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서울 동대문경찰서 청량리파출소 박기동 경사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아요."
지난달 7일 정오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파출소로 한 시민이 다급히 들어왔다. 그는 이미 보이스피싱범에게 한 차례 3000만원을 건넨 상황이라고 했다. 범인은 본인을 증권사 직원이라고 속이고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금을 보내라고 유도했다.
신고자는 "1시간 뒤 동대문세무서에서 만나 4000만원을 추가로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순찰과 민원 대응이 중심인 파출소에서 잠복 수사에 나서는 일은 드물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청량리파출소 소속 박기동 경사(35)는 곧바로 팀원들과 사복으로 갈아입고 현장 잠복에 나섰다.
박 경사는 "날씨가 정말 추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박 경사는 "인근 경비실 등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 실내 공간도 있었지만 범인 도주를 대비해 길가에서 대기했다"고 말했다.
약속한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범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경찰은 잠복이 들켰다고 판단했다. 철수를 준비하려는 순간 동대문세무서에 차를 주차한 한 남성이 신고자에게 접근했다.
신고자의 손짓을 본 박 경사는 현장을 덮쳤다. 그는 국내 한 증권사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체포 직후에도 증권사 직원이 맞다는 진술을 이어갔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보이스피싱 조직 수거책으로 판단하고 긴급체포했다. 지금까지도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이 타고 온 차량은 범행 당일 하루만 대여한 렌터카로 나타났다. 추적을 피하기 위한 치밀한 도주 계획도 있었다.
박 경사는 "신고자에게 접근하는 순간을 놓쳤다면 범인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절차적 문제가 없도록 피의자 권리 고지를 철저히 지키고 현장 증거물 수집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덧붙였다.
범인의 차량에서는 여러 증권사의 서류 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여러 종류의 가짜 서류를 이용해 신분을 바꿔가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 일선에 있는 지구대와 파출소는 △치안 순찰 △민원 처리 △신고 접수 등의 업무가 중심이다. 잠복 수사로 범인을 검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10년차 경찰인 박 경사도 제복을 벗고 직접 범인을 검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경사는 "10년간 기동대 근무와 휴직 기간을 제외하면 파출소에서만 근무해 경찰 제복을 벗을 일이 없었다"며 "이번 사건은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파출소 근무에 보람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