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총 995 건
1998년 6월14일 오전 2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을 지나가던 모범택시기사가 한 건물 지하 1층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피를 흘리며 기어 나오는 여성을 목격했다. 여성이 빠져나온 곳은 '사바이 단란주점'. 술을 마시던 남성 3명이 강도로 돌변해 주점 주인 A씨(41·여)와 손님 B씨(38·택시기사), 손님 C씨(41·여) 등 3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여성도 중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죽은 체해 살아남았다. 현장에는 수많은 지문과 발자국, 혈흔은 물론 목격자까지 있었지만 남성 3명의 행방을 끝내 찾지 못했다. 법의학자들은 가장 잔인한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점 안 결박된 채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신고를 받고 주점으로 출동한 경찰들은 주점의 불을 켜고 경악했다. 화장실 세면대는 배수구를 막은 흔적과 함께 물이 틀어져 있었다. 세면대에서 넘친 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다량의 혈흔과 섞여 흥건했다. 한 방에는 30~40대 남녀가 결박된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곳 여주인과 각각 온 두
2013년 6월 13일. 한 보이그룹이 데뷔했다. 이 때만 해도 이들이 10년 후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들썩일 슈퍼스타가 될 줄은 몰랐다. 바로 방탄소년단(BTS)이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6월 13일 첫 싱글 '2 COOL 4 SKOOL'(투 쿨 포 스쿨)을 선보이며 공식 데뷔했다. '힙합 아이돌' 콘셉트였다. 방탄소년단은 신생 기획사 출신의 '흙수저 아이돌'로 시작해 '성장'과 '희망'을 주제로 한 노래를 잇따라 히트시켰다. 멤버들의 작사작곡 능력과 안무 소화력, 일관된 성실함 등은 글로벌 팬덤을 점차 넓혀갔고 전세계에 팬들을 만들며 식지않는 인기를 얻었다. 방탄소년단은 마침내 데뷔 10년인 올해, '21세기 비틀즈'라는 수식어를 가질 만큼 날아 올랐다. ━'흙수저 아이돌'에서 세계적인 스타━ 그해 '제9회 멜론 뮤직 어워즈'와 이듬해 초 열린 '제28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제23회 서울가요대상' '제3회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 등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주목 받았다. 이후
1995년 6월12일 오전 8시40분쯤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서 흰 연기가 새어 나왔다. 경비원은 해당 세대에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화재를 의심한 경비원이 119에 신고했다. 연기의 원인은 안방 장롱에서 시작된 화재였다. 출동한 소방관은 10여분 만에 불을 껐다. 현장을 수습하다 들어간 욕실 안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30대 초반의 여성과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된 것. 치과의사 엄마인 최모씨와 한 살배기 딸의 사체였다. 이때 남편인 외과의사 이모씨는 개인 병원을 개원하는 날이어서 외출한 상태였다. 이른바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은 초동 수사 실패로 미궁에 빠져버린 사건으로 28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용의자가 오전 7시 출근한 남편?━경찰과 검찰의 조사 자료에 기록된 사건 관련 정황을 보면, 최씨 모녀는 목이 졸린 듯한 자국이 있는 상태로 물이 담긴 욕조에 떠 있었다. 최씨가 입고 있던 흰색 반소매 티셔츠는 벗겨
2000년 6월 11일 오후 10시30분.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 있는 노부부의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의자는 노부부 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 집을 뒤졌고 잠에서 깬 정모씨(여, 당시 68세)를 칼로 찌른 뒤 인기척을 듣고 깬 남편 강모씨(남, 당시 68세)도 찌른 뒤 도주했다. 정 씨는 사망하고 강 씨는 목숨을 건졌으나 중상을 입었다. 며칠 전에도 살인미수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6월 7일 새벽 1시. 경상남도 진주시 수정동 소재에 있는 과일 도매상에 괴한이 들었다. 종업원 문모씨(당시 30세)에게 발각된 괴한은 종업원을 칼로 12차례나 찌른 현금 10만원을 강취하고 도주했다. 이 괴한은 노부부를 칼로 찌른 신모씨(당시 32세)였다. 하지만 그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갔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1년 5월 8일. 신씨는 금품을 훔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 있는 빌라에 침입해 집을 뒤지던 중 잠에서 깬 30대 주부를 칼로 찔러 살해한 뒤 도주했다. 이
2004년 6월10일. 영국 경찰이 갑작스레 주영한국대사관을 방문했다. 한국인 부인 강모씨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강씨를 살해한 건 다름아닌 영국인 남편. 살해한 상황이 끔찍한 이 사건은 영국한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한국여성 강모씨, 토막살해된 시체로 발견…범인은 남편 영국인━영국인과 결혼해 런던 교외 한인 밀집지역에 살던 한국여성 강모(당시 39세)씨가 2004년 6월 8일 토막살해된 시체로 발견됐다. 살해 당한 강씨의 시신은 플라스틱 봉지에 담긴채 자신이 살던 집안 냉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남편 폴달튼(당시 34세)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강씨와 달튼은 7년전 결혼했으며 달튼은 킹스턴 지역에서 한일 학생들을 상대로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남편 달튼은 부부 싸움을 벌이던 중 아내를 주먹으로 폭행했고, 아내 강씨는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기도를 막아 질식사했다. 달튼은 아내를 때린 뒤 곧바로 경찰에 연
"내일 시청(6.10 대회)에 가야 하는데…" 1987년 6월 9일.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앞. 20세 청년이 뒷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정신을 잃기 전 이같이 읊조렸다. 쓰러진 청년의 이름은 이한열. 이한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고 후유증을 앓다 요절했다. 이한열 열사를 영원한 청년으로 남게한 전투경찰의 피격은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됐다. ━대낮에 날아오르는 최루탄에 피격된 대학생…6월 민주화 항쟁 도화선━ 1966년 8월 29일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서 태어난 이한열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광주광역시에서 보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한열은 부모님의 당부에 따라 집에 가만히 있었다. 이한열은 대학생이 되고서야 5.18
1990년 6월 8일 비가 내리는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가정집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강간죄로 감옥에 다녀온 남자가 자신을 신고한 피해자의 집을 습격한 것. 이 남성은 미리 준비한 흉기를 피해자의 일가족들을 향해 무참히 휘둘렀다. 강간 전과를 갖게 한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에 대해 삐뚤어진 적개심이 만들어낸 이 사건은 '노량진 보복 살인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강간 전과 3범…삐뚤어진 적개심이 낳은 일가족 참변 ━ 노량진 보복 살인범의 이름은 박형택. 당시 30세의 나이로 피해자를 강간을 저지르기 전 이미 강간 전과 3범이었다. 박형택은 1986년 9월 24일 당시 고등학생 1학년이던 피해자 석모양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야산으로 끌고 가 강간을 저질러 임신시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석양의 부모는 박형택을 경찰에 고발, 박씨는 1987년 10월 초에 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강간이 반의사불벌죄(의사에 반하면 처벌하지 않는것)에 해
2009년 6월 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0살 여아를 납치, 성폭행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범인의 이름을 따 '김수철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외부인이 평일 대낮 학교에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정부가 학교의 안전망을 더 강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과 12범 김수철, 능수능란했던 범행수법━ 김수철은 1965년 경남 거창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그는 보육원으로 옮겨져 3년간 지냈으며, 이곳에서 동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절도와 폭행, 성폭행 등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1987년 12월 가정집에 침입해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성폭행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2006년엔 15살 남학생을 추행했지만 합의해 기소유예를 받았고, 이듬해인 2007년엔 폭행으로 또 2년간 복역했다. 김수철은 이미 12건의
"골목에 웬 쌀자루가 놓여 있어 열어보니 여자가 숨진 채 들어 있었습니다." 18년 전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초등학교 후문 골목 쓰레기 무단 투기 현장에서 쌀자루에 씐 채 묶여 있는 여성 시신이 환경공무관에 의해 발견됐다. 시신은 여러 끈으로 결박돼 있고 곳곳에는 폭행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사건은 아직 미제로 남아 있는 이른바 '신정동 엽기토끼 살인사건'의 시작이었다. 신원미상의 범인은 이후 두 차례 더 범행을 저질렀고 경찰은 여전히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2명의 피살자와 1명의 생존자━첫 번째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5년 6월 6일이다. 20대 여성 권 모 씨는 이날 병원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그다음 날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권씨는 납치 당일 폭행 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사. 하지만 이 외에 특별한 단서는 없었다. 이후 약 6개월이 지난 같은 해 11월 21일. 신정동 주택가 골목 쓰레기 무단 투기 현장에서 가정주부 이 모 씨가 대형
"대전에서 서울 영등포로 가야 하는데…차비 3000원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16년 전인 2007년 6월 4일, 경기 광명에서 살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오이균(당시 35세)은 조사 과정에서 이같이 밝혔다. 오이균은 검거되기 50여일 전에 대전의 백합다방에서 40대 종업원 A씨를 살해하고, 또 다른 종업원 B씨에게 상해를 입힌 뒤 도주했다. 백합다방 살인 사건은 수사 초기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자칫 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DNA 분석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과학수사 기법이 빛을 발하며 "이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다"는 수사기관의 다짐을 뒷받침해준 셈이다. ━흉기 들고 영업 전인 다방서 범행…경찰은 몽타주 배포━ 오이균은 2007년 4월 15일 오전 9시쯤 대전 백합다방에 들어갔다. 당시 다방 안은 영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이때를 틈타 오이균은 종업원 A씨에게 다가가 흉기로 찔렀다.
2020년 6월3일. 9살 소년을 여행가방에 가두고 7시간 동안 감금시켜 사망하게 한 계모 A씨(당시 40대)가 구속됐다. '천안 계모 캐리어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전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사람이 아니다"며 A씨의 신상털기에 나서기도 했다. ━물조차 주지 않은채 7시간 가둬…"훈육 차원" 주장━A씨와 B군의 친부는 각자 이혼한 상태로, 결혼은 하지않고 2018년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각각 두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평소 집에는 A씨와 친자녀 둘, 그리고 B군과 B군의 동생이 살았다. 친부는 출장이 많아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친부가 없는 B군과 B군의 동생은 A씨에게 혼나거나 맞는 날이 잦았다. 맞다 못한 아이의 동생은 부모를 졸라서 친모에게 보내졌다. 혼자 남겨진 B군에겐 지옥같은 나날이 시작됐다. 결국 2020년 6월 1일 오후 7시25분. 충천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의 한 아파트에서 당시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2014년 6월 2일. 50대 남성을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전기톱으로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여성 고 모 씨(당시 36·여)가 구속됐다. 당시 이 사건은 일반적인 살인과 달리 범행 수법이 다소 엽기적이었기에 용의자가 여성 한 명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경찰 조사에서 여성은 범행 동기에 대해 성폭행을 피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밝혀진 사실과 수사 과정에서 여성이 보인 태도는 모두를 소름 돋게 했다. ━"우리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애인 할까요?"━고씨와 피해 남성 A씨의 만남은 2014년 5월 25일 한 유료 성인 채팅 사이트에서 성사됐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던 고씨는 A씨에게 "우리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애인 할까요?"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바로 다음 날 만남을 약속했다. 사건 당일인 26일 A씨는 아내에게 서울에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서울이 아닌 파주의 한 자동차 극장으로 향했고 인근 도로에서 고씨를 만났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