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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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인 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50분쯤 북한이 개성공단 내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 폭파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을 통해 설치된 시설로,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05년 개소했던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를 보수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보수 예산과 공사비 등 명목으로 약 180억원을 사용했다. 이후에도 시설 운영을 위해 1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추가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고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시설을, 북한 측에서 협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폭파한 것이다.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 폭파한 다음 날, 조선중앙TV를 통해 33초 분량의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건물 폭파 장면을 세 가지 각도에서 촬영한 모습이 담겼다. 북한은 또 노동신문 등 선전 매체를 통해 관련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
25년 전인 1999년 6월 15일 오전 6시10분쯤 북한 경비정 4척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대한민국 영해에 들어왔다. 우리 해군은 의도적인 북한의 도발 행위라고 판단해 초계함 2척, 고속정 6척 편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약 1시간 반 뒤인 오전 8시40분쯤 북한은 경비정 3척을 추가로 대한민국 영해에 보냈다. 7척으로 늘어난 북한 경비정은 철수를 요구하는 우리 해군의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했다. 해군의 고속정 6척은 북한 경비정의 움직임에 맞대응하고자, 선체끼리 직접 부딪친 뒤 밀어내기 방식으로 북한 함정들을 NLL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함정들 간 밀어내기 싸움이 진행되는 도중, 북한의 어뢰정 3척도 현장에 추가로 가담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북한 측이 먼저 화기를 사용했다.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소총과 25㎜ 기관포 사격을 시작했다. 북한의 기습 공격에도 우리 해군은 신속하게 반격했다. 해군은 북한 함정들에 대해 밀어내기를 계속하면서 40㎜와
2000년 6월13일 오전10시27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측과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이날엔 공개석상에 잘 나오지 않아 은둔생활을 한다고 알려졌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김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순안공항에 미리 와 기다리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김 대통령. 그는 비행기에서 내린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남북한이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뒤 55년 만에 양국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가 기대했던 이상의 환대를 베풀어줬다. 또 60만 평양 시민이 열광적으로 저를 환영하고 환송해 줬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은 북한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본격적인 두 정상 간 회담이 막을 올렸다.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렸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그 치열했던 물밑작업━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
2016년 6월12일(현지시간) 오전 2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나이트클럽 '펄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약 300명의 인파가 모여 있던 현장에서는 큰 음악 소리로 인해 총소리를 듣지 못해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무려 50명, 부상자는 53명으로 9.11 테러 이후 벌어졌던 미국 최악의 테러 사건이었다. 범인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오마르 마틴(당시 29세)이었다. 사건 초반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영향을 받은 테러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으나, 이후 마틴이 평소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 발언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성소수자 증오범죄임이 밝혀졌다. ━◇클럽 음악에 총소리 못 들어 피해 증가…숨은 사람까지 찾아내 죽인 잔혹한 범죄자━ 당시 클럽은 커다란 음악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총소리가 시작됐을 때에 대해 일부 인파는 "효과음인 줄 알았다"라고 증언했다. 이후 비명과 피 흘리는 사람들을 본 목격자들이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마틴은
13년 전인 2011년 6월 11일 오전 6시쯤 북한 방향에서 한 소형 선박이 인천 강화군의 우도(隅島) 해상으로 넘어왔다. 배에는 성인 남성 3명과 성인 여성 2명, 어린이 4명 등 모두 9명이 탑승해 있었다. 대한민국 땅을 밟은 뒤 귀순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황해도 내륙 지역에 거주하던 일가족으로 탈북을 결심, 바닷길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국가정보원은 경찰,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등과 합동신문조를 구성해 탈북민들의 월남 동기와 경로 등을 조사했다. 당국은 조사 결과, 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계획적으로 탈북한 것으로 파악했다. 북한 주민 9명의 귀순 소식은 4일 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같은 해 6월 15일 대한민국 언론들이 관련 보도를 전했다. 한국 언론에서 기사가 난 다음 날(6월 16일), 북한 측은 탈북민 9명의 송환을 요구하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북한의 전통문은 낮 12시쯤 판문점 대한적십자사 채널을 통해 접수됐다. 북한은 주민들뿐 아니라
1993년 6월 10일, 경기 연천군의 한 육군 훈련장에서 경기 인천/부천지역 예비군이 M114 155㎜ 곡사포로 실사격 훈련을 하다가 폭발 사고가 발생해 현역 장병과 예비군 총 20명이 사망했다. 1968년 예비군 창설 이래 예비군 관련 사고 중 최악의 인명 피해다. 그럼에도 "예비군들이 포탄에 충격을 주면 터진다 안 터진다로 시비가 붙어서 포탄을 오함마로 내리쳤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안전교육 미비한데 대대장마저 소령━ 당초 군 당국은 예비군들이 버린 담뱃불이 사고 원인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이 사고는 고폭탄 사격을 위해 신관을 결합하던 도중 폭발이 발생했고, 파편이 장약통을 관통한 후 연소되어 근처 조명탄 2발까지 연속 폭발하면서 일어난 참사였다. 포사격 훈련은 엄격한 안전훈련이 필수였음에도 이날 훈련에서는 안전교육이 미비했다. 당시 예비군을 교육하던 조교는 현역 1명과 방위병 2명이었는데, 방위병의 경우 포 관련 지식이
2010년 6월 10일 오후 5시1분.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에서 대한민국 최초 우주발사체 로켓 '나로호'가 엄청난 화염을 뿜으며 발사됐다. 약 10개월 전 1차 발사가 실패로 이어지면서 두 번째 도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발사 137초 후인 오후 5시 4분쯤 70㎞ 상공에 있는 나로호와 교신이 단절됐다. 약 한 시간 뒤 안병만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나로호가 비행 중 폭발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나로호 2차도 실패였다. ━"발사 137초 후 교신 단절"…나로호 2차 '실패 원인'은?━나로호(KSLV-Ⅰ)는 100㎏급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다. 총길이 33.5m, 총중량 140t으로 액체 엔진인 1단과 고체 엔진인 2단으로 구성됐다. 한국과 러시아 공동 제작으로 1단은 러시아가, 상단은 국내 독자 기술로 만들어졌다. 2009년 1차 발사에 실패하고 2차에선 성공하리란 기대가 컸지만
5년 전인 2019년 6월 9일. 100만 홍콩인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홍콩의 중국화'를 막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는 이날 정점을 찍었고 새 국면을 맞았다. 103만명(주최 측 추산)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는데 홍콩 시민 7명 중 1명꼴이었다. 이날 시위는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에 반환된 이후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는 이날 기점으로 대규모로 번졌고 격렬해졌다. 장기간 이어진 시위는 송환법 폐지 요구에 그치지 않고 중국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민주화 운동으로 성격이 달라졌다. 홍콩 경찰은 최루탄에 이어 실탄을 쏘는 등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결국 홍콩 정부는 그해 9월 문제가 됐던 송환법을 철회했다. 하지만 본질은 '중국화 반대'였기에 홍콩의 '불안한 평화'는 계속되고 있다. 시위의 발단이 된 '범죄인 인도법'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의 학동4구역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빌딩 한 채가 차도에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10대를 비롯해 사망자 9명, 부상자 8명을 낸 충격적인 사고였다. 사고 이후엔 건설사와 브로커, 공무원 등의 각종 부정청탁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무너진 건물…피해자 중엔 10대도━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사업은 2017년부터 학동 633-3번지 일대 12만 6433㎡에 지하 3층, 지상 29층, 19개 동, 2314세대 규모로 추진 중이었다.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2018년 2월 주택개발정비사업조합으로부터 4630억9916만원에 사업을 수주했다. 사고가 벌어진 곳은 주택 재개발사업 지역의 근린생활시설 철거 현장이었다. 지상 5층 규모 건물이 무너지면서 왕복 8차선 도로의 5차선까지 덮쳤다. 마치 폭격을 당한 듯 먼지를 풍긴 붕괴 현장을 본 목격자들은 "쾅! 소리와 함께 불과 3~4초 만에 흙더
4년 전인 2020년 6월 8일. 오후 3시 조금 넘은 시각,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도로에서 79세 여성 환자를 태운 사설 구급차와 택시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급차 기사는 택시 기사 A씨(당시 31세)에게 "환자 먼저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오겠다"며 명함을 건넸다. 그러나 A씨는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며 막무가내로 구급차의 이동을 막았다. 환자는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일부러 사고 낸 뒤…"죽으면 내가 책임질게"━당시 폐암 4기였던 환자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사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이송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구급차가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던 중 택시와 가벼운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 구급차 기사는 A씨에게 "환자 이송부터 한 뒤 보험처리를 하겠다"며 연락처를 알렸다. 그러나 A씨는 반말로 "사고 처리가 먼저인데 어딜 가? 119 불러준다고. 내가 책임진다고 죽으면. 119 불러서 보내"라고 소리치며 구급차를 막아섰다. A씨는 구
2021년 6월 7일,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향년 49세. 그라운드의 '유비'이자 전 국민을 환호하게 했던 '2002 월드컵의 영웅'이었고, '슛돌이 감독'을 맡으며 누구보다 다정한 면모를 자랑했던 그는 1년 반 이상을 병마와 싸우다 2002 한일월드컵 국가대표 선수 중 가장 먼저 사망했다. 고인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축구장에 돌아가고 싶다는 염원을 드러냈기에, 많은 축구팬은 비통한 소식에 눈물을 보였다. 그의 '슛돌이' 시절 애제자였던 축구선수 이강인 역시 "유상철 감독님이 제가 월드컵 뛰는 것도 보시고 좋은 팀으로 이적한 것도 보셨으면 너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을 만났을 때 제 경기를 너무 보고 싶어 하셨는데 건강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다. 제가 좋은 축구선수로 크고 있는데 직접 보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골키퍼 빼고 다 가능' 한국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은 단순히 성이 유씨
80년 전 오늘, 1944년 6월6일. 프랑스령 노르망디 해안에서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이 펼쳐졌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 독일을 향한 연합국의 반격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영화처럼 극적으로 이뤄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프랑스를 독일에서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꿨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영화의 소재로도 쓰였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배경이 됐다. ━긴박했던 D-Day, 15만6000명 투입 ━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낳은 전쟁이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1941년 태평양 전쟁을 기점으로 세계 전쟁으로 번졌는데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구성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진영의 대립으로 진행됐다. 이때 프랑스령 노르망디 해안은 독일이 점령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서부 전선에서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