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을 표기하는 '韓'을 쓰는 유일한 가축인 우리의 한우(韓牛)는 오로지 한반도에서만 사육되고 있는 소라는 희소성을 갖고 있다. 야생 소였던 한우는 기원전 2000년쯤 가축화되면서 농경문화 정착과 발달에 큰 역할을 하며 우리 곁에 있어 왔다.
삼국시대에는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는데 일본 기록에도 '한반도에서 대량의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소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농사용 가축인 소를 잡는 것을 금기시할 정도로 중시했으며 한우를 도살할 경우 살인죄로 논할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우가 무려 150만두나 일본에 공출되는 수난을 겪었고, 6.25전쟁 때는 3년 만에 한우가 불과 17만두 밖에 남지 않는 참상을 겪었다. 이처럼 한우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험난했던 과거를 슬기롭게 헤쳐 나온 한민족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한우에 대해 우리 민족의 동질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우는 빠른 산업화와 더불어 농경문화의 향수를 자극하는 민족문화 유산으로서 지위도 갖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로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의 상징으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몇 년 전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한우와 한적한 시골의 노인이라는 소재로 한국인의 가슴속에 숨 쉬고 있는 과거 어린시절의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끌어낸 것이 성공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한우는 산업화, 경제성장과 맞물리면서 일하는 소, 즉 역용우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식품으로 위상이 커지게 되었다. 우리 농가는 한우를 개량하기 시작한지 불과 30년 만에 세계 최고수준의 고품질 한우고기를 생산하며 연간 4조 원대 시장을 형성하는 강력한 한우산업으로 우뚝 서게 됐다. 80년대 무분별한 송아지 수입,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인한 사료가격 폭등, 2000년대 초 수입자유화 압박을 극복한 결과다.
최근에는 '쇠고기 생산이력제'라는 제도를 통해 가축으로서 드물게 안전성과 태생을 확인할 수 있는 족보를 가지게 되는 영광을 누리며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로서 투명성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이런 한우가 지난해 말 터진 구제역 사태로 다시 한 번 기로에 서 있다. 개인적으로 한우의 강력한 국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민족과 같은 생명력을 다시 보여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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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구제역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한우와 축산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한우농가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구제역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인 한우농가들은 대규모 살처분과 이에 따른 침출수 발생, 토양오염 등 환경문제가 언론에 비춰질 때마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한우농가의 한사람으로써 국민들에게 걱정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안타깝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한우농가들은 한우의 위상에 걸 맞는 친환경적이고 위생적인 한우산업으로 탈바꿈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2011년은 축산업의 이미지 쇄신과 함께, 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축산물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한우 사육 농가들이 하루 빨리 크나큰 고통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한우에 대한 믿음과 격려,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