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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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6 건
2005년 9월 28일. 자신의 은인인 대학교수에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전용술의 사형 선고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교도소 복역 시절 자신을 구명해준 데 이어 수십년간 뒷바라지해준 은인인 대학교수 이모씨를 참혹하게 살해한 전용술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범행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있어 처벌을 통한 교화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에 대해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앞서 사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전용술에 대해 "지극히 반문명적 행동을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반복해 맹수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10대 때 무기징역 선고받은 전용술…피해자는 석방 도운 은인이었다━피해자인 대학교수 이씨는 전용술과 절친한 초등학교·고등학교 2년 선배였다. 10대 시절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바 있는 전용술의 구명을 도운 은인이기도 했다. 전용술은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72년 당시
쓰나미가 휩쓴 곳에 건물 수천 채가 내려앉았다. 당시 해변에선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든 상황이었다. 당초 400여명으로 확인됐던 희생자는 순식간에 800명대, 1000명대로 늘어났다. 5년 전 오늘 인도네시아의 평화롭던 섬을 덮친 지진에 사상자 4340명이 발생했다. ━5년 전 오늘 '인도네시아 지진'…규모 7.5 강진에 '쓰나미' 덮쳐━2018년 9월28일 오후 6시2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북부에서 7.5 규모의 강진이 감지됐다. 앞서 이날 오전 규모 6.1의 지진 발생 후 다시 강진이 찾아왔다. 특히 강진 이후 최고 7m 높이의 쓰나미까지 덮치면서 피해 지역 대부분은 통신이 두절됐다. 피해 규모 집계에 어려움이 이어지면서, 유숩 칼라 당시 인도네시아 부통령은 "사망자 수가 수천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인구 28만명이 사는 주도(州都) 팔루에선 호텔 건물을 비롯해 병원, 대형 백화점 등이 무너져내렸고 산사태로 고속도로도 차단됐다. 현지 지
서울 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 9월 27일, '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육상에서 전대미문의 약물 스캔들이 터졌다. 스캔들의 주인공은 당시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로 주목받고 있던 캐나다의 육상선수 벤 존슨. 100m 9.79초라는 세계신기록으로 라이벌 칼 루이스(미국)를 따돌렸던 그는 금지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기록 및 메달이 박탈됐다. '육상 영웅'으로 불렸던 그는 도망치듯 한국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벤 존슨은 이 사건으로 2년간 선수 자격이 정지됐고, 국제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동메달' 벤 존슨, '육상 4관왕' 칼 루이스를 꺾다━ 1988 서울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육상계의 스타는 벤 존슨이 아닌 칼 루이스였다. 칼 루이스는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100m, 200m, 4×100m 계주, 멀리뛰기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며 4관왕에 올랐다. 벤 존슨은 이 대회 100m, 4×100m 계주 부문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2017년 9월26일 오후 4시10분. 강원도 철원에서 진지 공사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던 육군 이모 일병(당시 만 20세)이 의문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 일병은 곧바로 인근 군병원에 이송됐으나, 같은 날 오후 5시22분 숨졌다. 학수고대하던 휴가까지 단 열흘만을 남겨놓고 눈을 감게 됐다. ━"도비탄에 맞았다" vs "유탄에 맞았다"━ 이 일병이 총탄을 맞는 곳과 400m쯤 떨어진 곳엔 사격장이 있다. 이에 육군은 이 일병이 '도비탄'(딱딱한 물체에 부딪쳐 튕겨나온 탄)에 맞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도비탄에 의한 사고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어 누구도 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는다. 다만 탄두가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도비탄과 달리 이 일병의 머리에 박혀 있던 총탄의 모양은 거의 온전했다. 일부 법의학자는 "깨진 총탄의 모양을 볼 때 외부에서 부딪혀서 날아왔다기보다 머리에 맞으면서 깨진 것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소견을 내놓기도 했다. 국방부가 특별수사팀을 꾸려 확인한 결과
2014년 9월 25일.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이른바 '부림사건'의 피해자 5명이 33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부림사건으로 유죄 판결받았던 고호석(당시 58)과 설동일(58), 노재열(56), 최준영(62), 이진걸(55) 등 5명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사는 판결과 동시에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사법부가 가혹행위를 눈감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피고인들에게 사죄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이끈 부림사건━ 1981년 6월 11일 부산대학교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지검 공안부는 데모 사건의 배후로 부산의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지목한 뒤 모임에 있던 노재열, 고호석 등 학생과 회사원 20여명을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불법 체포했다. 수사 기관이 독서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가 반국가단체
2003년 9월 24일. 대한민국 희대의 연쇄살인마의 첫 살인이 시작됐다. 살인마의 이름은 유영철. 유영철은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명예교수 부부를 둔기로 살해한 뒤 지문과 발자국을 치밀하게 닦고는 대문으로 빠져나왔다. 2003년 9월 시작된 유영철의 연쇄살인은 2004년 7월까지 계속됐다. 유영철이 살해한 이들은 총 20명으로 그는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한 노인이나 출장마사지사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2004년 7월 18일 유영철이 출장 마사지 여성과 접촉을 시도하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에 구속되면서 연쇄살인은 끝이 났다. 유영철은 2005년 6월 사형 판결이 확정됐으며, 현재까지 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수용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일명 '사이코패스 검사' PCL-R 검사 거의 만점…잔인한 범행 수법 '충격' ━ 유영철은 과감하고 잔인한 범행 수법으로 당시 사회를 놀라게 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망치나 칼을 범행도구로 삼았다. 그는 증거인멸을 위해 방화·사체
2013년 9월 23일 밤 11시 45분쯤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한 가스배달업체 사무실에서 발생한 폭발음이었다. 폭발로 발생한 화재는 30여분 만에 꺼졌지만 깨진 유리창 밖으로 불길이 치솟고 주차된 차 지붕 위까지 파편이 튀는 등 현장 주변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됐다. 또 2명이 목숨을 잃고 가스배달업체 사무실 안에 있던 직원을 포함해 주민 12명이 다쳤다. ━늦은 밤 들려온 엄청난 굉음…"지진 난 줄 알았다"━경찰 조사에 따르면 대구 남구 대명동 가스폭발 사고는 LP가스 판매업소 직원이 불법으로 가스를 충전하다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가스 판매점 직원인 구모(당시 29)씨는 사무실 안에서 50kg들이 사이펀 용기에서 20kg 가정용 가스용기로 액체 가스를 옮기는 작업을 했다. 구씨는 사이펀 용기에서 LP가스 용기로 옮기기 위해 측도관을 사용했고, 측도관에 남은 LP가스를 7.5m 길이의 호스로 사무실과 붙은 창고로
1983년 9월22일 밤 9시33분. 대구 중구 삼덕동에 있던 미국문화원 정문 앞에서 큰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에 당시 현장에 있던 영남고등학교 1학년 허병철 군이 즉사했고 함께 있던 김철호 순경이 중상을 입었다. 미국문화원의 외벽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인근 건물 유리창이 깨져 흩어졌다. 경찰은 사건의 배후를 간첩 및 공산주의자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美문화원 앞 수상한 가방, 들어 올리자 '펑'…경북대생 5명 용의자 지목━허병철군(당시 17세)은 폭발 직전인 밤 9시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귀갓길에 올랐다. 미국문화원 근처에서 내린 허군은 문화원 정문 앞에 놓인 가방 2개를 발견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허군은 작은 가방을 들고 근처 경찰서를 찾았고, "미국문화원 앞에 다른 큰 가방 하나가 더 있다"고 말했다. 신고를 접수한 김철호 순경은 허군과 함께 현장으로 출동했다. 두 사람이 미국문화원 앞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33분. 허군은
"나는 인간 아니다 ." 추석 연휴 첫날이던 1994년 9월 21일. 살인 범죄집단의 잔혹한 범죄 소식은 화기애애하던 명절 밥상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전국 곳곳에서 소각 암매장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해가며 5명을 살해한 살인 범죄집단 '지존파' 일당 7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검거된 이들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드는 등 시종일관 당당함을 보였다. 심지어 미소를 띠며 "어머니도 내 손으로 못 죽인 것이 한이 된다" "부자들을 더 못 죽여서 한이 된다" 등 반사회적, 반인륜적인 발언을 내뱉기까지해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18세 미성년자를 포함해 평균 나이 21세인 지존파 조직원 중 살인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사형을 선고 받고, 1995년 11월 형이 집행됐다. ━조직 단결 위해 '지옥 훈련'…두목 집 개조해 '살인공장'━ 지존파의 범죄는 우발적인 게 아니었다. 이들은 조직을 결성한 지 한 달여 만에 첫 살인을 저질렀는데, 조직 단결을 위해
남북 이산가족 100명(남북 각각 50명)이 남으로, 북으로 향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들이닥친 조국 분단 40년만인 1985년 9월20일의 일이다. 이날 남북 양측 예술공연단 각각 50명이 함께 상대 지역으로 떠났다. 한국 측 인솔자 김상협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50명, 공연단 50명, 취재기자 30명, 자원봉사자 20명 등 151명이 판문점을 거쳐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평양에 도착했다. 북한에서는 인솔자 손성필 북한적십자회 위원장을 비롯해 남쪽과 똑같은 인원이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산가족 상봉과 공연은 21일과 22일 이틀간 진행됐다. 북한 고향 땅을 밟은 홍성철 전 내무장관 겸 한국식품공업협회장은 북한에 홀로 남은 누님을 생각하며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그는 "고향 방문단으로 평양에 가게 된다는 통보를 받고 누님께 드릴 파라솔 내복과 시계, 양말 등을 선물로 준비했다"며 "꼭 살아계실 것으로 굳게 믿으며 방문 기간 중 만날 수
매년 9월19일, 멕시코 시민들은 두려움에 떤다. 1985년, 2017년, 2022년 세 번의 강진이 이날 멕시코를 강타했다. 최근 두 번의 지진은 1985년 대지진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9월19일에 실시하는 연례 지진 훈련이 끝난 직후에 발생했다. 시민들은 지진 경보가 울렸을 때도 훈련 경보로 생각했다. 하지만 가상상황이 아니었다. 훈련에 쓰인 구급차와 소방차는 인파에 갇혀 움직이지 못했다. 1985년 이날 최초로 발생한 대지진으로 멕시코는 건축물 내진 기준과 지진 대비 훈련을 강화했지만, 이후 지진에서도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세 차례의 지진으로 희생된 사람의 숫자는 1만여명을 넘어섰다. ━5년 전 같은 날 학교서 죽은 아이들 추모하다…또 지진━1985년 9월19일은 멕시코에서 악몽의 날로 기록됐다. 당일 오전 7시17분쯤 규모 8.0의 대지진이 수도 멕시코시티를 강타한 것. 이 지진으로 최소 9500명이 사망하고 3만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날로 정확히 32년 후인 2017년
1996년 9월18일 새벽 1시. 한적한 시골 파출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30대 택시기사. 그는 가까운 해안가에 300t급(상어급) 잠수함 한 척이 좌초돼 있으며, 도로에서 거수자 여러 명을 봤다고 전했다. 이 전화 한 통에 전 군이 발칵 뒤집혔다. 두 시간 만에 경비 태세를 최고 수준인 진돗개 하나로 격상하고, 상륙한 무장공비 15명에 대한 소탕을 시작했다. '진돗개 하나'는 실제 도발이 발생했을 경우 발령되는 가장 강력한 경계조치로 군과 경찰, 예비군은 다른 임무가 제한되고 즉각 지정된 지역에 출동해 수색 및 전투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南 18명·北 24명 사망…오인사격으로 민간인까지━ 좌초한 잠수함은 북한 첩보·정보기관인 정찰총국에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목적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 정찰조원, 안내조원, 승조원 등 모두 26명이 내려왔지만 좌초에 대한 책임으로 승조원 11명이 처형되면서 15명만 육로로 침투했다. 우리 군은 빠르게 공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