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 인하 방침이 철회되자 "MB노믹스 절반을 포기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 장관을 무력화시킨 정치권은 감세철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증세'를 공론화하고 있다. 복지재원 마련과 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경제여력이 있는 계층이 더 세금을 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조세부담률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25.8%)보다 낮아(19.2%) 세금을 올릴 여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다양한 증세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과 주식양도소득세 부과,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과세 등 백가쟁명식으로 증세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사회 양극화 해소차원에서 부유층에게 좀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것이 좋다는 방안도 제시한다.
이같은 증세론을 MB정부 출범부터 감세정책에 줄곧 반대해온 야당이 주창한다면 일견 수긍할 만하다. 문제는 감세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MB정부를 출범한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급속히 증세론으로 선회하고 있다. 오히려 민주당 등 야권보다 증세 주장에 더 적극적이다.
한나라당의 갑작스런 변신에 유권자들은 물론 정부와 재계 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생물인 것처럼 정책도 일관성 못지않게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이해할 수 있으나 과도한 변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사실 집권여당이 하루아침에 용도폐기했지만 감세정책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치명적 하자를 보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기부양을 위한 기업투자와 가계소비 확대를 위해 적절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세율인하로 세수가 줄어들 것이란 증세론자의 우려와 달리 징수액은 더 늘어났다. 실제로 법인세율이 13~25%에서 11~22%로 최고 3%포인트 인하됐지만 법인세액은 2009년 35조원에서 2010년 37조원으로 2조원 이상 증가했다.
최근 정치권의 '증세'논란의 본질은 단순히 최고세율을 얼마로 설정하느냐에 있지 않다. 국가운영을 둘러싼 경영철학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감세론과 증세론은 정부와 시장역할, 정부규제, 자유무역협정, 성장 및 복지정책 등 국가발전전략 전반에 대한 상이한 입장차이로 이어진다. 가령 '작은 정부'는 감세론, '복지국가'는 증세론과 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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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감세에서 증세로의 입장 선회는 국정운영기조의 근본적인 대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유권자에게 증세론으로 선회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한나라당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본질이 금융에서 재정으로 옮겨졌고 재정적자 축소와 서민들의 삶을 지원하기 위해 변신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하려면 조세당국의 묵은 골치거리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가령 국내총생산(GDP)의 최고 30%에 달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또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원칙에 위반되는 전체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40%가 비과세 면세자인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같은 현실을 놔두고 세금을 올릴 경우 그 부담은 최상위층보다 중하위층에게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대기업 총수보다 대기업 부장이 아무래도 세금인상에 더 많은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99%의 표를 의식해서 1%에게 더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은 정당한 변신 이유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