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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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3일.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됐다. 콜롬비아 태생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남아메리카에서 손꼽히는 수비수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콜롬비아 국가대표로 연이어 출전했다. ━'우승 후보' 꼽히던 콜롬비아…당시 최약체 미국에 '자책골' 실수━당시 콜롬비아는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로 주목 받았다. 콜롬비아는 남미 지역 예선에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던 아르헨티나를 5대 0으로 꺾는 등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정작 본선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루마니아에 1대 3으로 패했고, 6월23일 열린 2차전에서 개최국이자 당시 A조 최약체로 꼽히던 미국을 만났다. 콜롬비아에게 미국과의 2차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러나 결국 승리는 미국에게 돌아갔다. 경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건 전반 34분. 에스코바르가 미국 하
3년 전인 2020년 7월 2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의 재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경기남부경찰청(당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980~1990년대 경기 화성시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이춘재라고 밝혔다. 화성 연쇄살인의 첫 사건이 발생한 지 34년 만에 범인의 정체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앞서 경찰은 2019년 미제 사건 증거물에 대한 DNA 감정을 의뢰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다른 살인 사건으로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무기징역)이던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 재수사에 돌입해 이춘재의 자백을 받아냈다. 이춘재는 프로파일러들과의 면담에서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화성 지역에서 발생한 10건의 살인이 자신의 범행이었다고 자백했다. 이 과정에서 이춘재는 살인 말고도 34건의 성폭행 또는 강도 범죄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또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에 포함되지 않은,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또 다른 살인 사건에
16년 전인 2007년 7월1일 오전 3시쯤. 인천 남동구 제2경인고속도로 남동고가 밑 도로변에서 택시기사 A씨(당시 43세)의 시신이 발견됐다. 몸에는 흉기로 수차례 찔린 흔적이 있었고, 주머니에 있던 지갑은 사라진 상태였다. A씨의 택시는 시신 유기 장소에서 약 2.5km 떨어진 인천 미추홀구 주택가 골목길에서 발견됐다. 범인들은 증거 인멸을 위해 택시 뒷좌석에 불을 지른 뒤 미리 준비해뒀던 차량을 타고 달아났다. 경찰은 용의 차량 약 6000대를 조사하며 수사망을 좁혀갔지만, 범인들을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결국 사건은 장기미제에 빠졌다. ━ 6만원 때문에 살해…종이에 남은 '쪽지문'으로 16년 만에 검거━9년 뒤인 2016년, 인천경찰청 미제사건 수사팀은 재수사에 돌입했다. A씨의 택시 안에는 범인들이 불을 지를 때 불쏘시개로 사용했던 차량 설명서 책자가 있었다. 이를 눈여겨본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고, 책자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력한 단
2019년 6월30일. 경기도 가평의 한 계곡에서 고(故) 윤상엽씨(사망 당시 39세)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 이은해, 그리고 아내의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 갔던 윤씨는 물에 빠져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사건을 맡은 가평경찰서는 같은 해 10월 변사 사건으로 내사 종결했다. 그러나 익사 사고인 줄 알았던 윤씨의 죽음은 보험금을 노린 아내 이은해(32)와 내연남 조현수(31)의 계획된 살인의 결과였다. 사건 발생 몇 달 전에도 이씨는 윤씨에게 복어 독이 든 음식을 먹이거나, 윤씨를 낚시터 물에 빠뜨리는 등 이미 여러 차례 살인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생전에도 이씨의 계속된 금전 요구에 시달렸던 윤씨는 생활고를 겪으며 주변과 고립됐다. 이씨에게 남편 윤씨는 돈을 위한 도구였을까. ━"복어 피 이만큼 넣었는데 왜 안 죽지"━ 실제 윤씨의 사망은 단순 변사로 마무리 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었다. 2016년 가을 결혼한 윤씨 부부는 상견례나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으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연평도 부근 해역. 남북 해군 경비정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2척의 북한 경비정이 NLL을 남쪽으로 침범, 우리 측은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는데 순간 가까워진 북한 측이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20여분간 벌어진 전투로 우리 해군 참수리 편대 357호정에서 정장(함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을 비롯, 6명 장병이 희생됐다. 북한 함정은 30여명의 사상자가 나온 가운데 화염에 휩싸인 채 퇴각했다. 1999년 6월 벌어진 첫 연평해전에 이어 이것을 제2 연평해전이라 한다. ━월드컵 그날, 北 함정 남하…돌발 사격━군에 따르면 29일 오전 9시46분경 2척의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 388호가 남하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이들이 NLL을 침범하자 우리 해군 '참수리 편대'는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편대별로 북한경비정 1척씩을 맡아 이들을 쫓아내는 작전이다. 북한 684호를 맡은 해군 232편대에서는 기함인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오후.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서울 서초구의 한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악의 안전사고로 기억하는 삼풍백화점 붕괴다. 이날 영업중이던 백화점을 찾았던 수많은 손님과 직원 등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에 깔렸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쳤으며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은 40명에 불과했다. 생존자들도 이후 트라우마 등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었다. 삼풍백화점은 애초 부실공사였던 데다 사고 이전 수많은 전조현상이 나타났음에도 대책이 미흡했다. 건축물 안전관리가 허술하고 각종 제도가 미비하면 얼마나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지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치르고서야 알게 됐다. ━"뚝…드르륵" 붕괴 징후에도 "영업 계속"━28년전 오늘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685-3, 지금의 서초중앙로 188 일대의 삼풍백화점은 불안한 하루를 시작했다. 이 건물은 백화점으로 쓰던 A동과, 레포츠센터 등 각종
2019년 6월 27일. 배우 송중기가 결혼 1년 8개월 만에 아내 송혜교를 상대로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송중기는 이날 이혼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광장을 통해 "송중기, 송혜교는 신중한 고민 끝에 결혼 생활을 마무리 하기로 결정하고, 원만한 합의를 거쳐 협의 이혼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밝혔다. 송중기 측이 이혼 절차 진행 사실을 알린 건 27일 오전 9시로, 전날인 26일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조정신청서를 접수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때다. 이혼 소식은 송중기가 먼저 언론에 보도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예인이 자신의 이혼 사실을 언론을 통해 먼저 공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인데다 상대가 톱 배우인 송혜교라 더욱 더 관심이 쏠렸다. ━한 달 전까지 애정 과시했는데…결혼 1년 8개월 만에 파경━ 송중기와 송혜교는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주연 배우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2017년 7월 열애 사실을 인정했고,
1949년 6월 26일. 서울 종로의 한 2층 가옥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자 항일 무장투쟁 중심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쓰러졌다.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며 숱한 고비들을 넘기고 돌아온 고국에서 총에 맞으며 숨을 거둔 것이다. 범인은 김구가 이끌던 한국독립당(약칭 한독당) 당원이자 육군 포병사령부 소위였던 안두희. 그는 곧바로 붙잡혀 처벌까지 받았지만 이후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범행 동기와 배후 세력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무기징역 선고받았지만 1년 만에 풀려난 안두희━안두희는 군 조사에서 단독 범행을 주장했다. 그는 김구가 남북 협상을 통해서 정치 사회에 혼란을 주고 공산주의자들을 자극하고 찬동시키는 범죄를 저질러 참지 못해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도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안두희 독단적 범행이며 배후는 없다고 밝혔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도 한독당 내분이라고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안두희는 큰 배후가 없다면 받기 어려
"Michael Jackson, king of pop, dead at 50"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 50세에 사망) 14년 전인 2009년 6월 25일,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마이클 잭슨의 부고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CNN은 "우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의 홈비 힐스 구역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자택에서, 그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후 UCLA 메디컬 센터에서 숨진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1958년 8월 미국 인디애나 게리에서 철강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조셉 잭슨에게 음악 교육을 받았다. 조셉은 마이클을 포함한 자기 아들들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것을 깨닫고, 이들로 'The Jackson 5'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은 6세 때 그룹의 리드 보컬로 합류했다. The Jackson 5는 1970년 한 해 동안 4개의 곡을 빌보드 팝 차트 1위에 올리는 대기록을 세우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들
2016년 6월24일.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지를 묻는 국민투표가 역사적 결과로 끝맺었다. 23일(현지시간) 투표를 치렀더니 영국민 51.9%가 EU 탈퇴를 선택한 것이다. 유럽의 경제사회 통합이라는 2차세계대전 이후 큰 흐름이 처음 '백래시'(역풍)을 맞은 것. 창설 후 회원국을 늘려가기만 하던 EU가 처음으로 유력 회원국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었다. 자연히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파장이 컸다. ━Why…영국은 왜━직접적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워진 영국과 유럽의 경제여건이다. 물론 그 바탕엔 유럽 대륙과 장기간 전쟁까지 벌이며 쌓아온 영국 특유의 고립주의가 있다. 영국은 대륙의 일에 간섭하지도, 거꾸로 대륙에서 간섭받기도 싫어하는 성향을 확립해 왔다. 그러다 금융위기로 EU 재정이 악화하자 경제규모가 크고 선진국인 영국이 내는 분담금 부담도 커졌다. 난민이 증가하자 이들이 자국민 일자리를 뺏는다는 반발도 커졌다. "우리 먹고살기도 힘든데, 사정이
"나는 살고 싶다" 2004년 6월23일. 눈이 가려진 채 주황색 죄수복 차림으로 울부짖던 김선일씨(당시 34세)의 피살 소식이 전해졌다. 김씨는 같은 해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 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단체에 붙잡혀 참살당한 한국인 희생자다. 이라크 무장단체의 잔악무도한 살인 행위와 선량한 시민의 죽음에 온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사건 발생 후 한국에서는 이라크 추가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이라크 무장세력이 보낸 충격 비디오테이프…"살고 싶다" 호소━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카타르 위성방송인 알자리라 사무실에는 2004년 6월 21일 한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됐다. 해당 비디오테이프 영상에는 이라크 무장세력에 피랍된 한국인의 모습이 담겼다. 피랍된 한국인은 미군 군납업체인 가나무역 소속 한국인 김선일씨였다. 김씨는 영상에서 영어로 "한국 군인들! 제발 여기를 떠나세요.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21년 전인 2002년 6월 22일, 당시 33세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은 홍명보가 페널티킥(PK)을 차기 위해 골대 앞에 섰다. 슈팅하기 전 호흡을 고르는 홍명보의 옆에서 이집트의 자말 주심은 휘슬을 입에 갖다 댔다. 홍명보의 맞은편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국·일본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를 노려봤다. 자말 주심이 휘슬을 불자, 홍명보는 망설임 없이 공을 향해 달려간 뒤 인사이드 슈팅을 시도했다. 홍명보의 발을 떠난 피버노바는 골대 왼편의 그물망을 출렁이게 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카시야스는 골대 반대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바라봐야만 했다. 홍명보의 골로 대한민국과 스페인의 승부차기는 5대 3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진출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4강까진 예상 못해"…기적 이뤄낸 태극 전사들━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대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