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화재]초기대응 실패·스프링쿨러 등 설비 부재… 건축 자재도 가연성 높아 화마 키워

128명의 사상자를 낸 화마(火魔)가 휩쓴 자리는 처참했다. 새까만 그을음이 대봉그린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벽면과 천장을 뒤덮어 사물이 잘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주차장 내부에는 유리창과 타이어가 녹아내린 잿빛 자동차 10여대가 서 있었고 바닥에는 아동용 신발과 유모차 등이 까맣게 타 널려있었다. 화재현장 일대에선 플라스틱과 비닐 등 온갖 물건의 탄내가 진동해 숨을 쉬기 어려웠다.
지난 10일 오전 9시27분쯤 경기도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1층 우편함 인근에 있던 4륜 오토바이에서 화재가 발생해 4명이 사망하고 124명이 부상당했다. 불은 아파트 건물전체를 뒤덮고 왼쪽으로 번져 이어진 2대의 아파트와 인근주택 2채를 더 태우고 2시간10여분 만에 진압됐다.
화재 피해를 입은 건물은 총 248세대로 실제 주민등록이 돼있는 거주자는 175명으로 집계됐다. 11일 기준으로 시에 접수된 이재민 수는 226명이며 이들은 화재 현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경희초등학교 대강당 등에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초기대응 실패·스프링쿨러 등 설비 부재가 불러온 참사
11일 수사본부에 따르면 대봉그린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발화 후 소방 출동까지 17분이나 방치되면서 피해가 커졌다. 수사본부의 폐쇄회로(CC) TV 조사 결과, 화재 당일 오전 9시 13분 1층 우편함 앞에 김모씨(55)가 4륜 오토바이 한 대를 주차한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약 2분 뒤 오토바이에서 화염이 발생했다.
화염은 삽시간에 옆에 세워져있던 2륜 오토바이와 주차장 내 차량들로 번졌으나 화재 발생 11분이 지난 9시 26분에야 주민에 의해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됐고 소방 선발대는 화재 발생 이후 17분 만인 오전 9시 33분에야 도착했다.
소방 관계자는 "아파트 건물 외벽이 가연성 건축자재로 마감 처리된 건물이기 때문에 소방이 출동하기까지 걸린 시간동안 화재가 급속도로 확산됐다"며 "화재발생 후 6분여만에 소방차량이 현장인근에 도착했으나 길이 좁아 진입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아파트 1층에 경비실도 무용지물이었다. 평소 10시에 출근하는 경비원이 이날 화재가 발생한 시간까지 출근하지 않아 화재를 예방하거나 손쓸 수 없었다. 특히 현행법상 스프링쿨러는 11층 이상 건물부터 설치하게 돼있어 이번 화재가 난 10층짜리 대봉그린아파트에는 스프링쿨러가 없었다.
아파트 건축물을 구성한 자재도 스티로폴, 샌드위치 판넬 등 가연성 높은 자재였다. 경찰 관계자는 "건물외벽이 가연성 자재로 마감돼 외벽을 타고 화재가 급격히 확대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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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압 늦어지며 아비규환… '침대보 로프' 타고 내려와
화재 진압이 늦어지면서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5층 거주하던 여성들은 침대보를 엮어 2층까지 내려온 뒤 뛰어내렸다. 또 밧줄을 가스배관에 걸어 줄을 타고 지상으로 대피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낮 12시쯤 한 피해자는 건물 최상층인 10층에서 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고, 이에 헬기가 접근했으나 구조하지 못해 약 5분간 같은 곳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건물 옥상은 화재를 피하려는 거주민들로 채워졌다. 당시 건물 7층에 있다 옥상으로 대피한 정모씨(31)는 "아랫층 사는 이웃들로 인해 화재상황을 알 수 있었다"며 "연기가 시커멓게 올라와서 이웃과 옥상으로 대피한 뒤 구조됐다"고 밝혔다.
건물 안 복도는 조명이 꺼진 채 연기로 가득 차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거주민들이 복도를 뛰어다니며 '살려달라'고 하는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당시 한 목격자는 "화재경보는 없었고 벨이 요란히 울렸다"고 증언했다.
◇의정부시 "치료비 선지급 후 구상권 청구"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사고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화재 원인과 경위, 책임소재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 인근의 CCTV를 확인해 발화 원인에 대한 기초 수사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대봉그린아파트의 건축법 관련 위반 및 하자 사항,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오토바이의 발화 이유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의정부시는 부상자에게 치료비를 우선 지급보증한 뒤 관련 법에 따라 추후 구상권을 청구할 예정이다. 이재민 가구당 구성원수에 따라 63만8000원~154만원까지 생계비를 긴급지원하기로 했다.
힌편 시는 경기도청을 통해 재난 및 안전관리법에 따라 의정부시를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요청, 국가안전처에서 이번 화재사고에 대응해 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