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교육 오늘의 역사] 1603년 오늘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대관

[MT교육 오늘의 역사] 1603년 오늘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대관

MT교육 정도원 기자
2013.07.25 08:30
영국 왕실인 튜더 왕조·스튜어트 왕조·하노버 왕조의 가계도. 괄호 안의 숫자는 영국(잉글랜드) 국왕으로서 즉위 순서이다.
영국 왕실인 튜더 왕조·스튜어트 왕조·하노버 왕조의 가계도. 괄호 안의 숫자는 영국(잉글랜드) 국왕으로서 즉위 순서이다.

1603년 오늘(7월 25일)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서 대관식을 올렸다. 이로서 잉글랜드 국왕이 스코틀랜드 국왕을 겸하게 되어, 브리튼 섬의 두 왕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같은 국왕 아래 동군연합 형태로 묶이는 정치 체제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1707년 연합법을 거쳐 현재의 영국이 탄생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로열 베이비, 영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의 왕이 되게 된 계기는?

윌리엄 영국 왕세손의 '로열 베이비' 출산 소식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하다. 이 '로열 베이비'는 윌리엄 왕세손이 영국의 '윌리엄 5세'로 즉위하게 되면 '웨일스의 대공' 작위를 부여받을 것이며 이후 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국왕이자 자메이카, 바하마, 그레나다, 파푸아뉴기니 등 여러 나라의 국가원수가 될 것이다.

영국의 국왕이 이 모든 나라의 국가원수가 되는 첫걸음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 기원은 1603년 7월 25일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스튜어트 왕조를 개창한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현재 영국이 자리잡고 있는 브리튼 제도에는 여러 세력들이 난립해 저마다 왕을 칭하고 있었다. 아서 왕이나 알프레드 왕처럼 역사적 사실과 전설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왕들도 많았다. 브리튼 남부에는 7개의 왕국이 난립해 있을 정도였는데 이를 '잉글랜드 7왕국'이라 하며, 이 모든 왕국을 통일하고나서야 비로소 잉글랜드 왕국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 브리튼 섬에서는 스코틀랜드와 싸우고 대륙에서는 프랑스와 싸우던 시절

남부의 혼란이 정리된 뒤 브리튼 제도의 정세는 남동부의 잉글랜드 왕국, 서부의 웨일스 대공국, 북부의 스코틀랜드 왕국의 세 나라의 대립과 항쟁으로 귀결되었다. 그 중 온난한 기후의 평야 지대를 독점한 잉글랜드 왕국이 가장 부유하여 곧 강성해졌다. 잉글랜드 왕국은 서부 산악 지대의 웨일스 대공국을 복속시켰다.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을 왕세자에게 '웨일스 대공'의 칭호를 주는 것은 이 때로부터 비롯되었다.

북부 산악 지대의 스코틀랜드를 복속시키는 것은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여러 차례 영화화가 되었을 정도로 스코틀랜드인들의 격렬한 저항이 계속되었다.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에 대항하기도 했다. 이 때는 잉글랜드 또한 대륙에 적지 않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섬과 대륙 양쪽에서 적을 맞이해 싸우느라 국력을 소모했다.

대륙에 있던 잉글랜드의 영토는 프랑스와의 백년 전쟁을 거치며 거의 모두 잠식당했고, 튜더 왕조의 메리 1세 여왕 치세에 마지막 대륙 영토였던 칼레를 빼앗기며 영국은 대륙으로부터 축출당했다. 한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에 이어 엘리자베스 1세도 후사 없이 사망함으로써 튜더 왕조는 단절되었다.

◆제임스 1세의 즉위를 통해 동군연합을 이루며 브리튼 섬이 하나가 되다

튜더 왕조의 마지막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것은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였으며 그는 스튜어트 왕조를 개창했다. 그의 증조부인 제임스 4세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7세의 딸 마가렛 튜더와 결혼했었기 때문에 그는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얻을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왕실에서는 제임스라는 이름을 즐겨 썼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국왕으로서는 제임스 6세이지만, 잉글랜드 왕실에서는 제임스라는 이름의 국왕 즉위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국왕으로는 제임스 1세가 된다. 그는 1603년 7월 25일 잉글랜드 국왕으로 대관식을 올렸다.

그의 잉글랜드 국왕위 대관이 역사적인 이유는, 이로써 영국은 완전히 대륙과 분리되어 해군력 양성에만 주력할 수 있는 안보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잉글랜드가 대륙 영토를 가지고 있거나, 스코틀랜드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항쟁하거나 해서 영국도 육군력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으며 대륙 정세 변화에 자의든 타의든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임스 1세의 대관으로 인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 명의 군주 아래 묶이는 동군연합 체제가 이루어짐에 따라 더 이상 브리튼 제도에서 육상의 적은 없게 되었으며,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에 의지해 북해와 영국 해협에서 적의 상륙을 막으면서 사방의 식민지로 확장해 나가고 통상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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