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인천경찰청 과학수사관리계 이진숙 경위

"내 인격은 A랑 J, 두 개가 있어요"
2017년 3월 17일 인천 연수구 한 아파트 옥상에서 초등학생 시신이 발견됐다. 곧바로 잡혀 온 피의자는 고등학교 자퇴생 A양(당시 17세). 경찰이 A양에게 범행을 저지른 이유를 묻자 A양은 본인이 해리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같은 진술을 반복했다.
이진숙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관리계 경위(51)는 횡설수설하는 A양의 상태를 보고 '이 아이는 지금 연기 중일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경위는 매서운 눈초리로 범인을 몰며 추궁하기보다 피의자와의 라포르(rapportㆍ친밀감 혹은 신뢰관계) 형성에 공을 들였다.
"어린 학생이었다. 범행과 관련된 걸 물어보면 구토하고 밥도 잘 못 먹는 상태였다. 범죄는 당연히 잘못된 것이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또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는 이 친구가 인간적으로 안쓰러워서 죽도 사다 먹이면서 수사 면담을 진행했다." 이 경위는 6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 경위는 김양을 매일같이 찾아가 대화를 하며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두터운 믿음을 쌓기 위해 거짓 진술을 반복하는 김양을 다그치지 않았다. 이 경위가 끈기 있게 친밀감을 쌓아가자 김양은 그림그리기, 커뮤니티 활동 등 관심사를 하나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점차 관계가 친밀해지자 김양은 본인이 커뮤니티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에 심취해 그대로 따라 했다고 털어놨다. 김양은 또 공범에게 어떻게 범행을 알렸는지도 털어놨다. 끈질기게 피의자와 라포르를 형성하며 범행 입증에 주요한 자백을 확보한 것이다.
이 경위가 긴 시간 A양과 관계를 쌓아가며 작성한 보고서는 경찰뿐 아니라 검찰에도 제출됐다. 검찰은 김양을 살인 및 사체 훼손·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대법원은 2018년 9월 김양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7년 프로파일러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 묻는 말에 이 경위는 "아직도 오싹하다"며 2013년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피의자 집에서 피의자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 경위는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찾으러 나가기 전날까지 당시 사건 피의자 B씨의 아내이자 공범인 C씨와 원룸에서 함께 잠을 자면서까지 친밀감을 유지했다. 경찰은 이 경위가 확보한 피의자의 진술로 피해자들의 시신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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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위는 " C씨가 원래 자기는 수면제를 먹는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야산에 시체를 찾으러 가는 날 C씨가 수면제를 핑계로 아침 일찍 깨지 못하거나 잠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같은 방에서 자게 됐다"며 "그런 일로 C씨의 집에 방문한 날 C씨가 내게 마시라며 음료수를 한 잔 줬다. 어떻게 C씨가 생각을 자칫 잘못해 수면제를 탄 음료를 줬어도 안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라포르가 이미 형성됐는데 안 먹으면 이제 그 상황이 깨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수면제 탄 음료를 줬어도 마셨을 것이다. 제가 지금 여기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없었고 다행히 중요한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프로파일링 기법에서 라포르 형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범죄자가 '이 사람한테는 내 얘기를 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일단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 경위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뒤, 심리학과 사회 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경위는 사회 교육학에서 배운 상담기법들이 범죄자와의 라포르 형성과 심리를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이들이 어떻게 나를 믿고 좀 얘기할 수 있도록 상담 공부를 하고 실습했던 것들이 잘 섞여서 범죄자들이 마음을 좀 내려놓고 편히 얘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프로파일러 후배들이 이 경위를 부르는 별명은 '이진술'이다. 이진숙이라는 이름 끝 글자 숙을 술로 바꿔 진술의 베테랑인 이 경위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별명이다.
이 경위는 17년간 성범죄자, 살인범 등 300여 명 넘는 범죄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이 경위가 만난 범죄자 중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59),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39) 등도 있다.
최근에는 남편을 계곡에 뛰어들게 하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이은해 사건 프로파일링에도 참여했다.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발견된 이은해와 전 남편의 대화 내용을 분석하기도 하고 주변인들의 진술 조사를 통해서 해당 사건은 '가스라이팅(상대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것)'에 의한 살인이라는 결론이 담긴 보고서를 검찰에 전달했다.
한 번은 경찰청 안 사무실 자리까지 건강음료를 배달해주는 직원이 한 번은 이 경위가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혈흔이 가득한 사건 사진을 아무렇지 않게 보는 것이 대단하다고 칭찬한 적도 있다. 이 경위의 지인들도 '잔인하고 징그러운 것을 매일 보고 범죄자를 마주하는 게 어렵거나 무섭지 않냐?'고 자주 묻는다고 했다. 이 경위는 "그래도 비위나 담력이 강해서 다행이다. 정말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적성에 맞는다"며 웃어 보였다.
이 경위는 "프로파일링 기법 중에서도 어떤 사건은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사용해야 하는 것도 있고, 어떤 사건은 진술 분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법최면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렇게 도전적이고 새로운 상황이 어떻게 보면 안주하지 않고 계속 프로파일링 일을 할 수 있는 어떤 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찰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억울한 이제 피의자도 범죄자도 피해자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미제 사건을 남기지 않는데 일조하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