 카시야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주전으로 활약하던 팀이었다. 그러나 패기와 열정으로 뭉친 대한민국 대표팀은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꺾었고, 1930 FIFA 우루과이 월드컵 이후 약 72년 만에 유럽과 남미 이외 대륙이 4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썼다. ━'중원 핵심' 김남일 부상 아웃…승부는 연장전으로━ 이날 대한민국 대표팀은 3-4-3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이운재가 골키퍼 장갑을 꼈고, 김태영-홍명보-최진철이 수비를 맡았다. 미드필더로는 이영표-유상철-김남일-송종국이 선발 출전했으며, 공격은 설기현-안정환-박지성이 담당했다. 16강 상대였던 이탈리아와
2017년 6월20일 오전 4시20분(한국 시간).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석방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숨을 거뒀다. 혼수상태로 고향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돌아온 지 엿새 만이다. ━체포 한 달만 입 연 웜비어…"제발 살려주세요"━ 버지니아대 3학년이던 웜비어는 2015년 말 패키지여행으로 북한을 찾았다. 그는 이듬해 1월2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친 혐의로 체포됐다. 북측은 체포 21일 만에야 웜비어의 체포 사실을 인정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한 미국인 적발체포"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웜비어는 미국 정부의 묵인, 조종 밑에 조선의 일심단결의 기초를 허물어버릴 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입국,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하다 적발돼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웜비어는 체포 한달여 만인 2월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오하이오주 우정연합감리교회의 지시로 선전물을
2016년 6월20일 새벽 2시쯤. 인도양 세이셸 군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원양어선 광현 803호(138t) 배 안에서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이 베트남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현 803호는 인도양에서 조업하기 위해 2015년 2월 부산항을 떠났다. 배에는 한국인 선원 3명, 베트남 선원 7명, 인도네시아 선원 8명 등 총 18명이 타고 있었다. ━선내 회식서 선장과 시비 붙어…"본국 돌아가" 말에 뺨 때리기도━ 배는 사건 11일 전인 6월9일 세이셸 군도 빅토리아항에서 인근 어장으로 출항했고, 이후 선내 회식을 하던 중 사건이 벌어졌다. 회식은 선상에서 미끼 작업을 하는 선원을 격려하기 위해 선장(당시 43세)이 마련한 자리였다. 선원 18명 중 13명이 함께 했다. 양주 5병에 수박 등이 함께한 회식 초반만 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취기가 오른 베트남 선원 A씨(당시 32세)와 B씨(당시 32세)가 장난을 치면서 갈등이 시작
1971년 12월. 중학교 교장 직무대리로 근무하던 교사 A씨 눈에 밤늦게 거리를 돌아다니던 중학생 7명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금이야 늦은 밤에 외출하는 일은 예삿일이지만 1970년대 우리나라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이동을 금지하는 야간 통행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 정책은 1982년 해제될 때까지 계속됐다. 늦은 밤거리를 활보하던 중학생 7명은 당시 기준으론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A씨는 문제가 된 중학생 7명을 교장실로 불러들인 뒤 비인간적인 구타를 시작했다. 3일 동안 학생들을 교장실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힌 뒤 주먹과 손바닥, 발로 머리와 얼굴 등을 가격했다. 피해 학생들의 학부모는 A씨를 고소했다. 검찰 그를 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A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에 대한 규정 미비…교사에게 내려진 관대한 처분━ A씨가 훈육을 빙자한 폭행을 가했다고 본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2심 재
하루 유동인구 100만명,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강남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16년 전 발생한 센트럴시티 살인사건이다. 해당 사건의 용의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처와 전처의 애인을 칼에 찔러 살해하고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아났다. 경찰은 용의자의 지명수배전단을 전국에 뿌렸지만, 16년이 흐른 지금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한국 최장기 수배범, 황주연이다. ━강남 한복판서 아이 미끼로 전처 불러내 18번 찔러…20분만에 사망━16년 전인 2008년 6월17일, 서울 고속터미널 호남선 부근에서 한 남성이 30대 여성 김 모씨를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그의 전 남편이었던 황주연이다. 현재 '대한민국 지명수배자 1번'이다. 만약 생존해 있다면 현재 나이 49세다. 무에타이 선수 출신이었던 황주연은 2008년 6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어린 딸을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이혼한 전처 김씨를 유인했다. 그리
1592년 임진년 6월16일. '성웅' 이순신은 왜군에 빼앗긴 조선의 바다를 되찾아왔다. 거제 옥포에서 왜척 26척을 섬멸해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했다. 그해 이순신과 조선군이 올린 첫 승전보다. 조선군은 이틀에 걸쳐 세 번 싸웠다. 16일 아침 대승을 거둔 조선군은 이날 오후와 그 다음 날에도 왜적을 추격해 격파했다. ━임진왜란 1년 전부터…이순신 "전쟁 준비하라"━ 승전 배경엔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군사 물자를 점검하고 훈련을 독려하는 등 만일에 있을 전쟁에 대비해 나갔다. 거북선을 건조하고 화포를 개량해 지자포(地字砲)와 현자포(玄字砲)를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는 "동헌 뜰에 화대(火臺) 돌기둥을 세웠다"거나,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공사례(公私禮)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長箭)과 편전(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투선은 어느 정도 완전해 기쁘다" 등 내용이 담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