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줄고, 노인 늘고' 소비시장도 양극화

'아기는 줄고, 노인 늘고' 소비시장도 양극화

이지현 기자, 박계현 기자
2015.02.27 10:35

[2020 인구절벽-한국사회 뒤흔든다]<3>변화하는 소비구조

#대한항공에서 23년간 일을 하다가 지난 2009년 퇴직한 소남섭씨(65). 그는 지난 2012년부터 시니어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배우 김상중과 한 상조회사 광고를 함께 찍었다. 해가 갈수록 소씨를 찾는 곳은 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한 남성정장 브랜드 모델로 발탁된데 이어 이달에는 한 저축은행 광고에 은행장 역할로 캐스팅 돼 촬영을 앞두고 있다.

노인인구가 늘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 숫자가 줄어드는 인구구조 변화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소비분야 역시 지각변동을 맞고 있다. 고령층과 영유아를 타깃으로 하는 상품·서비스 시장에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노인 모델을 앞 다퉈 기용하는 등 부유한 노인층을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한편, 노인빈곤율은 50%(2013년 기준 48.1%) 가까이 치솟았다. 영유아 시장 역시 우유·분유 출하량은 줄고 중저가 유아복은 안 팔리는데 반해, 명품은 의류·유아용품 가릴 것 없이 날개달린 듯 팔린다.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자료=통계청 '가계동향조사'·'농가경제조사' 각 연도, 보건복지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 각 연도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자료=통계청 '가계동향조사'·'농가경제조사' 각 연도, 보건복지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 각 연도

◇노인소비층 늘지만 빈곤율도 해마다 증가 추세=노인층을 겨냥한 상품·서비스가 늘면서 시니어모델의 주가는 상승하고 있다. 소남섭씨는 광고촬영, 방송활동을 오가며 연간 2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가 소속된 서울 강남시니어클럽 두드림에는 35명의 시니어모델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 양재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에스엔터테인먼트' 사업단에는 154명의 시니어모델이 등록돼 있다. 소씨는 "홈쇼핑이나 광고 등에서 일반인 모델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은퇴한 노인 모델을 찾는 수요가 예전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고 말했다.

소득수준이 높은 노인 소비자가 취미, 건강용품, 여행 등 자기계발이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갑을 여는 데 반해 소득수준이 낮은 노인소비자는 식료품비, 의료비, 주거비 등 기본욕구를 해결하기에도 형편이 빠듯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재호 부연구위원이 '보건복지 이슈&포커스' 최신호에 발표한 '노후소득의 중장기 전망과 적정성'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자들의 빈곤율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편이다. 고령자간 소득분포의 불평등 정도 역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13년 기준 국내 노인빈곤율은 48.1%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6년 42.8%였던 이 수치는 2013년까지 5.3%포인트 증가하는 등 매년 상승하고 있다. 또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중 노인인구 비율은 2013년 29.9%로, 2006년 25.8%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주성 충북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한국경제지리학회지에 발표한 ‘인구감소 고령화지역의 소매판매활동 특성’을 통해 고령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소매업체의 연간 판매액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고령화지역일수록 연료소매업, 음식료품 및 담배소매업의 구성비 비중이 높았다. 이는 고령사회나 초고령사회에 속하는 시·군이 대부분 농·어촌지역으로 자급도가 낮은 생활필수품을 위주로 소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고령화의 정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종합소매업과 정보통신장비 소매업의 판매액 비중은 높은 편이다.

◇중저가 유아복 시장 고전, 100만원대 유모차는 '식스포켓' 힘입어 활기=저출산시대 유아용품 소비양극화 현상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저출산은 영유아용품 시장의 침체를 부채질한다.

통계청 기준 지난해 국내 출생아수는 43만6455명으로 전년보다 5만명 줄었다. 가임여성(15~49세) 1인당 출산 아이 숫자는 1.187명에 불과하다.

극심한 저출산으로 영유아 숫자가 줄면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 역시 타격을 받고 있다. 유아복 대표 브랜드인 베비라를 생산·판매하던 올아이원은 2011년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9월 국내 1호 유아복 업체인 아가방 컴퍼니는 중국 랑시그룹에 매각됐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저출산 해소 공약'에 힘입어 '정치 테마주'로 꼽혔던 국내 대표 유아복 업체가 1979년 설립 후 처음으로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분유·우유 시장의 위축 역시 두드러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우유 누적 출하량은 126만6902㎘로 전년 같은 기간(129만550㎘)보다 1.8% 줄었다. 분유와 유산균 발효유, 아이스크림 출하량 역시 같은 기간 각각 15.6%, 9.1%, 5.1% 떨어졌다.

이 같은 추세는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국내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03년(38.2㎏)보다 4.7㎏ 줄어든 33.5㎏을 기록했다.

소비층이 얇아졌지만 '식스포켓'이라 불리는 명품 유아시장은 유례없는 활황을 맞고 있다. 식스포켓은 199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1명의 자녀를 위해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 6명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현상을 말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4월 유아용품 수입액은 전년보다 줄었지만 의류와 그림책, 분유의 평균 수입단가는 각각 18.2%, 13.1%, 9.2%씩 올랐다. 명품소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명품로고를 새긴 젖병이 국산 젖병의 10배 넘는 가격으로 판매되지만 없어서 못 살 정도가 됐다. 국내 명품 키즈시장 규모는 연간 2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들 역시 이에 맞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사 NXC는 2013년 5000억원을 들여 노르웨이 유아용품 전문업체 스토케를 인수했다. 유모차 1대당 가격이 100만원을 넘는 등 고급 유모차 열풍을 주도했던 스토케를 한국 기업이 인수한 것이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과거 아이가 많았을 때에는 여러 명에게 투자를 했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아이가 한 명"이라며 "한명의 아이에게 집중하는 소비행태가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양극화 등 소득구조 변화에 인구변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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