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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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95 건
1949년 6월 26일. 서울 종로의 한 2층 가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자 항일 무장투쟁 중심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쓰러졌다.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며 숱한 고비들을 넘기고 돌아온 고국에서 총에 맞으며 숨을 거둔 것이다. 범인은 김구가 이끌던 한국독립당(약칭 한독당) 당원이자 육군 포병사령부 소위였던 안두희. 그는 곧바로 붙잡혀 처벌까지 받았지만 이후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범행 동기와 배후 세력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무기징역 선고받았지만 1년 만에 풀려난 안두희━안두희는 군 조사에서 단독 범행을 주장했다. 그는 김구가 남북 협상을 통해서 정치 사회에 혼란을 주고 공산주의자들을 자극하고 찬동시키는 범죄를 저질러 참지 못해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도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안두희 독단적 범행이며 배후는 없다고 밝혔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도 한독당 내분이라고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안두희는 큰 배후가 없다면 받기 어려
"Michael Jackson, king of pop, dead at 50"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 50세에 사망) 14년 전인 2009년 6월 25일,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마이클 잭슨의 부고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CNN은 "우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의 홈비 힐스 구역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자택에서, 그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후 UCLA 메디컬 센터에서 숨진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1958년 8월 미국 인디애나 게리에서 철강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조셉 잭슨에게 음악 교육을 받았다. 조셉은 마이클을 포함한 자기 아들들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것을 깨닫고, 이들로 'The Jackson 5'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은 6세 때 그룹의 리드 보컬로 합류했다. The Jackson 5는 1970년 한 해 동안 4개의 곡을 빌보드 팝 차트 1위에 올리는 대기록을 세우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들
2016년 6월24일.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지를 묻는 국민투표가 역사적 결과로 끝맺었다. 23일(현지시간) 투표를 치렀더니 영국민 51.9%가 EU 탈퇴를 선택한 것이다. 유럽의 경제사회 통합이라는 2차세계대전 이후 큰 흐름이 처음 '백래시'(역풍)을 맞은 것. 창설 후 회원국을 늘려가기만 하던 EU가 처음으로 유력 회원국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었다. 자연히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파장이 컸다. ━Why…영국은 왜━직접적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워진 영국과 유럽의 경제여건이다. 물론 그 바탕엔 유럽 대륙과 장기간 전쟁까지 벌이며 쌓아온 영국 특유의 고립주의가 있다. 영국은 대륙의 일에 간섭하지도, 거꾸로 대륙에서 간섭받기도 싫어하는 성향을 확립해 왔다. 그러다 금융위기로 EU 재정이 악화하자 경제규모가 크고 선진국인 영국이 내는 분담금 부담도 커졌다. 난민이 증가하자 이들이 자국민 일자리를 뺏는다는 반발도 커졌다. "우리 먹고살기도 힘든데, 사정이
"나는 살고 싶다" 2004년 6월23일. 눈이 가려진 채 주황색 죄수복 차림으로 울부짖던 김선일씨(당시 34세)의 피살 소식이 전해졌다. 김씨는 같은 해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 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단체에 붙잡혀 참살당한 한국인 희생자다. 이라크 무장단체의 잔악무도한 살인 행위와 선량한 시민의 죽음에 온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사건 발생 후 한국에서는 이라크 추가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이라크 무장세력이 보낸 충격 비디오테이프…"살고 싶다" 호소━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카타르 위성방송인 알자리라 사무실에는 2004년 6월 21일 한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됐다. 해당 비디오테이프 영상에는 이라크 무장세력에 피랍된 한국인의 모습이 담겼다. 피랍된 한국인은 미군 군납업체인 가나무역 소속 한국인 김선일씨였다. 김씨는 영상에서 영어로 "한국 군인들! 제발 여기를 떠나세요.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21년 전인 2002년 6월 22일, 당시 33세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은 홍명보가 페널티킥(PK)을 차기 위해 골대 앞에 섰다. 슈팅하기 전 호흡을 고르는 홍명보의 옆에서 이집트의 자말 주심은 휘슬을 입에 갖다 댔다. 홍명보의 맞은편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국·일본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를 노려봤다. 자말 주심이 휘슬을 불자, 홍명보는 망설임 없이 공을 향해 달려간 뒤 인사이드 슈팅을 시도했다. 홍명보의 발을 떠난 피버노바는 골대 왼편의 그물망을 출렁이게 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카시야스는 골대 반대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바라봐야만 했다. 홍명보의 골로 대한민국과 스페인의 승부차기는 5대 3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진출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4강까진 예상 못해"…기적 이뤄낸 태극 전사들━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대다수
2014년 6월 21일.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 제22보병사단 GOP(일반전초) 한 소초의 경계작전이 끝날 무렵, 그곳에서 잇단 총성과 수류탄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삽시간에 소초는 아수라장이 됐다. 가해자는 임도빈 병장. 그는 원한을 품었던 이들, 그리고 같이 근무했던 이들을 총으로 조준해 한명씩 사살했다. 그리고는 소초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소초를 떠나 고성 이름 모를 산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 사건은 임도빈 병장의 이름을 따 '임 병장 사건'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총기 난사 사건이 많았지만 해당 사건이 유명한 것은 전역을 3개월 앞둔 병장이 벌인 총기 난사사건이기 때문이다. 임 병장은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총기 난사로 5명 숨지고 7명 부상…임도빈 병장 생포━ 9년 전인 6월21일 오후 8시15분. 이날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55분까지 주간 경계 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임 병장은 무기를 반납하지 않은 채 약 20분 후 동료 장병에게 수류탄 1발을 던지고
1975년 6월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혜화동)에서 한 여성이 실종됐다. 여성의 아이들은 그날 밤 "뭔가 태운 냄새가 났다"고 증언했다. 이후 살해 당한 그 여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범인은 사건 다음 날도 태연히 거리를 산책했던 남편이었다. ━환경미화원이 발견한 사람 뼈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한 동네 골목에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봉투를 수거하다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뼈를 발견했다. 경찰은 국과수에 조직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 훼손된 사체는 사람의 뼈였다. 당시 이팔국의 아내 이숙자(사건 당시 43세)의 실종 신고 6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경찰은 이숙자의 남편 이팔국(사건 당시 47세)과 이팔국의 전처 소생 및 의붓자식들을 모두 소환해 대질심문을 벌였다. 아이들은 사건이 벌어진 20일 새벽에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고 다음 날 아침 피비린내를 맡았다며 "아버지가 '벌레가 끓어 그런다'며 소독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사체가 피해자 이숙자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팔국
2000년 6월19일 새벽 4시. 안산시 원곡동에서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새벽에 귀가하던 40대 주부가 과다 출혈과 쇼크로 사망했다. 안면과 머리 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돼 있었다. 이 주부는 퍽치기를 당해 쇠망치로 2번 가격을 받았다. 옷은 벗겨져 있었고 신체 주요부위가 훼손돼 있었다.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빼앗긴 금품은 현금 4만원과 금목걸이 뿐이었다. 주부를 발견한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수사 중 비슷한 수법의 강도살인미수 사건이 7건이나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달 전인 2004년 4월 28일 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남모씨(여, 당시 23세)도 같은 유형의 범죄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이 남모씨의 머리를 가격했고 피해자에게 현금 3만원을 빼앗았다. 이후 그녀의 옷을 벗기고 성추행했다. 이후 두달 만에 40대 부부를 같은 수법으로 살해한 것이다. 범인은 살인 일주일만에 또다른 범행을 저질렀다. 2000년 6월25일 새벽 2시
"며느리와 손녀딸이 사라졌어요." 2008년 6월18일 아침, 한 할머니가 며느리와 손녀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경찰서를 찾았다. 모녀가 사라진 건 전날인 17일. 며느리 윤복희씨(당시 47세)는 딸 김선영양(당시 16세)을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준 뒤 귀가하던 중 행방이 묘연해졌다. 김양 역시 학교에 간 뒤 오전 수업만 듣고 조퇴한 뒤 자취를 감췄다. 약 2주가 흐른 7월1일, 모녀는 끝내 강화도의 한 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나갈 이유 전혀 없는데…" 집 나간 며느리·손녀, 돈 찾고 행방 묘연━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윤복희씨는 딸 김선영양을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준 뒤 집에 돌아왔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는 장을 보러 나간 뒤였다. 윤씨 홀로 집을 지키고 있던 그때, 집 안에 숨어있던 20대 젊은 남성들이 윤씨를 덮쳤다. 이들은 윤씨 소유의 차를 타고 윤씨와 함께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 도착 전 윤씨는 딸 김양의 담임교사에게 딸의 조퇴를 요구했고, 이날 오후 12시30분쯤
2008년 6월 17일 오후 8시 30분경. 서울특별시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부근에서 한 남성이 전처였던 김 모씨(당시 32세)를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 남성은 당시 김씨와 함께 있던 남자친구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후 왕복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아났다. 그리고 15년이 흘렀지만 그는 도주 중으로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탓에 사망설부터 밀항설, 성형수술설까지 각종 추측만 난무하다. 그는 왜 전처를 죽였을까. 그리고 아직까지 잡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처 살해 후 15년째 도주중…'대한민국 지명수배자 1번' 황주연━전처 김씨를 살해한 용의자는 황주연이다. '대한민국 지명수배자 1번'인 황주연은 1975년 2월 6일생으로 생존해 있다면 현재 나이 48세다.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서 농기계 거래 중개, 택시 기사, 다단계 간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생활했다. 황주연은 김씨와 1997년 결혼해 전북 남원에 거주했다. 김씨는 결
2018년 6월 16일. 전남 강진군에서 아르바이트하러 나간 여고생 이 모양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양은 실종 전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아버지의 친구 A씨가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기로 했다"는 글을 남겼다. 그런데 이양이 만나러 간 A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양 역시 실종 9일 만에 해발 250m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돼 사건은 숱한 의문을 남겼다. ━알몸에 짧게 잘린 머리카락…실종 9일 만에 발견된 이양━ 경찰에 따르면 이양은 실종 6~7일 전 A씨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A씨는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주변에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이양은 실종 전날 SNS로 친구에게 "아르바이트가 처음이다. 떨린다. 내일 큰일이 나면 신고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CCTV로 동선을 추적한 결과 이양은 실종 당일 오후 2시쯤 A씨와 한 공장에서 만났다. 20분 만에 A씨가 타고 온 차를 타고 공장을 빠져나갔으며, 같은 날 오후 4시 24분
"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오원춘 사건 관련 경찰 녹취록 일부) 2012년 6월 15일,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뒤 시신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오원춘에 대한 1심 재판이 열렸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이동훈)는 오원춘에 대해 "자신과 관계가 없는 피해자를 계획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시신까지 훼손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저해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반성의 기미나 개선의 여지가 없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이는 같은 해 4월 1일 발생한 사건에 따른 판결이다. 조선족인 오원춘은 20대 여성 곽모씨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살해 후 시신을 토막 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시신을 무려 280조각으로 해체해 충격을 안겼다. ━112 신고했으나…"주소가 어떻게 되죠?"━ 2012년 4월 1일 오후 10시 32분, 피해자 곽씨는 오원춘에게 갑자기 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