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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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6 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낸 최악의 전쟁" 84년 전인 1939년 9월 1일,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전격 침공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21년 만에 다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의 방아쇠가 당겨진 순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3개국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연합국(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등)의 대결이었다. 이 전쟁은 1945년 9월까지 6년에 걸쳐 진행됐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30여개국에서 1억명이 넘는 군인이 참전했다. 사망자는 5500만명에서 최대 8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망자 대부분은 민간인으로, 홀로코스트 등 학살과 전쟁으로 인한 질병 및 기아 등으로 숨졌다. ━유럽 정복 앞뒀던 나치 독일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나치 독일은 폴란드 침공 후 무서운 속도로 유럽을 정복해 나갔다. 폴란드와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를 차례로 점령한 독일은 1940년 6월 당시 막강
1997년 8월 31일 새벽 0시 25분.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세상을 떠났다. 집요하게 쫓아오던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81년 찰스 왕세자(현 찰스3세)와 결혼하면서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영국 왕실 스타였다. 그는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볼스(현 카밀라 왕비)의 불륜 등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1992년 별거 후 1996년 이혼했다. 그리고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36년의 짧은 생이었다. ━파파라치 피하려다 '쾅'…늦어진 구조, 결국 다이애나 사망━ 이날 다이애나는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와 프랑스 파리 리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겼다. 도디 알 파예드는 영국 리츠 호텔, 헤롯 백화점 등을 보유한 이집트 출신 억만장자 도디 알 파예드의 아들이었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 고급 외제차를 타고 알 파예드 집으로 향하던 중 파파라치
2005년 8월30일.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해 18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0억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가 났다. 카트리나 허리케인은 미국 남동부를 초토화 시킨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꼽힌다.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 미국 휩쓸어...인재가 키운 재앙 ━2005년 8월29일 카트리나는 루이지애나에 상륙했다. 가장 강력한 5등급 허리케인으로 시속 165마일(230㎞)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해 30일에는 미국 남부를 강타했다. 강풍은 물론 10인치 이상의 폭우를 쏟아붓고 20피트(6미터) 높이의 파고가 몰아쳤다.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최대풍속은 시속 280km를 기록했다. 카트리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시 전체가 물바다로 변해 버렸고 한 건물 옥상은 누전으로 불까지 났다. 최대 피해가 우려됐던 뉴올리언즈에서는 이재민들이 머물던 슈퍼돔의 천장이 찢겨나갔고 도시의 80%가 침수됐다. 강풍에 찢겨지고 떨어져 나간 주택의 지붕과 건물의 유리창, 간판
"해방 이래 최악의 대재앙" 2016년 8월 29일. 그해 10호 태풍 라이언록이 함경북도 두만강에 상륙했다. 라이언록은 하루 최대 292㎜의 비를 뿌려대며 두만강 유역을 휩쓸었다. 빗발은 거셌다. 이틀 만에 두만강이 범람했으며, 3층짜리 아파트가 침수됐다. 한 주민은 자유아시아방송 등 외신과 인터뷰에서 "두만강 물이 10m가 넘는 강둑을 넘어 들어왔다"며 "평소보다 수위가 15m는 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는 지난 50~60년간 최악의 재앙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138명 숨지고 400여명 실종…최악의 재앙━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이 홍수로 138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실종됐다. 마을 전체가 토사에 매몰되는 등 가옥 3만여채가 파손돼 이재민 14만명이 발생했다. 학교, 유치원, 보육원 등 공공건물 900여채가 손상됐고, 도로 180여개 구간과 다리 60여개가 유실됐다. 중국과 국경에 있던 세관 및 교량마저 유실돼 무역
36년 전인 1987년 8월29일. 경기 용인시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대표 박순자(당시 48세)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구내식당 천장에 겹겹이 쌓여있던 시신 대부분은 속옷 차림에 손과 발이 결박돼 있고, 목에는 뚜렷한 교살 흔적이 남아있었다. 당시 사건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됐다. 이후 4년 만에 오대양 공장 직원들의 자백으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회사로 둔갑한 종교 '오대양'…교주 박순자의 두 얼굴━사건은 박순자가 1984년 5월 오대양이라는 종교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그는 다른 종교단체에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오대양이라는 명칭은 박순자가 "난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이다. 앞으로 전 세계를 주관할 것"이라고 공언한 데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박순자는 오대양을 민속공예품 제조업체로 위장해 사업을 확장했다. 서울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박순자는 직원들의 자녀를 위한 학사를 지원하는 등
2014년 8월28일. 전남 신안의 '염전노예' 사건 주범들에게 징역 3년6개월 등의 실형이 선고됐다. 그러자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염전노예 사건은 신안의 염전 업주들이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수년간 강제로 일을 시키고 폭행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다. 특히 주요 외신들이 이 사실을 전 세계에 보도하자 세계인들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이런 인권 침해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장애인 인신매매, 임금체불, 학대...강제노역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에 있는 염전에서 무슨일이 벌어졌길래 전 세계가 놀랐을까. 2008년 11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지적장애인 채모씨(당시 48살)는 일자리를 찾다가 무허가 직접소개 업자 고모씨를 만났다. 고씨는 채씨에게 더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서 채씨를 신안 염전으로 데려갔다. 알고보니 고씨는 30만원의 소개비를 받고 채씨를 홍모씨의 염전에 팔아버린 것이었다. 채씨의 고된 일은 이때부터 시작
2008년 8월27일. 이날은 여간첩 원정화(당시 34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날이다. 당시 원정화는 국군 장교들에게 성로비를 벌여 군사기밀을 빼오다 붙잡혀 충격을 줬다. 뿐만 아니라 수사를 통해 베일을 벗겨보니 그의 가족 모두 공작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남파 공작원, 조선족 위장해 남한 침입...경찰관·군 장교 교제하며 군사기밀 빼돌려━원정화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함북 부령군 고무산여자고등학교 4학년 때 학업성적이 우수해 '이중 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았다. 남파 공작원을 기르는 특수부대에서 1989년부터 훈련을 받던 원정화는 3년 뒤 머리 부상을 당해 의병제대했다. 그 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 교화소에 수감됐고 풀려난 후에도 또다시 아연 5t(톤)을 훔쳤다. 절도가 당국에 적발됐지만 친척의 도움으로 절도 사건이 무마되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공작원으로 포섭돼 다시 남파 공작원의 길을 걷게 됐다. 2001년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무장 정파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장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아프간을 떠나려는 이들로 가득했던 카불 공항은 IS(이슬람국가)의 폭탄테러로 아비규환이 됐다. 갑작스러운 자살 폭탄 테러에 미군 13명 포함 183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영국 가디언은 카불 공항 현장을 두고 "마치 종말의 날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아비규환의 '카불 공항'…자폭 테러에 183명 사망━2021년 8월26일(현지시간) 카불 공항 외곽에서 IS 아프간 지부인 'IS 호라산'(IS-K) 소행의 연쇄 자폭 테러가 발생, 총 183명이 사망했다. 첫 번째 폭발은 공항 외곽의 애비 게이트에서, 두 번째 폭발은 미국인들의 대피를 위해 모이는 공한 인근 배런 호텔에서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은 테러범들의 타깃은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을 떠나려는 수천 명의 시민, 그리고 같은 달 31일까지 대피 및 철군 완료를 목표로 두고 있던 미군 등이었다. IS-K는
신림동 번화가에서 '흉기 난동'으로 4명의 사상자를 낸 살인범 조선(33)은 전과 3범이었다. 소년부 송치 전력도 14건이었다. 검거 이후 과거 범죄 전력을 고려해 그의 재범을 일찍이 관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50년 전인 1973년 8월25일 당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이종대(당시 38)와 문도석(31)도 전과 3범이 넘는 전과자였다. 이종대는 강도상해, 절도, 불법무기소지 등으로 복역 중 탈옥했다가 붙잡혀 1968년 출소했다. 문도석을 만난 곳은 마지막으로 이감된 안양교도소였다. 문도석은 해병대에 복무하다가 탈영해 불명예 제대한 뒤 폭력, 횡령, 업무상과실치상 등 죄목으로 옥살이했다. 이들은 네 차례 이상 범행을 저지르며 무고한 세 사람을 살해했다. 총 496만원가량을 빼앗았다. 이들은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명했다. ━습관 된 범죄…강도살인 후 "지문채취 열심히 해보슈"━교도소 동기였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갑작스러운 폭발로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뒤덮였다. 화산이 휩쓴 도시는 당대 대표적인 휴양지였던 폼페이로,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약 10%인 2000여명이 도시와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다. ━온화한 기후·비옥한 평야…귀족들의 휴양지━ 폼페이는 지금은 내륙이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 하구에 있는 항구 도시였다.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 덕분에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로마시대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이 들어서는 등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는 제정로마시대 초기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이 지역은 고대도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였으며 인구는 최소 2만~최대 5만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00년간 침묵하던 화산의 갑작스러운 폭발━ 해발 1300m 규모의 베수비오산은 그다지 험준한 산은 아니었다. 1000년 가까이 화산 활동이 없었기에 위협적인 존재로 고려되지도 않았다. 그러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께 경기 부천군(현 인천 중구)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공군 소속 684부대 북파공작원 24명은 교관 및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부대를 이탈했다. 북파공작원들은 섬에서 빠져나와 낮 12시께 인천에 무장한 상태로 상륙했다. 육군 해안 경계 부대를 뚫어낸 이들은 인천과 수원을 오가는 버스를 탈취, 서울 영등포를 지나 청와대로 돌격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북파공작원들은 군인,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결국 서울 동작구 대방동 거리에서 진압 병력에게 포위됐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북파공작원들은 오후 2시20분께 버스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렸다. 실미도에서 숨진 1명을 제외하고 버스 안에는 23명의 북파공작원이 타고 있었다. 수류탄 자폭으로 이들 중 1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4명은 큰 부상을 입고 체포됐다. 살아남은 4명의 북파공작원은 1972년 1월 군사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같은해 3월 모두 총살됐다. 이들의 장
2019년 8월 22일 새벽 서울 관악구의 한 재개발지구 빌라에 사는 여성 박모(사망당시 41)씨와 그의 아들(사망당시 6)이 침대 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범인은 이들에게 깊은 원한이 있었던 듯 여성은 무려 11차례, 아들은 3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은 그날 새벽 1시쯤 집을 나왔다는 남편 증언에 따라 제3자 침입 가능성을 수사했지만, 물증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초기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경찰이 40여일 만에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놀랍게도 남편 조모씨(45)였다. ━40여일 만에 특정된 용의자..."집 나올 때는 살아있었다"━사건이 일어난 빌라는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으로 이웃의 눈을 피해 몰래 침입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탐문 조사 결과에서도 낯선 사람을 봤거나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또 현장에는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었고 집 안의 귀중품도 그대로 있었다. 수사 기관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외부인에 의한 범죄 가능성 보다는 매우 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