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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주로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삼김(三金)정치'로 상징되는 계파 정치, 이른바 '보스 정치'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가 짧은 정치권 경력에도 단숨에 국민적 지지를 얻고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당선 턱밑까지 득표할 수 있었던 데는 'YS'와 'DJ'로 대표되는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한몫했다. 계파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인물에 대한 추종으로 모일 뿐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화합과 발전'의 정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이 같은 계파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고 그 후유증을 남긴 '과'가 분명하다. 김 전 대통령은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 다양한 인재들을 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자 '상도동계'는 김 전 대통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된다는 '수저계급론'이 2015년을 강타했다. 신분상승과 같은 사회 역동성 덕에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할 정도였던 대한민국에서 계급결정론이라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자 숙제다. 수저계급론이 특히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면 정치권,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에는 학벌계파론이 있다.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자 대한민국 대표 대학인 서울대가 유독 지금의 야당에선 비주류다. 반대로 '비서울대' 출신 인사들이 주류에 포진했다. 학벌계파론이 선명히 드러나는 건 변호사, 그중에서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의 선택이다. 올들어 야권에선 민변의 약진이 뚜렷했다. 문 대표를 비롯, 이종걸 원내대표 최재천 정책위의장 등이다. 탈당했지만 무소속 천정배 의원도 대표적 민변 출신 인사다. 이들이 공교롭게 친노·비노 양 계파의 최전선에 서있다. 19일 현재 이들을 비교하면 [그래픽]처럼 서울대, 특히 법대 출신이 비노에 몰려 있다. 이른바 '서울법대 민변'이다. 이들은
계파정치 즉 패거리 정치는 우리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폐다. 패거리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사안마다 모이지 못하고 보스를 중심으로 명령과 복종의 추종 관계로 모인다. 그리고 복종의 대가로 공천과 자리가 주어진다. 유권자인 국민의 의사보다는 패거리의 의사가 우선한다. 패거리 정치에서는 탈법과 비리도 정당화된다. 패거리 정치는 정당이라는 공동체의 단합을 해치고 국민으로부터 정치를 이간시키고 있다. 패거리 정치는 과거 사색당쟁의 유습이다. 자기들의 논리만으로 생존전략을 세우는 사색당쟁은 화합과 발전의 최대 장애물이었다. 공자는 ‘군자 군이부당(君子 群而不黨)’이라고 했다. 나라를 위한 일에는 힘을 모으지만 사익을 위해 파당을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군이부당(群而不黨)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했다. 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노력은 거대한 물결 속에서 너무 미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주로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삼김(三金)정치'로 상징되는 계파 정치, 이른바 '보스 정치'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가 짧은 정치권 경력에도 단숨에 국민적 지지를 얻고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당선 턱밑까지 득표할 수 있었던 데는 'YS'와 'DJ'로 대표되는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한몫했다. 이회창 전 총재와 함께 정치권에 입문한 진영 새누리당 의원 역시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를 계파정치로 보고 이를 경계해 왔다. 진영 의원이 본 계파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인물에 대한 추종으로 모일 뿐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화합과 발전'의 정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이 같은 계파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고 그 후유증을 남긴 '과'가 분명
#2014년 7월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이번 세월호 침몰사건의 가장 주된 책임자는 해양수산부와 해양수산부의 유관기관이다, 이렇게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장관님께서는 동의하시지요?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예, 동의합니다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번 사건은 사고로 시작했다가 참사로 이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을 살리지 못했던 사상 초유의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장관의 책임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책임은 매우 큽니다. 무한책임을 제가 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수산부는 참사에 책임이 있는 기관임을 자인해왔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피조사기관'의 장으로 참석해 해수부의 무한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해수부가 내부적으로
1987년 직선제 개헌은 앞서 이뤄진 8차례의 개헌과 달리 국민의 힘으로 쟁취한 성과물이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직선제 개헌이란 방향 아래 정치세력 간 타협에 의한 졸속 개헌이나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안고 있었단 뼈아픈 지적도 받았다. 당시 6월 민주화항쟁에서 표출된 국민의 요구는 '호헌 철폐, 직선쟁취'였다. 국민들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인식했고 따라서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상태였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은 신속하게 헌법개정작업에 돌입했다. 집권세력인 민주정의당의 윤길중, 이한동, 권익현, 최영철과 야당인 민주당에서 김영삼계인 박용만과 김동영, 김대중계를 대표하는 이중재과 이용희 등이 8인정치회담을 구성했다. 즉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세 세력 간의 밀실담합 측면이 있었다. 개헌을 위한 8인의 논의는 1987년 7월 31일부터 9월 16일까지 두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는 여러 가지 한계적 상황에 비춰볼 때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은 바로 우리 헌법이다. 우리 헌법은 이제 사회의 발전도 변화도 가로막고 있는 빗장이 돼 국민들을 일정한 테두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낡은 옷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은 그 시절의 정치세력 간의 타협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한 역사적 의미는 평가할 수 있으나 민주적 가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점을 명백히 노출하고 말았다. 대통령 중심제의 핵심인 삼권분립 정신은 막강한 대통령의 힘 앞에서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대통령제는 결국 시대에 맞지 않는 낡고 구겨진 옷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헌법체제로는 미래의 비약을 기대할 수 없고 발전의 도약도 기약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대통령이란 자리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싸우고 있다. 대립, 분열, 갈등으로만 치닫는 정치사회의 구조적 요인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청년 세대들에게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도입부에 스쳐가는 장면으로 기억되는 1988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 이날의 주인공은 노태우대통령이었다. 석달전 치러진 대선에서 2, 3위를 한 김영삼(YS)과 김대중(DJ)은 그 자리에 없었다. 차마 그 자리에 설 염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970~80년대를 거쳐온 사람들의 삶에는 화면 속 노태우 보다는 화면 바깥의 YS와 DJ가 흑백사진 배경처럼 늘 자리 잡고 있었다. 36.6%의 지지율을 얻은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쓰라렸다. '후보단일화'를 놓고 서로 YS냐 DJ냐를 다투며 그들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은 YS와 DJ가 그렇게 미울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테러를 당하고, 국회의원직을 빼앗기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해가며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이른바 '87년 체제'를 만들어냈지만, 그 결과물을 허무하게 '독재
"비례대표를 없애고 국회의원 정원을 줄이는 대신 국회의원 300명 중 100명 정도를 추첨을 통해 돌아가면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 비례대표 선정 관련 논란의 소지도 없앨 수 있고 국민들이 국회가 왜 저렇게 돌아가는 지 직접 경험할 수 있고 정치가 대중에게 좀더 다가가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선거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우던 중 한 재선 국회의원이 평소 아이디어 차원에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풀어놨다. 선거가 대의 민주주의의 통로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대로라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후 꺼낸 이야기다. 국민이 직접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 대신 불특정 다수가 돌아가면서 국회의원을 '해 먹는' 추첨이라니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으로 들릴 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정치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의회 구성을 추첨제와 결합시키자는 제안이 논의돼 왔다. 현대 정치학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로버트 달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커지고 다양화하고 있지만 옷은 작고 낡아 있다. 이런 옷을 입고는 자유롭게 달릴 수도 없고 함께 손잡고 달릴 수도 없다. 미래를 향해 국가의 모습을 새롭게 이룩하는 것이 시대적인 과제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자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다. 첫째로, 시대성을 결여하고 있는 정치 제도를 돌아봐야 한다. 국가제도는 시대적 의미나 성격을 반영해야 한다. 1945년~1950년대는 냉전기였기에 반공체제가 나름대로 시대성의 일면이 될 수 있었다. 1970년~1980년대는 산업화 시대로 산업화를 위한 사회적 동원이 시대적인 과제가 됐다. 1990년대~2010년대는 민주화 시대로 올바른 민주 시민사회 건설이야말로 중요한 시대성이었다. 2010년대 이후는 무엇이 시대성이 돼야 할까? 전자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어 ‘글로벌라이제이션 4.0’에서 요구되는 ‘주체적인 자율성의 시대’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각 개별화된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19대 마지막 정기국회 일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농해수위는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한 뒤 160여건의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었다. 또 지난 국정감사 때 문제제기된 농업용면세유에 관한 청문회 계획서와 국정감사보고서를 채택하고 한·중FTA 대책도 논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60건이 넘는 이 모든 안건들은 이날 농해수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무산됐다. 여야 간사인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 박민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김우남 농해수위 위원장을 포함, 일부 의원들이 2시간여를 논의했지만 결국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향후 일정도 불투명하다. 일각에선 당초 예정된 법안심사소위원회 일정을 다시 잡는 것조차 무의미한 일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부랴부랴 법안심사를 하더라도 향후 '2차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일정과 숙려기간 등을 감안하면 이번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통과 가능한 법안이 '제로'(0)에 가까울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최근 농해수위는
요즘 헌법의 대통령 중임 제한 조항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치권에서 개헌이 화두로 떠오르자 자연히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연임 제한 폐지 같은 권력구조 개편 가능성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제까지 총 9차례 이뤄진 개헌에서 권력구조와 관련이 없었던 때는 1960년 11월 4차 개헌 단 한번 뿐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연임이 불가능단 것은 상식이다. 연임이 아닌 중임은 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당시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정하면서 중임 또한 금지하는 규정을 뒀다. (헌법 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그렇다면 헌법의 중임 금지 조항을 변경하는 개헌을 하면 중임이든 연임이든 가능해지지 않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이는 직선제 개헌 바로 직전 제5공화국 헌법에 해답이 있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 대통령은 간접선출이나마 7년 단임제를 규정했다. 여기에 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