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충전소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구석구석 다니며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일들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은 날에 이리로 와서 쉬세요. 쪼그라 들었던 좋은 마음을 꺼내어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구석구석 다니며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일들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은 날에 이리로 와서 쉬세요. 쪼그라 들었던 좋은 마음을 꺼내어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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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밤 9시. 믿기 힘든 폭우가 퍼붓던 강남역과 교대역 사이 어느 사거리. 엄청난 빗줄기에 이미 웬만한 차들은 모두 물에 잠겨 버렸다. 수위는 위태롭게 높아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사방이 흙탕물에 잠겨 고립된 차 트렁크에, 60대쯤 될법한 여성이 홀로 있었다. 그는 차 트렁크 안에 간신히 앉아 버티고 있었다. 그의 남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뭐라도 꽉 잡고 있어!"라고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에 차가 급격히 잠겨왔다. 그때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던 20대 남성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거길 지났고, 살려달란 여성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남성은 물에 떠다니던 주황색 '주차금지 표지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어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174cm 되는 그의 키에, 물이 턱 끝에서 찰랑거렸음에도. 그는 흙탕물 속에서 수영해 고립된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차금지통을 건네어 붙잡게 했다. 그 통을 한
태어나보니 '개 농장'이었다. 철제 뜬장에선 맘 편히 설 수조차 없었다. 살이나 찌우라고 주어진 건 음식물 쓰레기였다. 먹고 배변을 하고, 악취 위에서 다시 먹었다. 죽을 때가 되어서만 바깥에 나왔다. '체리'도 그랬다. 인천 계양산 개 농장에서 태어났다. 2020년 어느 봄날, 계양산을 산책하던 한 시민이 개들의 외침을 들었다.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발길이 닿은 곳엔 개 농장 개들 300여 마리가 있었다. 시민들과 동물보호단체인 케어가 힘을 합쳐 그 개들을 구했다. 개 농장은 기적처럼 '보호소'가 되었다. 지금은 '아크 보호소(@ark_animalrightskorea)'라고 부르고 있다. 복날 다 죽을뻔한 개들은 비로소 살아났다. 보호란 걸 받는 것도 아주 처음이었다. 아플 땐 치료를 받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가족도 만났다. 그 과정은 2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무척 고되다. 아크 보호소는 힘든 와중에도, 돌보고 치료하고 가족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재
여행을 안 좋아하던 남자가 여행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다. 까칠했던 남자는 착한 여자를 오래 만나며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던 여행지에서 우연히 이런 대화가 시작됐다. "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행복의 정점에서 시작된 '물음표'는 기부 이야기로 흘러갔다. "우리 그럼 기부도 많이 하자", "근데 기부금은 오롯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갈까", "사업비론 얼마나 제하고 얼마나 가는 걸까." 기존 기부 단체를 비판하자는 게 아녔다. 이런 분들이라도 없으면 돕는 일 자체가 사라질 걸 알기에. 다만 기부하려는 이들의 의문 또한 응당히 가질 수 있는 거라 여겼다. "그럼 우리가 시작해볼까?" 그날 별이 너무 많아서인지, 두 사람은 그런 결심을 했다. 그 계획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랬다. 1. '공정한 기업'을 만들어서 기업 이윤 100%를 기부한다(사업 운영비 제외하고). 2. 그 기업이 안정화 되면 '기부하는 플랫폼'을 만든다. 3. 기부 플랫폼 '운영
다섯 명의 아이들은 놀이공원을 못 가봤다고 했다. 놀이공원은커녕, 가정에서 학대 피해를 겪은 아이들이었다. 수시로 맞고, 발가벗겨져 내쫓기고, 무방비로 방치되고, 무시 당하거나 찍어눌렸다.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은, 이제야 돌봄을 받으며 한집(그룹홈)에 함께 살고 있었다. 고스란히 상처가 남은 채로.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아이들과 문득 약속을 했다. "선생님하고 한 달간 약속을 잘 지키면 놀이공원에 데려갈게. 어때?" 그러자 아이들은 노트를 가져와, 지켜야 할 약속을 열심히 썼다. 약속 잘 지키기, 거짓말하면 고백하기, 친구들과 나눠 먹기, 저녁에 양치 잘하기 등. 끝으론 동그라미 30개를 그렸다. 하루 잘 지킬 때마다 동그라미를 긋겠다는, 귀여운 각오였다. 30일이 짧았던 아이들은 약속을 잘 지켰다. 공 대표와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도 어른답게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지난달 중순 무렵,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놀이기구를 즐겁게 타고, 퍼레이드도
지난해 6월 12일 오후 4시쯤이었다. 한 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투명 방음벽'을 향해 날아오는 참새가 보였다. 스티커를 다 붙이고 정리하던 배선영 녹색연합 활동가가 그걸 봤다. 그는 순간 긴장했다. 참새의 평균 비행 속도는 시속 45km. 유리가 있는 걸 모르고 그대로 통과하려 하다간 부딪혀 죽을터였다. 전국의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 새가 하루에 무려 2만 마리나 되었다(환경부 통계). 그대로 날아와 충돌할 것 같았던 참새는, '투명 방음벽'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배 활동가의 눈엔 그리 보였다. 그러더니 돌연 방향을 위로 틀어 유리창을 피해서 날아갔다. 죽을뻔한 참새가 살았다. 배 활동가는 홀로 엄청 감동 받고 뿌듯해했다. 생명을 구한 그 짧은 순간이 '슬로우(slow) 비디오'처럼, 몇 번씩이나 느리게 반복 재생됐다. 날아오던 참새는 어떻게 유리창이 있단 걸 알고, 피해서 살 수 있었을까. 그건 그날 녹색연합 활동가와 시민들이 하루종일 투명 방음벽에 아주 특별한 '스티커'를 붙인
폐업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끝을 결정한 이는 작은 디자인회사의 최모 대표였다. 청춘을 바쳤으나 코로나19로 더 버틸 수 없게 됐다. 그게 지난 2월이었다. 거래처마다 다니며 죄송하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하고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 가장 마지막에 만나러 간 이가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협력해오던 작은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의 홍세범 대표였다. 정도 도움도 많이 나눈 터라 유독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최 대표는 폐업 상황을 설명했다. 혹시 잔금을 300~500만원 정도 미리 주실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리고 "버티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묵묵히 듣던 홍 대표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앉아서 기다리는데, 잠시 뒤 최 대표의 핸드폰이 울렸다. 3000만원이 입금됐단 문자였다. 보낸 이는 홍 대표였다.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녔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최 대표는 프린터기 A4용지를 가져와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돈을 빌려준 이는 그 종이마저 찢었다. 함
2019년 봄이었다. 김가을씨(가명)의 옆집에서 기타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집의 방음이 잘 안 되는 편이었다. 옆집과 대화도 될 정도였다. 기타리스트가 연주를 잘하는 날엔 벽을 두드리곤 했다. 일종의 '박수'를 친 거였다. 그러면 "감사합니다"란 청년의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3년을 응원한 어느 날이었다. 벽 너머에서 기타리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제 쇼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드디어 싱어송라이터로 데뷔를 합니다." ━ 처음엔 벽 두드리니, '소음 항의'인줄 알고 멈춰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가을씨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2주동안 느슨한 대화를 나눴다. 형도 : 사실 일반적으로는 옆집에서 기타 연주, 노래 소리가 들리면 싫을 수도 있는데요. 가을 : 그렇죠. 저도 처음에 한두 달은 시끄럽단 생각 외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형도 : 그런데 왜 갑자기 응원하게 되신 걸까요? 가을 : 그 분의 실력이 점점 늘더라고요. 처음
철창 사이에서 동그란 큰 눈을 뜨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았다. 당시 인천국제공항 영종도 계류장에 갇힌 고양이 '윤기'의 표정이 그랬다. 윤기는 아빠(보호자)와 함께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다. 그리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거쳐 지난 5일 어렵사리 한국에 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윤기는 입국이 안 된다고 했다. '검역증'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쟁이 한창인 나라에서, 사람과 동물이 포격으로 숨지는 와중에 '검역증'을 받아오란 게 웬말인가. 그러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윤기를 계류장에 묶어둔 채 입국은 안 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 등 다른 유럽 나라 모두 '예외 상황'을 인정해, 함께간 동물 가족을 들여보냈는데도. 심지어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에서 "검역증을 발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문까지 보내줬는데도. 윤기 아빠는 홀로 입국한 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박한 마음에 경북 김천에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찾아갔지만 담당자는 "(검역
동주민센터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는 이를 봤다. 훤칠한 키에 연갈색 안경을 쓴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 대번에 사람 살린 의인(義人)이 이분이구나 싶었다. 다가가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니, 웃으며 인사한 뒤 내게 되묻는다. "앗, 그런데 어떻게 대번에 알아보셨어요?" 그래도 사람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나름의 감(感)이란 게 좀 있다고, 선생님에게서 어쩐지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고 답했다. 그와 카페까지 나란히 걸었다. 오월에 내리쬐는 오후 햇살이 따사로웠다. 살아 있어서 좋은, 아무 대가 없이 누릴 수 있는 것들 아닌가. 그러니 그가 살렸다는 이름 모를 생명이 더더욱 다행스레 느껴졌다. 나이가 고작 10대인 여학생이었단다. 주말 저녁 노들섬 인근 한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처음엔 물에 빠졌단 행인의 말에 이 남자는 '설마 누군가 구하겠지' 했다가, 사태가 위급한 걸 알고는 전력 질주해 아이에게 달려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생은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어느새 카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