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전 오늘...유대인들의 명절날 터진 중동전쟁

43년 전 오늘...유대인들의 명절날 터진 중동전쟁

진경진 기자
2016.10.06 05:52

[역사 속 오늘] 8년 후 같은 날 이집트 대통령 암살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사진=위키피디아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사진=위키피디아

욤 키푸르는 유대인들의 가장 큰 명절이다. 유대 달력으로 새해 열번째 되는 날로 모든 유대인들은 이날 금식하며 1년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기도하고 화해한다.

25시간 동안 국가의 기능은 완전히 정지된다. 버스와 열차, 비행기 등 모든 운행수단이 중단되고 모든 영업시설도 문을 닫는다. 뉴스를 포함한 텔레비전, 라디오도 이날은 방송되지 않는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군인은 소속 부대를 떠나 집으로 가고 최소한의 병력만이 남아 주둔한다.

1973년 10월6일이 욤 키푸르였다. 이날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스라엘로 향했다. 3차 중동전쟁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이집트는 수에즈운하를 건너 시나이반도로 기습공격을 감행해 이스라엘의 거점을 점령했다. 시리아도 이스라엘군의 10배 넘는 병력을 이끌고 골란 고원으로 향했다. 이스라엘 17개 여단은 속수무책으로 전멸했다.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은 핵무기 카드를 검토하게 됐다. 하지만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는 이에 반대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그의 전용기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에게 날아갔다. 두 사람의 만남 이후 미국은 신형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긴급 공수했고 위성으로 이집트·시리아 연합군의 동태를 알려줬다. 결국 전쟁의 흐름은 뒤집혔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미국과 소련에 중재를 요청,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휴전협정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중동에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나이반도는 협정 이후 군대를 배치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집트에 반환됐다.

이후 사다트 대통령은 서방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국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서방국가의 원조가 필요했고, 중동 평화를 위해선 이스라엘의 손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방의 기술과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방정책을 펼치면서 이집트 내에선 외국의 식생활을 즐기는 계층이 생겨나기도 했다. 미국의 군사 지원도 제공돼 미국제 무기를 수입하기도 했다.

아랍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평화계획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아랍권과 소련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수상 메나햄 베긴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불만이 깊어갔다. 이슬람교 국가를 수립하고 싶어한 무슬림형제단 입장에선 유대교인 이스라엘과 가까워지는 정책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더욱이 사다트의 개방정책이 국내 물가상승을 야기하고 부익부빈익빈을 가속화, 서민들의 생활고를 악화시켰다는 평가도 지배적이었다. 결국 1981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군 열병식 도중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다. 이날은 욤 키푸르 전쟁이 일어났던 10월6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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