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총 197 건
"당신을 현 시각부로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체포합니다." 지난해 6월 28일 오전, 고혁수 경정이 이끄는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이하 강수대) 소속 형사들이 서울 강남구 사무실 등 3곳을 급습해 브이글로벌 대표 이모씨와 운영진 등 4명을 체포했다. 10개월간 5만여명으로부터 3조8000여억원대 '코인' 사기행각을 벌인 '희대의 사기꾼'이 사로잡힌 순간이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 상 체포 후 48시간 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으면 피의자를 즉각 석방해야 한다. 검사가 구속영장 청구를 위해 관련 서류를 검토할 시간을 고려하면 피의자를 체포한 순간부터 고 경장과 동료 형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6시간 남짓이다. 이모씨 일당을 풀어주면 증거를 인멸하거나 밀항을 할 수도 있었다. 고 경정과 동료 형사 11명은 이틀간 밤을 새워 피의자 심문과 조사를 거듭한 끝에 법원으로부터 이들 일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 ━10개월만에 피해자 5만여명·피해금 3조85
"그 집 음식 먹고 제 아이가 장염에 걸렸어요. 장사 그만두고 싶어요? 빨리 약값이랑 죽값 제 계좌로 보내세요" 일명 '장염맨'이 나타난 건 2020년 5월. 40대 남성 A씨는 전국을 누비며 1년 반 동안 작은 디저트 카페, 음식점, 반찬가게 전화를 걸었다. A씨는 "그 집 음식을 먹은 뒤 장염이 났다"고 주장하며 가게 사장들에게 보상금을 요구했다. A씨가 음식점 사장들에게 요구한 보상금은 최소 1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 돈을 부친 가게도 최소 수십 곳에 달했다. 서울, 경기, 인천, 부산 등 전국 곳곳 경찰서에는 '장염맨' 사건이 접수됐다. 전국적으로 피해액과 피해자가 계속해 늘어나자 지난해 11월 이계형 당시 서울 성북경찰서 수사과장(경정·37)이 나섰다. 이 경정은 경찰서내 1개 팀을 전담팀으로 지정해 추적 수사 활동을 벌였다. 이 경정은 수사팀원들과 전국적으로 접수된 사건들의 내용을 살펴본 뒤 A씨의 근거지를 모두 방문했다. A씨가 불법 도박이 이뤄지는 성인 PC방
"죽어야 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대규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장(경정)은 전신인 경남청 형사과 마약수사대장으로 근무하던 2019년경 부인의 신고로 한 마약 사범을 검거했다. 마약 관련 전과 4범의 이 남성은 출소한 이후에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가족들을 괴롭혔다. 무직이었음에도 값비싼 필로폰을 계속 구매하기 위해 돈을 내놓으라며 부인을 닦달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집 안의 가구를 있는대로 부수기도 했다. 견디지 못한 부인이 이 남성을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김 계장은 그 때 죽어야 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마약중독자들을 보고 결심했다. 마약 범죄자를 검거할 뿐 아니라 마약 중독을 치료하겠다고. 김 계장은 2일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마약 범죄 수사는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마약 구매자를 잡고 구매자에게 마약을 넘긴 소매책을 잡는다. 소매책의 입에서 중간책이 나오면 그 중간책을 검거한다. 중간책을 타고 총책까지 잡아내면
법인 13개, 계좌 44개, 입금자 2800여명, 입금액 3000여억원, 거래내역 12만4387건. 2020년 12월, 이동근 부산경찰청 범죄수익 추적수사팀 경사(37)와 팀원들은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압수한 금융거래 내역을 넘겨받았다. 일용직 노동자, 예비 신혼부부 등 2800명이 넘는 피해자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3000억여원을 가로챈 유사수신업체 일당의 거래내역이었다. 유사수신업체는 부동산 부실 채권을 구입한 후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연 30~40%의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 이들 일당이 만든 법인만 13개였다. 이 경사와 추적팀이 거래내역을 훑으며 자금흐름을 샅샅이 밝혀내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피의자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나 숨겨 놓은 범죄수익으로 호화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다. 경찰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이 경사와 추적팀의 밤샘 작업 끝에 피해금액 중 절반에 가까운 1454억원을 몰수 보전할 수 있었다. 몰수
"단순한 인재영입이 아닙니다. 인재 유출이상의 범죄가 의심됩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인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들이 2019년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 산업기술보호수사팀을 찾아왔다. LG 임직원 70여명이 2017~2019년 사이에 경쟁사로 이직했다. LG는 단순 인력 유출이 아니라 영업비밀과 기술을 유출할 목적으로 인력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LG는 이 분쟁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줄 수사기관으로 서울청 산업기술보호수사팀을 택했다. 기술·영업비밀 유출 범죄는 경찰과 검찰, 특허청 특별사법경찰관이 수사한다. 해외 유출의 경우 국정원이 담당한다. LG는 기업의 핵심 이익이 걸린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내 기술 보호팀과 법무팀, 외부 대형 로펌의 조언을 받아 경찰에 경쟁사를 고소했다. 김동극 경감(42)이 이끄는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 산업기술보호수사팀은 여러 차례에 걸쳐 경쟁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수사팀이 굴지의 대기업의 법무팀과 기업이 방어권 행사를
"내 인격은 A랑 J, 두 개가 있어요" 2017년 3월 17일 인천 연수구 한 아파트 옥상에서 초등학생 시신이 발견됐다. 곧바로 잡혀 온 피의자는 고등학교 자퇴생 A양(당시 17세). 경찰이 A양에게 범행을 저지른 이유를 묻자 A양은 본인이 해리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같은 진술을 반복했다. 이진숙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관리계 경위(51)는 횡설수설하는 A양의 상태를 보고 '이 아이는 지금 연기 중일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경위는 매서운 눈초리로 범인을 몰며 추궁하기보다 피의자와의 라포르(rapportㆍ친밀감 혹은 신뢰관계) 형성에 공을 들였다. "어린 학생이었다. 범행과 관련된 걸 물어보면 구토하고 밥도 잘 못 먹는 상태였다. 범죄는 당연히 잘못된 것이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또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는 이 친구가 인간적으로 안쓰러워서 죽도 사다 먹이면서 수사 면담을 진행했다." 이 경위는 6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당시 상황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이진아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수사관(경위·34)은 경찰이 되기 전 회계사로 일할 당시 자금 추적을 했던 일화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1년 23세 나이로 회계사 자격증을 딴 이 수사관은 같은 해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삼일회계법인 감사본부, 2019년 11월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 국유재산 관리기금실에서 근무했다. 이 수사관은 회계사로 일할 당시 한 회사의 횡령 사건 수습에 투입된 적이 있다. 한 직원이 회사가 관리하는 자산을 팔아 11억 매각대금을 챙긴 것이다. 이 수사관은 사후대책 마련 전담팀(TF)에 투입돼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추적 끝에 이 수사관은 횡령 직원이 자금을 축적한 계좌를 찾아냈다. 당시 느꼈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수사관은 이 일을 계기로 범죄 자금 추적에 큰 관심이 생겼다. 결국 2019년 경찰청 회계사 경력채용 2기에 합격해 이듬해부터 경기남부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에서 일하고 있
쉬운 수사는 없다는 게 경찰 수사관들의 공통된 의견이지만 그 중에서도 반부패·공공범죄·경제범죄 수사는 특히 어려운 수사로 꼽힌다. 피해자도 없는 경우도 많고 피의자 대다수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찰은 공무원, 기업인 등 해당 분야에서 수십년간 경력을 쌓은 이들이 '큰 그림'을 그려가며 길게는 수년간 준비한 범죄를 파헤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야만 피의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다. 원종철 경위(39)는 지난해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가 출범한 후 부동산 투기혐의를 받는 포천시청 공무원 박모씨를 구속시켰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투기 의혹 수사에서 1호로 구속된 사례다. 언론에 '포천시청 공무원 사건'으로 알려진 이 수사는 합수본 출범 29일만에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까지 이어진 '속도전'이었다. ━LH사태 후 합수본의 첫 구속 사건 담당…포천시청 외곽부터 수사한 이유━LH사태로 공직
'돌아가 주세요. 신고 취소할게요.' 지난달 23일 늦은 밤. 가정폭력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피해자를 찾아 나선 경찰에게 '신고를 취소하겠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경찰은 신고 취소 문자에도 피해자의 안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3~4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고자는 오히려 경찰에게 ' '아무것도 아니다', '신고 취소했다', '왜 자꾸 전화하냐', '돌아가 달라'는 4통의 문자만 남겼다. 돌아가라고 거듭 요구하는 피해자의 문자를 본 김덕중 경위(46)의 머릿속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이상하다. 피해자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7년차 베테랑 경찰의 촉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너네들이 왜와 XX, 이건 가족 문제야" 흥분한 가해자 달래며 피해자 구한 '베테랑'━신고받고 출동한 지 30여분이 흐른 밤 11시쯤. 김 경위는 경찰서 형사과에 공조 요청을 신청했다. 같은 건물에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빚이 3000만원이에요. 구청에서 주는 기초 생계비로 이자를 갚으면 남는 게 없어요" 아직 날씨가 쌀쌀하던 지난 2월의 어느 날. 지적장애인 A씨가 김예빈 경장(24)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이 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직장동료이자 10년 지기 지인 B씨에게 7년간 8100만원을 빼앗긴 사기 피해자였다. A씨는 피의자가 346차례에 걸쳐 요구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대출과 담보대출까지 받았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는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였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2월 고소장을 내고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됐지만 범죄 피해를 복구하진 못해서였다. 김 경장은 오랜 시간 범죄 피해로 힘든 시간을 보낸 A씨에게 일자리를 소개하고 은행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커피 한 잔에 털어놓은 속마음...대화로 형성된 '라포'━김 경장은 지난 2월부터 경남 창원서부경찰서에서 피해자전담경찰관으로 일하며 범죄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은 범죄 피해자의
"내 몸에 손대지 마요. 성추행 신고할 거야!"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월 어느 날 저녁. 영장을 들고 절도 혐의 피의자를 체포하러 간 인천 남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피의자는 '난 범인이 아니다'라며 경찰서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설상가상으로 여성인 피의자는 남성이 대부분인 강력팀 형사들을 향해 '날 만지지 말라'고 소리쳤다. 막내인 조설 형사(34·경장)가 나섰다. 조 형사는 팀내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피의자에게 다가가니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에 취한 피의자를 상대하는 데는 2~3배 힘이 든다. 말이 안 통하는 건 기본이고 힘도 평소의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피의자는 임자를 잘못 만났다. 조 형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딴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조 형사는 먼저 피의자의 한쪽 팔을 붙잡았다. 저항이 세졌다. "짭새들아" 등 거친 말도 내뱉었다. 하지만 조 형사는 나머지 한쪽 팔을 붙잡고 피의자를 바닥에 눕혔다. 피의자
"끼이익~ 쿵! 쾅!" 순찰차의 추격을 피해서 도주하고 있던 한 남성이 급기야 순찰차 운전석을 들이받았다. 피의자는 창문을 내리고 순찰차를 향해 물건을 내던지는 등 위협 운전을 계속했다. 김성용 광주경찰청 서부경찰서 동천파출소 경사(34)는 운전대를 놓지 않고 그 뒤를 밟았다. 추운 날씨에 잔뜩 쌓인 눈이 채 녹지 않은 도로였기 때문에 추격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김 경사는 순간 '이대로 추격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피의자가 눈길에 취약한 '후륜구동(뒷바퀴로 차체를 움직이는 것)' 외제차를 타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김 경사의 끈질긴 추격 끝에 피의자는 검거됐다. 광주광역시에서 시작된 47분의 추격전은 전남 담양, 장성을 거쳐 결국 전북 고창에서 막을 내렸다. ━순찰차 앞 범퍼 부서졌지만…끈질긴 추격 끝에 검거━동이 채 뜨기도 전인 지난달 6일 오전 5시. 광주 서부경찰서 상무지구대에 '한 남성이 편의점안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위협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