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농장서 태어난 '체리'가…이젠 엄마 옆에서 잡니다[인류애 충전소]

개농장서 태어난 '체리'가…이젠 엄마 옆에서 잡니다[인류애 충전소]

남형도 기자
2022.07.13 18:00

개농장서 태어나 구조된 '체리', 엄마·아빠 만나 '실내견'으로 새 삶…"누렁이는 집에서 안 기른다고요? 공주처럼 키워서, 좋은 세상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7월 3일, 체리가 가족을 만나 입양가던 날. 무척 기뻐하고 축하해주던 '아크 보호소' 직원들과 시민 봉사자들./사진=아크 보호소(@ark_animalrightskorea) 제공
7월 3일, 체리가 가족을 만나 입양가던 날. 무척 기뻐하고 축하해주던 '아크 보호소' 직원들과 시민 봉사자들./사진=아크 보호소(@ark_animalrightskorea) 제공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태어나보니 '개 농장'이었다. 철제 뜬장에선 맘 편히 설 수조차 없었다. 살이나 찌우라고 주어진 건 음식물 쓰레기였다. 먹고 배변을 하고, 악취 위에서 다시 먹었다. 죽을 때가 되어서만 바깥에 나왔다.

'체리'도 그랬다. 인천 계양산 개 농장에서 태어났다. 2020년 어느 봄날, 계양산을 산책하던 한 시민이 개들의 외침을 들었다.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발길이 닿은 곳엔 개 농장 개들 300여 마리가 있었다. 시민들과 동물보호단체인 케어가 힘을 합쳐 그 개들을 구했다. 개 농장은 기적처럼 '보호소'가 되었다. 지금은 '아크 보호소(@ark_animalrightskorea)'라고 부르고 있다.

복날 다 죽을뻔한 개들은 비로소 살아났다. 보호란 걸 받는 것도 아주 처음이었다. 아플 땐 치료를 받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가족도 만났다. 그 과정은 2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무척 고되다. 아크 보호소는 힘든 와중에도, 돌보고 치료하고 가족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재정적 지원도, 봉사 같은 도움의 손길도 여전히 많이 필요하다.

인천 계양산 개 농장서 태어나, 시민들에게 구조돼 '아크 보호소'에서 살다가, 이젠 엄마와 아빠를 만나 가족이 된 '체리'. 12일 오후,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온 이들의 '가족 사진'을 찍어주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인천 계양산 개 농장서 태어나, 시민들에게 구조돼 '아크 보호소'에서 살다가, 이젠 엄마와 아빠를 만나 가족이 된 '체리'. 12일 오후,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온 이들의 '가족 사진'을 찍어주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7월 3일, 체리도 멋진 가족을 만났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자체도 기뻤지만, 더 뜻깊었던 건 '국내 입양'이기 때문이었다. 개 농장 개들은 대형견에, 여전한 편견 탓에 국내서 가족을 만나는 건 무척 어려웠기에. 아크 보호소에서도 국내 입양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체리가 두 번째였고, 집안에서 사는 '실내견'으로 간 건 최초였다.

김현정 아크보호소 기획위원회 활동가"(체리의) 실내견으로의 국내 입양은 육견협회가 그동안 끊임없이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르다'고 주장하던 걸 깨부수는 사례"라고 했다.

식용견과 반려견, 그 둘을 어떻게든 구분해 개 농장의 정당성을 가지려는 것. 개 농장 뜬장서 태어나 집안에서 살게 된 '체리'가 그 경계를 없애, 개 농장 철폐에 앞장서는 활동가가 될 수 있단 것에 깊이 공감했다. 12일 오후, 서울에 있는 체리네 집으로 향했다. 보호자인 신한슬 씨와 체리를 가족으로 맞게 된 이야길 나누었다.

18년 키운 달곰이 보내고, 봉사하던 보호소에서…운명처럼 만났다
집 안에서 처음 살게된 체리는 왕 소심이지만, 호기심이 많아 천천히 적응하고 있다./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집 안에서 처음 살게된 체리는 왕 소심이지만, 호기심이 많아 천천히 적응하고 있다./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 '체리'가 보였다. 동그랗고 예쁘고 큰 눈에, 귀여운 앞발과 풍성한 꼬리, 그리고 애교 많은 성격. 왕 커서 왕 귀엽단 이야기를 줄곧 듣지만 소심해서 날 두려워하는 게 보였다.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천에도 잘 놀라고, 겁먹어도 짖지도 않아 공격성도 안 보이는 순한 모습이 못내 안타깝기도 하단다. 한 발 정도의 거리를 둔 채, 조심스레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아크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할 당시, 체리와 함께 사진을 찍은 부부./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아크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할 당시, 체리와 함께 사진을 찍은 부부./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형도 : 체리와 만나시게 된 얘기부터 듣고 싶어요.

한슬 : 달곰이란 멍멍이를 키웠는데 올해 2월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18살이었지요. 까만데 가슴만 하얀 개였지요. 노견이니 올해도 잘 돌봐주자, 그 계획만 가득했는데, 영원히 사랑해주고 싶었는데, 그리 떠나니 힘들고 우울하더라고요. 달곰이 돌보느라 못 했던 일 중 하나가 보호소 봉사였는데요. 4월 말부터 계양산 아크 보호소에 가서 봉사를 시작했어요.

형도 : 그때 처음 체리를 만나신 거군요.

한슬 : 체리는 보호소에선 이름이 '소울'이였는데요. 엄청 애교도 많고 쓰다듬어 달라고 하고요. 물청소하고 신문지 깔아주는데, 신문지를 물고 장난치고요. 산책도 많이 안 해봤다고 해서 데리고 나가면,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등산객이 신기해서 바라보는 거예요. 호기심은 많은데 무서워서 가까이 가진 못하고요(웃음).

우린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잠도 자고요./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우린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잠도 자고요./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개 농장이었던 아크 보호소엔 여전히 150여 마리 개들이 남아 있었다. 달곰이를 잃은 뒤 집안에선 환청처럼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저절로 나왔었다. 그런데 보호소에 가선 울지 않았단다. 개들을 만지며 위로를 받았다. 사랑을 주고픈데 받을 이가 없는 허전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형도 : 체리에게 유독 더 마음이 가셨던 이유가 뭐였을까요.

한슬 :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잘 맞는 것 같아요. 4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씩 봤었거든요. 그냥 체리가 편하고 좋더라고요. 체리 데려오기 전에 엄마, 아빠랑 가족 회의하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원래 가족은 운명인 거지, 서로 가족이 되고 싶어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 운명적으로 되는 거야"라고요.

달곰이에게 다 못 보여준 세상, 체리에게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
처음 집에 들어왔던 날, 베란다로 직행해 숨고 싶어했던 체리. 부부는 체리가 천천히 마음을 열 수 있게, 기다려주고 있다. 덕분에 체리도 잘 적응하고 있다./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처음 집에 들어왔던 날, 베란다로 직행해 숨고 싶어했던 체리. 부부는 체리가 천천히 마음을 열 수 있게, 기다려주고 있다. 덕분에 체리도 잘 적응하고 있다./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형도 : 가족으로 맞게 되기까지, 생각도 궁금해요.

한슬 : 달곰이를 2004년에 만났거든요. 걔도 누가 저희 집 앞에 버리고 간 개였어요. 동생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상자 안에서 소리가 나서 발견했고요. 그 당시엔 정보도 별로 없었고요. 달곰이가 노견이 된 뒤에야 애견 펜션이나 수영장을 갔거든요.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떠나보낸 뒤 못 해준 게 속상하더라고요. 체리는 호기심이 많으니,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바다도, 수영장도 데려가 보고 싶고요.

왕 크고 왕 귀엽다더니…실물을 보니 상상 이상으로 더 귀여웠다. 동그란 눈과 다소곳이 모은 앞발이 포인트. 쓰다듬어 주고 빗질해주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사진=귀여운 건 못 참는 남형도 기자
왕 크고 왕 귀엽다더니…실물을 보니 상상 이상으로 더 귀여웠다. 동그란 눈과 다소곳이 모은 앞발이 포인트. 쓰다듬어 주고 빗질해주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사진=귀여운 건 못 참는 남형도 기자

개 농장 안에서 죽을 차례를 기다리다 기적적으로 구조된 아이. 보호소에 있었을 때, 반려견 운동장에 가서 친구들이 우물쭈물할 때에도 계단에 제일 먼저 올라갈 만큼 호기심이 많던 게 체리였다. 집에 데려와야겠다 결심한 뒤엔, 보호소에 두고 오는 게 더 마음이 쓰였다. 하루라도 빨리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7월 3일, '체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집에 데려왔다.

형도 : '체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한슬 : 남편 성이 정 씨고, 제가 신 씨거든요. 그래서 '정신체리' 이렇게 짓게 되었지요(웃음). '정신체리세요' 이렇게요.

졸려서 정신 못 체리는 체리./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졸려서 정신 못 체리는 체리./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형도 : 재밌네요(웃음). 체리가 처음 집에 온 날도 어땠는지 궁금해요.

한슬 : 태어나 처음 집이란 곳에 와본 거잖아요. 베란다로 직행해서 세탁기 앞에 자릴 잡더라고요. 숨기 좋은 구석에, 타일 바닥이 시원해서 그랬나 봐요. 쿠션도 갖다 주고, 더울까 봐 에어컨 틀어서 서큘레이터로 바람도 보내주고 했지요. 간식도 손으로 건네주니 먹더라고요. 그릇에 두면 안 먹고요, 공주님이지요?(웃음) 그래도 긴장하고 어리둥절한 와중에도, 옆에 가서 쓰다듬어주면 핥아주고 그랬어요.

형도 : 아무래도, 보호소에 오래 있었으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한슬 : 맞아요. 켄넬에서 생활하다가, 나흘째엔 켄넬 밖으로 나오더라고요. 가슴줄을 하고 집안 산책도 한 바퀴하고, 벗긴 뒤에도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고요. 빗질해주니까 엄청 좋아하면서 저한테 몸을 기대고요. 호기심이 많은 내향견이에요. 조금 전에도 TV 보고 있는데 왔었거든요. "일어났어?" 하니까 "아니" 하면서 다시 가고요(웃음). 그래도 이제 켄넬에 안 들어가고 방문 앞에서 자요.

산책도 하고, 엄마 옆에서 자고…체리가 오고 더 행복합니다
12일 오후 집 앞 공원에서 산책하는 체리. 산책도 이렇게 잘한다. 조만간 큰 길까지 나가보는 게 목표다./사진=남형도 기자
12일 오후 집 앞 공원에서 산책하는 체리. 산책도 이렇게 잘한다. 조만간 큰 길까지 나가보는 게 목표다./사진=남형도 기자

산책도 곧잘 한다. 체리와, 체리 보호자님과 함께 집 앞 공원에 나가보았다. 나가자마자 금세 꼬리가 한껏 올라가더니, 기분이 좋은 듯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수풀로 들어가더니 냄새를 킁킁 맡고, 나란히 발맞춰서 잘 걷기도 했다. 소변도 봤다. 큰 길가로 가는 건 아직 무서워했다. 오르막이 있는 잔디밭에 들어가더니, 내려오지 못해 불안해했다. 보호자님이 천천히 기다려주니 잠시 뒤 내려왔다.

태어난 뒤 배울 소중한 것들을, 개 농장에 갇혀 살아 못 배웠었다. 이제야 기다려주는 가족을 만나 그리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집 옥상에 가서 산책하기도 한다. "체리야"하고 이름을 부르면 반응이 없다가, 이젠 돌아보거나 반응한다.

형도 : 체리와 살면서 더 아시게 된 게 있으실까요.

한슬 : 소리에 예민하단 걸 처음 알았어요. 아마 어두운 데에 살았었기에, 주변 소리로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얘는 어떻게 지냈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앉아 있었으니까 지금도 주로 앉아 있는 게 아닐까 싶고요. 창문 바깥 차들 소리를 무서워하는데, 아마 개 농장에서 트럭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생겨서 그랬던 게 아닐까 추측하고요.

산책하다 포즈 한 컷./사진=남형도 기자
산책하다 포즈 한 컷./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아마 우리가 잘 모르는, 짐작하기 힘든 삶이 있었던 거겠지요.

한슬 : 맞아요. 그래도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도 많이 알게 됐어요. 빗질을 진짜 좋아하고, 해주면 표정이 달라지고요. 보호소에선 물을 잘 안 마셨는데, 물 마시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자전거도 무서워하고 방울토마토도 무서워하고요(웃음). 아 참, 거울 보는 것도 좋아해요. 자기 비추는 걸 뚫어지게 쳐다봐요.

형도 :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니 정말 가족인 걸요. 체리가 온 뒤에 어떠신가요.

한슬 : 더 행복해요. 개를 학대하고 도살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누렁이는 집에서 안 기른다고, 반려견과 먹는 개는 따로'라고 주장하잖아요. 우리 애기, 공주처럼 키우는 거 제가 똑똑히 보여줄 거예요. 이런 예쁜이를 죽여서 먹으려고 했다니…보란 듯이 잘 살려고요.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르지 않다는 걸, 가족과 새 삶을 살며 아름답게 보여주기를. 그걸 다 떠나서 이젠 더는 고단하지 않고 행복하기를./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르지 않다는 걸, 가족과 새 삶을 살며 아름답게 보여주기를. 그걸 다 떠나서 이젠 더는 고단하지 않고 행복하기를./사진=체리 보호자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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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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