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전 오늘…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한 비행기 날아오르다"

63년 전 오늘…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한 비행기 날아오르다"

진경진 기자
2016.10.11 05:45

[역사 속 오늘]전쟁으로 피폐해진 삶, '부활호'로 끌어올리려 했던 정부

부활호./사진=위키미디아
부활호./사진=위키미디아

"전쟁으로 무너진 대한민국을 부활시켜라."

6·25 전쟁 막바지 무렵, 휴전을 앞두고 남한에선 국산 항공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만의 기술로 비행기를 만들면 오랜 전쟁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의 사기도 충전되고 '자주국방의 힘'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결국 공군기술학교 주관으로 김해 사천 공군기지에서 경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두 순수 국내 기술로만 이뤄진 작업이었다.

그 결과 △몸체 길이 6.6m △날개 길이 12.7m △높이 3.05m △최대 85마력 △자체 무게 380㎏ △4기통 엔진 △최대 시속 180㎞ △순항 시속 145㎞ △탑승 인원 2명의 경비행기가 완성됐다.

완성된 지 하루만인 1953년 10월 11일 실시된 첫 시험 비행은 성공적이었다.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된 최초의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해 4월 3일 열린 명명식에서 전쟁으로 무너진 나라를 되살리겠다는 의미로 이 경비행기에 '부활'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친필 휘호를 내렸다.

하지만 전쟁 직후 미약한 산업기반과 여러가지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리면서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된 경비행기는 '부활호' 단 한 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부활호'는 공군의 연락·초등 훈련 임무용으로만 사용되다 1960년 대구에 있던 한국항공초급대학에 제작 실습용으로 기증됐다.

6년 후 한국항공초대가 폐교되면서 부활호 역시 기억에서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2004년 1월 경상공고(옛 한국항공대) 지하창고에서 발견된 부활호는 뼈대만 남아있었다. 날개나 엔진 등 주요 부품은 모두 사라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반쯤 벗겨진 채로 남아 있어 '부활호'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군은 부활호 동체의 경우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판단, 날개와 착륙장치 등만 다시 제작하기로 했고 그 해 10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복원이 완성됐다. 복원된 부활호는 현재 충북 청주시 공군사관학교에 보관돼 있고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에는 모형이 전시됐다.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411호로 지정됐다.

이 이야기는 2011년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으로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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