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백발의 비행기 조종사와 대구 케이블카

[기자수첩]백발의 비행기 조종사와 대구 케이블카

오수현 기자
2011.10.16 15:50

최근 출장 차 방문한 호주에서 18인승 경비행기를 탑승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는 승객석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덕분에 바로 앞 조종실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 둘뿐인데도 자리가 꽉 찬 조종실은 경비행기임에도 불구, 상당히 복잡한 계기판과 수많은 버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승객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부기장이 출입구를 잠근 뒤 조종실로 들어오자 백발이 성성한 기장은 코팅해 놓은 손바닥만한 메뉴얼을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10여 개가 넘는 버튼을 순서대로 조작했다. 그리고 반복해서 메뉴얼을 들여다보며 꼼꼼히 순서를 다시 확인하고 계기판을 점검했다.

경비행기를 타본 지인들이 무용담처럼 전해준 위험천만한 얘기에 잔뜩 긴장했던 기자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비행경력 3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백발의 기장이 여전히 메뉴얼을 꼼꼼히 확인하며 비행기 시동을 걸고, 이륙준비를 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난 13일 대구 팔공산에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던 40대 남성이 추락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체장애 2급으로 몸이 불편한 상태였던 이 남성은 갑자기 케이블카 문이 열리는 바람에 그대로 미끄러져 15m 아래로 떨어져 현장에서 즉사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케이블카에 기계적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잊을만 하면 발생하는 이같은 인재(人災)로 인한 후진국형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메뉴얼화된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관행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놀이기구, 비행기, 고속철, 케이블카 등은 특히 관리자들이 하루하루 '초심'으로 메뉴얼 수칙을 따라야 한다. 경험이 쌓이고 익숙해졌다고 마음을 놓을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꼼꼼함과 철저함을 '소심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메뉴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국민들'라며 냉소했던 일본인들이 지난 3월 대지진 당시 보여준 침착함과 질서정연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뉴얼을 철저히 숙지하고 따르는 습관의 힘이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입증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팔공산 케이블카 추락 사고가 우리 사회에 각종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 메뉴얼을 재정비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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