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이 기타치면, 벽 두드리며 '박수'…3년 뒤 "데뷔했습니다"[인류애 충전소]

옆집이 기타치면, 벽 두드리며 '박수'…3년 뒤 "데뷔했습니다"[인류애 충전소]

남형도 기자
2022.06.04 08:00

옆집 기타리스트 울음 소리에 "노래 잘 부르신다"며 해장국 선물도…기타리스트 "꼭 성장해서 갚으러 올게요"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엔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2019년 봄이었다. 김가을씨(가명)의 옆집에서 기타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집의 방음이 잘 안 되는 편이었다. 옆집과 대화도 될 정도였다.

기타리스트가 연주를 잘하는 날엔 벽을 두드리곤 했다. 일종의 '박수'를 친 거였다. 그러면 "감사합니다"란 청년의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3년을 응원한 어느 날이었다. 벽 너머에서 기타리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제 쇼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드디어 싱어송라이터로 데뷔를 합니다."

처음엔 벽 두드리니, '소음 항의'인줄 알고 멈춰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가을씨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2주동안 느슨한 대화를 나눴다.

형도 : 사실 일반적으로는 옆집에서 기타 연주, 노래 소리가 들리면 싫을 수도 있는데요.

가을 : 그렇죠. 저도 처음에 한두 달은 시끄럽단 생각 외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형도 : 그런데 왜 갑자기 응원하게 되신 걸까요?

가을 : 그 분의 실력이 점점 늘더라고요. 처음 들었을 때보다 부쩍 좋아졌어요. 그래서 조금씩 관심이 가고 있었습니다.

형도 : 그래서 벽을 두드려 '박수'를 치신 거군요. 옆집에선 오해할 수도 있었겠어요.

가을 : 맞아요. 처음에 벽을 두드렸더니 한동안 안 치시더라고요. 그래서 '시끄럽다는 항의로 알았나보다'하고 말았었지요.

기타리스트의 울음 소리에…'노래 잘 부르신다'고 쪽지 응원
통기타
통기타

형도 :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가을 : 어느 날이었는데, 저희 집까지 다 들리게 엉엉 우시더라고요. 그래서 콩나물 해장국을 끓였어요. 해장국을 문 앞에 놓으면서 '노래 잘 부르신다'고 응원했지요.

가을씨가 나중에 안 거지만, 그날은 기타리스트가 애인과 헤어지고 술을 많이 마신 날이었단다.

형도 :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챙겨주신 걸까요?

가을 : 그냥요. 큰 의미는 아녔어요. 원래 '이웃하고는 잘 살면 좋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

형도 : 그 뒤로 벽 치는 박수 응원이, 3년이나 이어진 거고요.

가을 : 네, 저도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힘들고 지치는 날에는 엄청 위로되는 곡을 불러주시더라고요. 백예린의 <Bye Bye my blue> 같은 노래요(기사 쓰다가 틀어 놓았다, 좋다).

'라면 박스' 배달온 것 보며 김장김치며, 명절음식도 챙겨줘
/사진=뉴스1
/사진=뉴스1

마주칠 일은 없어도, 두 이웃은 그렇게 벽을 사이에 두고 응원했다. 음식 같은 것도 챙겨주고 생일 축하도 했단다.

형도 : 불편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따뜻한 일이 됐네요.

가을 : 서로 배려한 덕분에요. 옆집에 라면 박스만 배달오는 거 보면 혼자 밥도 대충 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본가에서 가져온 김장 김치나 명절 음식도 조금씩 싸드리곤 했었어요. 생일도 묻고, 대화도 하면서 친해졌지요.

형도 : '싱어송 라이터'로 데뷔한단 이야기를 듣고 어떠셨어요?

가을 : 제 기분도 설레더라고요. 대견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정이 들만한 시간이잖아요.

그와 관련해 가을 씨는 SNS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남기기도 했었다.

형도 : 마지막으로, 그 분께 전하고 싶은 말은요.

가을 : 언제나 노래 부르시는 것 너무 감사하다고, 앞으로도 항상 응원한다고요.

그리고…옆집 싱어송 라이터가 남긴 편지

안녕하세요, 옆집 백수입니다

3년전 애인과 헤어져 술이나 퍼마시고 부르던 노래를 들어주시고, 다음날 해장국 위에 메모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박수쳐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곤하신 날도 있으셨을텐데 꾸준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데뷔를 할 수 있게 된 이유인것 같습니다. 관두고 싶어 힘들었던 날들에, 간식과 메모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작곡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너무 쉽게 배려를 받은것 같아서 죄송스럽고 너무 감사합니다. 변변찮은 사정에 노래라도 부르게 해주신 은인인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 이사를 가기로 했어요. 꼭꼭꼭 성장해서 성장비 갚으러 오겠습니다. 좋아하신다고 알고있는 오니기리 조금 해서 둡니다.

- 옆집 기타리스트

Ps. 대인기피증이던 제게도 사람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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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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