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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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니가 있어" 1995년 11월 20일. 1990년대를 풍미했던 2인조 인기 댄스그룹 듀스의 멤버이자 솔로 가수였던 고(故) 김성재가 솔로 데뷔 다음 날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김성재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비극적 사건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흘렀으나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90년대 사로잡은 듀스, 히트곡뿐 아니라 패션 스타일도 인기━ 듀스(Deux)는 고교 동창 이현도와 김성재가 결성한 댄스그룹이다. 1993년 그룹명과 같은 1집 앨범 'Deux'로 데뷔했다. 이들은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뉴 잭 스윙 장르를 가져온 1집 타이틀곡 '나를 돌아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굴레를 벗어나' '여름 안에서' '우리는'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듀스는 최신 힙합 음악과 함께 김성재의 감각적인 패션으로도 큰 인기를 끌
2019년 11월 1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이 발병했다. 이 폐렴은 전염성이 매우 강했고 중국서 서서히 확산하기 시작해 2020년 전 세계를 덮쳤다. 바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코로나19)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7월 19일까지 전 세계에서 나온 코로나19 확진자는 7억4840만명가량이다. 이는 인류의 9.2%에 해당하는 수치로 10명 중 1명꼴로 코로나19에 걸린 셈이다. 첫 발생 이후 약 4년이 지난 지금은 풍토병이 됐지만 코로나19 감염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중국서 최초 발생…초기엔 '우한 폐렴'으로 불리기도━코로나19는 새로운 유형의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인 SARS-CoV-2에 의해 발병한 급성 호흡기 전염병이다. 사람과 동물 모두 감염된다. 전염성이 높은 전대미문의 질병이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최초 보고된 시점은 2019년 12월 31일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 환자 27명이 발생
"부스터 점화, 아르테미스 1호를 발사합니다. 우리는 함께, 다시 달과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갑니다." - 캐스터 2022년 11월 16일(현지 시각) 오전 1시 47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형 로켓으로 평가받는 우주발사시스템(SLS)이 캡슐형 우주선 오리온을 싣고 불을 뿜었다. 인류가 반세기 만에 달에 다시 우주비행사를 착륙시키기 위한 첫걸음을 뗀 것. 이른바 '아르테미스 계획(Artemis Plan)'이다. 아폴로 17호 이후 50년 만이다. 기계 결함과 기상 악화로 4번 연기됐지만 4전 5기 끝에 성공했다. ━4전 5기 끝에 성공…인류, 우주정거장 짓나━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 속 달의 여신을 뜻한다. 아르테미스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2025년까지 여성·유색인종 우주인을 달에 재착륙시킨다는 게 이 계획의 핵심 목표다. 아르테미스 1호는 그 첫 번째 임무였다. SLS 로켓으로 우주선 오리온을 달로 보낸다는 게 골자다. SLS는 높이 98m, 무게
1년 전 오늘(2022년 11월15일) 국제연합(UN)은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1987년 7월11일 세계 인구 50억명 돌파 기념일로부터 35년 만이다. 당시 기준 무려 60% 증가율이다. 18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인구는 10억명 남짓이었다. 그로부터 20억명에 도달한 건 100년이 훌쩍 지난 1927년이었다. 의학과 농업 기술 발전은 폭발적 인구 증가를 불러왔다. 32년 만인 1959년 30억명, 15년 만인 1974년 40억명, 13년 만인 1987년 50억명을 돌파했다. 10억명 증가는 예삿일이 됐다. 1999년 60억명, 2011년 70억명 돌파 같은 식이다. 중국과 인도가 인구 증가를 견인했다. 1년 전 두 나라 인구는 각각 14억2600만명, 14억1200만명이었다. 아프리카와 인도·동남아시아도 한몫했다. 아시아 인구가 세계 인구의 61%(48억명)를 차지하고 이어 아프리카 14억명, 유럽 7억5000만명, 중남미 6억5000만명, 북미 3억7000
2006년 11월14일, 민속학 권위자인 서모(80) 교수에게 성폭행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검찰에 접수됐다. 고소인은 무속인 권모(38)씨. 그는 서 교수의 성폭행을 증명할 녹취와 자신의 옷에서 발견됐다는 정액을 증거로 제출했다. 서 교수는 "권씨를 성폭행한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다만 무죄 추정의 원칙은 법전에나 있을 뿐이었다. ━"서 교수를 해임하라"…총여학생회의 마녀사냥━ 서 교수가 재직한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는 권씨가 제출한 정액이 서 교수의 DNA와 일치한다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나오자 학교 측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대학 본관에서 "교수가 한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했으나 학교 측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학교 측은 일단 검찰의 수사를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였지만, 총여학생의 강력한 반발에 이듬해인 2007년 1월30일 결국 서 교수를 직위 해제했다. 우리 무속과 토테미즘,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노학자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53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노동운동가 전태일은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외쳤다. 그는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을 뛰어다니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몇 마디 구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전태일의 외침과 희생은 우리나라 노동 환경 개선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노조 운동이 자라는 밑거름이 된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루 14시간 일했는데 '일당 50원'…열악했던 노동 환경━전태일은 1948년 대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집안이 더욱 어려워지자 서울로 올라왔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전태일은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에서 물건을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17세에는 평화시장에 있는 의류 제조 회사에 보조원으로 취직했다. 당시 하루 하숙비가 120원이었는데, 전태일은 14시간 이상 일하고 일당으로 50원을 받았다. 그는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 구두를 닦고, 밤에
2001년 11월 13일. 배우 황수정이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됐다. 황수정은 1999년 MBC 드라마 '허준' 속 '예진 아씨'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배우였다. 참하고 단아한 매력으로 사랑받으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만큼 마약 투약 소식은 대중에 큰 충격을 안겼다. 황수정(당시 31세)은 12일 새벽 4시쯤 동거 중이던 강모씨(당시 34세)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혼자 자다가 검거됐다. 동거남 강씨가 인근에서 체포된 지 20분 만이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연두색 수의에 수갑 '충격'━황수정은 2001년 11월 9일 새벽 2시쯤 강씨 집에서 필로폰 0.03g을 술에 타 마시고, 8월 중순에도 필로폰을 술에 타 마시는 등 2차례에 걸쳐 히로뽕을 투여한 혐의로 13일 구속됐다. 영장실질심사에서 황수정은 강씨가 양주에 약물을 탄 것은 알았지만 최음제로 생각했을 뿐 마약류인 줄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이후 황수정은 면회하러 온 아버지에
12년 전인 2011년 11월 11일 당시 대구의 초등학교 215곳 중 절반에 가까운 101개 학교가 집단 휴교했다. 이날은 과자 '빼빼로'를 상징하는 숫자 1이 날짜에 무려 6번이나 들어가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불렸다. 당시 빼빼로 제조사는 "1000년에 한 번 찾아오는 빼빼로 데이"라며 밀레니엄(millennium)이란 단어를 조합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제조사 주장과는 달리, 숫자 1이 6번 이상 들어가는 날짜는 사실 100년 주기로 찾아온다. 당시 빼빼로 데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 제조사 측의 상술이었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에서 절반 가까운 초교가 휴교에 나서자, 트위터(현 X)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란 상술에 어린 학생들이 빠지지 않도록 한 것", "등교 시 혼잡한 학교 분위기가 예상돼 집단 휴교 조처한 것"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더욱이 2년 전인 2009년 빼빼로 데이에는 대구 초교 중 단 2곳만 휴교했던 터라,
"시신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뒀는데...근데 우리 집 아저씨는 없어." 1977년 11월11일 밤 9시15분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에서 발생한 이리역 폭발 사고로 사망한 철도순직자 한유상씨(당시 39)의 아내는 사고 직후 현장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의 아내는 그날 이래로 10살, 5살, 1살 난 세 자녀를 홀로 키웠다. 사고 이후 구술 기록한 백서에 그는 "어디 가서 우리 신랑을 찾냐. 찾을 길이 없었다"라며 "산 사람 찾기는 포기하고 시신이라도 찾자고 돌아다녔다"고 전했다. 2019년 익산시 주도로 발간한 '이리역 폭발 사고 시민백서'에 따르면 이 사고는 희생자만 59명에 달하는 최악의 철도 사고로 꼽힌다. 그중 철도순직자는 16명으로 이리역 앞 사고 현장에서 7명, 역 구내에서 9명이 사망했다. ━다이너마이트 914상자 실은 열차서 '촛불' 켰다━사고 발생 이틀 전인 그해 11월9일, 다이너마이트 914 상자와 전기 뇌관을 비롯해 40톤 이상의 폭발물이 담긴 한국화약주식회사
2009년 11월10일, 서해 대청도 부근 해역. 남북 해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발생했다. NLL(북방한계선) 이남을 침범한 북한 고속정 1척이 우리 해군의 경고 사격에 조준 사격으로 대응하면서 약 2분간 총격전이 이어졌다. 이 전투로 북한군은 11명이 사상했으며, 타고 온 고속정도 반파됐다. 반면 우리 군은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1999년 6월, 2002년 6월 두 번의 연평해전에 이어 3번째 서해교전인 이것을 우리 군은 '대청해전'으로 명명했다. ━北, 경고 사격에 조준 사격으로 맞불━ "귀측은 우리 해역에 과도하게 접근했다. 즉시 북상하라" 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3분 우리 군의 레이더에 NLL로 접근하는 북한 상해-I급 경비정 383호가 포착됐다. 북한 383호는 약 한 시간 만인 11시27분 NLL을 침범했다. 우리 해군은 국제공동상선통신망을 통해 2회 경고통신을 보냈다. 아울러 인근 해역에 있던 참수리급 고속정 2개 편대(4척)와 울산급 호위함인 전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됩니까?" "즉시, 지체없이.(Sofort, unverzuglich)" 1989년 11월 9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철의 장막'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이는 당시 동독의 신임 중앙 위원회 정보 담당 서기인 샤보프스키가 한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말실수는 세계의 변화를 이끌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3주 뒤 몰타 회담에서 냉전 종식이 선언됐으며, 이듬해 10월 독일의 재통일이 이뤄졌다. ━국가를 나누던 '죽음의 지대' ━ 베를린 장벽은 1961년 처음 축조됐다. 동베를린의 서쪽 경계선에 존재하던 이 장벽은, 독일 분단과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까지 수백만명에 달하는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인이 서독으로 탈주했다. 동서독 분단이 고착된 후에도 이탈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서베를린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 및 서방 세계로 탈출하는 주요 경로였다. 이에 동독 입장에서는 서베
"히틀러는 짝XX(one ball)이라네" 2차 대전 당시 구전 동요 가사 중 일부다. 전쟁광을 깎아내리기 위해 연합군이 만든 수준 이하 노래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히틀러의 은밀한 비밀━독일 에를랑겐대학 역사학 페터 플라이슈만 교수가 2015년 12월 바이에른주 문서고에서 히틀러와 그의 나치당 소속 일당이 란츠베르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일 때 기록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552장 분량의 기록 중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부분이 바로 풍문으로만 전해지던 '히틀러 고환 1개설'이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영국 어린이들은 '히틀러 고환송(song)'을 영화 '콰이강의 다리' 주제가였던 '보기 대령 행진곡' 곡조에 맞춰 불렀다. 세간에는 히틀러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솜강 전투 도중 파편에 맞아 고환을 잃었다는 해석이 있었다. 폴란드 성직자이며 역사가인 프란시스제크 파올러는 히틀러를 치료했다는 독일군 위생병에게 들은 얘기라며 사실처럼 묘사하고 다녔다. 히틀러는 이 교도소에서 요제프 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